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나무’ 배우 천우희

평범과 비범 사이 꼿꼿한 줄타기

글 : 유슬기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영화 〈해어화〉에서 천우희는 아비의 노름빚 5원에 팔려 오는 기생 연희 역을 맡았다. 실제의 그는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막내딸이다. 여러모로 고난도의 인물을 탁월하게 표현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배우인데, 실제 그의 삶은 평범하고 평탄했다. 이 평범과 비범 사이, 본능과 이성 사이에서 꼿꼿하게 줄타기를 하는 배우 천우희가 있다.
천우희가 극중에서 노래를 부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웹드라마 〈출중한 여자〉에서 잡지사 에디터 역할을 맡았던 그는 OST를 직접 불렀다. ‘나는야 출중한 여자 / 어쩌면 좋아요 내가 보낸 그 남자 / so What is Love / 난들 알겠니’라고 외치는 그의 목소리는 기분 좋게 청량하다. 그런데 이번 영화를 찍고 그는 ‘다시는 노래 부르는 역할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했다.

말을 알아듣는 꽃, 영화 〈해어화(解語花)〉에서 그는 출중한 재능과 불우한 환경을 함께 가진 기생 연희 역을 맡았다. 박흥식 감독은 이 작품을 ‘하나의 소실점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라고 소개했는데, 천우희에게 그 소실점은 다름 아닌 노래였다. 연희는 〈조선의 마음〉이라는 노래 한 곡으로 조선의 뮤즈가 된다. 그 찰나를 위해 천우희는 노래의 가사를 직접 쓰고 무려 넉 달을 연습했다. 그 기간 그가 적은 일기에는 ‘외롭다’ ‘힘들다’ ‘도망가고 싶다’ 등의 문장들이 쓰였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하고, 종이에만 적은 말이다.

“노래 한 곡으로 모두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게, 정말로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시대의 정신도 담아야 하고, 연희의 재능도 담아야 하고, 그 애잔함 속에 호소력도 있어야 하고요. 노래를 부르다 지쳐서 울기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제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잖아요. 제 곁에 있는 회사 식구들은 다 저를 돕기 위해 와 있는데 제가 흔들리면 안 되니까요. 현장에서도 내색하지 않았어요. 감독님부터 동료 배우들까지 모두 각자의 어려움이 있을 텐데, 그걸 다 감당해내고 있잖아요.”


배우의 일기장


원래 힘든 내색을 하는 편이 아니지만, 더욱 할 수 없어졌다. 2014년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고, 연달아 올해의 영화상, 올해의 발견상 등을 받았다. 수상 뒤 자신보다 주위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전보다 말과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같은 행동을 해도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더 조심해야 했고요.”

〈해어화〉에서 그가 맡은 연희는 아파도 아프다고 하지 않고, 외로워도 외롭다고 말하지 않는 인물이다. 자신이 가진 감정을 모두 표현하고, 느끼는 그대로 발산하는 소율(한효주 분)과 대조적이다. 때문에 극 중에서 연희는 가시꽃에, 소율은 복사꽃에 비유된다.

“연희가 가시를 갖게 된 게 어떤 의미로는 이해가 되더라고요. 자신을 지켜야 했으니까요. 제가 가장 경계하는 건 저 스스로나 제가 연기하는 인물에 대해 ‘자기연민’에 빠지는 거예요. 개인적으로는 그러면 좋은 배우가 되거나 좋은 연기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여기에서 천우희에 대한 첫 번째 궁금증이 풀렸다. 많은 감독이 그에게 ‘풀기 어려운 인물’을 데려온다. 〈한공주〉의 공주를 비롯해서, 〈써니〉의 본드 소녀 상미, 〈손님〉의 무녀 미숙과 곧 개봉할 〈곡성〉의 무명도 그렇다. 사랑 영화였던 〈뷰티인사이드〉에서조차, 그는 여자 주인공 이수(한효주 분)를 사랑하는 여자 우진 역을 맡았다. 그 많은 인물이 천우희를 통과해 무사히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이유, 인물도 배우도 모두 안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그의 인물에 갖는 ‘냉정함’ 때문이었다.

“제 삶은 너무 평온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사랑 많이 받고 자란 막내딸이었고요. 서울보다는 ‘덜 도시’인 이천에서 자라서 오히려 풍요로운 유년기를 보냈어요. 왜 이런 인물들이 저한테 찾아올까가 저한테도 의문이었어요.”

‘이 인물을 표현하기 너무 어렵지 않을까’는 그에게 선택의 기준이 아니다. 그는 본능적인 감각을 믿는다. “나, 이 인물을 하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오면, 하게 된다. 오디션을 보던 무명의 배우 시절에도 그랬다. 단, 작품에 들어가면 철저히 이성적으로 접근한다. 감정을 이입하지 않고 인물을 분석한다.

그 인물을 풀어내는 데 자신의 감정이 방해하지 않도록.

“평소의 저는 기운이 별로 없어요(웃음). 말도 크게 하지 않고요. 그런데 현장에 가면 집중력이 생겨요. 한 신 한 컷에 몰입하는 힘이 센 편이에요.”

연달아 두 작품을 함께 한 한효주는 이를 두고 “우희의 자동차는 시동이 걸리면 바로 달린다”고 했다. 박흥식 감독 역시 “매 컷 다른 연기를 보여주기 때문에, 어떤 컷을 써야 하나 고민하게 만드는 배우”라고 했다.

“매번의 컷은 저에게도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현장에 따라 제 모습이 많이 달라져요. 어떤 감독님을 만나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지고요. 〈해어화〉는 많은 대화와 소통이 있었던 현장이라 제가 더 많은 걸 해볼 수 있었죠.”

반면 나홍진 감독의 〈곡성〉 현장은 달랐다. 〈추격자〉 〈황해〉 등 수컷 냄새 진동하는 영화를 만든 나 감독에게 천우희는 현재로서는 ‘유일한’ 여자 배우다. 웬만한 남자들도 혀를 내두르는 이 하드캐리를 감당할 여배우로 나 감독은 그를 선택했다.

“감독님이 센 분이면 저도 같이 강해져요. 그런데 생각보다 나홍진 감독님이 그렇게 막 나가진 않으세요.(웃음)”


네 안에 대나무가 있는 것 같다

〈해어화〉
감독과의 대화가 현장에서의 천우희를 만든다면, 카메라 앞의 천우희는 상대 배우들이 만든다. 〈한공주〉 이후 달라진 점 중 또 하나는, 그의 상대 배우들이 그야말로 ‘기라성’이라는 거다. 〈손님〉의 류승룡・이성민, 〈곡성〉의 곽도원・황정민 등 웬만한 기(氣)로는 대등하게 맞붙기 어려운 인물들이다.

“독립영화를 할 때도 상업영화를 할 때도 달라지지 않는 게 있다면 저는 현장에서 배우분들을 그 역할로 대해요. 많은 대화를 하기보다 같이 한 번 촬영을 하는 데서 더 많이 배우고요.”

평소 그의 연기를 돕는 건 관찰의 습관이다. 어릴 적부터 주변의 인물들이나 TV 속 인상적인 장면을 흉내 내길 좋아했다고 했다. 그렇다고 친구들을 모아놓고 “야, 봐봐” 하고 보여주던 스타일은 아니었고, 친한 친구들이나 가족에게만 ‘살짝 공개’하는 정도였다고.

“저는 그 사람을 흉내낸다고 생각하는데 결국 제 해석이나 스타일이 담기더라고요. 그래서 연기가 재미있는 것 같아요.”

천우희는 극 중에서 배우로 보이지 않는다. 전혀 연기하지 않는 연기로 영화 한 편을 채운다. 영화는 있는데 배우는 없는 느낌이다. 〈해어화〉의 연희도 그렇다. 아버지의 노름빚 5원에 기생학교인 경성권번에 팔려 온 아이, 술 한 상에 30~40원을 쓰는 한량들 앞에서 웃음 한 번 흘리지 않고 노래를 부르는 꼿꼿한 아이.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에서도 그저 눈망울을 아래로 떨구는 천우희의 연희는 꽃이라기보다는 단단한 나무 같다.

“그러고 보니 〈곡성〉을 찍을 때 곽도원 선배님이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네 안에는 대나무가 있는 것 같다’고요. 웬만해선 꺾이지 않는데, 언젠가 한 번은 쪼개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요.”

여배우 기근 현상을 겪는 최근의 한국 영화에서 꾸준히 작품을 내놓는 소수의 배우 중에 천우희가 있다. 언젠가 배우 문소리가 수상 소감으로 했던 말처럼 그는 아무래도 ‘한국 영화의 꽃이 아닌 나무가 될’ 모양이다. 마침 그를 만난 날은 미세먼지가 사라져 오랜만에 하늘이 푸른 식목일이었다.
  • 2016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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