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묻지 않은 눈빛’ 손호준

캐릭터 욕심보다 배우에 대한 배고픔이 있어요

글 : 유슬기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오른쪽 아니면 왼쪽, 적어도 가운데는 아니다. 손호준이 차지하는 자리는 한쪽 귀퉁이다.
모두가 바라보는 곳이 아닌, 모두를 바라볼 수 있는 곳에서 지켜보고 귀 기울이고 움직인다.
〈집밥 백선생〉에서 스승님(백종원)에게 필요한 도마를 가져다주고, 〈삼시세끼〉에서 차줌마(차승원)와 참바다(유해진)씨를 따라다니다 불을 피운다.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방식으로 손호준은 요즘 예능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 백선생과 차주부의 손맛을 현장에서 보는 호사를 누리면서도 “맛있어서 정신을 잃을 지경”이라는 과장된 표현도 없다.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싱긋 웃는 걸로 그만이다. 그럼에도 〈삼시세끼-정선편〉의 이서진은 단박에 그를 “마음에 든다”고 했고, 〈정글의 법칙〉의 김병만 족장은 “역대 게스트 중 가장 적응력이 좋다”고 했다. 그를 찾는 이들은 점점 많아지는데 정작 손호준은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는 예능이 편치 않은 눈치다. 자신이 ‘요즘 예능’에 맞는 사람인지 고민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행동에 누군가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마음이 쓰인다. 손호준은 영화나 드라마 안에서 훨씬 자유롭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해태도, 영화 〈쓰리섬머나잇〉의 해구도 실제의 손호준보다 훨씬 능글맞고, 응큼하다. 그래서 신난다. 작품 안에서만큼은 손호준이 아닌 캐릭터로 살 수 있으니까.

“〈쓰리섬머나잇〉은 김상진 감독님이 코미디 장르를 워낙 잘하시는 분이라 하고 싶었어요. 대본을 읽었을 때 재미있는 만화책을 한 권 읽은 기분이었고요. (김상진 감독의 전작인) 〈주유소 습격사건〉이나 〈광복절 특사〉를 재밌게 본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잖아요.”

〈쓰리섬머나잇〉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절친인 삼총사가 뜨거운(?) 여름밤을 보내면서 겪는 버디무비다. 만년 고시생 명석(김동욱), 콜센터 직원 달수(임원희), 제약사 영업사원 해구(손호준)는 ‘을로 사는’ 서러움을 대변한다.

“저도 항상 을로 살고 있는 입장이고요. 또래의 친한 친구들도 저랑 비슷할 거라 생각해요. 사회생활이나 학교, 군대생활이 다 비슷하잖아요. 해구는 허세가 있어요. 감정에 가장 솔직한 친구죠. 노골적인 표현도 많지만 감독님과 선배님들을 믿고 갔어요. 관객들도 해구로 보지, 손호준으로 보지는 않을 거라고 믿어요. 예능에 나오는 사람이 손호준이라면 드라마나 영화는 그 캐릭터예요. 그래서 드라마나 영화가 더 편해요. 그 안에서는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오해하지 않으니까요.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는 건 현장인 것 같아요.”


‘연기할 때는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으니까요’


이 낯가림 많고 생각 많은 청년이 처음 연기를 시작한 건 고등학교 때였다. 선수를 꿈꿀 정도로 축구를 좋아한 손호준은 말없이 공 차는 시간에 빠져 있었다.

“교회에서 1년에 한 번 하는 성극이 있었어요. 아버지가 교회 학생회 부장 집사였는데 ‘아빠가 하는데 네가 안 하면 되냐, 이번에 안 하면 용돈은 없다’고 하셔서 억지로 하게 됐죠. 지나가는 행인 역할이었고 너무 창피해서 ‘대사 한마디만 하고 얼른 내려오자’ 생각하고 무대에 올라갔어요. 그런데 제가 던진 한마디에 관객들이 빵 터진 거예요. 그러고 내려왔더니 너무 아쉬웠어요. ‘한 번 더하고 싶다, 왜 이렇게 짧지’ 싶어서요.”

이게 뭔가 싶어 그때부터 연극을 보러 다녔다. 성극을 연출한 누나가 있던 ‘진달래 피네’ 극단의 일원이 됐다. 이후 〈발칙한 녀석들〉로 광주 청소년연극제 우수상, 〈몽연〉으로 광주전국연극제 대상을 수상했다.

“서울에 올라온 게 (서울에 있는) 극단에 들어가고 싶어서였어요. 지방에 있으면 유명한 공연을 볼 기회가 없거든요. 제가 극단 ‘목화’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 비디오를 본 적이 있는데, 큰 감명을 받았어요. 큰맘 먹고 올라와서 극단 오디션을 봤는데 떨어졌어요. 낙담하고 있는데 유노윤호가 매니저를 소개해줬죠. 그렇게 방송연기를 시작하게 됐어요.”

매니저의 제안으로 댄스그룹 타키온의 멤버가 된 적도 있다. 가수를 꿈꾼 적은 없지만 가수가 되는 것도 하나의 길이라 여겼다.

광주 극단 선배가 배우는 ‘다 잘할’ 필요는 없지만 ‘다 할 줄’은 알아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 말을 마음에 새기고 있었어요. 언젠가는 제가 가수 역할을 할 수도 있잖아요. 비록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후회는 없어요. 〈응답하라 1994〉 이전에도 아주 작은 역할이었지만 1년에 한 작품씩은 했어요. 그 시절도 재밌었거든요.”

해구에게 명석과 달수가 있다면 그에게는 유노윤호와 유연석이 있다. 흉금을 터놓는 사이다.

“연석이나 윤호랑 있을 때는 제가 더 장난치고 까불어요. 그런데 친하지 않은 사람과 있을 때나 처음 보는 분들이 있을 때는 ‘기분이 나쁠 행동’은 하지 않으려고 해요. 한참 어린 동생이나 후배에게도 함부로 말을 놓지 않아요. 어떤 성향의 친구인지 모르니까요.”


배우로서의 사춘기


역할이 커진 만큼 생각도 많아졌다. 최근에는 ‘어떻게 배우가 될 것인가’에 집중하고 있다. 스스로 배우라고 말하기보다 ‘보는 사람들이 배우로 인정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캐릭터에 대한 욕심보다, 배우에 대한 배고픔이 있다”는 그에게는 오히려 지금이 ‘배우로서의 사춘기’ 같다. 이 질풍노도의 시기, 그에게 〈쓰리섬머나잇〉의 주인공들처럼 일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편하게 있고 싶어요. 지금은 내일을 걱정하고, 내일은 모레를 걱정하잖아요. 작품 들어가기 전에는 다이어트도 해야 해서 음식 앞에서도 절제해야 하고요. 딱 3일만 음식 먹고, 술 마실 때도 아무 걱정 없이 쉬고 싶어요.”
  • 2015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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