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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 번쯤 본 듯한 얼굴

데뷔 26년 만에 영화 첫 주연 이성민

이성민은 늘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이었다. 드라마 〈파스타〉에서 밉상 사장을 연기할 때도, 〈골든타임〉에서 워커홀릭 의사 역을 맡았을 때도, 영화 〈군도〉의 우두머리나, 웹툰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 〈미생〉의 오상식 차장을 맡았을 때도 그는 ‘어디엔가 있을 법한’ 인물을 어디선가 한 번쯤 본 듯한 모습으로 표현해왔다. 그리고 첫 주연작인 〈로봇, 소리〉에서 그는 아빠가 되었다.
이성민은 가랑비가 옷을 적시듯 대중의 마음속에 들어왔다. 그리고 마흔여섯이 되어 영화에서 첫 주연을 맡았다. 이번에는 ‘아빠’다. 누구에게나 있기에 아무나 표현할 수 없는 얼굴. 〈로봇, 소리〉의 해관(이성민)은 언젠가 한 번쯤 본 듯한 얼굴로 관객의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온다. 잃어버린 딸을 찾겠다고 전단지를 돌리는 아버지의 붉게 충혈된 눈, 간절함이 일상이 되어 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린 피로한 얼굴.


〈로봇, 소리〉에서 딸 잃은 아버지 연기

여전히 2G 폰을 쓰면서 딸을 찾아 헤매는 해관의 시간은 딸이 실종된 10년 전에 멈춰 있다.

그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 건 세상의 모든 소리를 기억하는 로봇, ‘소리’를 만나면서부터다.

〈로봇, 소리〉는 일종의 SF 영화다. 원래는 적국의 정세를 정찰하던 이 인공지능 로봇은, 무고한 인류를 살육하는 데 쓰이는 자신의 존재에 회의를 느끼고 스스로를 추락시킨다.

로봇이 떨어진 곳은 대한민국의 외딴 섬. 딸과 관련된 소리가 들리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는 어느 아버지가 흘러들어 온 곳이기도 하다.

“몇 달 동안 매일 데리고 다니던 로봇인데 오늘은 낯설어요(실제로 로봇 ‘소리’는 인터뷰 내내 그의 곁을 지켰다). 너무 깨끗해져서요. 얘가 등장해서만이 아니라, 기존 작품들과 다른 새로운 영화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슬픔은 많이 걷어내려고 했고요. 관객을 울리려고 하기보다 절제하는 모습이 영화의 미덕이 됐어요. 영화가 잘되면 감독님 덕이죠. 안 되면 제 탓이고요(웃음).”

〈로봇, 소리〉는 배우 이성민의 첫 주연작이다. 그는 ‘영화를 찍을 때는 몰랐는데, 마치고 나니 새삼스럽게 주인공의 무게가 다가온다’고 했다. 그를 믿고 출연해준 후배들, 현장에서 고생하던 스태프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잠도 잘 안 오고, 밥도 잘 안 먹힌다. 홍보하느라 ‘태어나서 가장 말을 많이 하는 요즘’인데, 새삼스레 어린 나이에 주연을 맡은 배우들이 대단하다 싶다. 어떻게 이 중압감을 견뎠을까.

“제가 캐스팅돼고 다른 배우들을 기다리는데 걱정이 되더라고요. 누가 와줄까. 근데 이희준 씨가 한다는 거예요. “희준이가?!” 그랬어요. 이희준 씨도 이하늬 씨도 더 큰 영화, 더 큰 배역을 할 수 있는 친구들인데 같이 해줘서 너무 고마웠어요. 집사람 역을 해준 (전)혜진이는 20대 초반부터 알던 친구예요. 저희 집에 혜진이 어머니가 해주신 김치가 있어요. 얼마 전에 이선균 씨랑 통화했는데, (홍보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다 하라고 하더라고요. 아이돌도 아닌데 요즘 차에서 김밥 먹으면서 움직이고 있어요(웃음).”

이희준은 도리어 이성민의 첫 주연작을 함께 할 수 있어 행운이었다고 했다. 이희준에게 이성민은 “연기가 막힐 때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선배”다. 둘은 대구에서 연극을 하던 시절부터 알던 사이인데, 이성민은 후배들이 무대 뒤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있으면 데리고 나가 밥을 사 먹였다. 두 사람이 주연과 조연으로 만난 영화 〈로봇, 소리〉는 마침 대구를 배경으로 한다. 극 중에서 딸이 실종되던 날은, 대구 지하철 사고가 났던 날이다.

“작품의 배경이 이번 작품을 결정하는 데 제일 큰 영향을 줬죠. ‘대구에서 촬영할 수 있겠구나’ 싶어 설레었어요. 고향은 경상북도 봉화인데, 대구도 제 고향이나 다름없어요. 젊은 시절을 보냈으니까요. 거기에 어릴 적 선생님들, 선배님들도 계세요.

극 중에서 대구 지하철 사고가 언급되면 보는 분들은 가슴을 망치로 맞은 듯하겠죠.”

힘든 사건을 다시 꺼내는 게 맞는 걸까 싶어 혼자 대구에 내려간 적이 있었다. 팔공산에 생긴 추모비를 보면서 ‘누를 끼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영화 개봉을 앞두고 다시 한 번 다녀왔다. 중앙로의 긴 계단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아마 딸이 있어서 해관의 마음이 더 잘 이해된 게 아닐까 싶어요. 딸의 나이가 극 중의 딸과 비슷한데 저도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을 쭉 지켜봤으니까요. 세상 대부분의 아버지는 히어로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에요. 딸을 키워보니까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야 부모 마음을 안다는 건 진짜예요.”

시사회를 마치고 이성민은 “딸이 중2병을 심하게 앓아서 고생했다”는 말을 했는데, 기사가 나간 뒤 딸에게 ‘혼쭐(?)’이 났다.

“하도 뭐라고 하기에 ‘미안해. 이 영화가 딸이 나오는 이야기잖아. 그리고 너 진짜 중2병 있었잖아’ 그랬죠(웃음). 딸아이 또래들이 어떻게 볼지 궁금해요. 사실 저희 나이의 관객들은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시사회 때 제 뒤에 심은경 양의 어머님이 앉으셨는데, 영화를 보는 동안 계속 우시더라고요.”

배우 심은경은 영화에 목소리로만 등장한다. 로봇 ‘소리’의 목소리 역을 맡았다.

더빙은 후시녹음이었고, 이성민은 촬영 당시 대사 없는 로봇과 함께 연기를 했다. 그럼에도 둘의 호흡이 아주 잘 맞는다. 이성민은 심지어 “소리가 연기를 아주 잘했다”고 했다.

“소리가 어떻게 움직여야 효과가 있을까 싶어 궁리도 많이 하고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냈어요. 인형극 하는 것처럼요. 제가 대구의 인형 극장에서 아동극, 인형극을 오래 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로봇의 호흡에 더 관심이 가더라고요. 얘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 순간이 정말 재미있죠.”


인생은 놓아주는 연습


극 중에서 딸 유주(채수빈)와 아빠 해관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는 건, 딸이 아빠 몰래 밴드 음악을 하면서다. 딸이 안정된 길을 가길 바라는 아빠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 언성을 높이고 만다. 그리고 그날 딸이 사라진다.

실제로 이성민은 유주만 한 나이에 ‘연기를 하고 싶다’는 이유로 부모님의 반대를 겪었다. 결국 집에서 나오는 방법으로 꿈을 관철시켰다. 부모 나이가 되어서야, 얼마나 가슴 치는 일이었는지가 헤아려진다.

“자식은 놔주기 위해서 키우는 거 같아요. 자식과 멀어지는 연습을 하는 거죠. 저도 누군가에게 제 딸의 손을 넘겨줘야 하잖아요. 그걸 준비하는 단계인 거 같아요. 그런데 이 모든 걸 다 알고 과거로 돌아간대도 부모가 원하는 인생을 살지는 않을 것 같아요. 제가 딱히 술을 좋아하지도 않고, 좋아하는 운동도 없고, 취미라고 할 만한 게 없어요. 그런데 연기는 안 그래요. 매번 다시 한 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늘 더 잘하고 싶거든요.”

그럼에도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송구스러운 마음이 든다. 굳은살이 생기지 않은 손을 보면 ‘백수건달 손 같다’는 생각도 한다. 연극을 하던 무명 시절에도 한 작품을 마치면 바로 다음 작품을 시작했다.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일이 없었다고 했다.

“회사원들도 매일 출근하잖아요. 근데 저희 하는 일이 뭐 특별하다고 쉬어야 하나요. 〈미생〉 하면서 많이 느꼈어요. 직장인들은 대단해요. 그들의 감정 노동은 배우보다 더하더라고요.”

배우가 된 지 26년 만에 첫 주연을 맡았다.

길에 나가면 사람들이 몰려와 사인을 받는다. 여전히 어리둥절하지만, 무명의 자신을 받아들였듯 유명해진 자신과도 친해지려고 한다.

“〈골든타임〉 끝나고는 애써 부정했어요. ‘왜들 이러지?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라고요. 지금은 조금 인정하려고 해요.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라고. 아이가 어릴 때는 아빠는 연예인이 아니라고 가르쳤는데, 요즘은 ‘아빠가 연예인일 수도 있을 거 같아’라고 말해요(웃음).”
  • 2016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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