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주메뉴

  • cover styory
  • focus
  • lifestyle
  • culture
  • human
  • community
    • 손글씨
    • 1등기업인물
    • 나도한마디
    • 기사제보
  • subscription

배우의 쓸모, 배우의 품격

데뷔 30년 ‘한결같은 카리스마’ 김혜수

오직 쓸모 있는 자만이 살아남는 곳 〈차이나타운〉, 이 잔혹한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나뉘지만 김혜수에 대한 호불호는 나뉘지 않는다. 김혜수는 “배우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요구받는 직업”이라고 했다. 〈차이나타운〉은 김혜수가 도무지 할 수 없을 것 같은 작품을 두고 어떻게 ‘그 이상’을 채워나갔는가에 대한 기록이다.

사진제공 : CGV 아트하우스
김혜수는 1986년 영화 〈깜보〉로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1993년 영화 〈첫사랑〉으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 후 숱한 주연상과 대상을 받았지만 청룡영화제 주연상은 세 번을 받았다. 김혜수는 20회 청룡영화제 시상식부터 사회자로 무대에 올랐다. 그가 처음 시상식 사회를 맡은 건 “그렇게라도 영화인의 자리에 함께 있고 싶어서”였다. 스스로도, 주변에서도 자신을 ‘배우’로 보지 않는다고 느낄 때였다. 김혜수는 여전히 청룡영화제의 상징처럼 그 자리에 있지만, 더 이상 그가 배우임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그사이 영화 〈타짜〉 〈모던보이〉 〈이층의 악당〉 〈도둑들〉 〈관상〉 등이 지나갔다. 역할의 크기와 상관없이 그가 등장한 영화가 꾸준히 개봉했다. 〈도둑들〉의 최동훈 감독, 〈관상〉의 한재림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때 김혜수를 염두에 두었음”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올해는 김혜수가 데뷔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그리고 지난 4월 영화 〈차이나타운〉이 개봉했다.


‘김혜수니까 가능하다’는 말에 대하여

〈차이나타운〉을 본 이들의 첫 반응이 “역시 김혜수”였다면, 김혜수가 〈차이나타운〉의 시나리오를 읽은 후 첫 반응은 “이걸 내가 어떻게” 였다. 인물에 대한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다. 차이나타운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존재, 이 잔혹한 세계의 ‘엄마’를 어떻게 살아낼 수 있을까.

“이 영화는 누아르라는 장르적인 성격이 뚜렷해요. 하지만 그런 잔혹함을 영화적 장치나 미학으로 사용하지는 않았어요. 그런 면에서 등장인물을 대하는 방식이 좀 특별하죠.”

누아르는 뒷골목의 범죄 이야기를 다루는 장르다. 범죄조직, 마피아, 갱, 야쿠자 등이 등장한다. 〈차이나타운〉에는 대신 엄마의 ‘아이들’이 등장한다. 지하철 10번 보관함에 버려진 뒤 ‘일영(10)’이라는 이름으로 사는 김고은도 그 아이 중 하나다. 이곳에서 어린아이들은 앵벌이를 하고, 조금 크면 밀입국자들에게 가짜 신분증을 만들어주고, 좀 더 큰 뒤에는 사채를 빌려주고, 다 크면 빚 대신 사람을 죽여 장기를 매매한다.

“일영이가 관통하는 시간이 엄마가 몸으로 겪어온 시간이에요. 엄마가 조직을 지배하고 절대자로 군림하는 모습은 엄마 개인의 삶이라기보다는 ‘차이나타운’이라는 곳의 생존 방식인 거죠. 일영과 엄마는 한인물 같아요. 엄마가 일영을 대하는 건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라고 생각했어요. 일영을 키워내는 방식이 자신이 살아낸 방법인 거죠.”

세 번을 고사하고 받아들인 인물, 막상 마우희(엄마)가 되기로 하자 현장이 흥미진진해지기 시작했다. ‘살면서 이런 역할을 언제 만나볼까’ 싶었다. 분장팀과 긴 회의 끝에 몸 안에 보형물을 넣어 형편없이 망가진 한 사람의 내면을 표현했다. 얼굴에는 잡티가 가득하고 머리카락은 두서없이 흐트러져 있다.

“명칭은 ‘엄마’지만 성별에 대한 느낌이 없었어요. 중년 이상인 것 같기는 한데, 몇 살인지는 알 수 없었고요. 제가 작품을 준비하면서 제작진과 공유한 사진 중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젊은 남자 사진도 있었어요. 그렇게 조각이 모여서 ‘모질게 살아남은 사람’의 모습을 영화적이면서도 일상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영화 〈관상〉에서 김혜수는 기생 연홍 역을 맡았다. 한재림 감독은 세상 풍파를 다 겪었으나 여전히 매혹적인,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지만 호락호락 속내를 보여주지 않는 인물에 ‘김혜수’ 외에 다른 인물은 떠오르지 않았다고 했다. 더욱 흥미로웠던 점은 그가 작품을 대하는 태도였다. 그는 모든 캐릭터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이정재가 맡은 수양대군 역할은 “시나리오를 본 순간부터 빠져들었다”고 했다.

“젊은 배우든 나이 든 배우든, 계속 나오는 분이든 잠깐 나오는 분이든 작품마다 예의주시하는 분들이 있어요. 이번 영화도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이 얼마나 좋은 에너지를 가졌는지, 제가 나오지 않는 장면도 유심히 지켜봤어요.”

그 말을 듣는데 한 장면이 떠올랐다. 지난해 있었던 35회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은 〈한공주〉의 천우희였다. 그가 “이렇게 작은 영화에 유명하지 않은 제가 출연했는데, 이렇게 큰 상을 주셔서 감사하다”며 흐느낄 때 무대 한켠에서 김혜수도 울고 있었다. 그는 속으로 ‘그런 게 어딨어. 배우는 다 배우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물론 제가 연기를 오래했고, 눈에 띄는 자리에 있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저도 꽤 오랜 기간 배우라는 자의식 없이 일했어요. 현장에서 ‘나는 진짜 배우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줄곧 했고요. 저 스스로 ‘겉도는 느낌’이 꽤나 오래 있었어요.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이 아니라 본인이 원하는 자신의 모습을 찾기까지 얼마나 고통스럽고 길었는지 몰라요.”


함께하는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


첫 영화 〈깜보〉를 함께했던 배우 박중훈은 한 인터뷰에서 ‘존경하는 배우’로 김혜수를 꼽기도 했다. “솔직히 남자배우는 나이에 지장을 덜 받는다. 하지만 여자배우는 다르다. 그런데 김혜수는 스스로를 철저하게 관리하면서 여전히 신선함을 주는 유일한 배우”라고 했다. 그 속에는 스스로 확신을 갖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간이 있었다. 그가 주인공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보조출연자나 스태프에게 눈을 떼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하다 보면 굉장히 많은 사람이 모이잖아요. 메인 멤버들은 눈에 띄기 때문에 챙겨줘요. 그런데 현장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참 많아요. 특히 사극은 정말 추워요. 영화 경험이 많지 않은 분들은 짧게 나오니까 금방 끝난다고 생각해서 그냥 오세요. 버선발에 짚신 신고 밤새 서 있으면 손이 보라색이 돼요. 저는 파카도, 담요도, 핫팩도 있으니까 하나씩 나눠주는 거죠.”

현장 후기를 보면 어느 영화든 “김혜수에게 핫팩을 받았다” “당이 떨어질 때쯤 젤리를 주고 갔다”는 증언들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함께하는 이들의 어려움을 마치 내 일처럼 느끼는 자연인 김혜수가 〈차이나타운〉을 감당해야 했을 때의 어려움은 짐작할 만하다. 특히 한준희 감독이 “이 강렬한 시나리오를 김혜수를 염두에 두고 썼다”고 했을 때, 관객들이 “김혜수라서 가능했다”고 말할 때 그는 감사하면서도 한편 ‘배우 김혜수’에 대한 기대치가 이토록 ‘쎄구나’라고 새삼 놀랐다.

“어떤 역할을 맡으면 저한테서 그 근거를 찾으려고 해요. 그걸 살려내고 집중하는 작업을 하고요. 그런데 이번 작품은 그 접점을 찾기가 어려워서 힘들었어요. 어떤 세계인지는 알겠는데 가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었죠.”

그럼에도 자연인 김혜수와 배우 김혜수의 간극을 메워 틈을 보이지 않는 게 그의 몫이다.

“배우라는 직업 자체가 나 이상을 요구받고 그만큼을 발현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 작품은 제가 ‘배우로서 영화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즐거웠어요.”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선택한 배역, 그 불가능한 임무를 완수했을 때 김혜수는 만족감보다 안도감을 느낀다. 그리고 다음 작품을 만날 때까지 ‘자연인 김혜수’를 좀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데 집중한다.

“작품과 작품 사이의 시간은 평범하게 보내요. 제가 넓어져야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있잖아요. 배우로서 과업이 없을 때는 저한테 집중하려고 해요.”

그 과정 중 가장 큰 게 ‘독서’다. 그와 인터뷰를 마친 이들의 공통된 후기는 “문장에 비문이 없다” “사유가 풍부하다” 등이다. 혹자는 “그와의 인터뷰는 녹취를 그냥 풀어도 기사가 된다”고 했다.

“콤플렉스 때문인 것 같아요. 워낙 어릴 때 일을 시작해서 일반적인 일들에는 빈틈이 많잖아요. 그걸 채우고 싶은데, 책은 좀 쉬워서요. 저는 글씨 보는 게 그렇게 즐거워요.”

관객은 그 글씨가 김혜수라는 배우를 통해 어떻게 작품이 되는지를 보는 게 즐겁다.
  • 2015년 06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하단메뉴

상호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김창기
편집인 : 김창기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성동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