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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자고요

개그우먼 박나래

글 : 오주현 기자  / 사진 :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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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인 김구라가 후계자로 지목한 개그우먼. MBC 〈라디오스타〉 출연 이후 박나래는 ‘대세’가 됐다. 2006년 KBS 21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해 〈폭소클럽2〉 〈개그사냥〉 〈개그콘서트〉 등 수많은 공개 코미디로 내공을 쌓은 그는 올해로 데뷔 10년 차를 맞았다. 148cm의 작은 키에 허스키한 목소리, 호탕한 웃음이 매력인 박나래를 망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많은 분이 불러주셔서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웃음). 요즘 에너지 음료수를 두 통이나 마신 기분이에요. 붕 떠 있어요. 꿈꾸고 있는 것 같아요. 피곤한데 너무 행복해서 잠도 안 오고요.”

박나래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개그우먼이다. 〈코미디 빅리그〉에서 김구라・마동석・송해・마이클 조던・김영만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따라해 화제가 되더니 〈라디오스타〉 〈무한도전〉 등 지상파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에는 동료 개그우먼 장도연과 함께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도 출연하며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마리텔〉에서 오디오의 빈틈이 없었어요.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입술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였다니까요(웃음). 인터넷 방송이니까 정말 하던 대로 방송했죠. 욕도 하고 비방용 농담도 많이 하고요. 앞에서 작가님이 ‘PD님 지금 화났어요’라는 메모를 계속 들고 있을 정도였어요. 가장 많은 댓글이 ‘본방은 대체 뭐가 나갈까?’였어요. 저도 방송이 어떻게 나올지 너무 궁금해요. PD님이 비빔밥에서 무채 찾듯이 어렵게 장면을 골라내야 할 텐데요(웃음).”

이날 같이 방송을 한 장도연은 서로에게 가장 힘이 되는 존재다. 장도연이 KBS 개그맨 한 기수 후배로 들어왔을 때부터 코드가 잘 맞아서 붙어 다녔다. 오죽하면 주변 사람들이 “둘이 좀 떨어지라”고 했을까.

“저희 집에서 ‘나래바’라는 파티를 하는데 제일 많이 온 사람이 장도연씨예요. 도연이가 올해 잘됐을 때는 딸을 시집보낸 엄마의 마음이었습니다. ‘이제 다 컸구나’ 이런 느낌이요. 서로 휴대폰에 ‘델마 나래’ ‘루이스 도연’이라고 저장되어 있어요. 〈델마와 루이스〉 영화처럼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살자고요.”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박나래와 장도연은 찰떡궁합 호흡을 자랑했지만 1위와 17표 차이로 아쉽게 2위를 차지했다.

박나래는 일반 개그우먼들이 시도하기 힘든 19금 이야기, 술 이야기 등을 거리낌 없이 꺼낸다. 그가 ‘뭐 어때서? 다들 하는 이야기잖아?’라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야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민망하다기보다 재미있다.

“제 주위가 음한 것인지 제가 음한 것인지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저랑 대화하면 대화의 농도가 진해져요. 에스프레소 더블샷 같은 느낌? 저는 이게 오히려 건강하다고 생각해요. 감추고 있는 것보다 훨씬 낫죠.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를 보세요. 우리로 치면 낮에 직장인들이 김밥천국에서 19금 얘기를 하는 거예요(웃음). 방송이라고 감추고 포장하는 게 싫어요.”


한 사람만 재밌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박나래는 학창시절 반장, 부반장, 학생회장을 도맡아 했다. ‘골목대장’처럼 친구들을 모아놓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우연히 초등학교 때 연극 동아리에 들며 연기를 시작한 그는 중고등학교 연극반을 거쳐서 상명대 연극학과에 진학했다. 어려서부터의 꿈은 연기자. 주변에서 개그우먼을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말을 들었지만, 관심이 없었다. 연기자를 꿈꾸던 그가 개그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잘생긴 개그동아리 남자 선배들 때문이었다.

“잘생긴 선배들하고 술이라도 한번 마실까 해서 동아리에 들어갔죠(웃음). 그러면서 개그 프로그램에 아마추어로 참여하게 되었고, 개그맨 공채 시험을 보았는데 한 번에 붙어서 KBS 21기 개그맨이 되었습니다.”

개그맨 시험에 합격한 후에는 일이 수월하게 풀리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가 KBS 개그맨 실에 들어왔을 때 모두 ‘신봉선의 뒤를 잇는 사람이 들어왔다’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슬럼프였어요. 초창기에 연극을 한 것이 오히려 독이 됐어요. 방송에서는 굳이 큰 발성도, 과한 표정도 필요 없는데 저도 모르게 연극할 때 쓰던 발성과 표정을 하더라고요. 개그맨 2~3년 차에 한 감독님이 ‘너 연기 진짜 못 한다’고 하셨어요. 충격을 받았죠.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연기를 해오면서 그런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제 나름대로 자만하고 있었는데 그런 얘기를 듣고 보니 화가 나기도 하고, 내가 이때까지 배운 건 뭔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더라고요. 한마디로 ‘멘붕’에 빠졌습니다.”

박나래는 이 슬럼프를 그냥 흘러가게 놔두지 않았다. 연기 선생님으로 일하는 친구를 찾아가 밤새워서 연기를 배우고 다시 돌아와서 녹화하기를 반복했다. 많이 물어보고 혼자서 계속 연습하고 어떻게 하면 더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신인 시절 상처받은 게 오히려 심적으로 단단해지는 데 도움이 됐어요. 처음부터 잘됐으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살았을 거예요. 어린 나이에 고집이 꺾이니까 더 겸손해지고 연습도 많이 하게 됐어요. 그리고 저는 망가지거나 제 치부를 말하고 다니는 게 아무렇지 않아요. 사람들이 웃을 수 있으니까요. 모든 사람을 다 웃길 수는 없지만 웃기다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저는 그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해 웃길 거예요.”


열정적인 연습벌레


지금이야 여러 매체에서 그를 찾고 있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개그콘서트〉에서도 작은 역할로 짧게 주목을 받을 뿐이었고 그 스포트라이트마저 금방 꺼졌다. 새로운 곳에서 나만의 개그를 하고 싶어 넘어간 〈코미디 빅리그〉에서는 ‘모든 개그맨의 꿈의 무대’라고 불리는 〈개그콘서트〉를 떠나왔음에도 후보군으로 밀려나기도 하고 꼴찌를 하기도 했다.

“당시 〈코미디 빅리그〉 룰이 꼴찌한 팀은 밀가루를 맞는 거였어요. 내가 짠 개그가 ‘꼴찌’를 하고 밀가루를 맞으니 기분이 얼마나 안 좋겠어요. 어떤 사람은 중간에 나가기도 하고 관객들도 재밌다는 반응이 아니라 ‘아 어떡해’라는 반응이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런 모습을 보이기가 싫어서 혹시 몰라 파우더 팩트를 준비해갔어요. 꼴찌를 하고 밀가루를 맞은 후 바로 파우더 팩트를 꺼내서 화장하는 척했죠. 다 같이 빵 터졌어요.”

관객에게 웃음을 줬지만 파우더를 두드리는 척하는 그의 마음은 울고 있었다. 하지만 늘 그래 왔듯이 박나래는 좌절하지 않고 계속해서 지독하게 개그를 연습했다. 그 결과 새롭게 준비한 코너였던 ‘썸&쌈’이 1년 반 동안 큰 사랑을 받았다. 〈코미디 빅리그〉는 젊은 층이 많이 보는 프로그램임에도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개그우먼 이국주는 “‘썸&쌈’이 있었기에 〈코미디 빅리그〉가 주목받을 수 있었고, 그래서 내 개그도 사랑받을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나래에게 개그란 ‘또 다른 나’다. 그는 무대 위에 올라가면 눈빛이 달라진다. 누군가는 박나래에게 “무대에서 빙의된 줄 알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제가 성형수술을 한 건 방송 때문이 아니라 남자 꼬시려고 한 거예요. 무대에서 개그를 하는 사람은 개그우먼 박나래예요. 사람들이 못생겼다고 하면 기분 나쁘지 않으냐고 물어보는데 저는 제가 못생긴 게 아니라 개그우먼 박나래가 못생긴 역할을 연기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괜찮아요. ‘또 다른 나’ 인 거죠.”

박나래가 무대 위에 올라가면 객석에서는 큰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특히 〈코미디 빅리그〉 같은 공개 코미디에서 박나래가 분장하고 올라가면 사람들은 음악이 나오는 순간 웃기 시작한다. 피부가 약해 인공 피부를 떼고, 수염을 지울 때마다 고생하면서도 분장을 고집하는 이유다.

“그 환호성은 절대 못 끊어요. 못된 중독 같아요. 그래서 제가 맨 얼굴로 무대에 못 나간다니까요(웃음).”

인터뷰 내내 박나래에게서는 뜨거운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꾸밈없이 그리고 열정적으로 사는 그를 보니 지금 대중에게 사랑을 받는 것이 당연해 보였다.

“10년 동안 놀았기 때문에 10년 치 체력이 남아 있어요. 저 이제 겨우 한 달 치 썼습니다(웃음).”
  • 2015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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