배우 박정민의 ‘언희(言喜)’

상(賞)

학창 시절, 착하지 않은데 선행상을 받은 날 뭔가 느낌이 안 좋더니, 영어를 못하는데 영어 연극 대회에서 상을 받은 날 내 인생의 상복이 끝났다는 걸 알았다. 그 이후로 난 작은 움직임으로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박수를 연습하는 데 박차를 가했고, 수준급의 박수 머신이 되어, 2013년 어느 시상식에서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었다. (2013년 10월호 참고.)

지난 십여 년간은 주로 내가 내게 주는 상을 많이 받았는데, 예를 들면
‘기존에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아빠가 뜯어말린) 다른 학교에 입학한 기념으로 (아빠 카드로) 산 mp3’라든가
‘첫 드라마를 무사히 마친 기념으로 (아빠 카드로) 산 노트북’이라든가
‘아빠 생일 축하 선물로 (아빠가 절대 못 입는) (엄마 카드로) 산 힙합바지’
따위의 것들이었다. 아빠 카드 사랑해요. 아, 아니 아빠 사랑해요. 아, 그리고.
엄마도.


어찌됐건, 사람인지라 상 욕심이 나기 마련이고 연기해서 상 받을 일은 없을 것 같으니 지나가는 현상수배범이라도 잡아 ‘용감한 시민상’이라도 받아볼까 생각해본 적도 있다. 그 생각과 동시에 순간적으로 나의 얇디얇은 팔이 시야에 들어왔고, 용감한 시민상 이전에 ‘초상’이 먼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마저도 포기한 지 오래다. 좌우지간 그런 식으로 ‘상’과 ‘나’는 큰 인연이 없었다는 거다.

그리고 며칠 전. 백상예술대상 남자 신인상 후보로 초대를 받아 시상식장을 찾았다. ‘박수는 타이밍과 박자, 그리고 볼륨. 파이팅 정민아’ 하는 마음과 ‘끝나고 오랜만에 (아빠 카드로) 소고기 고고’ 정도의 마음 뿐이었다. 나비넥타이를 매고 이준익 감독님 옆에 앉아 있는 모습은 마치 재롱잔치에 아버지를 모시고 온 아들내미가 다음 재롱 타임을 기다리는 모습 같았다. ‘아주 기가 막힌 재롱을 떨어주겠어’ 하는 결연한 표정으로 시상식을 관전하고 있는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내 이름이 들렸다. 나에게 상을 준다고 하는 것 같았다. 다들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일어나서 무대로 걸어갔다. 걸어 나가는 그 길에 얼마나 많은 생각이 들었는지 모른다.

‘남자 신인 연기상이라니.’
‘난 신인도 아니고 연기도 뭐 그닥. 그냥 남자다워 보여서 준 건가.’
‘아니면 저기 앞에 보이는 천우희의 계략인가. 덫을 놓은 건가.’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이 씨ㅂ… 아 이건 아니지.’
‘그래, 사실 이 상이 정말 받고 싶었어.’


기분이 좋았다. 참 많이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자리에, 그리고 TV 앞에, 오랜 시간 가슴 졸이며 응원해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었을 테고, 그들에게 이 상이 조금이나마 그 시간에 대한 위안이 되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감사하기도 했다. 마이크 앞에서 수상 소감을 하던 그 3분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상한 수상 소감 미안해. 긴장이 너무 돼서 샤샤샤.) 기억이 나는 단 한 가지는 수많은 사람의 시선과 박수 소리가 아직까지 큰 떨림으로 남아 있다는 거다. 고마웠다. 정말 고마웠다.

가끔씩 이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그저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로 집착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이 상이 그 순간을 조금은 뒤로 미룰 수 있을 것도 같다. (‘프로일희일비러’인 관계로 칭찬이나 상 받으면 되게 좋아한다.) 누구보다 마음 졸이며 지켜보시는 부모님께서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좀 더 열심히 해보자는 마음도 든다. 동생의 말을 빌리면, 엄마는 내가 상을 받는 순간 눈물을 많이 흘렸다고 했다. 근데 너무 눈물을 많이 흘려서 콧물도 나오고 막 그래서 옆에 있던 송중기 형 팬인 중국인이 보다 못한 나머지 휴지를 줬다고 했다. 엄마는 고마운 나머지 그 사람과 친구 먹고 셀카까지 찍었다고 했다.

#백상 #아들최고 #송중기팬이준휴지 #소통 #교감 #셀피 #맞팔환영 #니하오마

어쨌든 그 순간은 지나갔다. 또 다른 해야 할 일이 있고, 잘해내고 싶은 마음이다. 뜨겁게 만나고 오래 헤어진 ‘송몽규’라는 멋진 인물은 가슴속에 간직하고 또 하나의 인물을 깎아내려가야 하니, 사실 많이 벅차기도 하다. 그렇지만 역할로서가 아닌 박정민으로서 섰던 그 3분의 무대가 더없이 모자란 내게 더할 나위 없는 용기가 되어줄 것도 같다. 그 순간을 느낄 수 있게 해준 당신들에게 정말 감사드린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박정민은 영화 〈동주〉 〈순정〉 〈오피스〉 〈신촌좀비만화〉 〈들개〉 〈전설의 주먹〉 〈파수꾼〉, 연극 〈G코드의 탈출〉 〈키사라기 미키짱〉,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너희들은 포위됐다〉 〈사춘기 메들리〉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언희(言喜)’는 말로 기쁘게 한다는 뜻의 필명이다.
  • 2016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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