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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진화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어요

한국 여성 고인류학자 1호 이상희 캘리포니아 대학교 리버사이드 인류학과 교수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인류의 시작은 아프리카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는 학설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세계 각지에서 인류의 기원을 추정할 수 있는 다양한 유골이 발견되면서 인류의 기원이 다시 쓰이고 있다. 고인류학에서는 수백만 년 전 옛 사람들의 뼛조각, 화석 등을 바탕으로 인류의 기원을 알아낸다. 우리나라 여성 1호 고인류학자로 불리는 이상희 캘리포니아 대학교 리버사이드 인류학과 교수는 2004년 노년기 연구 논문을 발표하면서 고인류학계에서 주목받았다. 그는 일반인도 쉽고 재밌게 이해할 수 있는 칼럼, SNS, 책 등을 통해 인류의 진화라는 주제로 대중과 활발한 소통을 하고 있다.
지난 3월 국내 여러 대학에서 고인류학을 강연하기 위해 방한한 이상희 교수를 만났다.

사진제공 : 이상희, 민음사
화석은 몸이 남기고 간 자취

그가 서울대학교 고고학과에 재학하던 당시 우연히 접한 미국의 인류학자 리처드 리키가 저술한 《오리진》은 그의 인생 궤도를 바꿨다.

“유인원에 가까웠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수렵과 채집을 위해 간단한 도구를 만들어 썼어요. 때로는 그 도구가 생존을 위한 방어 무기로 사용되기도 했지요. 그 도구를 사용해 사냥꾼처럼 지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화석을 분석한 가설을 보며 고인류학에 흥미를 느끼게 됐어요.”

유물과 유적을 통해 과거의 문화와 생활 방식을 연구하는 고고학과는 달리 고인류학은 가설을 세우고, 화석, 유전자 등을 통해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에 큰 매력을 느꼈다. 당시 국내에서는 고인류학을 심도 있게 배울 곳이 마땅치 않았다. 고인류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그는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시간 대학교 인류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마친 그는 2001년부터 캘리포니아 대학교 리버사이드에서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화석의 생김새를 통해 긴 시간에 걸쳐 일어난 인류의 진화적 흐름을 연구한다. 예를 들면 인류의 두뇌 용량의 변화, 노년의 진화,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의 다른 점은 무엇인지 등을 연구한다. 그는 노년의 진화에 대한 연구를 네안데르탈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에렉투스 그리고 현생인류의 치아 화석을 비교해 분석했다.

“유전자가 태어날 때 갖는 정보라면 화석은 유일하게 남아 있는 몸의 증거라고 할 수 있어요. 치아 개수, 턱뼈, 뼈의 크기 등으로 인류가 진화해온 흐름을 알 수 있으니까요. 즉 화석은 몸이 남기고 간 자취인 셈이죠.”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탄생해 전 세계로 퍼졌다는 ‘아프리카 기원론’과 다양한 지역에서 인류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화했다는 ‘다지역 진화론’ 간 논쟁이 뜨겁다.

“지난 2003년 호빗이라 불리는 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인도네시아 플로레스 섬에서 발굴됐어요. 뇌 용량이 40cc에 불과해 갓난아기, 어른 침팬지보다도 작았죠. 또 2008년엔 몽골과 러시아의 접경지대인 알타이산맥 근처에서 콩알만 한 화석이 발견됐어요. 성장판이 닫히지 않은 7세 정도의 여자아이였죠. 고유전자 분석기술을 이용한 연구 결과 네안데르탈인이나 현생인류의 DNA와 차이가 있었어요. 현생인류도 네안데르탈인도 아닌 7만 년 전에 살았던 제3의 인류인 것으로 결론이 났지요.”


인류의 뿌리를 찾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옛 인골을 직접 발굴한다는 것은 천운이 따라야 하는 일이라고 한다.

“미국 내 대학의 인류학 연구팀과 함께 이스라엘의 한 동굴 발굴 작업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네안데르탈인이 생활한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었죠. 열악한 조건에서 한 달 넘게 발굴에 매달렸지만 뼈 부스러기조차 찾을 수 없었어요. 연구팀은 10년 가까이 매달리고 있는데 지금도 찾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죠.”

그러나 그는 화석 연구를 통해 마치 그림 퍼즐을 맞추듯 그가 연구한 것과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수정하고 보완해 가는 과정이 즐겁다고 한다.

“연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몰라요. 그러나 참지 못하고, 단 하나뿐인 정답을 찾으려 하거나 한 번 유추해낸 답을 영원한 정답이라고 생각하려고 한다면 고인류학 연구를 하기 힘들겠죠.”

그는 청동기 유골을 발굴했을 때 마치 청동기 때 사람과 대화하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고인류학은 생물학, 해부학, 생리학, 인문학을 아울러야 하는 것은 물론 풍부한 상상력도 발휘해야 해요. 시대를 넘나드는 대화가 가능한 게 고인류학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고인류학을 쉽고 재미있게


그는 대중과 활발히 소통하는 고인류학자다. 지난해 발간한 《인류의 기원》은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는 책에서 인류의 두뇌는 언제부터 커졌을까, 농경생활로 인류는 풍요로워졌을까, 원시인은 모두 식인종이었을까, 인류는 언제부터 흰 피부를 갖게 되었을까 등 누구나 한 번쯤 궁금했을 질문들에 대한 답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냈다.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 인류 화석과 유전자를 추출해 분석한 DNA 자료를 바탕으로 고인류학적 관점으로 썼어요. 화석, 인류의 진화와 같은 내용은 왠지 어렵거나 따분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잖아요. 누구나 쉽고 재밌게 접할 수 있도록 고인류학이라는 학문으로 소통하고 싶었습니다.”

그가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인류는 지금도 진화하고 있는가’이다.

“진화라고 하면 앞으로 더 좋아지는 것을 떠올리는데 진화는 변화하는 것이죠. 최근엔 진화 속도가 더 빨라졌어요. 인구가 늘어나고 의학의 발달로 유전자의 다양성이 높아졌기 때문이죠. 엄마 아빠의 키와 관계없이 요즘 아이들은 키가 커요. 또 턱이 좁아져 덧니로 치아 교정을 하는 현상도 진화의 한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럽의 한 지역에서 진행한 화석 발굴 작업 모습.
그는 인공지능 알파고에 대해서도 고인류학적인 관점으로 바라봤다.

“인간이 도구를 만들기 시작한 건 230만 년 전 부터예요. 사람이 만든 계산기나 컴퓨터는 빠르지만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는 않잖아요. 알파고의 등장으로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이란 게 어떤 공포감을 뜻하는 것인지 궁금해요. 결국 알파고도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니까요.”

그는 10여 일의 방한 기간 동안 각종 강의와 강연 등으로 빠듯한 스케줄을 소화했다. 인터뷰 시간이 이른 오전이라 피곤할 법했지만, 인터뷰 내내 호탕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작은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긍정적 사고’가 언제나 그를 즐겁게 만든다고 한다.

“하루에 한 번 정도 즐거운 일이 있으면 그걸로 만족해요. 사람을 만날 때 혹은 우연한 것에서 호기심을 느꼈을 때 등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건 무궁무진해요. 연구를 한번 시작하면 화석의 발견 유무 등에 따라 기약이 없어 보이는 것도 있어요. 때로는 답이 없어 보이기도 하는 연구를 묵묵히 해나갈 수 있는 건 하루에 한 번씩 느끼는 사소한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꿈은 후학들과 함께 다양한 관점으로 고인류학을 연구하는 것이다.

“그동안 고인류학의 연구는 북미 중심으로 이뤄져왔어요. 향후에는 한국에서 동북아 지역 연구를 해보고 싶어요. 3만~4만 년 전에는 동북아 지역을 통해 미국이나 유럽 등으로 거쳐 간 사람이 많았어요. 동북아 지역이야말로 인간이 정착한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지요. 비록 화석을 발견하기는 어려운 지역이지만 유전학과 고고학을 접목한다면 의미 있는 연구가 될 것 같습니다.”
  • 2016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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