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위로 아이콘’ 김영만 원장

“우리 코딱지들, 다 컸으니까 이제 잘할 거야”

글 : 변희원 조선일보 기자  / 사진 : 신현종 

“직장 좀 접어주세요.” 김영만(65)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은 바람개비부터 왕관까지 색종이만 있으면 무엇이든 척척 접어낸다. 최근 출시됐다는 스마트폰도 그의 손에서 나온다. 실시간 중계가 되는 1인 인터넷 방송에 나와 한참 종이접기를 하고 있는 그에게 한 네티즌이 “직장을 접어달라”고 채팅창을 통해 부탁한 것이다. 그걸 본 김 원장은 말을 멈췄고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내가 만들수 있으면 하루 종일 만들어줄 수 있을텐데… 그렇지 못해서 미안해요. 사실 정규직, 비정규직 이런 거 전 잘 몰라요. 이런 사회 자체는 어르신들이, 어른들이 만들어놨죠. 하지만 이런 힘든 세상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제가 여러분한테 ‘참 쉽죠’라고 말하는 것은 여러분이 ‘쉽다. 쉽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도록 그러는 거예요. 파이팅입니다. 어른 입장에서 죄송합니다. 정말 미안해요.”

그날 김 원장은 결국 고개를 숙여서 사과를 했다. 청년들이 일자리를 갖지 못한 게 마치 자신의 잘못인 양 그는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는 동안 채팅창은 ‘ㅠ.ㅠ’(눈물을 흘리는 표정의 이모티콘)로 넘쳐났다. 김 원장은 1988년부터 〈TV 유치원 하나 둘 셋〉을 시작으로 10여 년간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종이접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0~30대라면 어렸을 때 TV에서 한번쯤 김 원장을 봤을 것이다. 1인 방송 형식의 MBC 예능 프로그램 〈마이리틀텔레비전〉(이하 ‘마리텔’)에 김 원장이 다시 나왔을 때 이 세대는 인터넷 채팅창 앞에 모여 환호를 보내고 눈물을 찔끔거렸다. 7월 19일 〈마리텔〉에 처음 등장하자마자 방송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출연진 순위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단지 과거를 회상하는 ‘복고바람’의 하나가 아니라 2030세대를 위로하는 아이콘으로 떠오른 것이다.


어릴 적 친구 같은 존재


8월 3일 충남 천안시 병천면에 있는 어린이 미술 체험 공간 ‘아트오뜨’에서 김영만 원장을 만났다. 그의 목소리는 보통 사람들의 그것보다 두 배 이상 컸다. 서너 평 남짓한 사무실에 쩌렁쩌렁 울렸다. 아이들의 주의를 집중시키려다 보니 생긴 ‘직업병’이란다. 그는 “방송사 예능국에서 전화가 왔길래 방송 소품이 필요해서 연락이 온 줄 알았다. PD를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데, 처음에는 1인 방송이 뭔지도 몰랐다. 그런데 실시간으로 시청자들과 소통한다는 데 솔깃해서 하기로 했다”고 했다. 김 원장은 친구들과 메신저에서 채팅을 몇 번 한 적 있는 게 전부다. 1인 방송을 이용하는 세대들의 대화 속도를 따라잡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도 “이런 호응은 예상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쓰는 용어를 전혀 모르니까 인터넷 용어에서 막혔어요. 방송 중 채팅창에 한글 모음 ‘ㅠ’가 계속 올라오는데 이게 눈물 표시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죠. 이번에 방송 출연을 하면서 ‘헐’ ‘ㅋㅋㅋ’ ‘꿀잼’ 같은 걸 알게 됐죠. 그래서 모르는 건 작가한테 물어봤어요. 전 모르면 그냥 모른다고 하거든요. 그리고 인터넷 용어는 젊은이들의 특권이니까 그걸 저 같은 사람이 그들에게 뭐라고 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런 언어 차이 때문에 연령 차이, 세대 차이가 있을까 봐 걱정 많이 했는데, 그런 건 없었어요. ‘반갑다’거나 ‘고맙다’ 같은 얘기는 얼굴 안 보고 해도 그 진심이 와닿았어요.”

김 원장은 “PD와 작가들이 악플을 많이 걱정했다. 제아무리 강심장이라고 해도 방송 중에 악플을 보면 표정이 변한다고 하더라. 내가 나이도 있으니까 더 걱정을 했을 것이다. 다행히 방송 끝났는데 작가가 악플이 없다면서 기뻐하더라”라고 했다. 아무리 인기 연예인이라도 악플 하나 없는 경우는 드물다. 인터넷 용어도 모르는 김 원장은 어떻게 2030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7월 9일 개봉한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은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의 공세 속에서도 누적 관객 424만(8월 4일 현재)을 기록했다. 국내 개봉 애니메이션 중 역대 4위, 픽사 작품 중 1위다. 화려한 볼거리나 귀에 꽂히는 주제가도 어린이가 아니라 성인 관객 사이에서 소문이 퍼졌다. 특히 ‘빙봉’이란 캐릭터 때문에 어릴 때가 생각나서 눈물을 흘렸다는 관객 평이 많았다. 빙봉은 외동딸 라일리가 서너 살 때 혼자 상상으로 만들어낸 친구. 어릴 때 항상 함께하다가 라일리가 자라면서 점점 잊힌다. 엉뚱하지만 순수한 유년 시절을 상징하는 존재다.

김 원장은 한국의 2030세대에게 ‘빙봉’ 같은 인물이다. 그를 TV에서 보며 자란 2030세대는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도시에서 자랐을 아이들이다. 이들에게 산과 들을 뛰놀며 쌓은 추억은 거의 없다. 외동이거나 기껏해야 형제자매가 하나밖에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TV가 가장 친한 친구이자 놀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 중심에 있었던 김 원장은 한동안 잊혔다가 다시 만난 어릴 적 친구 같은 존재다. 그는 “나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사춘기 때 IMF 외환위기를 겪었고, 어른이 돼서는 ‘삼포 세대’로 불리고 있다. 유년 이후로 아마 행복했던 적이 드물었을 것이다. 내가 그들이 가장 행복했던 때, 가장 순수했던 때를 떠올리게 해주니까 거기서 위안을 받는 것 같다”고 했다. 그가 〈마리텔〉 첫 방송에서 시청자들을 ‘코딱지들’이라고 부른 순간, 채팅창엔 또다시 ‘ㅠ.ㅠ’로 가득 찼다. 예전에 어린이 프로그램 방송할 때 김 원장은 아이들을 집중시키기 위해 그들을 ‘코딱지들’이라고 불렀다. 산만하던 아이들도 “코딱지”라는 말을 들으면 “저 코딱지 아닌데요?”라며 돌아본다는 것이다.


‘소통이 가능한 어른’


“원래는 그렇게 안 부르려고 했어요. 그냥 점잖게 하려고 했죠. 그런데 방송 전에 PD가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아무 이야기나 해도 된다는 거예요. 어차피 이상한 부분은 편집할 거라면서.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편해졌어요. 방송에 들어가니까 ‘코딱지들’이란 소리가 절로 나오던데요. 그냥 예전에 애들 대하듯이 그렇게 방송을 했어요. 그걸 더 좋아하는 것 같던데요? 처음에 채팅창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서 작가들조차 무슨 얘기가 나오는지 따라잡지를 못했거든요.”

김 원장이 〈마리텔〉에서 1위를 차지하기 전까지 계속 그 자리를 지켰던 것은 백종원이다. 나이로 치자면, 백종원이나 김 원장이나 2030세대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그럼에도 이들은 ‘답답한 어른’보다는 ‘소통이 가능한 어른’ 취급을 받는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참 쉽죠?”라는 말을 자주 한다는 것이다.

백종원은 “라임이 없으면 레몬을 쓰면 되고, 민트 대신 깻잎을 넣어도 된다”고 하면서 충청도 사투리로 “참 쉽쥬”라며 눙친다. 비싼 재료, 어려운 방법으로 요리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인터뷰를 하면서 색종이를 가위로 사각사각 잘라서 3분도 채 안 걸려 왕관을 만들어냈다. 그가 자른 꽃은 삐뚤빼뚤했고, 왕관의 보석 장식은 스티커로 대신했다. 왕관을 만들면서도 그는 “참 쉽죠?”라고 했다.

이들의 ‘참 쉽죠?’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남들과 똑같이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는 다독거림이나 다름이 없다. 김 원장은 ‘참 쉽죠?’를 자주 쓰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나이 든 사람들은 2030세대가 나약하다고 비난하죠. 부모 세대는 어렸을 때 고생을 많이 했지만, 그 자녀 세대는 편하게 컸다는 것이죠. 하지만 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제가 젊었을 때와 달리 이들에겐 기회가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어려운 게 당연하죠. 하지만 ‘어렵죠?’는 미리 실패를 예상하고 하는, 부정적인 말이잖아요. ‘쉽죠?’는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긴 긍정적인 말이에요. 그리고 쉽게 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선이 좀 삐뚤어지기도 하고, 원이 찌그러지기도 하고. 전 지금껏 애들 앞에서 자를 대고 종이를 자른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 2015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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