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feature] 관찰과 엿듣기의 달인 김중혁

소설은 거울이다

글 : 유슬기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 ‘건축무한육면각체’라는 말이 떠오른다. 하나의 면에 끝까지 다다르면 또 다른 면이 펼쳐진다. 그 면과 면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데, 마지막 면은 매듭 없이 열려 있다. 그런 ‘무한대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그가 이번에는 단편집을 냈다.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이다.
김중혁 작가는 2000년 소설집 《펭귄뉴스》로 문단에 데뷔했다. 잡지사 기자, 일러스트레이터, 웹디자이너 등 전방위로 활동하던 그를 전업작가의 길로 이끌어준 작품이기도 했다. 얼마 전 출간한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의 띠지에는 “김중혁 작가, 최초로 사랑과 연애에 관해 말하다”라고 쓰여 있다. 막상 작가는 “실은 관계와 감정에 대한 이야기예요”라며 비밀을 털어놓듯 목소리를 낮춘다. 그러니까 사랑과 연애라는 소재는 작가에게 생겨난 ‘관계에 대한 질문’을 풀어줄 하나의 실마리였다.

“예전에는 자신이 없었는데 약간 나이가 들면서 인간의 관계에 대한 묘사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인간관계의 가장 극적인 부분이 남녀 관계예요. 질투나 연민 같은 게 잘 드러나죠. 앞으로도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될 것 같은데 이 작품이 그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는 영화평론가 이동진과 함께 출연하는 팟캐스트 ‘빨간책방’에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가장 많이 읽은 책이자 가장 많이 써본 책, 어쩌면 자신이 소설가가 되는 데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를 이 책 역시 광범위하게는 ‘사랑과 연애에 대한’ 책이다.

김중혁 작가의 관심이 처음부터 관계, 그러니까 사람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초기작 《펭귄뉴스》 《악기들의 도서관》 등에서는 ‘사물’에 천착한다. 천착의 뜻이 ‘구멍을 뚫어 어떤 원인이나 내용을 따지고 파고들어 알려고 하거나 연구함(네이버 국어사전 참조)’이라고 할 때 그의 작품이 정확히 그렇다. 당시 출판사에서는 이를 “자전거, 라디오, 지도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기억에서는 잊힌 사물들이 다시 한 번 우리 눈앞에서 펼쳐진다”고 소개했다.

“시기별로 단편집을 꾸리는 것 같아요. 당시 느끼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예요. 한 질문이 어느 정도 끝나면 다음 작품으로 넘어가죠. 다음 책은 다른 질문이 되고요. 특히 인물이 가진 직업에는 세계를 바라보는 제 시각이 드러나는데요. 지금 그 사람이 하는 일이 무엇이며 거기에서 무엇을 느끼는가가 그 사람의 감정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봐요. 그들을 직접 취재하진 않지만 관련 책을 많이 봐요. 시계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시계 조작법이나 작동원리에 대한 공부를 하죠.”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의 마지막 작품은 〈요요〉다. 본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가족과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가 깨지는 경험을 한 주인공은 시계를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는 일에 흥미를 느낀다. 이 남자의 세계에 성큼 들어선 여자 주인공, 하지만 여자는 이유도 알리지 않은 채 남자를 떠난다. 그 이후로 남자는 시계를 만드는데, 거기에는 남자의 인생이 담긴다.

“네가 만들어준 시계를 들여다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 시침과 분침이 겹쳤다가 떨어지는 순간, 그건 멀어지는 걸까, 아니면 다시 가까워지는 중인 걸까. 난 생각했어. 나쁘지 않아. 그래, 나쁘지 않아.”
-단편소설 〈요요〉 p.300


김중혁 작가는 이 작품으로 2012년 이효석 문학상을 받았다. 한 독자는 “김중혁 소설은 〈요요〉 전과 후로 나뉜다”는 후기를 남겼다.

“제가 낯을 많이 가리기는 하지만 사람과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요. 어떤 사람을 알아갈 때 느껴지는 느낌이 글에 반영이 되죠. 모든 인물이 제 안에서 나오는 건 아니에요. 많은 사람이 보여준 인상이나 대사를 틈틈이 적어놔요. 소설을 쓸 때마다 구분이 잘되어 있는 서랍에서 꺼내 쓰죠. 그 조합에 따라서 다른 인물이 나오고요.”

그렇게 인물들이 다가와 이야기하는 모습을 김중혁 작가는 물끄러미 바라본다. 관찰하고 관찰하고 관찰하는 것, 그의 작업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일이다.

“(인물) 서랍은 수시로 채워져요. 24시간 가동하는 거나 다름없어요. 저는 직장에 다니진 않지만 항상 일하고 있어요. 메모나 관찰은 기본적으로 항상 해요. 작품을 쓰다 보면 인물이 끌고 가는 부분이 있어요. 인물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사람이 살아 있는 사람처럼 느껴져요. 그가 ‘자기만의 말’을 할 때가 ‘소설쓰기의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이죠.”

소설을 읽는 독자의 오해 중 하나는 작가와 인물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오해받을지도 모르는 위험성’을 안고 그는 인물의 말에 집중한다. 다듬거나 미화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하도록 둔다.

“작가가 하는 말이 아니라 작가가 관찰한 말이라는 표현이 맞을 거예요. 작가는 컨트롤할 뿐 범접할 수 없는 부분이 있거든요. 글을 쓰면 누군가 이 소설을 읽을 것이라 생각은 하지만 어떤 이야기를 할 때 독자를 염두에 두거나 내가 어떻게 비춰질까를 의식한 적은 없어요.”


소설 쓰는 자아를 위하여


다른 사람의 평판은 의식하지 않지만, 자아의 반응은 의식한다. 그가 가진 자아 중에 김중혁 작가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소설 쓰는 자아’다. 그가 하는 많은 활동은 사실 그 핵심 자아(core)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이다. 팟캐스트에 참여하는 것도, 종종 에세이를 쓰는 것도, 책이 나온 뒤 인터뷰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그렇다. 팟캐스트를 하는 자아, 에세이를 쓰는 자아, 인터뷰를 하는 자아는 각자의 영역에서 ‘소설 쓰는 자아’를 돕는다. 그는 이를 “당의정(알약의 겉을 설탕 등 달콤한 것으로 싸는 일)을 입혔다”고 했다. 그런 고군분투에도 소설 쓰는 자아가 상처를 받은 적이 있었다. 2014년 봄날, 숨 쉬는 모든 이의 마음을 할퀴고 지나간 참사는 그의 마음에도 대참사였다.

“소설 쓰는 변곡점이 된 시간이었어요. 인간의 슬픔에 대해서 깊이 들여다보게 됐고요. 작가는 세상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제가 사회적인 발언을 많이 하진 않지만 그런 이슈들이 작품에 스며들지 않을까 싶어요. 잘 스며들 수 있도록 마음과 몸을 열어두고 살려고 합니다. 아픈 사람들이 얼마나 아플지, 얼마나 슬플지를 같이 느끼려고 하는 거죠.”

그의 이런 신음은 《뱀들이 있어》 《보트가 가는 곳》 등에서 조금씩 새어 나온다. 동시대인이 느끼는 감정에 거울을 들이댄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진 않지만, 적어도 나를 비추어볼 수는 있는 시간이다.

에세이를 쓰는 자아는 소설을 쓰는 자아보다는 조금 더 자유롭다. 농담도 잘하고, 친해지기도 쉽다. 그는 《뭐라도 되겠지》라는 에세이에서 “인생의 청춘은 마흔부터다. 그 이전의 시간은 시행착오를 겪는 시간”이라고 썼다. 올해 나이 마흔 넷, 그의 청춘은 어떤 빛깔로 물들고 있을까.

“나이를 의식하면서 살지는 않아요. 일을 시작한 서른 살부터 지금까지는 나이에 대한 개념이 없어요. 나이를 생각하는 순간 나이에 얽매이니까요. 한 달 전의 일과 한 달 후의 일만 생각하며 살아요. 저한테 중요한 건 지금의 일이에요. 1년 후의 계획도 잘 세우지 않아요.”

그의 관심은 지금 우주비행과 코미디에 있다. 다음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직업이기도 하다. 실제 코미디언이 된 것처럼 쿡쿡 웃으면서 작품을 써나가고 있다.

“제가 연기를 해보진 않았지만 종종 TV에서 배우들이 마치 그 사람이 된 것처럼 이야기할 때 ‘아 나도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긴 해요. 정말 그 사람이 되어서 그 사람처럼 말하고, 그 사람처럼 행동하니까요.”

그와의 만남은 합정동 북카페 ‘빨간책방’에서 이루어졌다. 인터뷰를 마치자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시던 이들이 조심스레 책을 들고 작가에게 다가왔다. 작가는 필통에서 아끼는 펜을 꺼내 들고, 한 사람 한 사람 사인을 해주었다. 사인 옆에는 그를 닮은 그림도 있었다. 그의 사인은 거울에 비춰보아야 읽을 수 있는 ‘거울글씨’였다. 어떤 식으로든 ‘세상을 비추는’ 거울 같은 글을 쓰고 싶다던 그의 말이 ‘사인하는 자아’ 속에 묻어났다.
  • 2015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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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a33   ( 2016-04-10 ) 찬성 : 27 반대 :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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