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주〉 독립군 송몽규 역 배우 박정민

부끄럽지 않은 젊음을 위하여

한 사람이 쓴 글은 그 사람과 얼마나 닮아 있을까.
영화 〈동주〉를 보며 윤동주 시인은 자신의 시와 닮은, 청명한 삶을 살았음을 알게 됐다.
배우 박정민도 그렇다. 그가 본지에 기고하는 칼럼(언희)처럼 솔직하되 유쾌하고, 겸손하되 깊다.

사진제공 : 메가박스 플러스엠
한 아름다운 청년이 있었다. 안경이 잘 어울렸고, 글을 잘 썼다. 구한말 연희전문학교를 나와 일본 교토제국대에서 유학한 엘리트. 원한다면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었던 청년은 고작 스물여덟 해를 살고 일본 후쿠오카의 감옥에서 눈을 감았다.

한 아름다운 청년이 있다. 안경이 잘 어울리고, 글을 잘 쓴다. 고려대학교를 중퇴하고 한예종에서 영화와 연극을 배웠다. 원한다면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었던 청년은 배우가 되고 싶고, 무대에 서고 싶다는 마음으로 10년을 버텨왔다. 두 청년이 영화 〈동주〉에서 만났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 그리고 그의 이란성쌍둥이 같은 인물 송몽규. 두 사람의 관계는 우리에게는 조금 낯설 수도 있지만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이들은 마치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같다. 단, 모차르트가 송몽규, 살리에리가 윤동주와 비교될 만하다는 점이 다르다. 윤동주보다 항상 한 발짝 앞서던 인물, 그에게 동경과 열패감을 동시에 안겼으나 누구보다 윤동주의 시(時)를 먼저 알아보고 아껴준 인물.

한 집에서 태어난 이 동갑내기 사촌은 결국 한 감옥에서 죽는다.

박정민은 자신을 송몽규와 견주는 것을 한사코 거절했다. 처음 시나리오로 만났을 때는 그저 멋있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었다. 인물에 대해 알아갈수록 ‘도무지 가 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그 가늠할 수 없는 한계 때문에 그는 눈물이 났다.

“송몽규 선생님이 주민들 앞에서 조선이 처한 현실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그가 열두 살 때 일이에요. 중학교를 졸업하고 상급학교를 가야 할 나이에 자기 발로 광복군을 찾아가 자원입대를 해요. 열아홉 살 때 말이에요. 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분을 따라잡을 수가 없어요. 다만 제가 표현한 인물이 실제 인물에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죠.”


넌 시를 써. 난 총을 들테니


실존하는 인물을 표현하는 것은 배우에게 무거운 책임을 느끼게 만든다. 윤동주를 연기한 강하늘도 같은 고민으로 밤을 지새웠다. 아직 한 번도 영화화된 적 없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둘의 어깨는 무거웠다. 막상 두 사람을 캐스팅한 이준익 감독은 “강하늘은 윤동주였고, 박정민은 송몽규였다”고 말했다.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감독님께 배운 게 있어요. 내가 나오지만 ‘내 영화’는 아니라는 거예요. 함께 만든 사람들의 것이자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것이죠. ‘내가 돋보이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어요. 저는 감히 현장에 있었던 스태프 모두가 윤동주였고, 송몽규였다고 말하고 싶어요. 예산도 적고, 인원도 적고, 촬영 회차도 적었지만 정말 좋은 팀이었어요.”

윤동주는 감옥에서 죽기 전에 이런 말을 남긴다. “이런 시대에 태어나 시인을 꿈꾼 것이 부끄럽다”고. 〈별 헤는 밤〉 〈새로운 길〉이라는 청명한 시를 쓰던 그는 신사참배와 창씨개명을 겪으며 〈자화상〉과 〈참회록〉을 남긴다. 누구보다 그 시의 맑음을 지켜주고 싶어 했던 게 송몽규다. 그는 윤동주보다 먼저 신춘문예에 당선될 만큼 문장력이 있었지만, 펜 대신 총을 든다.

“둘 중에 한 사람을 고르라면 저는 사실 윤동주 시인 쪽에 가까워요. 지난 10년 동안 열등감과 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래서 송몽규라는 인물은 저를 참 부끄럽게 해요. ‘혹시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나는 다르게 살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들어요.”

극 중에서 윤동주를 만난 정지용 시인은 말한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연기와 앞날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 한국을 떠나야 하나 고민했던 박정민은 〈동주〉를 만나 다시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어릴 때 배우 박원상 선배님을 만난 적이 있어요.

그 분이 연극인이 모인 자리에 저를 데리고 가셨는데, 그곳이 극단 차이무의 뒤풀이 자리였어요.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앉아 계시는데, 꿈만 같았어요. 여기에 있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 이후로 차이무 연습실을 틈날 때마다 찾아갔어요. 연습실에서 선배님들이 연습하는 것만 봐도 좋았죠. 지금도 그 시간이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동주〉에서 등장인물은 대부분 북간도 사투리를 쓴다. 동주와 몽규의 고향이 용정 지방이기 때문이다. 사투리를 익히기 위해 연변TV를 틀어놓고 살다시피 했다. 현지어를 그대로 구사하면 전달력이 떨어지기에 배우들이 모여 사투리를 조율(?)하는 시간을 가졌다. 서로 가진 단어를 공유하고, 톤을 맞췄다. 영화를 보니 누구 하나 튀는 사람 없이 조화로웠다. 그런데 사투리 연습을 했던 대학로의 작은 공간이 바로 예전에 그가 숨을 죽인 채 선배들을 바라보던 차이무 연습실이었다.

“극 중에서 저희 어머니로 나오는 박명신 선생님은 학교에서 화술(話術)을 가르쳐주셨던 교수님이에요. 교수님은 ‘대사는 맨 마지막에 나와야 하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모든 걸 이해하고 반응한 뒤 나오는 게 말인 거예요. 혼자 있을 때는 말을 안 하잖아요. 상대방이 있을 때 그에 대한 반응으로 말을 하는 거죠.”


‘나만 알고 싶었던 배우’에서 ‘모두의 배우’로


송몽규가 하는 모든 대사를 그렇게 이해했다. 여기에서 ‘왜’ 이런 말을 할까. 송몽규는 조선 학생을 규합해 독립군을 만들려고 한다. 그가 학생들 앞에서 세계지도를 펴고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독립운동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적어도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대사는 당시 세계사에 대한 인식에서 나와요. 그러려면 세계사에 있었던 독립운동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그러려면 대공황에 대해서, 그럼 세계대전에 대해서… 이렇게 폭이 넓어져요.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송몽규 선생님은 그런 말을 한 거예요. 얼마나 매끄럽게 대사를 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이해했느냐가 관건이라고 봤어요. 그럼 자세도 톤도 자연스럽게 나와요.”

이준익 감독은 이를 두고 “박정민은 애드리브를 할 때조차 송몽규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동주〉 이후로 대중이 박정민을 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 이라는 말도 남겼다. ‘나만 알고 싶었던 배우’에서 ‘모두의 배우’로 넘어가는 시기. 배우 황정민이 서른 여섯에 〈너는 내 운명〉을 만나 겪은, 배우 배성우가 영화 〈오피스〉를 만나 맞은 그 ‘봄날’을 박정민도 맞게 되는 것일까.

“무명의 신인 배우는 생각보다 많은 유혹을 받아요. 제가 가고 싶은 길이 있는데, 일단 인지도부터 올려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과 끊임없이 싸우죠. 그럼 저와 비슷한 길을 걸었던 선배들을 떠올려봐요. 그분들은 이 시간을 어떻게 지나왔을까. 또래의 배우들보다 늦되더라도 처음의 마음, 그 순수함만은 잊지 말자고 되뇌죠.”

영화 〈파수꾼〉(2011)의 베키 역을 맡으면서 그는 한국 영화계에 던져졌다. ‘그 친구 연기 무섭게 하더라’는 입소문이 영화계 안팎으로 퍼졌다. 그 후 영화 〈전설의 주먹〉(2013), 〈신촌좀비만화〉(2014), 〈들개〉(2014) 등에서 역시나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비중이 늘어나고 인지도가 높아지는 건 하늘의 소관이었다. 연극 몇 편과 드라마 몇 편을 하는 동안 스타가 되진 못했지만 사람이 남았다. 본인은 극구 부인했지만 이준익 감독의 표현에 따르면 그는 ‘저예산 영화계의 송강호’ 같은 존재다. 그리고 서른, 〈동주〉를 만났다. 아니, 송몽규를 만났다. ‘이 영화가 그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게 될까’ 하는 질문은 부질없다. 그는 이미 새로운 배우가 되어 있었다.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이” 젊음을 살아보리라고 다짐한.

〈동주〉를 찍기 전, 그는 연극과 영화를 통해 친밀해진, 그리고 지금은 대세가 된 선배 배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형의 서른은 어땠나요?” 선배에게 답이 왔다. “어두웠지.” 누군가 그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그도 역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서른? 어두웠지. 그런데 그땐 어두운 게 당연한 거 아닌가.”
  • 2016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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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고등학생   ( 2017-01-25 ) 찬성 : 22 반대 : 26
박수다
  기자님짱   ( 2016-02-23 ) 찬성 : 65 반대 : 44
기자님, 글 참 잘 쓰시네요. 언희 보러 왔다가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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