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한 작당’ 김민정 대표

그림이 그리운 어른을 위한 그림책방

글 : 유슬기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한 남자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와이셔츠의 단추도 한두 개쯤 풀고, 그림책을 읽는다. 직장생활을 10년 넘게 한 샐러리맨, 그가 퇴근길에 들르는 곳은 다름 아닌 그림책방이다. 어른, 남자, 사람에게도 그림이 주는 위안은 달갑다. 어둡고 퀴퀴하던 만화방을 환하고 쾌적하게 변신시킨 ‘즐거운 작당’의 김민정 대표가 어른을 위한 그림책방 ‘달달한 작당’을 열었다.
‘냉동실 안에 꽁꽁 얼어 있는 조그만 마른 멸치가 생각한 것은 멀고 먼 북녘 바다’다. 멸치는 그 안에서 이렇게 말했다. “난 한 번쯤 차디찬 바닷속에서 물결을 넘나들 듯 헤엄쳐 보고 싶었거든.” “머지않아 난 먹혀버리겠지만, 여긴 북쪽 나라 같아.”

그림책 《손바닥 동화》의 한 장면, 화자는 냉동실 속의 멸치다. 손바닥만 한 책 안에 여섯 개로 나뉜 칸, 작은 그림과 그보다 더 작은 글들이 쓰인 이 책은 20분, 길어야 30분이면 후루룩 읽어낼 수 있다. 여운은 그렇지 않다. 이 단순하고 찡한 그림이 준 감동은 냉동실을 열 때마다 문득문득 떠오른다. 김민정 대표는 이 책이 주었던 위안을 기억해 또 한 번 사고를 쳤다. 본인 표현으로 그는 사고를 치는 사고력(?)이 좋다. 홍대 인근에 만화인들의 아지트 ‘즐거운 작당’을 낸 데 이어 연남동에 ‘달달한 작당’을 뚝딱뚝딱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고 이 작당의 종자책(seed)이 된 《손바닥 동화》는 책방의 정중앙에 뿌려져 있다.

“10년 전에 남편이 선물로 준 책이었는데, 그 씨앗이 어딘가에 심어져 있었나 봐요. 저희는 어릴 때 부모님이 무릎에 앉혀놓고 책을 읽어주는 세대가 아니었어요. 어른들도 그림책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단순한 스토리, 오래 남는 여운

‘즐거운 작당’이 밀실에서 핍박받던 만화 마니아들을 환하고 쾌적한 공간으로 초대한 작당 모의였다면 ‘달달한 작당’은 유년기의 이 달달함을 생략하고 커버린 어른들에 대한 헌사다. 결핍된 줄도 모르고 자란 어른들에게 어떤 달달함을 보충해준다.

“어떤 거창한 의미를 갖고 만든 공간은 아니에요. 이 골목 앞에 제가 자주 가는 술집이 있어요. 거기서 이 건물을 보는데 ‘오!’ 하고 느낌이 오더라고요.”

그의 머릿속에 있던 작당이 3D로 구현된 공간, 옥상에 올라가보니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 건축가인 건물주가 심은 메타세쿼이아 세 그루가 대로변도 아닌 건물들 사이에서 푸르고 푸르다. 마침 이 건물 2층이 부동산에 매물로 나와 있었다고 했다. 그에게 또 한 번 찾아온 작당의 순간, 꼭 넉 달 전의 일이다.

“혼자서 결정한 것 같지만 회사에서 진행했던 의사결정 진행 과정이 제 머릿속에서 다 일어났어요. ‘즐거운 작당’이 생각보다 잘되어서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어요. 그 운이 한 번 더 찾아와주지 않을까, 내가 잘한 점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죠(웃음). 사실 뭔가를 만들 때가 가장 설레고 재미있어요. 문을 열면 그 생각들이 강제로 검증되는 시간이 오죠. 맞아떨어지면 희열이 있지만, 그게 아니면 불안하고 조급해지기도 해요.”


회사 밖으로의 유학


‘달달한 작당’은 ‘즐거운 작당’과 다르다. 천천히 느리게 자라고 있다. 그 성장세가 더뎌서 가끔은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그의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그림책 출판사 관계자들은 그의 어깨를 두드린다.

“출판사 분들께서는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버텨달라고들 하세요. 이분들은 그림책의 생리를 아셨던 거죠(웃음). 저도 ‘즐거운 작당’이 이상했던 거고, ‘달달한 작당’의 속도가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려고 해요.”

‘즐거운 작당’이 남긴 자신감이 약해진 대신, 버틸 수 있는 근성이 강해졌다. ‘즐거운 작당’을 만들면서 그가 적은 글 10가지가 있다. 그 글을 다시 읽으면서 김민정 대표는 자신이 생각했던 성공이 무엇이었는지 되짚어보고 있다.

“당시 온라인 노트에 적어놨었어요. ‘즐거운 작당’을 만들 때 생각한 10가지요. 그중에는 ‘어떤 사람이 와주었으면 좋겠다’ ‘이 이름의 의미는 이런 것이다’ 등의 내용이 적혀 있어요. 그중에는 ‘이런 책방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라는 내용도 있었어요.”

그가 직접 적은 말이지만, Ctrl-C(복사)와 Ctrl-V(붙여넣기)를 누른 것처럼 천편일률적인 공간이 생기길 바란 건 아니었다. 결국 ‘즐거운 작당’에 이은 ‘새로운 개념의 책방’은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처음에 책방을 열 때도 자영업자가 어렵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저랑 남편이 동갑이에요. 비슷한 시기에 사회생활을 했는데, 둘 다 규모 있는 기업에서 일을 했어요. 그러다 훗날 둘이 회사에서 나오면 그 시기도 비슷할 거 같았어요. 둘 중 한 명은 모험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남편에게는 ‘나를 유학보낸다고 생각하라’고 했죠. 큰 조직에서만 일하면 사람이 바보가 되기도 해요. 미리 세상 공부를 한다는 생각으로 나왔죠. ‘벌어가는 돈이 없더라도 투자할 가치가 있는 일이다’라고 스스로와 남편을 설득했어요.”

100세, 더 길게는 120세까지 살 수 있는 시대다. 사회가 정한 정년은 50~60세면 찾아오는데 그 이후의 삶에 대한 그림은 조직이 그려주지 않는다. 스스로 그려야 한다. 김민정 대표는 20년의 조직생활을 접으면서 어릴 적부터 꿈꾸던 일을 생각해봤다.

“저는 회사가 재미있었어요. 그럼에도 나이 마흔 무렵부터는 50~60세까지는 이 일을 계속 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 당연한 일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겠구나’ 하고 다짐했죠. ‘제가 즐거운 일을 만들고 그걸 함께 즐겨주는 사람이 있다면 재밌겠다’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그는 SK케뮤니케이션즈에서 공간을 디자인하는 역할을 했다. 그 공간은 때로 오프라인에 있기도 했고, 온라인에 있기도 했다. 그가 속한 팀에서 만든 가장 뜨거웠던 공간은 전 국민의 미니홈피 ‘싸이월드’였다. 컴퓨터를 켜면 ‘싸이월드’ 혹은 ‘네이트온’만 하던 시대였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재밌고 즐겁게 공간을 활용할까를 고민하는 게 저희 팀의 일이었어요. 무척 신나게 일했죠. 조직에서 나오니 A부터 Z까지 스스로 챙겨야 해요. 조직 안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부분이죠.”


다락 같은 공간이 큐브처럼 연결

‘달달한 작당’의 씨앗이 된 《손바닥 동화》.
‘달달한 작당’의 공간은 책꽂이로 구분된다. 정면에는 앉아서 그림책을 볼 수 있는 좌식 공간이 있다. 그림책이니만큼 책등이 아니라 표지가 보이게 책이 배열되어 있다. 오른쪽 코너를 돌면 몸을 펴고 책을 읽을 수 있는 다락 같은 공간이 큐브처럼 연결되어 있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된다. 옥상으로 가는 계단에는 《킨포크》 등의 라이프 스타일, 요리 책 등이 꽂혀 있다. 넓은 의미의 그림책들이다. 책은 몇 권이고 자유롭게 꺼내 봐도 된다. 음료를 주문하면 1시간은 무료, 이후부터는 10분에 300원씩 추가된다. 다 본 책은 정리하지 않고 테이블 위에 올려둔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게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책방은 말소리보다 책장 넘기는 소리만 가득하다. 사락사락, 혹은 그 책의 문장들을 받아 적는 사각사각.

“어떤 그림책은 표지만 봐도 울컥해요. 그림책이 좋은 점이 짧은 시간에 한 권을 독파할 수 있다는 건데요(웃음). 스토리가 주는 여운은 단순하지만 오래갑니다.”
  • 2016년 07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01811

201811

구독신청
낱권구매
전체기사

event2018.11

event
event 신청하기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