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영화 11편 출연, 전성기 맞은 배성우

신나게 놀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글 : 유슬기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2015년 배성우는 무려 11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배성우의 전성기가 너무 늦게 온 것 같다”고 〈특종: 량첸살인기〉의 노덕 감독은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배성우는 “전 괜찮은데”라며 빙긋 웃었다. 정말로 괜찮다. 주연이 되고파 연기한 게 아니라, 연기가 좋아서 연기했기 때문이다.
만약에 연기자가 되고 싶다면 연극에서 시작해볼 일이다. 먼저 소극장에서 관객과 온몸으로 맞닥뜨린다. 중극장에서 상대배우와 합을 맞추면서 ‘쿵짝이 맞는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체득한다. 그리고 노래와 춤, 연기를 아우르는 배우가 되어 대극장이라는 하나의 공간을 오롯이 채워본다. 그렇게 훈련이 된다면 스크린 너머의 수만, 때로는 수백만의 관객을 향해 서서 한 인물을 납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배성우처럼.

충무로의 영화가 ‘이경영이 나오는 작품과 이경영이 나오지 않는 작품으로 구분된다’는 말은 이경영의 자리에 ‘배성우’를 넣는 2015년 버전으로 새로고침됐다. 그는 올 한 해 동안 〈상의원〉 〈워킹걸〉을 시작으로 〈오피스〉 〈베테랑〉 〈뷰티 인사이드〉 〈더 폰〉 〈특종: 량첸살인기〉 〈내부자들〉 〈열정같은 소리하고 있네〉 〈섬, 사라진 사람들〉 등에 출연했다.

그중 〈뷰티 인사이드〉와 〈오피스〉 〈베테랑〉은 같은 시기에 영화관에 걸렸다. 남고생으로 변한 배성우와 생계형 살인자 배성우, 중고차 밀수꾼 배성우를 동시상영으로 만났다. 이어 그가 각각 범인과 범인을 잡는 형사로 등장한 〈더 폰〉과 〈특종〉은 같은 날(10월 22일) 개봉하기도 했다.

“한 장면을 나오더라도 배우의 욕심은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거죠. 거기에 연기하는 재미가 있으니까요. 분량이 많아지면서 내 배역보다는 전체 스토리에 대한 고민으로 바뀌는 것 같아요. 꼭 연극처럼요.”


연기는 논리가 아닌 화학

〈내부자들〉
충무로에선 늦깎이일지 몰라도 대학로에서는 내로라하는 배우였다. 극단 학전에서 김윤석・ 조승우 등과 한무대에 올랐다. 그때 했던 공연 〈의형제〉는 그가 너무 좋아해 인물의 이름을 아이디로 사용할 정도다. 〈지하철 1호선〉은 9개월 동안 배성우 원캐스트로 공연했다. 특히 〈클로저〉의 마초 의사 ‘래리’로 분했을 때 관객의 반응은 뜨거웠다. 결국 이 공연이 그를 영화로 이끌었다. 그를 눈여겨본 이경미 감독이 〈미쓰 홍당무〉(2008)에 그를 캐스팅했고, 이후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몬스터〉 〈모비딕〉 등의 작품으로 이어졌다. 형수를 성폭행하는 파렴치한, 살인병기로 길러진 북한병사, 도박 중개인… 범상치 않은 인물을 실감나게 연기하는 이 배우는 영화 제작자들이 사랑하는 배우가 됐다. 어떤 인물도 믿고 맡길 수 있는 배우.

“일상에서 보기 힘든 기괴한 역할도 있었어요. 그런데 기본적으로 그 인물에겐 그게 일상이라고 믿었어요. 제 인물이 하는 행동이 그 사람에겐 그게 ‘특이하려고’ ‘무서우라고’ 하는 행동이 아닌 거예요. 심지어 웃긴 인물도 ‘웃기려고’ 사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의 그런 일상적인 행동이 영화 안에서 어떤 감정을 이끌어내는 거죠.”

〈뷰티 인사이드〉
희한한 일은 그를 감초가 아닌 주인공을 돕는 조력자의 자리에 올려놓은 영화 〈모비딕〉 이후 일이 뚝 끊겼다는 것이다. 영화와 연극을 병행하다 보면 공연에 차질을 줄 것 같아 공연을 줄였는데, 영화도 없었다. 1년을 꽉 채워 쉬면서 이렇게 고비가 온 건가 싶었다고 했다. 어머니와 동생을 볼 낯이 없었다(그의 동생은 알려진 대로 SBS 배성재 아나운서다). 다시 연극을 시작했다. 연극 자체가 그에게는 놀이(play)였다. 무대에서 신명나게 놀다 보니 다시 작품이 들어왔다. 이런 위기는 배성우에게만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작품마다 강렬한 존재감을 남기는 배우 박혁권・김희원도 그와 함께 눈물 젖은 빵을 먹던 동지들이다. 〈미생〉에서 ‘최악의 직장상사 1위’에 꼽히는 기염을 토했던 김희원은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연기를 그만두려고 했을 때 배성우가 붙잡아줘서 여기까지 왔다”고 한 적이 있다.

“김희원 형은 열아홉부터 연기를 했어요. 잡기에 능해서 다른 일을 해도 먹고살겠지만(웃음), 연기를 할 때 제일 신나 보였어요. 형은 저한테 스승이기도 해요. 형한테 배우는 게 교수님한테 배우는 것보다 더 현실적인 도움이 됐어요. 그런 사람이 연기를 그만두면 너무 아깝잖아요. 지금까지 해온 게.”

〈오피스〉
배성우도 그랬다. ‘연기 말고 할 게 없었다’기보다는, 연기만큼 재미있는 일이 없었다. 서로 담뱃값을 빌려 피우던 시기를 버티다 보니 무려 1년에 11편이 개봉하는 오늘에 이르렀다. 그 많은 인물들이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 한 사람의 몸에서 나왔는가 놀라울 정도다.

“한 달에 20회차 촬영을 하면 영화에서는 굉장히 많이 찍는 거거든요. 그런데 연극할 때를 생각해보면 시간이 많은 거예요. 연극은 매일 무대에 서거든요. 오히려 쉬는 동안에 생각할 시간이 많죠.”

〈특종 량첸살인기〉
〈더 폰〉에서는 서초동 주택 살인사건의 범인 역을 맡았다. 가정을 지키려는 가장(손현주 분)과 생계의 위기에 봉착한 가장(배성우 분)의 싸움. 영화를 만들면서 관객이 범인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게 도움이 되지 않겠다는 판단이 섰다. 결국 감독과의 협의하에 ‘냉철한 소시오패스’가 됐다.

“처음에는 두 명의 사연이 부딪히는 이야기였어요. 제 인물에게 관객이 많은 공감을 하는 게 영화 전체 스토리로는 도움이 안 될 것 같았어요. 위트도, 인간미도 빼고 갔죠.”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배성우는 자신의 인물을 “제 인물”이라고 표현한다. 모든 인물은 밖에서 찾아오는 게 아니라 그의 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어떤 인물을 맡든 그 순간에도 저예요. 분석은 현장에 가기 전에 하고, 현장에서는 그냥 그 인물로 서 있는 거예요. 어떤 직업을 맡았다면 그 직업에 대해서 연구하기보다는 ‘내가 그 직업을 지녔다면’ 어떻게 몸을 쓸까를 생각해요. 그 정서를 알아내려고 하는 거죠. 정서가 이해가 되면 몸태는 자연스럽게 나와요. 배우가 관객을 설득하는 건 논리적인 부분보다 화학적인 부분이에요. 대립의 관계건 애정의 관계건 정서를 통해 공기가 형성이 되죠. 정서를 해결하지 않으면 몸짓이 무의미해져요.”

사람을 때릴 때도 스킬만큼이나 중요한 게 정서다. 미워서 때리는가, 분해서 때리는가, 급해서 때리는가, 정서에 따라 액션도 달라진다. 다른 작품에 동시에 출연할 때도 마찬가지다.

“비슷한 장르의 비슷한 인물이라도 엄연히 ‘다른’ 이야기예요. 그 행동의 이유를 찾아내면 몰입할 수 있죠. 관객은 배우의 메소드가 아니라 이야기를 보러 온다고 생각해요.”


전에는 영화를 보다 보니 한켠에 배성우가 등장했다. 이제는 관객이 배성우를 보려고 영화관을 찾는다. “이 사람이 그 사람이었어?”에서 “나 이 배우 좋아”로 넘어가는 시기다. 전에는 그를 설명하려면, 영화의 배역을 설명하거나 “아무개 아나운서의 형”이란 수식이 필요했는데, 이제는 누구의 형도 아닌 배성우다.

“손현주 선배님의 스릴러를 보러오는 관객은 손현주라는 배우가 해석하는 인물을 보러 온다고 생각해요. 배우의 연기에는 그 배우가 드러나거든요. 말의 템포나 호흡이 있으니까요. 작품과 배역을 대하는 태도는 전략이 아니라 예술의 영역이에요. 그게 완성도를 만들어요. 그 밀도를 보여주는 게 이 일의 본질이에요. 주연이냐 조연이냐의 문제가 아니고요.”

그리고 그 밀도를 보여줄 기회가 많아 그는 요즘 행복하다. 다른 것보다 ‘놀(play)’ 수 있는 작품이 많아서. 손현주는 배성우를 “앞으로도 보여줄 얼굴이 많은 배우”라고 소개했다. 배성우 속에 배성우가 너무도 많아 관객은 쉴 틈이 없다.
  • 2015년 12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01908

201908

구독신청
낱권구매
전체기사

event2019.08

event
event 신청하기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30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