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양궁 금메달 단체 8연패, 개인 2연패 도전하는 기보배

행운은 피나는 노력으로 얻은 보상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한국 양궁은 남녀 개인전과 단체전 석권을 기대하고 있다. 그중 가장 주목받는 선수가 ‘한국 양궁의 보배’라 불리는 기보배(28)다. 그는 2012년 런던올림픽 여자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모두 마지막 한 발로 메달 색깔을 금빛으로 만든 승부사다. 얼마 전 세계양궁연맹(WA)은 “그동안 누구도 올림픽 양궁 개인전에서 2연패를 달성한 선수가 없었지만 기보배에게 새 역사를 쓸 기회가 주어졌다. 자신과의 싸움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기보배를 집중 조명했다.

사진 : 조선DB
기보배의 소속 팀인 광주시청 감독이자 양궁 남자 대표팀 감독인 박채순 감독에게 평가를 부탁하자 “기보배는 예전 신궁이라고 불리던 선수들처럼 특출난 재능을 타고난 선수는 아니지만 가장 함께하고 싶은 선수”라고 했다. 스스로 더 나은 자신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노력하는 유전자도 있다고 하는데 기보배는 정말 노력의 천재”라고 했다.


어쩌다 시작한 양궁

기보배는 이번 여름 김수녕과 윤미진, 박성현 등 한국의 ‘신궁’ 계보를 잇는 레전드들도 이루지 못한 올림픽 양궁 개인전 2연패의 대기록에 도전한다. 어떤 심정으로 준비하고 있는지 그에게 들어보았다.

기보배는 “리우에서도 노력의 달콤함을 느낄 수 있도록 활을 쏘고 또 쏜다”고 했다. 그는 “후배들에게 올림픽은 축제이고 즐겨야 한다고 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한다”면서 “행운은 피나는 노력으로 얻는 보상이고 올림픽에서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고 했다.

그는 여리게 보이는 외모, 상냥한 말투와 달리 강철 같이 단단한 심장을 지닌 ‘철의 여인’이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노력하면 된다”는 믿음이 그보다 강한 선수를 떠올리기 어려웠다. 자신의 활쏘기에 의구심이 들면 그는 주말 휴가를 반납하고 혼자 활을 쏜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깨침이 올 때까지 밤을 새워서라도 활을 쏜다. 그렇게 흘린 땀과 노력의 결실이 얼마나 달콤한지 2012년 런던에서 사무치게 느꼈다고 했다.

2012년 7월 31일 런던올림픽 한국과 중국의 양궁 여자 단체 결승전. 기보배의 단 한 발만 남았다. 9점 이상을 쏘면 우승, 8점이면 연장, 7점 이하면 패배였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는 태산처럼 침착했고, 시위를 떠난 화살은 9점에 꽂혔다.

210- 209, 한 점 차 승리였다.

기보배는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깨침이 올 때까지 활을 쏘는 노력형 선수다.
그 사흘 뒤 이번에는 여자 개인 결승전 무대에 섰다. 멕시코의 아이다 로만과 마지막 5세트까지 5-5로 점수를 가리지 못했다. 연장전인 슛오프는 단 한 발로 결정되는 승부였다. 기보배가 쏜 화살이 로만보다 불과 2cm 과녁 중앙쪽에 맞으면서 마침내 승부가 갈렸다.

기보배는 “불안하고 떨릴 수밖에 없는 순간이 될수록 가장 단순한 생각이 힘을 발휘한다”고 했다. 그 대담함의 원천은 늘 연습하던 대로 하면 된다는 단순한 믿음이었다.

기보배는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기 7개월 전에 태어난 ‘88둥이’다. 한국 여자 양궁이 서울 올림픽부터 단체전 7연속 우승을 했으니 기보배는 ‘신화’가 시작된 해에 태어난 ‘신궁’인 셈이다. 그렇지만 기보배가 양궁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를 듣다 피식 웃게 됐다.

안양서초등학교 4학년 때 양궁 선생님이 선수를 모집한다며 기보배가 있던 교실을 찾았다. 그는 양궁이 뭔지도 몰랐다. 활을 쏘는 게 멋지다는 생각을 해본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양궁 해보고 싶은 학생 손 들어요” 하는 선생님 말씀에 홀리듯 손을 들고 말았다. 지금도 왜 그랬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말 그대로 어쩌다 시작한 것이다.

부모님도 양궁을 한다는 딸의 말에 ‘방과 후 과외 활동’이라고 착각해 쉽게 동의하셨다고 한다. 딸이 선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 따온 메달을 보고 알았다고 한다. 기보배는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었지만 새로 잡게 된 활에도 금세 재미를 붙였다. 어려서 몸이 약했던 기보배의 양궁 실력은 초등학교 때까지는 평범했다. 그래도 친구들과 같이 운동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고 한다. 점점 더 활쏘기에 자신이 생기고 재미가 붙었다.


노력의 참뜻을 깨우쳐 준 스승

지난해 7월 열린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이승윤(왼쪽) 선수와 혼성 리커브에서 금메달을 딴 기보배 선수.
안양서중학교 3학년 때 전국체전에서 3관왕을 하고 국가대표 상비군에 발탁되면서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올림픽 2연패 등 끝을 모르고 승승장구하던 기보배가 양궁에 대한 사랑과 노력하는 자세를 다시 가다듬게 된 건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때였다.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그는 TV해설자로 나서 동료들이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을 지켜봤다. 자신이 설 자리가 어디인지를 분명히 깨달은 순간이었다고 했다.

그는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것은 자만심 같은 것 때문이 아니라 기술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였다”고 했다. 활시위를 당기고 놓을 때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힘 연결에 의문이 들면서 어이없는 실수가 연발됐다고 한다. 최정상 골퍼들이 퍼팅이나 드라이버 샷 입스(yips: 샷 실패 불안 증세)에 걸려 터무니없는 실수를 하는 것과 비슷한 증상이었다고 한다. 물고기가 갑자기 자신의 수영 동작에 의문을 품고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자칫 선수 생명이 끝나는 결과로 연결되기도 하는 증상이다. 그런데 기보배는 “이렇게 된 이상 뭔들 못 하겠는가 하는 오기가 생겼다”고 했다. 연습으로 정면 돌파하기로 하고 깨달음이 올 때까지 활 시위를 당겼다. 그런 지 3개월 만에 제 실력을 되찾았으니 그는 지독한 선수다. 선수층이 워낙 두꺼운 한국 양궁에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한국 대표팀 선발전에서 탈락하는 건 흔히 있는 일이어서 새삼스러운 뉴스거리도 아니었다.

기보배는 리우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2위에 오르며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한국 양궁의 수준은 상당히 높다. 국가대표팀은 정말 어렵고, 힘든 경쟁을 통해 구성된다”며 “국가대표는 영예와 자부심을 의미한다. 동시에 큰 압박감도 있다”고 했다.

장혜진, 최미선, 기보배(왼쪽부터) 등 한국 여자 양궁대표팀이 5월 16일 콜롬비아 메데진에서 끝난 2016 현대 양궁월드컵 2차 대회 단체전 결승에서 우승한 후 금메달을 목에 걸고 기뻐하고 있다.
기보배는 “결국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 같다. 만약 내가 매일 나 자신을 이길 수 있다면 누구를 상대해도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와 코펜하겐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모두 2관왕을 차지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기보배만의 비결은 없는 것일까. 그는 “시합에 들어가면 ‘나만의 세상’이 생긴다”고 했다. 자신과 과녁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모두 지워지는 느낌이다. 소리도 들리지 않고 자신의 심장 소리만 들린다고 한다. 이렇게 집중하는 과정에서 그는 ‘혼잣말’을 한다. ‘나를 믿자’ ‘잘할 거야’라고 계속 혼잣말을 하며 무념무상의 경지에 들어간다. 그는 어쩌면 남들이 미쳤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고 했는데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않는다)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기보배는 훌륭한 양궁 선수의 비결로 두 가지를 꼽았다. 자기 관리와 승부욕이다. 그의 자기 관리는 ‘시간의 지배자’가 되는 것이다. 시간을 계획대로 쓰면서 지배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일과가 엉망이 되고 하루하루 허덕이며 살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리고 남이 아닌 자신을 이기겠다는 승부욕이 중요하다고 했다. 집중력과 판단력을 길러야 스스로를 이길 수 있다는 말도 했다.

양궁 선수 기보배는 구도자나 다름없었다. 인터넷에서 아기자기한 생활정보를 모으는 데 관심을 갖거나 감미로운 팝송을 들으며 쉬기도 하지만 마음은 온통 과녁에 가 있었다. 첫 만남은 우연일지 몰라도 양궁은 그에게 노력의 참뜻을 깨우쳐 준 스승이고 이별할 수 없는 사랑과도 같은 존재였다.
  • 2016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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