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주메뉴

  • cover styory
  • focus
  • lifestyle
  • culture
  • human
  • community
    • 손글씨
    • 1등기업인물
    • 나도한마디
    • 기사제보
  • subscription

‘국악계의 아이돌’ 된 농부의 아들

젊은 소리꾼 김준수

국악은 우리의 소리다. 이를 즐기는 관객층은 깊었으나 넓지는 못했다. 이 소리의 외연을 넓히는 데 젊은 소리꾼들이 한몫을 하고 있다. 그 최전방에 김준수가 있다. ‘국악계의 아이돌’ 혹은 ‘시골준수’라 불리는 소리꾼을 만났다.

사진제공 : 국립창극단
남도는 소리의 고장이다. 소리에는 단가, 민요, 잡가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판소리는 민속음악 중 가장 예술성이 깊다. 현재는 열두 마당 중 다섯 마당이 전해지는데 이 판소리의 대부분이 남도에서 시작됐다. 섬진강을 기준으로 동쪽에서 시작된 소리를 동편제, 서쪽에서 시작된 소리를 서편제라 부르는 건 그 때문이다. 1995년, 이 남도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또래의 아이들이 동요나 K팝을 듣고 자라는 동안, 할아버지의 무릎 위에서 민요와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선생님은 그에게 ‘소리꾼’이 되어볼 것을 권했다. 초등학생이 내뱉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였는데도 소리가 좋았어요. 아마 제 고향이 전라도여서 그랬는지도 몰라요. 소리를 접하는 게 자연스러웠거든요. 지금도 사투리로 된 판소리를 하면 아주 편해요(웃음). 나오는 대로 부르면 되니까요.”


〈심청전〉으로 데뷔, 〈배비장전〉으로 주목

전통 소리는 대체로 ‘구전(口傳)’된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발전해왔다. 김준수는 그런 면에서 원작에 가장 가까운 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다. ‘몸에 밴’ 소리와 ‘배워서 따라 하는’ 소리는 다르다. 그래서인지 그는 어린 나이부터 창극계에서 일찍이 두각을 나타냈다. ‘최연소’ 국립창극단 입단 및 ‘최연소’ 주연 발탁 등으로 화제가 됐다. 일각에서는 그를 ‘국악계의 아이돌’이라 부른다.

“다른 길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부모님은 걱정하셨고, 친구들은 부러워했죠. 부모님은 제가 평범하게 대학에 진학해서 직장인이 되기를 바라셨거든요. 반면 친구들은 어린 나이부터 하고 싶은 게 확실한 저를 부러워했어요.”

김준수는 농부의 아들이다. 풍족하지 못한 환경이라 고급 레슨이나 과외는 받기 어려웠다. 집안에 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 싶어 ‘꿈을 접어야 하는 건 아닌가’ 고민하는 순간도 있었다. 그때 그를 붙잡아 준 게 초등학교 시절 그를 소리의 자리로 이끌어 준 은사님이다.

“선생님이 봉투를 하나 건네주셨어요. 나중에 잘 되면 갚으라면서요. 그때 그 봉투에 담긴 마음을 알기 때문에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님께는 지금도 종종 연락을 드려요.”

국립창극단 공연 〈메디아〉
중앙대학교 국악과에 재학해 〈심청전〉으로 무대에 올랐을 때 선생님을 공연에 초대했다. 몽룡이로 무대에 선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대학 시절에도 열심히 오디션을 봤다. 작은 배역이든 큰 배역이든 가리지 않았다. 그러다 〈배비장전〉이 찾아왔다.

“〈배비장전〉 오디션을 볼 당시 저는 정식 창극 단원이 아니라 객원이었어요. 그 전에 작은 배역으로 무대에 올라본 적은 있지만 주연으로 발탁된 건 처음이었습니다.”

배비장은 김준수의 이름 세 글자를 창극계에 새긴 공연이 됐다. 당시 나이 불과 스물셋, 상대역을 맡은 선배들과 열 살 이상씩 차이가 났다.

“그렇게 꿈꾸던 일이 이루어졌는데, 막상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너무 두렵더라고요. 이제 도망칠 수도 없고 누가 대신해 줄 수도 없고 제가 감당해야 할 몫이니까요. 혹여 선배님들께 누가 되지 않을까,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을까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같았죠.”

그리고 3년이 흘렀다. 올해 6월 그는 다시 〈배비장전〉 무대에 오른다. 국립창극단의 스태프들은 그동안 김준수라는 배우가 ‘굉장히 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처음의 풋풋함이 이제는 노련함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했다.


국악의 대중화, 그 선봉에서

6월부터 공연되는 〈배비장전〉
“이제는 무대에서 좀 놀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관객들에게 농담을 던질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창극의 매력은 객석과 무대의 경계가 없다는 거예요. 제가 던진 농담이 관객들에게 통할 때나, 객석의 반응이 ‘뚫릴 때’ 굉장한 희열이 있죠.”

그 사이 김준수에게는 많은 작품이 쌓였다. 국악인 박애리와 함께 한 〈숙영낭자전〉, 국립극장에서 극장식 마당놀이로 기획한 〈춘향이 온다〉, 19금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변강쇠 점 찍고 옹녀〉 등의 무대에 올랐다. 그가 올랐던 무대들은 특히 국립극장에서 ‘국악의 대중화’를 위해 새롭게 선보인 공연이 많았다. 우리가 알던 평면적인 인물들이 극작가 배삼식과 연출가 손진책의 손을 거쳐 입체적으로 태어났다. 〈춘향전〉의 이몽룡은 ‘어디 하나 빠지는 것 없는 엄친아’로, 변학도는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지 못해 두 사람을 떼어놓는 비운의 인물’로 재해석 됐다. 젊은 관객에게 다가가기 위한 소리의 변신, 그 최전방에 김준수가 있었다.

“창극의 인물들은 그 자체로 굉장히 드라마틱해요. 아주 슬픈 장면과 아주 웃긴 장면이 한 작품에서 같이 등장합니다. 한 편의 작품에 16부작의 드라마가 들어 있는 거나 다름없어요.”

특히 지난 4월에 공연한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프랑스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한국 전통 공연’이 유럽에서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것은 이례적이었다.

“저희도 처음엔 어리둥절했어요. 이 극을 프랑스 관객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거든요. 그런데 객석의 반응을 보고 신이 났죠. 사실은 시차 때문에 몸 상태나 목소리는 좋지 않았거든요. 그럼에도 다같이 굉장히 신나게 공연했어요.”

프랑스에서 호평받은 공연 〈변강쇠 점 찍고 옹녀〉
〈마담 옹(Madame Ong)〉이라는 제목으로 올린 공연은 〈변강쇠전〉의 주인공을 옹녀로 바꾸고 그를 색녀가 아닌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신여성’으로 연출했다. 한국에서도 차범석 희곡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작품의 완성도가 높다. 이 공연은 파리의 대표 극장인 테아트르 드 라빌에서 2015~2016 시즌 프로그램 중 하나로 선정돼 무려 1억원의 개런티를 받고 진출했다. 이후 창극 역사상 처음으로 26일간의 장기 공연을 이어갔다.

“아마 자막의 힘이었던 것 같아요. 한국적인 정서의 19금 언어유희가 그들에게 제대로 먹힌 거죠.”

이는 파리에서 한국어 강사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인 한유미-에르페 페조디에 부부의 번역의 공이 컸다. 제대로 번역되기만 한다면, 한국 전통 공연도 얼마든지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다는 걸 검증한 셈이다. 〈변강쇠 점 찍고 옹녀〉는 한국에서도 다시 공연된다. 프랑스에서 받은 기운을 가지고 한국 관객과 앙코르 공연으로 다시 만나게 됐다.

“5월에는 〈변강쇠전〉, 6월에는 〈배비장전〉의 공연이 이어져 정신없지만 관객들이 좋아해주시니 신이 납니다. 오히려 요즘에 고민이 더 많아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소리를 들려드릴 수 있을까 싶은데, 제 소리가 정체되어 있는 것 같아 답답하기도 하고요.”

관객의 눈에는 그가 창극계에서 정상의 자리에 오른 것 같은데, 정작 본인은 갈수록 한계를 느끼고 있다. 하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소리는 그가 평생에 갈고 닦아야 할 길이니까.

“창극계에 활기가 생기고 있을 때 소리를 할 수 있어서 행복해요.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창극을 찾아오는 데 제가 한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실제로 제가 처음 소리를 시작했을 때보다 객석의 연령층이 다양해진 걸 느껴요.”

국악의 대중화라는 거대한 소명이 아니더라도, ‘소리를 사랑’하는 그의 지극한 마음이 관객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다. 소리꾼이자 사랑꾼으로 더 노련해진 김준수가 배비장으로 출연하는 〈배비장전〉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6월 15일부터 26일까지 공연된다.
  • 2016년 06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하단메뉴

상호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김창기
편집인 : 김창기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성동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