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만난 사람 -
중국 휴대폰 점유율 1위 샤오미 CEO 레이쥔

마흔두 살에 창업, 4년 만에 글로벌 기업인으로

글 : 임현선 TOPCLASS 기자  / 사진 : 조선DB 

최근 국내 언론의 경제 뉴스에 하루가 멀다하고 등장하는 기업이 있다. 샤오미(小米)라는 중국 스마트폰 제조회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2010년 4월 설립한 샤오미는 2011년 8월 30만원 대의 저가 스마트폰 Mi1을 선보이며 화제를 모았다. 샤오미폰은 가격대비 성능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입소문을 타고 출시된지 몇 개월 만에 모든 휴대폰 랭킹 부문에서 ‘톱 5’ 안에 진입했다. 2014년 3분기에 중국 휴대폰 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른 후 현재 자국내 시장 점유율은 12.8%를 기록하고 있다.
샤오미는 올해 미국 증시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샤오미가 (미국에서) 상장할 경우 중국 부자 1위는 샤오미의 CEO 레이쥔(47)이 차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마흔두 살에 창업해 4년 만에 세계적인 기업가 반열에 오른 레이쥔을 《샤오미 CEO 레이쥔의 창업신화》(느낌이 있는 책)를 통해 만났다.
“휴대폰 마니아, 인터넷 마니아, 탄산음료와 면 티셔츠광, 자신이 투자한 회사의 제품을 자랑하고 청결함을 사랑하는 바이커, 철저한 이미지 관리, 카메라를 멀리하는 애연가.”

샤오미의 창립자이자 이사장 겸 CEO, 킹소프트 소프트웨어 이사장, 그가 바로 레이쥔이다. 레이쥔은 단말기에 대한 구상이 기본적으로 구체화되자 2010년 4월 샤오미를 설립했다. 샤오미의 지난해 스마트폰 판매량은 6110만 대였으며, 매출액은 743억위안(약 13조원)을 넘었다. 창업 이후 놀라운 성공 신화를 써나가고 있는 레이쥔은 어떤 이력을 지닌 사람일까.


컴퓨터공학 전공, 프로그래머로 명성

《샤오미 CEO 레이쥔의 창업신화》
후이구이 지음 / 이지은 옮김 / 느낌이 있는 책
레이쥔은 1987년 우한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다. 2학년이 된 레이쥔은 캠퍼스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세상에 뛰어들 준비를 한다. 그로부터 2년간 우한 전자상가에서 장사하는 컴퓨터 업체 사장들로부터 ‘단골손님’으로 눈도장을 받을 만큼 열심히 움직였다. 기술 문제가 발생하면 이들은 모두 레이쥔을 찾았다. 부지런히 발품을 팔며 실력을 인정받은 덕분에 레이쥔은 우한 전자상가의 스타로 떠올랐다. 갓 스물이 된 레이쥔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찼다. 전 세계 모든 컴퓨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를 개발하고 전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운영하겠다고 꿈을 꾸었다. 1990년 그는 친구들과 ‘Sunsir’라는 회사를 창업했으나 자금 부족과 경영 미숙으로 1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대학 졸업 후 레이쥔은 베이징으로 상경해 중국판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춘에서 우수한 근로자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뛰어난 실력을 뽐내며 IT업계에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다. 1992년 레이쥔은 추보쥔이라는 소프트웨어 업계의 선배가 세운 킹소프트 소프트웨어에 합류해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그는 입사 6년 만에 킹소프트 소프트웨어의 CEO가 되어 전문 경영인의 자리에 오르며 주목을 받았으나 그의 어깨에는 무거운 짐이 놓여 있었다.

당시 킹소프트의 입지는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대형 소프트웨어의 협공 탓에 무척 위태로웠다. 시장의 선구자가 되기 위해 레이쥔은 열심히 노력했지만 단 한 번도 업계 1등에 오르지 못했다. 상장을 기다리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는 자사의 고위 임원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다른 소규모 업체가 순식간에 업계 스타로 발돋움하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봤다. 다섯 번째 도전 만에 킹소프트를 홍콩 증시에 상장시킨 레이쥔은 사표를 던지고 6개월간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휴식의 시간을 보낸다. 그 뒤 엔젤투자자로 변신해 샤오미를 설립하기 전까지 250개 업체의 창업을 지원했다.

“저는 창업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킹소프트를 그만둔 후 스트레스와 고생 없이 더 빠르게 더 나은 창업을 찾는 일에 매달렸습니다. 다른 사람은 상대적으로 쉽게 돈을 버는데 왜 나만 안 되는지 정말 고민이었죠.”

엔젤투자자로 활동하며 레이쥔은 중소기업에 투자하면서, 투자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했다. 무엇이 자본가의 지갑을 열리게 하는 걸까? 레이쥔은 “중요한 산업이 시작되는 타이밍을 찾아내야 돈을 번다”는 결론을 내렸다. 시장의 흐름을 정확히 읽어내는 안목이 성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열쇠였음을 깨달았다.

레이쥔은 승부수를 던질 무대 세 곳을 발견했다. 전자상거래, 모바일 인터넷, 커뮤니티가 그것이었다. 2007년 아이폰이 발표되었고, 그해 7월 출시됐다. 아이폰은 레이쥔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는 ‘모바일 인터넷 시대가 대세’임을 간파하고 스마트폰 제조회사 샤오미를 창업하기로 했다.


‘돼지도 날릴 수 있는 태풍의 길목’


인터넷업계에서 마흔두 살이면 은퇴하고도 남을 나이다. 그러나 레이쥔은 그에 동의하지 않았다.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 두 가지를 제게 선택하라고 한다면 하나는 얻지 못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잃어버릴까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겁니다. 혈기 왕성한 나이에 회사를 세웠을 때는 실패해도 괜찮다는 심정이었죠. 불혹을 넘긴 나이가 되자 잃어버려도 상관없다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창업에 실패했다고 해서 제가 진 걸까요?”

창업을 결심한 레이쥔은 효과적인 팀을 구축하는 문제에 주력했다. 전문기술, 협조능력, 책임감이 강한 파트너를 찾기 위해 새벽 1~2시까지 인터뷰를 진행해 우수 인재들을 끌어들였다. 샤오미를 창립한 8명의 핵심인물은 각각 킹소프트,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모토로라 출신이다. 쟁쟁한 경력을 가진 이들은 레이쥔의 안목과 열정을 믿고 샤오미 창업 대열에 합류했다.

레이쥔에게 꿈은 곧 힘이었다. 그의 꿈은 스티브 잡스처럼 세계 일류의 업체를 세우는 것이었다. 스마트폰과 모바일 인터넷은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발판이 되어줄 터였다. 레이쥔은 휴대폰 운영체제와 하드웨어 연구 개발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인터넷 서비스를 모두 갖췄다는 의미에서 그는 샤오미를 ‘철인 3종’ 회사라고 부른다. 샤오미를 세운 뒤로 레이쥔은 ‘하늘의 때, 땅의 이로움, 사람의 조화로움’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으려 했다.

샤오미가 모바일 인터넷 회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레이쥔은 인터넷 정신을 강조하고 ‘참여감’ 마케팅을 뒷받침하는 팬덤(Fandom) 경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전략을 사용했다. 첫째, 소규모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회사를 일으키고 팀을 단련시킨다. 둘째, MIUI라는 독립적인 휴대폰 운영체계를 구축하고 브랜드 보급 및 충성 유저 확보에 나선다. 셋째, 다수의 열혈팬을 기반으로 휴대폰 하드웨어를 출시한다. 판매량이 일정 수준을 기록하면 커뮤니티의 열혈팬을 샤오미폰을 사랑하는 ‘미펀’으로 전환한다. 넷째, 휴대폰 판매 성장이라는 틀 위에서 다양한 휴대폰 어플리케이션을 통합한다.


샤오미는 단순한 휴대폰 회사가 아니다. 레이쥔의 전략대로 팬덤 경제를 가능케 하는 수천 명의 미펀이 탄생하여 샤오미를 대신해 커뮤니티에 1억 개가 넘는 댓글을 달고 날마다 20만 개의 샤오미 관련 포스팅을 올린다. ‘개방’과 ‘협력’을 내건 인터넷 정신으로 무장한 그들의 팬덤 경제가 성공의 가장 큰 공신이다.

레이쥔은 샤오미의 성공 비결로 “태풍의 길목”을 여러 번 언급했다. “돼지도 날려버릴 수 있는 태풍의 길목”이라고 장난스럽게 부르기도 했다. 기업이 성공하려면 자신의 능력 범위 안에서 자신에게 속한 ‘태풍의 길목’을 찾으라고 레이쥔은 조언한다.

“탄탄한 기본기와 근면한 태도 없이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실력이 있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적절한 때에 기회를 잡아야만 합니다. 샤오미는 스마트폰 시장의 판도가 바뀌던 때를 기회로 보고 이를 잘 활용해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샤오미 설립 후 레이쥔은 줄곧 특이한 습관을 지키고 있다. 매주 월요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오로지 한 가지 일에만 매달린다. 현장 일선의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프로젝트 매니저와 이야기하며 제품의 디테일에 몰입하려 애쓴다. 최고경영자 자리에 있지만 현장 직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시대의 흐름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는 레이쥔의 승승장구는 당분간 지속할 듯하다. 샤오미와 레이쥔의 행보에 국내외 언론이 시선을 떼지 못하는 이유다.
  • 2015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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