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담이 지키는 작업실’ 김대영 대표

건프라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마포구 서교동의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작은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독특한 상호에 눈길을 빼앗겨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60㎡(18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 건담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조립될 때까지 상자 안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는 건담들과, 이미 하나의 멋진 작품으로 완성된 늠름한 건담 로봇들이 지키고 있는 그곳, 바로 ‘건담이 지키는 작업실’이다.
꿈꾸는 어른 ‘키덜트’

플라스틱으로 된 조립식 모형 장난감을 프라모델이라고 한다. 〈기동전사 건담〉이라는 애니메이션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일본의 한 장난감 제조업체는 건담의 프라모델을 만들었다. 로봇의 손가락 관절까지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이 프라모델을 건담 마니아들은 ‘건프라’라고 부른다.

‘건담이 지키는 작업실’(이하 건담작업실)은 건프라를 판매하는 매장이다. 도색 강좌를 통해 건프라 마니아들의 조립 후 가공 과정을 돕기도 한다. 건담작업실의 김대영 대표는 매장 한편에서 디자인 스튜디오도 운영하는 3D 아티스트다. 대학에서 건축설계를 전공하고 컴퓨터그래픽 회사에 취업한 이후 여러 직장을 거치면서 CF, 게임, 3D 만화의 디자인 업무를 담당했다.

김 대표가 연남동에서 스튜디오를 운영하던 2011년, ‘북새통’이라는 홍대 근처의 만화방 지하에 있던 건프라 매장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갑자기 지난날의 기억이 김 대표의 머리를 스쳐갔다. 어릴 때부터 만드는 것을 좋아해 화가를 꿈꿨다. 초등학생 때 어버지가 태권브이 로봇을 사오시면 밤을 꼬박 새워가며 조립하고 뿌듯해했다.

대학 시절 전공 수업 중에서도 모형 작업을 가장 좋아했다. 그 추억들이 김 대표가 건프라 매장을 인수하게 만들었다.

“2011년, 디자인 작업을 위해 사용하던 공간을 반으로 나눠서 가게를 차렸어요. 이 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안 팔리면 다 내 거라는 생각으로 편하게 시작했죠(웃음). 가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만들거나 조립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 기억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죠.”

출시된 지 30년이 지난 현재도 건프라는 수많은 마니아들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건프라 동호인 카페의 회원 수가 6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다. 건프라가 이처럼 오랜 시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다양하다.

“건프라를 조립할 때면 모든 고민과 걱정이 사라져요. 어떻게 시간이 가는지 모를 정도죠(웃음). 저처럼 조립이 좋아서 건프라를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창작 의지가 있는 사람도 건프라를 좋아합니다. 도색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건프라가 만들어져요. 하나의 로봇 장난감에 불과한 건프라를 작품으로 만드는 과정이 바로 도색입니다. 이 과정에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건프라가 탄생하는 거죠.”

건프라 도색 작업에 필요한 장비들. 건담이 지키는 작업실에는 도색 강좌의 진행을 위한 각종 장비와 작업대가 마련되어 있다.
최근 들어 키덜트 문화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키덜트는 아이(kid)와 어른(adult)의 합성어로 ‘아이들의 감성을 간직하고 있는 어른’을 지칭하는 말이다. 키덜트는 언제나 즐거움과 재미를 추구한다. 그래서 가장 행복하고 순수했던 어린 시절 추억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다. 이들은 어릴 때 좋아했던 캐릭터 상품에도 큰 관심을 보인다.

건프라 역시 키덜트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캐릭터 상품 중 하나다.

“저희도 SNS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데 3700명 정도가 소식을 받아보고 있습니다. 건프라뿐 아니라 키덜트 문화의 활성화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SNS의 등장이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키덜트들이 아이 같고 독특한 취미 생활을 혼자서 조용히 즐겼는데, SNS를 통해 이런 취미들이 자연스럽게 공유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졌어요.”

김대영 대표는 키덜트 문화의 성장이 한순간의 유행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가 건담작업실을 운영하는 것도 “키덜트 문화를 지키고 싶어서”다. 그는 진정한 키덜트 문화란 꿈을 다시 찾아가는 어른들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아이들한테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누구나 자신 있게 대답해요. 스스로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과학자나 운동선수 같은 분명한 꿈이 있어요. 그런데 어른이 되면 사회적인 요구에 부응하는 데 집중해서 진짜 본인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잊어버립니다. 제가 생각하는 키덜트는 단순히 아이 같은 취미생활을 하는 어른이 아니에요.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던 일을 하면서 자신의 진짜 꿈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키덜트라고 생각해요. 저는 건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꿈을 찾는 길부터 열어주기 위해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건담 아티스트를 꿈꾸며

건담이 지키는 작업실 내부에 전시되어 있는 다양한 크기의 건프라들. 건프라는 모델의 크기와 조립 난이도 등에 따라 여러 등급으로 나뉘어 출시된다.
김대영 대표는 지난해 11월 국내의 한 여행사와 협약을 맺어 ‘건담 투어’를 만들었고 건담작업실 회원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제타 건담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건프라가 단순히 장난감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콘텐츠라는 사회적 인식을 만들고 싶어 제작한 프로그램들이다.

“건프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취미가 비웃음을 살 일이 아니다’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건담 투어를 기획했습니다.

건담의 성지로 여겨지는 일본에 가서 건물 6층 높이의 실물 건프라도 구경하고, 아키하바라에 있는 건담 캐릭터 숍도 가보는 여행 프로그램입니다. ‘제타 건담 프로젝트’는 건담 시리즈의 주인공만을 모아놓은 전시회였어요. 회원들이 십시일반으로 회비를 모아서 진행했습니다. 포스터 하단에 이 프로젝트의 참여자들을 ‘건담 아티스트’라고 표시했어요.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건프라를 액자에 걸린 그림처럼 하나의 작품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티스트라는 말을 썼습니다.”

건담작업실에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건프라 제작의 꽃’이라 불리는 도색 과정에 대한 강좌를 진행한다. 강좌는 일대 일로 진행하며, 도색 작업을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이 강좌는 지방에 사는 건프라 마니아들이 휴가를 내고 서울에 올라와 며칠씩 머무르면서 집중 수업을 받을 정도로 인기다. 김 대표는 건프라 제작사인 반다이 코리아에서 주최하는 ‘건프라 월드컵’ 한국 예선 3위에 오를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현재는 매장을 함께 운영하는 이성동 실장과 우준희씨가 도색 강좌를 담당하고 있다. 이들도 김 대표에 뒤지지 않는 건담 아티스트다.

매장을 찾아오는 고객은 중, 고등학생부터 50대 장년층까지 매우 다양하다. 여성 고객의 비중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그러나 건담작업실은 수입이 충분하지 않아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김대영 대표는 부족한 매장 운영비를 충당하기 위해 의뢰받은 디자인 작업에 치중하고 있다. 금전적인 문제 이외에도 건담작업실은 대형 피규어 숍들과 힘겨운 경쟁을 펼치고 있다. 건물 매각 문제로 불가피하게 연남동에서 현재의 서교동으로 자리를 옮기는 아픔도 겪었다. 김 대표는 건담작업실이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일본에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장인들의 가게(노포)가 많잖아요. 건담작업실도 그 가게들처럼 오랫동안 이 자리를 지키면서 사람들에게 ‘건프라에 관한 모든 것은 건담작업실에서 시작되었다’는 인식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 2015년 12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01810

201810

구독신청
낱권구매
전체기사
lg 광고

event2018.09

event
event 신청하기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