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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그 나라의 음식을 맛보려면 시골을 찾아가라

음식으로 유럽 문화 전하는 《바나나와 쿠스쿠스》 펴낸
팀 알퍼

요리를 좋아하는 영국인? 앞뒤가 맞지 않는 말처럼 보인다. 영국은 형편없는 요리로 정평이 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다양한 문화배경을 가진 유대가정에서 성장했다면? 다시 봐야 할 것 같다. 9년째 한국에 살고 있는 영국인 팀 알퍼가 음식으로 전하는 유럽문화를 담은 책 《바나나와 쿠스쿠스》(옐로스톤)를 펴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그와 함께 유럽여행을 다녀온 느낌이 든다. 각국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곳이 아니라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푸근한 할머니 손맛을 만끽한 기분이다. 그가 살거나 여행했던 영국・스웨덴・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그리스・ 벨기에・스위스・독일・불가리아・러시아의 향토음식 그리고 그 음식이 나오게 된 자연환경과 문화배경을 함께 담은 책이다.

영국에는 브레드 앤 버터 푸딩, 프렌치토스트 등 오래된 빵을 재활용하는 음식이 많다.

이 중 백미는 굳은 빵에 제철 베리즙을 듬뿍 부어 만드는 서머푸딩. 만드는 법은 간단하지만 영국인에게는 들판에서 직접 베리를 따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메뉴다. 프랑스의 테린은 고급요리 대접을 받지만 사실 소작농들이 산패하기 직전의 고기도 버리기 아까워 만들어낸 음식이다. 스페인에서는 길고 뜨거운 여름을 견디기 위해 토마토・오이・파프리카・양파・고추와 마늘 등 갖가지 재료를 갈아 차갑게 식힌 가스파초를 만들어 먹는다.

그리스에서 최고의 음식을 맛보려면 숙소 역할을 하면서 전통요리와 술도 함께 내놓는 시골의 작은 타베르나(taverna)를 찾으면 된다. 최근 직장을 옮겼다는 팀 알퍼를 점심시간을 이용해 청담동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피자와 파스타 같은 이탈리아 음식으로 식사를 하는 동안 그는 “한국음식을 좋아한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2006년에 처음 김치를 맛봤어요. 맛의 신세계였습니다. 김치 없으면 못 살겠어요. 영국에서도 김치를 담갔지만, 한국 무와 배추를 구하지 못해 제대로 맛을 낼 수 없었습니다. 3개월 정도 푹 익은 김치를 특히 좋아해요. 아침으로는 김치볶음밥이 정말 좋죠. 청국장도 잘 먹어요. 유럽 사람들도 쿰쿰한 냄새가 심하게 나는 치즈를 좋아하잖아요? 삭힌 홍어도 맛있죠. 몸에도 좋잖아요? 푹 삭힌 홍어를 김치에 싸먹으면 정말 맛있죠. 전라도의 젓갈도 잘 먹어요. 양파김치는 최고였어요.”

웬만한 한국인보다 더 한국의 전통적인 맛을 꿰고 있다. 한국인들이 어떻게 이런 음식문화를 가지게 되었는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찾은 오래된 맛집과 함께 소개하는 책도 내고 싶다고 한다. 그는 한국의 요리전문지에 직접 만든 요리를 소개하는 푸드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요리에 대한 그의 관심은 아주 어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족들은 그가 여덟 살 때 TV 요리 프로그램의 셰프를 흉내 내며 바나나케이크를 만들었다고 기억한다. 그의 어린 시절 기억을 차지하고 있는 소울 푸드는 외할머니가 만들어준 쿠스쿠스다.

“친가는 동유럽 출신의 영국인, 외가는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인입니다. 모두 유대가정이었고요. 친할머니와 외할머니가 만들어내는 음식은 너무 달랐어요. 친할머니의 부엌에서는 황량한 들판이 펼쳐지는 것 같았고, 외할머니의 부엌에서는 이국적인 맛과 냄새가 흘러넘쳤습니다. 저와 여동생이 파리 외곽의 외갓집을 찾아가면 외할머니가 ‘뭐 해줄까? 너희들이 원하는 건 다 만들어줄게’라며 부엌에서 살다시피 하셨죠. 북아프리카 베르베르족의 음식인 쿠스쿠스는 인스턴트로도 나오지만, 직접 만들려면 하루 종일 걸려요. 언제 요리를 시작하셨는지 진한 냄새에 잠을 깨지만, 완성되기까지는 하루 내내 기다려야 했습니다. 할머니의 그 쿠스쿠스는 흉내도 낼 수가 없어요.”


기자·PD·카피라이터·요리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나라 없는 민족으로 전 세계를 떠돌아야 했던 유대인의 음식에는 여러 음식문화가 섞여 들어갔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열여섯 살부터 스물두 살까지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를 다녔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던 시절에도 호텔 식당에서 풀타임으로 일했다.

“펍(pub)에서 감자를 깎으면서 요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큰 호텔에서 일할 때는 ‘빨리빨리 못 해’라는 독촉을 견딜 수가 없었죠. 요리를 즐길 수가 없어 그만두었습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4년, 스페인에서 1년 동안 살면서 유럽 전역을 여행했다. 영어뿐 아니라 프랑스어・러시아어・스페인어로도 의사소통할 수 있어 요리보조와 비디오 편집, 광고, 수출입 관련 일 등 일거리를 찾을 수 있었다.

“관광객이 별로 없는 시골마을을 찾아다니는 게 제 여행의 원칙입니다. 기차에서 내리면 채소나 과일을 파는 현지인에게 ‘비워둔 방이 있느냐’고 물어요. 시골일수록 낯선 사람을 도와주려는 착한 사람이 많거든요. 그렇게 찾아간 집에서 할머니 손맛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대도시에서는 관광객 입맛에 맞추려 국적불명의 음식이 되기 쉽거든요. 영국에서도 제일 맛있는 식당에 가려면 그 지역의 오래된 펍을 찾으세요. 영국에는 원래 레스토랑이 없었어요. 레스토랑이란 말 자체가 프랑스에서 유래했거든요.”

대학 졸업 후 저널리즘스쿨을 다녔던 그는 축구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영국 사람들은 누구나 축구를 좋아합니다. 축구기자가 되려는 사람도 아주 많죠. 축구 저널리스트로서 나만의 경쟁력을 어떻게 갖출까 고민하던 터였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으로 아시아 축구에 관심이 쏠리는 것을 보고 한중일 축구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한국축구에 대해 깊이 알고 싶어 아예 한국에서 살기 시작했죠.”

한국축구와 IT에 관한 기사를 영국에 기고하던 그는 한국에서 교통방송 PD, 대한항공 기내지 기자로 활동했다. 교통방송에서 영어로 진행하는 FM을 시작할 때 PD가 되었고, 대한항공 기내지에서는 영어로 기사를 쓰거나, 영어 문장을 고쳐주는 일을 했다. 최근에는 한 홍보회사에 취직, 세계시장을 겨냥해 영어로 광고 문안을 쓰는 카피라이터 일을 시작했다.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며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해온 그는 현재 〈주간조선〉에 글을 싣고 있다. PD・기자・카피라이터・칼럼니스트・요리전문가…. 한국인 중에도 이렇게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것 같다.

그는 〈주간조선〉 칼럼에서 다문화국가가 될 한국에 대해 따끔한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는 한국인 못지않게 한국어에 능통하다. 그렇다고 따로 시간을 내 공부한 적은 없다고 한다. 순전히 직접 부딪혀서 배운 한국어다. 말투나 태도 역시 한국인과 구분하기 어렵다.

“한국에서 9년 동안 살았으면 이 정도 한국말은 해야지요. 한국말도 못하면서 어떻게 한국사람, 한국문화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한국에 살면서도 영어를 고수하려는 사람들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한국에 잠시 살다 가려는 게 아니라 정착하려는 사람이 많아지는 요즘, ‘우리나라’ ‘외국인’ 같은 용어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한국 사람들은 우리를 ‘외국인’이라 지칭하면서 ‘우리나라에 언제까지 살 거야?’라고 묻곤 합니다. 어떤 때는 그게 ‘빨리 가라’는 소리로 들리지요. ‘외국인’이라는 말에 소외감을 느끼고, ‘우리나라’도 다른 문화권 사람을 배제하려는 말로 들립니다.”

지금은 요리 관련 일을 하고 있지 않지만 직접 점심 도시락을 싸서 다니고,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대접하길 좋아한다는 그는 “요즘 유럽에서 요리 못하는 남자는 인기가 별로 없다”고 말한다. 그의 꿈은 은퇴 후 한적한 마을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것이다.

“외삼촌이 프로방스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한 적이 있어요. 남프랑스의 경치와 어우러져 그림 같은 모습이었죠. 그런 식당을 열고 싶다는 꿈이 있어요. 그때그때 나오는 제철음식으로 정성껏 요리해서 손님을 맞고 싶어요.”
  • 2015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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