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가 보석이 되는 마법, 창작 집단 ‘재주도좋아’

바다쓰레기 줍는 ‘비치코밍’으로 환경문제 일상으로 끌어들여

글 : 한정림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모래사장에 밀려온 유리병. 바위 위에 걸린 그물 조각. 물고기를 잡지 못한 낚시 추. 주인 잃은 슬리퍼 한 짝. 깨진 조개껍데기. 우리는 이를 통틀어 ‘바다쓰레기’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처음부터 쓰레기로 태어난 것은 없다. 무언가를 담았고, 무언가를 잡았으며, 누군가를 지켜주었다. 이 세상에 처음부터 쓸모없는 존재였던 것은 하나도 없다. 이 거대하고도 단순한 진리의 명제를 예술로 명쾌하게 전달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주도가 좋아 제주에 모여 살며 다양한 예술 활동을 펼치는 ‘재주도좋아’를 서울의 한 갤러리에서 만났다.

사진제공 : ‘재주도좋아’
촬영협조 : 갤러리 아원
〈반짝이는 바라던 바다-제주 바다로부터〉 전시장에 모인 조원희 ‘재주도좋아’ 대표(두 번째 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와 참여 작가들.
쓰레기여도 괜찮아

“세 살배기 아들이 걸어 다니는 모래사장에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 있는 뾰족한 조각들이 많았다. 발에 찔릴 수 있는 것들을 주웠다. 누군가에게 필요했던 것으로 태어났지만 그것의 최후는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 쓰레기. 내가 주운 쓰레기가 각지고 뾰족한 모습에서 둥글둥글한 모습으로 웃고 있으면 좋겠다.”

아들과 함께 해수욕장에 놀러 왔다 쓰레기를 주운 손지선씨. 금속공예작가 차영주씨는 손씨가 주운 유리조각을 그물로 엮고 끈으로 묶었다.

지난 3월 18일 삼청동의 한 갤러리에서 이들이 바라는 바다의 모습을 담은 이색 전시가 열렸다. 창작 집단 ‘재주도좋아’가 기획한 〈반짝이는 바라던 바다-제주 바다로부터〉전이다. 전시 부제는 ‘바다쓰레기 주얼리 금속공예 전시’.

2014년 한 해 동안 주운 바다쓰레기를 ‘쓰레기’가 아닌 ‘보석’으로 변신시키는 기획이다.

“비치코밍(beachcombing)을 토대로 한 〈반짝이는 바라던 바다〉를 기획할 때 5년 동안 바다에서 해결해야 하는 주요 쓰레기 종류를 정했어요. 유리・금속・나무・플라스틱・스티로폼・폐그물 등이죠. 이번 전시는 지난해 유리조형전에 이은 두 번째 전시예요. 지난번 유리조형 전시는 작가가 직접 바다에 와서 쓰레기를 주워 작품을 만들었어요. 이번엔 재료가 되는 쓰레기 취합과정을 일반인이 대신했다는 게 특징이에요.”(조원희 ‘재주도좋아’ 대표)

총 22명의 제주 주민이 바다쓰레기를 주워 보내왔다. 유리병, 조개껍데기, 부표, 폐목, 고무 신발, 부서진 장난감 등 종류도 다양했다. 이렇게 모인 쓰레기는 서울의 금속공예작가 20명에게 보내졌다. 쓰레기와 함께 언제, 어디서, 왜 이걸 주웠는지에 대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짧은 편지도 함께였다.

“제주 바닷가에 쓸려 온 여러 종류의 깨진 조각들. 바다새로 태어나다. 제주 바다를 하늘 삼아 새처럼 누비며 살아오신 고윤자 해녀님께 날려 보냅니다.” (금속공예 작가 전지혜)


자신이 주운 쓰레기가 예쁜 장신구가 돼 되돌아 왔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자신이 만든 작품 중 하나를 주민들에게 선물했다. 아름다운 선순환이다.

“예술, 환경, 이런 건 일반인에게 어려운 이야기예요. 〈반짝이는 바라던 바다〉를 통해 예술과 환경문제가 쉽고 재미있다는 것을 알면 좋겠어요.”(조원희)

‘비치코밍(beachcombing)’은 생소한 개념이다. 바다 위를 부유하다 해안선과 조류의 영향으로 해변에 표류한 물건들을 줍는 행위를 뜻하는 말이다. 오래전 난파선에서 떠밀려온 음식이나 생필품, 파도에 떠밀려온 고래, 코코넛 등 생존에 필요한 것을 줍는 행위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한다. 이렇게 바다쓰레기를 줍는 사람을 ‘비치코머(beachcomber)’라고 부른다.

먹고살기 위해 쓰레기를 줍는 것, 바다를 지키기 위해 쓰레기를 줍는 것. ‘비치코밍’은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행위다.

“사람들에게 ‘비치코밍’이 어떤 건지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정기적으로 ‘비치코밍’ 워크숍과 페스티벌을 열고 그 모든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해서 알렸죠.”(조원희)

‘재주도좋아’는 1년에 두 차례 날을 정해놓고 ‘비치코밍’ 워크숍을 연다. 함께 모여 ‘비치코밍’의 개념을 공유하고 바다쓰레기를 줍는다. 공연과 영상제, 환경포럼, 장터 등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는 페스티벌도 연다. 예술가를 대상으로 한 레지던시도 운영 중이다. 장르 불문이지만 ‘비치코밍’ 워크숍에 참가해야 한다는 게 전제 조건이다.

지난해 여름 진행된 예술가 레지던시에는 총 8팀, 20명의 예술가들이 제주 바다에서 ‘비치코밍’을 경험하고 작품을 만들었다. 제주 바다로 대표되는 자연과 환경문제, 예술이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음을 보여준 기획이었다. 오는 5월 31일은 바다의날이다. ‘재주도좋아’는 이날 올해 첫 ‘비치코밍’ 워크숍을 진행한다.


해녀학교 동기생들이 의기투합


‘재주도좋아’는 제주시 애월읍 귀덕리에 위치한 한수풀해녀학교 5기생 5명이 만든 창작 집단이다. 올해 새로운 멤버 1명이 들어와 모두 6명이 됐다.

유리공예를 전공한 조원희(34), 디자이너 최윤아(37), 회계 유로사(33), 영상작가 김승환(35), 일러스트레이터 강민석(40), 공연계에서 일했던 신화정(35) 등 출신 지역부터 나이까지 공통점이라곤 하나 없는 이들이 모인 계기는 “바다가 좋아서”였다.

해녀학교 수업이 있던 어느 날 한 친구가 망사리에 캔이며 플라스틱 통 등 바다쓰레기를 주워서 나왔다. 이걸 본 다른 친구들도 물질하러 들어갔다가 나올 때면 쓰레기를 주워 오기 시작했다.

16주 동안의 해녀학교 일정이 끝나고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에 우도로 이별여행을 떠났다. 우도 바다에서도 쓰레기를 주웠는데 1시간도 안 돼 준비해 간 포대자루가 가득 찼다. 더 이상 우리가 사랑하는 바다를 이대로 둘 수 없다. 바다가 쓰고 버려지는 소비의 대상이 아닌 아끼고 지켜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알리자. 불량 해녀, 해남 5명이 뭉친 이유였다.

육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을 결정한 5명의 남녀는 제주 바다에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재주도좋아’라는 센스 만점 이름도 생겼다. ‘비치코밍’을 기본으로 한 여러 기획도 만들었다. 기획서와 프레젠테이션 영상물을 갖고 유관 단체를 찾아가 도움을 구했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을 비롯, 여러 기관의 후원을 받아 봉성리에 창작 공간과 레지던시를 마련했다.


2013년 여름의 ‘비치코밍’을 시작으로 〈반짝이는 바라던 바다〉, 지역 학생 대상의 예술교육 프로젝트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지역 주민들과 함께 뭐든 배워보는 〈승환이 잇샤〉 등을 진행하고 있다.

‘재주도좋아’의 창작 공간인 ‘반짝반짝지구상회’에서는 바다쓰레기로 만든 생활용품을 판매하고 있는데 얼마 전 가수 이효리가 이곳을 방문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대자동차 공익사업의 일환으로 ‘비치코밍’ 개념을 도입한 워크숍 프로그램도 개발 중이다. 직원들 간 화합도 도모하고 환경도 지킨다는 일석이조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3월에는 법인 등록도 마쳤다. 최종 목표는 사회적 기업 인증이다. 지난 한 해 동안 활동한 예비 사회적 기업 중 도내에서 유일하게 우수단체로 선정됐다.

“2013년은 ‘재주도좋아’의 워밍업 기간이었고, 2014년은 기획한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기간이었어요. 올해부터는 수익 창출에도 신경을 쓰려고요. 결혼하는 멤버가 셋이나 있고 삶의 기본이 돼야 다른 일도 즐겁게 할 수 있으니까요.”(조원희)
  • 2015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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