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한국인 최초 기악 부문 우승 임지영

노력·인내가 만든 국내파 바이올리니스트의 쾌거

글 : 오주현 인턴기자(이화여대 졸)  / 사진 : 김선아 

35.5cm 정도의 작은 크기, 그러나 4옥타브 이상의 음역을 내는 ‘악기의 여왕’ 바이올린. 얼마 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스무 살의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이 우승을 거머쥐었다.
벨기에에서 주최하는 이 콩쿠르는 폴란드 쇼팽 콩쿠르, 러시아 차이콥스키 콩쿠르와 함께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힌다. 마틸데 왕비가 직접 시상할 정도로 벨기에에서는 국가적인 행사다. 이 콩쿠르의 우승자에게는 1708년에 만든 명기 Nippon Music Foundation ‘허긴스’를 4년간 임대받는 권한도 주어진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기악 부문 한국인 1위 수상은 임지영이 유일하다.
“그동안 준비한 모든 것을 보여드렸기 때문에 스스로 만족했어요. 수상은 기대도 안 했죠. 그냥 모든 게 무사히 끝났고, 집에 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심취해 있었어요. 보통 콩쿠르는 6위부터 호명을 하는데 이 콩쿠르는 1위부터 호명을 하더라고요. 제 이름이 불렸을 때 ‘진짜 난가? 꿈이야 생시야’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한 달 동안 시험이 이어진다. 5월 첫째 주에는 1차 시험, 둘째 주에는 2차 시험이 있었다. 셋째 주에는 12명의 파이널리스트들이 휴대전화도 없이 샤펠(성)에 들어가 결선에서 연주할 새로운 곡을 혼자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주에 결선이 펼쳐진다. 흔히 콩쿠르는 올림픽에 비유되곤 한다. 악기를 잘 다루는 것뿐 아니라 운도 따라야 한다.


담력은 연습에서 나온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으로 얻은 14번의 연주회는 그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한 달 동안 벨기에 여러 지방을 다니며 2~3일에 한 번씩 공연하는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행복했다.

“사람이 있을까 싶은 시골에서 연주할 때도 한 자리도 안 비고 자리가 꽉 차요. 연주자가 경쾌한 곡을 연주하든, 슬픈 곡을 연주하든 관객들을 단순히 보는 게 아니고 연주를 느끼더라고요. 음악을 사랑하는 게 느껴졌어요. 반응도 좋았고요. ‘음악을 들려줘서 고맙다’는 마음으로 박수를 쳤습니다. 제게는 특별한 관객들이었어요.”

퀸 엘리자베스에서의 우승 후 한국에 돌아와서도 서울 스트링 콰르텟과 실내악 공연, 금호재단에서의 공연 그리고 대관령 국제음악회의 첫 무대 등 다양한 공연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1708년에 제작된 Nippon Music Foundation의 ‘허긴스’.
어머니가 피아노를 전공했기 때문에 임지영은 음악을 접하기가 쉬웠다. 맨 처음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웠는데 흥미가 안 생겼다. 첼로도 배우고 플루트도 배웠지만 별다른 흥미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손에 잡은 것이 바이올린이었다.

“피아노・플루트・첼로 모두 듣기는 좋은데 특별한 교감이 없었어요. 바이올린은 저음의 소리를 내면서 무거운 음악을 할 수도 있고, 고음으로 화려한 음악을 할 수도 있어요. 다양한 색깔을 빠른 반응으로 연주할 수 있었죠. 악기로 노래하는 기분이에요.”

일곱 살 때 바이올린을 처음 잡고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임지영은 각종 청소년 콩쿠르에 나가 좋은 성적을 거두며 사람들의 눈에 띄기 시작했다.

“한번은 청소년 콩쿠르에 피아노와 바이올린으로 참가한 적이 있어요. 바이올린은 좋은 성적을 냈지만, 피아노는 예선에서 떨어졌지 뭐예요(웃음). 역시 제게 맞는 악기는 바이올린이었나 봐요.”

열네 살 때 예원학교에 들어가보니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다소 늦은 나이-보통 바이올린 전공자들은 초등학교 1~2학년 때 본격적으로 바이올린을 시작한다-에 시작해 친구들과 수준 차이가 있었다.

“그때부터 자극을 받은 것 같아요. 어린 나이지만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섭게 연습했죠. 학교가 끝나면 오후 4~5시부터 새벽 2~3시까지 하루 10시간씩 바이올린만 켰어요.”

©Bruno Vessiez
임지영의 연습량은 엄청나다. 그만큼 연습을 했기에 좋은 결과가 따라온 것. 연습량에 기반을 둔 담력 때문인지 무대에 올라가면 그다지 떨리지 않는다.

“연습을 조금이라도 소홀히 하고 무대에 올라가면 떨리더라고요. 제가 저를 못 믿는 거죠. 그런 느낌이 싫어서 더 많이 연습하고 스스로 당당하려고 노력해요.”

고된 연습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작은 일에서부터 느낀 성취감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에 입학했을 때, 실기시험에서 성적이 잘 나왔을 때, 안 되던 부분이 고쳐졌을 때 만족감을 느꼈다.

임지영은 특히 예원예고를 거쳐 한예종에 다닌 순수 국내파 바이올리니스트로 주목받았다. 한예종 4학년인 그는 김남윤 교수에게 사사하고 있다. 한예종을 졸업한 뒤 같은 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을 예정이다. 이번 대회에 나갔을 때도 한 외국인 참가자가 “너는 한국에서만 바이올린을 배웠는데 어떻게 그렇게 연주를 잘하니”라고 묻기도 했다.

“본인이 하기 나름이죠.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찾아볼 수도 있고, 방학을 이용해서 캠프를 다녀올 수도 있고요. 언젠가는 저도 외국에 나가서 더 큰 세계를 만나겠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아직도 김남윤 교수님께 배울 게 많은 걸요(웃음).”


스무 살, 꿈을 쌓아가는 나이


임지영이 가장 좋아하는 연주곡은 고전음악이다. 베토벤・모차르트・슈베르트처럼 딱딱 떨어지는 음악을 좋아한다. 쏟아지는 질문에 꾸밈없이 담백하게 대답하는 그의 성격과 잘 어울려 보였다. 앞으로는 색채가 뚜렷한 프랑스나 러시아의 음악도 배우고 싶다고 한다.

“앞으로 새로운 것에 많이 도전하고 싶어요. 이번에 서울 스트링 콰르텟과 실내악을 연주하면서 솔리스트로서가 아닌 같이 연주하는 단원들과 교감하는 방법을 배운 것처럼요.”

임지영을 보니 피겨여왕 김연아가 떠올랐다.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이루고 난 뒤, 한동안 목표를 잃고 방황했다는 김연아처럼 권위 있는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후 그 역시 방황을 겪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하는 게 꿈이었어요. 그 꿈이 이렇게 빨리 이루어질 줄은 몰랐죠. 갑자기 꿈을 이루니까 생각이 많아졌어요. 아직은 감히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를 바라기보다는 그 과정을 쌓아가는 중이에요. 이제 스무 살이잖아요. 청소년에서 성인이 되는 전환점이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배우고, 자기관리를 잘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연주하고 싶어요.”

임지영에게는 수많은 문 중 하나의 문이 열렸을 뿐이다. 행복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다는 스무 살 임지영의 눈이 반짝 빛났다.
  • 2015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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