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소년이여, 꿈을 가져라

리처드 용재 오닐의 이름에는 ‘용기’가 두 번 들어간다. 먼저 ‘Richard’라는 영어 이름에 ‘용기’라는 뜻이 담겨 있고, ‘용재(勇才)’에도 용기와 재능이 숨어 있다. 그는 “내게는 용기가 두 배가 있으니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다”고 말한다.
2월 20일 그의 새로운 도전이 있었다. 후배 아티스트들과 함께 꾸민 공연 〈My Way〉다.
공연에 앞서 그와 서면 인터뷰를 나누었다.

사진제공 : 크레디아
한국은 그가 ‘리처드’와 ‘용재’라는 이름을 나란히 쓰는 유일한 나라다. 그리고 그에게 두 개의 조국을 선사한 나라이기도 하다. 무대에 서기 전, 연주자는 누구나 긴장한다. 용재 오닐은 무대에 서는 순간만큼이나 연주를 준비하는 과정을 사랑한다. ‘1000번의 연습을 해도 떨린다면, 1만 번을 연습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평소 달리기와 독서를 즐기는데, 평소에 꾸준히 해야 한다는 점에서 음악과 닮은 면이 있다. 2015년에는 ‘물 뜨러 가는 길 42.195km’라는 주제로 ‘러브 챌린지’ 마라톤에 참가해 완주했다. 그는 각 코스 반환점마다 물 부족 국가의 심각성을 담은 사진과 메시지를 남겼다. 이렇게 모아진 기부금은 물 부족 국가의 구호 활동에 쓰인다.

“달리기와 음악은 공통점이 많아요. 공연과 리허설 스케줄이 쭉 잡혀 있다면 철저히 준비합니다. 연습이 잘 안 된다거나 하기 싫다거나 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아요. 약속한 것을 해내기 위한 컨디션 관리는 필수입니다. 가장 닮은 점은 모험이라는 거죠. 저는 모험이 좋습니다.”

이번 2월 20일에는 새로운 모험의 장이 열렸다. 미래의 아티스트들과 함께하는 용재 오닐의 공연 〈My Way〉다. ‘소년이여, 꿈을 가져라’라는 부제로 진행된 이 공연에서 그는 처음으로 브람스의 소나타를 연주한다.


내가 받은 행복을 후배들과 나누고 싶다

“제가 받았던 기회를 누군가 받아서 이어갔으면 하는 강력한 바람이 담긴 공연입니다. 1부의 브람스 소나타는 실연으로는 처음이에요. 2부에서 영 아티스트(young-artists)와 함께할 텐데, 한국에는 정말 뛰어난 클래식 연주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도 주목해주세요. 이번에는 바이올린의 김동현과 홍유진, 첼로의 여윤수, 더블베이스의 이형진, 비올라의 태랑, 이렇게 5인입니다.”

비행기 마일리지만 100만 점이 넘을 정도로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한국에서는 꾸준히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가 연주하는 곡에는 묘한 감동이 있다. 특히 〈섬집 아기〉를 연주하는 리처드 용재 오닐의 모습은 더욱 그렇다.

“〈섬집 아기〉는 한국 팬이 알려준 곡이에요. 동요를 들으면 한국어 배우기가 좀 더 쉬울 것 같다고 해서 알려줬는데, 처음에는 동요가 왜 이렇게 슬픈지, 왜 할머니와 어머니가 보고 싶어지는지 알 수 없었어요. 가사를 알고 나서 정말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음악의 곡조로 할머니가 다가오신 거 같아요. 저는 이 노래가 너무 좋습니다.”

그가 연주한 〈섬집 아기〉가 수록된 앨범 〈눈물〉은 용재 오닐 최고의 베스트셀러다. 2006년 클래식과 인터내셔널 팝 두 분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이자, 비올리스트로서 전례 없는 기록을 남긴 음반이 됐다. 백 마디의 말보다 한 곡의 음악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는 걸 알려준 연주이기도 하다.

용재 오닐의 어머니는 6・25때 전쟁고아가 됐다.

지적장애가 있어 더욱 곤궁한 처지였던 그를 아일랜드계 미국인 부부가 입양했다. 그렇게 거둔 아이가 서른여섯 명이었다. 용재 오닐은 조부모님과 어머니 밑에서 동네 유일의 동양인 꼬마로 자랐다. 할머니는 손자의 리듬감이 뛰어난 것을 발견하고 네 살 때부터 음악 교육을 시켰다. 그는 2013년 출연했던 인터뷰 프로그램 〈무릎팍도사〉에서 “할머니는 나의 교육을 위해 10년 동안 매일 왕복 200km를 운전했다. 할머니는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모습만 보여주셨다. 할머니가 계셨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했다. 어린 용재 오닐이 처음 손에 든 악기는 바이올린이었다.

“당시 제가 살던 워싱턴 주에서는 매년 음악 페스티벌이 열렸습니다. 첫 해에는 바이올린 연주자로 갔었죠. 너무 감동적이라 매년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해 오디션 날 조금 늦는 바람에 바이올린 모집이 끝나버렸더라고요. 너무 하고 싶어서 선생님들께 아주 간절하게 말씀드렸고, 비올라 자리는 아직 비어 있어 비올라를 해보게 됐어요. 저는 한창 크는 중이었고 팔도 길고 손가락도 긴 편입니다. 그런데 비올라를 잡으니 내 몸에 딱 맞는 악기를 만난 느낌이더라고요. 그때부터 비올라를 연주했습니다. 그 이후로 앙상블 안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비올라의 매력에 흠뻑 빠졌고요.”


‘크레이지 티처’ 혹은 ‘몽키 티처’

리처드 용재 오닐과 협연을 마친 ‘안녕, 오케스트라’.
지금의 그는 세계적인 비올리스트다. 그래미상 두 개 부문에 후보로 지명됐고 2006년에는 에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상(미국의 권위 있는 클래식 상, 매해 뛰어난 기량과 장래성을 보인 클래식 연주자 다섯 명 내외를 링컨 센터가 선정해 수여한다)을 수상했다.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비올리스트로는 최초로 전액 장학금과 아티스트 디플로마를 받았고, 뉴욕에서 펼친 많은 음악 활동을 인정받아 뉴욕 시의 명예로운 시민상도 수상했다. 앙상블 디토와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면서 2007년부터는 UCLA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학교에서 그는 ‘미친 교수님(crazy teacher)’으로 불린다. 악명이 아니라 미담이다. 학생들을 만나면 “밥은 먹었니?” “뭐 먹고 싶니?” “페스티벌 참가비가 필요하진 않니?”라고 묻기 때문이다.

“저는 강효 교수님과 세종솔로이스츠를 통해 좋은 기회를 받았고, 어릴 적 꿈이었던 링컨 센터 체임버 뮤직 소사이어티(CMS)에도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CMS에서도 정말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많은 것을 배웠죠. 저도 기회를 받았던 사람으로서, 제가 받았던 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나눠주고 이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995년 뉴욕에서 창단한 세종솔로이스츠는 〈워싱턴 포스트〉지에서 “최고의 앙상블”이라는 극찬을 받은 현악 악단이다. 줄리어드와 예일대 음대 강효 교수가 이끄는 이 팀은 유럽에서 인정받는 ‘한국계 악단’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리처드 오닐에게 ‘용재’라는 이름이 생긴 것도 그때다.


한국에서 그는 ‘몽키 티처’라고 불린다. ‘안녕,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안녕, 오케스트라’는 용재 오닐이 2012년에 창단한 음악단이다. 한국에서 자라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모아 만들었다. 용재 오닐은 “이 음악단을 통해 인생에 아무리 고통스러운 일이 생겨도 스스로 이겨낼 수 있는 무언가를 아이들의 손에 쥐어주고 싶었다”고 했다.

“음악 자체가 인생의 복잡다단한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오케스트라에서 함께 배우고 연주하는 과정이 뭔가를 해낸다거나, 극복하는 과정 그 자체이고, 그 경험이 아이들의 앞으로의 삶에서도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기에 더 열심히 했어요.”

함께 〈안녕, 오케스트라〉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이보영 PD는 “내 인생에 처음으로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했다”고 했다. 방송 후 한 기업에서 아이들의 공연을 후원하겠다고 나섰고, 두 번째로는 출판사에서 이 이야기를 책으로 내겠다고 했다. 세 번째로는 영화로 제작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고, 마지막으로 안산문화재단에서 아이들을 재단 소속 오케스트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처음에 나왔다. 시끌벅적하고 소란스럽던 아이들은 용재 오닐의 등장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악기를 들고 바흐를 연주하자 아이들이 찬물을 끼얹은 듯 일순 조용해지면서 눈을 반짝였다. “음악이 음악으로만 불러일으킨 순수한 기적의 순간”(《안녕, 오케스트라》, 39p)이었다. 바흐는 어린 용재 오닐을 음악의 길로 이끈 음악가다. 어릴 적부터 그는 바흐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즐겨 들었다.

“바흐는 정말 완벽한 작곡가로, 음악의 모든 것입니다. 인간의 문명사에서 역사적인 존재이기도 하죠. 바흐 이후의 슈퍼 휴먼이 베토벤일 테죠. 올해 디토 페스티벌의 테마 작곡가가 베토벤이라서 아주 설렙니다. 바흐의 곡들은 수학적으로도 완벽한데, 바흐는 거기다 인간의 모든 감정까지 담아냈죠. 연주할 때면 마치 그것을 해독하는 느낌입니다.”
  • 2016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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