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주메뉴

  • cover styory
  • focus
  • lifestyle
  • culture
  • human
  • community
    • 손글씨
    • 1등기업인물
    • 나도한마디
    • 기사제보
  • subscription

그 아이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영화 〈기적의 피아노〉 임성구 감독

비가 내린다. 처음엔 보슬보슬 내리다가 이내 주룩주룩 세찬 빗줄기를 만든다.
비를 그으러 들어간 처마 밑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보리밭을 흔드는 빗소리가 피아노 선율이 되어 흐른다.
피아노로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는 아이, 〈기적의 피아노〉의 예은이다.

장소제공 : 레자브르 피아노의 숲(070-7808-7357)
〈기적의 피아노〉는 다큐 형식의 영화다. 촬영 기간만 3년, 후반 작업이 2년이 걸렸다. 그사이 피아노 의자에 앉으면 발이 동동 뜨던 꼬마 예은이는 중학생이 됐다. 예은이는 여섯 살에 SBS 예능 프로그램 〈스타킹〉에 ‘천재 피아니스트’로 소개되면서 유명해졌다. 피아노를 배운 적도, 악보를 볼 수도 없는 아이가 소리만 듣고 곡을 연주했다. 예은이는 태어날 때부터 선천성 안구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세 살 때 옆집에서 버린 키보드를 집에 가져다 두었는데, 예은이가 여기에 관심을 보였다. 하루는 엄마가 부르는 노랫소리를 듣고 키보드로 멜로디를 쳤다. 예은이의 기적의 시작이었다. 한때는 ‘신동’이라 불리던 아이, 그 아이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임성구 감독은 예은이의 이야기가 한동안 잊히지 않았다고 했다. 예은이의 집을 찾아갔다. ‘신기한 이야기’가 아니라 예은이의 ‘성장 이야기’를 담겠다고 예은이의 부모님을 설득했다.

“지난 5년 동안 저는 변하지 않았는데, 예은이의 피아노가 더 깊어졌어요. 영화 개봉한 다음 시사회만 9~10번을 봤는데, 저 역시 볼 때마다 울컥하는 지점이 달라지더라고요.”

임성구 감독에게는 개봉이 기적이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울지마 톤즈〉 등의 성공으로 다큐멘터리 영화의 인지도가 높아지긴 했지만, 모두에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영화를 세상에 내보이지도 못한 채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막막한 마음으로 후반 작업에 몰두했다. 기적처럼 배급사가 연결됐고, 78개 관에서 〈기적의 피아노〉를 개봉할 수 있었다.


이런 사랑도 있다

“처음에는 예은이에게 집중을 했어요. 이 아이가 정말로 천재일까. 어떻게 천재적인 피아니스트가 됐을까. 그런데 같이 생활하다 보니까 어머니가 보이더라고요. 어머니의 교육철학이나 장애아를 대하는 태도가 우리의 예상과는 차원이 달랐어요.”

영화 중반부, 예은이가 묻는다. “엄마, 진짜 엄마는 어디에 있어요?” 보는 이들은 흠칫 놀라는데 어머니 박정순씨는 외려 덤덤하다. “얘 좀 봐, 진짜 엄마 가짜 엄마가 어디 있어. 그럼 나는 뭐 가짜 엄마야?” 박정순·유장주씨 부부는 예은이를 키우던 위탁가정이었다. 예은이를 입양하고자 하는 가정이 없어 부부가 아이를 입양했다. 아빠인 유장주씨 역시 결혼 전 교통사고를 당해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하고 있다. 예은이로 시작한 이야기가 어머니에게로 옮겨간다. 예은이의 재능이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이 기적처럼 다가온다.

“어떻게 이렇게 강할 수 있을까… 끝까지 이해가 안 됐거든요. 예은이 때문에 울지도 않고요. 예은이의 사연으로 슬퍼하지 않으세요. 어머니는 다큐를 통해서도 예은이의 피아노 연주를 사람들이 신기해하는 걸 보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그 한 곡을 위해서 예은이가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보여주고 싶다고요.”

초등학생이 된 예은이는 콩쿠르에 나간다.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아이들의 유일한 등용문이다. 얼마나 악보대로 정확하게 곡을 연주해내는가를 겨루는 이 자리에서 예은이는 눈으로 악보를 보는 아이들을 이기지 못한다. 콩쿠르 낙방 이후 피아노를 무서워하게 된 예은이. 카메라는 피아노 앞에 앉아 눈물을 뚝뚝 흘리는 예은이를 가만히 바라본다.

“세상이 다 아름다울 수는 없거든요. 그 안에서 얼마만큼 진정성 있게 사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보니까 어디로 갈지 몰라요. 그런데 그 꾸밈없는 이야기 중에서 감동적인 순간들이 나와요. 그 순간을 만나는 게 다큐의 매력이고요.”

다큐멘터리 〈기적의 피아노〉 중.
임성구 감독은 성균관대에서 섬유공학을 전공했다. 전공과는 무관한 일을 하고 있는 셈인데, 대학시절 방송국 활동이 계기가 됐다. 어릴 적 꿈이 ‘방송 PD’였던 게 새삼 떠올랐다. 선배 작가의 소개로 경인방송에서 다큐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됐다. 이후 KBS의 휴먼다큐 프로그램인 〈인간극장〉으로 넘어왔다. 2003년 제작한 〈지선아 사랑해〉, 2004년 〈내 이름은 산다라박〉 등이 그의 대표작이다.

2NE1의 산다라박은 그 인연으로 예은이를 응원하는 영상에 출연했다. 대학 동문인 송중기도 가세했다. 함께 다큐를 만든 출연자들과 오랜 인연을 이어올 수 있다는 것도 다큐멘터리 PD의 매력이다.

“예은이 어머니를 보면서 언젠가 이런 분을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분이 〈지선아 사랑해〉의 지선이 어머니예요. 두 분의 공통점은 굉장히 밝으세요. 딸과 함께 웃고 이야기하고, 딸이 의기소침해져 있으면 늘 ‘괜찮다’고 해요. 앞에서는 절대 안 우세요. 낙관의 힘을 가지고 계시죠.”

꽃처럼 예쁜 나이에 전신화상을 입은 딸(〈지선아 사랑해〉)과 태어날 때부터 안구가 없는 딸(〈기적의 피아노〉)을 키우는 어머니들은 감독의 예상을 초월했다. ‘이게 진짜일까’ 싶어 이들의 곁을 떠나지 않고 몇 년을 지켜봤다. 피아노 콩쿠르에 떨어져 의기소침해진 예은이가 주방에서 일하는 엄마에게 다가가 묻는다. “엄마, 왜 나는 눈이 안 보여요?”, 손의 물기를 슥슥 닦고 예은이의 눈물도 슥슥 닦아준 엄마는 라면을 하나 끓여 예은이와 마주 앉는다. 그리고 말한다. “예은아, 세상에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이 예은이만 있을까? (예은: 아니요), 그럼 걸을 수 없는 사람은? (예은: 있어요), 그럼 엄마처럼 뚱뚱한 사람은? (예은: (웃음)), 그것 봐. 사람은 다 다른 거야. 예은이처럼 날씬한 사람도 있고, 엄마처럼 뚱뚱한 사람도 있고.” 임성구 감독은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영화를 볼 때마다 그 장면이 마음을 친다. 사실 다큐멘터리를 만들면 출연자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감독은 작품 뒤에 있지만 출연진은 작품에서 전면이 노출된다.

예은이처럼 막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는 더욱 걱정이 된다. 후반 작업에 더욱 힘을 쏟는 이유다.


‘1만 관객 돌파’라는 작은 기적


콩쿠르 낙방은 예은이의 길을 여는 계기가 됐다. 예은이는 곡을 연주할 뿐 아니라 곡을 만들 수 있는 아이다. 집에서 나와 학교까지 갈 때의 기분, 비 오는 날의 심상,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를 읽은 느낌을 예은이는 말이 아닌 피아노로 표현하다.

“내 가치관으로는 (그 상황에서 행복하게 산다는 걸) 이해할 수 없는데 잘살고 있는 분들을 보면 ‘참 멋있게 사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보통의 상식이나 제도권 밖에 있는 그런 분들이 잘살고 있는 걸 볼 때 진짜 ‘잘사는 게 뭘까’ 싶기도 하고요. 각자의 인생이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되죠.”

영화 다큐멘터리가 방송 다큐멘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조금 더 긴 호흡으로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그런 갈증이 다큐 PD들을 영화로 이끈다.

“〈워낭소리〉(이충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진모영), 〈춘이막이〉(박혁지) 감독들이 다 방송 PD 출신이에요. PD들은 스토리텔링이 가능하거든요. 구성에 대한 훈련이 되어 있어요. 영상미나 앵글보다는 이야기에 집중하고요. 1차적으로는 방송에서 교양 다큐의 영역 자체가 많이 줄었어요.”

다큐멘터리 장르가 ‘느리게 천천히’ 관객에게 다가가고는 있지만 상황이 썩 좋은 편은 아니다. 〈기적의 피아노〉 역시 개봉관이 점점 줄어 이제는 한 관에서만 상영한다. 개봉까지도 기적이었지만, 매주 새로운 영화가 등장하는 요즘은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상영관을 지키는 것도 기적 같은 일이다. 〈기적의 피아노〉는 막 1만 관객(9월 30일 기준)을 돌파했다. 상업영화가 100만 관객을 돌파한 것만큼이나 유의미한 숫자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기적의 피아노〉가 일으킨 작은 기적의 힘을 믿어보려고 한다.

“다큐를 더는 안 하려고 했어요. 〈인간극장〉을 하면서 심신이 지쳤었어요. 사람에 대해서 지쳤다는 느낌도 있었고요. 그런데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기적의 피아노〉까지 왔어요. 다큐 PD로서 하고 싶은 작품을 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인 것 같아요. 인생의 과제를 앞둔 어떤 인물이 그 미션을 해나갈 때의 진지함과 꾸밈없는 모습을 담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 2015년 11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하단메뉴

상호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김창기
편집인 : 김창기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성동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