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 대 1의 경쟁률 뚫고 주연배우로 신데렐라가 된 ‘하녀’ 김태리

글 : 변희원 조선일보 기자  / 사진 : 박찬욱

박찬욱 감독이 〈아가씨〉의 오디션을 보러 온 1500명의 여배우 중 신인 김태리를 숙희로 점찍은 데는 그의 까만 눈동자가 한몫했을 것이다. 그는 그 눈동자를 빛내며 언제나 뭔가를 묻는다. 〈아가씨〉가 칸 국제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에 초청받아 프랑스 칸에 갔을 때 김태리는 기자들에게 “영화는 어떻게 하면 볼 수 있나요?” “칸 근처 어디를 놀러 가면 좋을까요?” “무슨 영화가 가장 재밌어요?”라고 연신 질문을 던졌다. 박 감독도 “김태리는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하는 성격은 아니라서 마음에 들었다.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다. 현장에서도 ‘그건 왜죠? 잘 이해가 안 돼요’라는 질문을 달고 있었다. 감독의 생각이 왜 틀렸는지에 대해 자신이 생각한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그의 말이 맞을 때도 있었고 아닐 때도 있었지만 도리어 그 말에 내가 자극받을 때도 있었다. 감독으로서 즐거운 부분이었다”고 했다.

박 감독의 말을 전해주자 김태리가 ‘하하하’ 하고 소리 내서 웃었다. 그는 “영화 촬영이 처음이어서 현장 적응하는 데 많은 노력이 필요했고 카메라 원리를 파악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위축되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했다. 감독님이 대화를 워낙 좋아하는 분이고 감독님과 그런 대화를 나누는 게 즐거웠기 때문에 질문을 많이 했다. 알아야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니까. 시키는 대로만 하면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선에서 결론짓고 해버리는 게 된다”고 말했다.

“다들 현장에서 제가 당차고 당당해 보였다는데, 사실 말도 못 하게 긴장했죠. 다들 저한테 속은 거예요. 속으로 많이 불안해하고 떨었어요. 선배들은 ‘잘하고 있다,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줬지만, 저는 ‘나 잘하고 있는 거 맞아?’라고 스스로 되물었거든요.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이겨내는 편이라 혼자서 노력 많이 했어요. 사실은 지금도 그렇게(나 잘하고 있는 거 맞아?) 생각하고 있어요. 경험도 없고 체계적이지도 않고 편하지 않아서, 그런 점이 연기에 좀 나오지 않았나 싶어요.”

“제 연기 인생에서 이제 막 첫 번째 계단에 올라온 거예요. 〈아가씨〉는 평범한 옷을 입는 김태리에게 누군가 다가와 좋은 신발을 신겨주고, 예쁜 귀걸이를 걸어주고, 멋진 외투를 입혀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를 그럴 듯하게 꾸며준 거죠. 그렇기 때문에 다음 작품에서 ‘김태리 다시 보니 별거 없더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어요. 만약 그런 얘기를 진짜로 듣게 되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을 거예요. 그때 내가 가진 능력을 객관적으로 말해준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거든요. 혹평을 듣는 것도 배움의 연속이라고 생각해요. 그다음에 더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면 되니까. 남들이 입혀주고, 신겨줬던 걸 스스로 할 수 있는 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어요.”


차돌처럼 단단한 인상

박 감독은 〈아가씨〉의 오디션에서 김태리와 마주한 순간을 떠올리며 “눈빛이 똘똘했다. 어디엔가 딱 박힌 느낌이었다. 전체적인 인상이 마치 차돌처럼 단단했다”고 회상했다.

박 감독의 말을 김태리에게 전하자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진짜냐”고 되물었다. 오디션 때 “그냥 일상적인 대화들을 했다. 무슨 영화 좋아하냐, 무슨 배우 좋아하냐, 원작을 보고서는 어땠냐, 어떤 점이 재미있었냐. 깊은 얘기를 하진 않았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지나서 캐스팅이 결정됐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는 “잘하려고 욕심 부리지 않았다. 그날 따라 마음도 편했고, 운도 따라줬다”고 했다. 이 영화 전까지 그는 오디션에 수차례 떨어졌었다. 경희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한 뒤 즐거운 대학 생활을 위해 들어간 연극 동아리에서 그는 배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대학 졸업 후 대학로의 작은 극단에 들어갔다. 연기를 하는 것에 반대하던 부모도 극단에 들어간 후에는 꾸준히 지원을 해줬다. 지금 함께 살고 있는 할머니는 이 영화를 보러 오기 전에 청심환을 먹었단다. 영화를 본 뒤 할머니는 그에게 “수고했다”고 했다. 김태리는 “연기를 시작한 건 사소한 이유 때문이다. 재밌으니까. 아직 연기 경험이 별로 없어서 어떤 배우가 될지 생각할 수도 없다”고 했다.

“칸 근처의 섬에 들러서 산책할 때가 생각이 나요. 하늘은 엄청 높고 푸르고 긴 길에 저 혼자밖에 없었어요. 그때 작고 복작거리는 한국이 생각났어요. 제 연기가 매일매일 갑갑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숨통이 트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 2016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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