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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내가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

웹드라마 〈퐁당퐁당 LOVE〉 쓰고 연출한 김지현 PD

고3 소녀 단비(김슬기)가 조선시대로 시간 이동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MBC의 웹드라마 〈퐁당퐁당 LOVE〉가 지난 2월 29일 기준으로 조회 수 1000만 건을 돌파했다. 지난해 12월 10일부터 네이버 TV 캐스트를 통해 총 10부작으로 공개된 이후 3개월 만의 일이다. 〈퐁당퐁당 LOVE〉는 인터넷에서 공개된 이후 두 차례 TV 방영 때도 높은 시청률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팬들의 요청에 곧 DVD도 발매될 예정이다.

사진제공 : 김지현
광고: 중학생 수포자(수학 포기자) 55.1%
단비 엄마: 으이구, 하나도 쓸데없이…그 재주로 수학 문제 풀었으면 벌써 서울대에서 모셔갔겠다.
단비: 난 왜 이 땅에 쓸모없이 태어나서….
이도: 너 참 쓸모가 있을 듯싶구나.


당신은 쓸모없지 않다

상암동 MBC 사옥에서 만난 〈퐁당퐁당 LOVE〉의 연출자 김지현 PD는 마침 배우들과 함께 DVD에 들어갈 인터뷰 촬영을 마치고 온 참이었다.

김 PD의 손에는초콜릿과 과자 등이 정성껏 포장된 ‘조공(팬이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주는 선물)’ 가방이 들려 있었다.

단막극 2회 분량의 이 드라마가 젊은 층으로부터 지속적이고 뜨거운 사랑을 받는 이유는 수포자, 무쓸모, 노답의 고3 등 현실을 반영한 소재와 현실에선 인정받지 못하는 주인공이 시간 이동한 조선시대에서 ‘쓸모 있는 고삼’으로 성장해가는 이야기에 재미와 공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모교로 강연을 나갔을 때 학업 때문에 고민하는 수많은 후배들을 만났어요. 그들을 주인공으로 희망과 용기를 주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죠. 주인공 단비가 수포자인 설정은 제 이야기이기도 해요.”

비를 통해 과거로 간 주인공의 이름이 ‘단비’이거나, ‘고3’과 ‘고삼(생식기를 자른 남성, 내시를 의미하는 다른 말)’처럼 동음이의어로 벌어지는 코믹한 오해, 세종대왕으로 추정되는 왕 이도에게 단비가 수학, 생물학 등의 미래 지식을 가르치고 이도가 단비에게 내린 이름이 ‘장영싫’인 것 등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재치 있게 섞어 드라마의 재미를 만들어 냈다.

김 PD는 데뷔작인 〈원녀일기〉를 끝내고 얻은 휴가 기간 중에 〈퐁당퐁당 LOVE〉의 대본을 썼다. 기존 드라마 PD 중에 직접 대본까지 쓰는 PD는 몇 안 된다.

“연출자의 색깔과 의도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게 단막극이에요. 저 말고도 PD가 대본을 직접 쓰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단막극은 호흡이 짧아서 쓸 수 있었지만 미니시리즈는 못 쓸 것 같아요. 드라마 작가님들이 얼마나 위대한 능력자인지 깨달았어요.”

판타지 퓨전 사극이지만 조선시대가 주 배경이기 때문에 허투루 쓸 수 없었다. 역사적 고증과 글감 수집을 위해 대학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아가며 썼다. 극 중에서 중전이 교미하던 뱀의 가루로 사술을 부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실제로 역사서에 나오는 세종대왕의 며느리 이야기를 차용해 쓴 것이다.

“요즘엔 뭐든지 인터넷으로 검색하는데 거기엔 분명 한계가 있어요. 검색도 자기 머릿속에 있는 것으로만 하기 때문이죠.”


힘들지 않은 현장은 없다

웹드라마 〈퐁당퐁당 LOVE〉
보통 드라마 제작 현장에는 출연진을 비롯해 100여 명의 스태프가 함께 일한다. 〈퐁당퐁당 LOVE〉의 경우에는 70명 정도가 참여했다.

“촬영장에 나가면 모든 출연진과 스태프를 위해 기도부터 해요. 여름이면 덥지 않게, 겨울이면 춥지 않게 해달라고요. 남극대원도 날씨가 너무 추우면 기지 안으로 들어가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하니까요.”

2007년 MBC에 드라마 PD로 입사한 김 PD는 2014년 〈원녀일기〉로 데뷔하기까지 〈라이프 특별조사팀〉 〈동이〉 〈포틴〉 등의 드라마에 조연출로 참여했다.

“기존 사극에서 밤에 연애하는 장면을 못 본 것 같아 〈원녀일기〉를 쓸 때 ‘밤 신(밤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을 많이 넣었는데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퐁당퐁당 LOVE〉 때는 ‘밤 신’을 거의 뺐는데 ‘비 신’이 함정이었어요.

비 오는 신 촬영이 고생스럽다는 걸 이번에 알았어요. 조연출하면서 선배님들한테 많이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끝이 없는 것 같아요. 연출학교가 있다면 당장이라도 들어가고 싶을 정도예요.”

드라마 PD는 일반인과 다른 시간대를 살아간다. 몇 년, 몇 월, 며칠이 아니라 어떤 드라마를 했던 때로 시간을 인식한다. 드라마로 삶의 시간 축이 돌아간다. 김 PD도 예외 없이 그렇다.

“다른 어떤 분야보다 밤샘, 야근 강도가 세고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극한 직업이에요.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시간을 살아갈 수밖에 없죠. 제게 2014년은 〈마마〉와 〈원녀일기〉를 찍은 해로 기억됩니다.”

데뷔작인 〈원녀일기〉는 조연출 시절 휴가 기간 중에 쓴 대본으로 찍었다. 김 PD는 이 작품으로 제20회 아시안TV어워즈 단편드라마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햄릿》 《리어왕》 《맥베스》 《오셀로》와 《로미오와 줄리엣》의 여주인공이 모두 친구라는 가정하에 이들이 죽기 직전의 하룻밤 이야기를 담은 〈데스데모나는 오지 않아〉라는 희곡을 쓴 적이 있어요. 그럼 우리 고전 속 인물 중엔 누가 있지 생각하다 나온 게 〈원녀일기〉예요. 콩쥐, 심청, 춘향 등의 여성 캐릭터를 통해 제 또래 여성들의 고민과 사랑을 풀어냈죠.”


‘김 감독’이라 불린 소녀


김 PD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연극에 빠져 살았다. 대학보다 극단에 먼저 들어갔을 정도다. 대학 시절, 연세대 극예술연구회와 사회과학대 연극동아리 두 곳에서 활동했다. 드라마 PD가 된 지금도 선후배들과 함께 동문 극단을 결성, 작품을 무대에 올리곤 한다.

“대학 때는 언제나 짧은 머리, 트레이닝 바지 차림에 힐리스라고 바퀴 달린 신발을 신고 다녔어요. 연극하느라 너무 바빠서 이동 시간을 줄여야 했거든요. 지금 돌이켜보면 제 인생의 흑역사예요(웃음).”

어린 시절 별명이 ‘김 감독’이었을 정도로 드라마와 영화, 연극을 좋아했다.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일기장에 썼다. 가족과 친구들이 그가 쓴 이야기를 좋아해 주었다. 이야기를 통해 사랑받았듯 이야기로 세상을 사랑했다. 어린 ‘김 감독’은 별명처럼 어른이 되어 감독이 되는 것을 꿈꿨다. 여기에는 부모님과 가족의 영향이 컸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과 함께 드라마와 영화를 많이 봤어요. 재미있는 영화가 비디오로 나오면 엄마랑 함께 봤고요. 엄마 덕분에 저의 첫사랑 주성치(홍콩 영화배우) 님을 영접할 수 있었고요. 열심히 드라마를 본 덕분에 MBC에도 입사할 수 있었죠. 입사시험 문제로 MBC에서 방영됐던 드라마를 시대 순으로 나열하는 문제가 나왔거든요.”

김 PD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는 가족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시청자가 원하는 이야기가 만나는 지점이 어디일지 늘 고민해요. 그런 면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이 든든한 조언자가 되어주죠. 엄마가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사는 게 너무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시크릿 가든〉 보는 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버텼대요. 저도 다른 사람의 삶에 버팀목이 되어주는 그런 드라마를 만들고 싶어요.”

차기작은 아직 예정이 없다. 푸른 청재킷 느낌의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밑그림만 그려놓은 정도다.

“〈원녀일기〉가 뜨겁고 빨간 이야기였다면 〈퐁당퐁당 LOVE〉는 에메랄드 녹색의 이야기였어요. 다음 작품에서는 파란색으로 브로맨스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어요.”
  • 2016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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