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좇아 떠돌다 서른 살에 개그맨이 된 김용재

“아주 늦어버린 때는 없는 것 같아요”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 사진 : 김선아 

‘의류회사 사무직 직원, 제과회사 영업사원, 언론사 인턴기자까지 했다. 지그재그로 세상구경을 하다 덜컥 개그맨 공채 시험에 붙어 코미디의 세계로 빠져버렸다.’ MBC 공채 개그맨 김용재의 삶을 두 문장으로 표현한 말이다. 대학 졸업 후 꿈을 찾아 방황하다 개그맨의 길로 들어선 김용재는 데뷔 3년차를 맞았다. 그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스카이 출신 개그맨 공채 합격자

“안녕하세요. 개그맨이 네 번째 직업인 꿈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나그네킴입니다.” 개그맨 김용재는 첫 데뷔를 스스로를 풍자하는 자기고백적 캐릭터로 시작했다. MBC가 오랜만에 〈코미디에 빠지다〉라는 제목의 개그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거기에 ‘거성사관학교’라는 코너가 있었다. 박명수가 신인 개그맨들에게 개그를 가르친다는 설정의 이 코너에서 김용재는 ‘나그네킴’이라는 캐릭터로 출연했다. 연세대 독어독문학과 출신인 그가 서른의 나이로 2012년 개그맨 공채에 합격했을 때 서경석・이윤석・박지선의 계보를 잇는 소위 ‘sky’ 출신 개그맨이 탄생한 것 아닌가 하고, 잠깐 화제가 됐다. 그런 그의 시작이 나그네라니, 캐릭터를 만든 이유부터 물었다.

“개그맨이 되니까, 선배들이 ‘너만의 색깔을 찾으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고민을 많이 하니까 어떤 선배는 ‘살을 빼서 훈남 이미지로 가라’고 하고, 다른 선배는 ‘살을 더 찌워서 김준현을 능가하는 뚱보가 돼라’고 조언해주셨어요.

갈팡질팡하면서 친구들한테 신세 한탄을 했더니 친구들이 그러더라고요. ‘너는 신세 한탄할 때가 제일 웃기던데’. 그래서 나그네킴이라는 캐릭터를 만들게 됐죠.”

아무리 이직이 흔해졌지만, 그렇더라도 김용재는 ‘좀 자주’ 회사를 옮겼다. 대학 졸업 후 이랜드와 SPC그룹에서 일했고, 급기야 한 언론사에서 인턴기자 생활까지 했다.


개그맨이라는 직업에 적응하기가 쉬웠는지 묻자, 그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사실 저는 이 세계에서 이방인이었어요. 개그맨들이 대부분 공채 시험에 붙기 전에 대학로 등지에서 어느 정도 무대 경험을 쌓거든요. 저는 생짜 초보였잖아요. 심지어 나이도 많고… 처음엔 저한테 말도 안 걸었어요. 나중에 들어보니 ‘금방 그만두겠지’ 생각했다 하더라고요. 박명수 선배는 저만 보면 ‘야! 부모님 생각해서 얼른 그만둬’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무대 경험 부족은 스스로도 극복하고 싶었던 부분이라고 한다. 개그맨들 특유의 엄격한 선후배 문화도 버텨내고, 캐릭터도 만들어 선망하던 무대에 데뷔했지만, 실수를 거듭하다 무대에서 그냥 내려온 적도 있다는 것.

“수백 번 연습해서 무대에 올랐는데 관객들 얼굴을 보자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거예요. 그래서 똑같은 대사를 열 번 넘게 웅얼대다 그냥 내려온 적이 있어요. 이날 불 꺼진 편집실 앞에 철퍼덕 앉아 30분 동안 울었어요. 그래도 지금은 어느 정도 무대 경험이 쌓여서 그 정도는 아니에요.”


‘기다리는 걸 잘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그맨이 되기 전보다 더 진지해지고 웃음기가 없어진 건 왜일까. 사실, 사람들이 보통 개그맨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까불대며 웃기는 모습이다. 사석에서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한다.

“개그맨들끼리 있으면 웬만한 일에는 전혀 안 웃어요. 저도 개그맨이 되고 나서 언젠가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술을 마시는데 뭔가 어색하더라고요. 친구들이 재미있는 얘기를 해도 입꼬리가 전혀 안 올라가요. 오히려 사람들이 웃는 걸 보고 놀랄 때도 있어요. ‘이런 게 웃기는 거구나’ 이런 식으로요. 개그맨들끼리는 아주 폭력적이거나 아주 야한 개그를 해야 좀 웃어요.”

개그맨들이 웃음이 없는 데에는 철저한 ‘성과제’로 평가받는 직업인 탓도 있지 않을까. 김용재도 스스로를 ‘프리랜서’ 내지는 ‘개인사업자’라고 생각한단다.

“공채 개그맨은 전속 기간 동안 월급을 받아요. 전속이 끝나면 그때부터는 철저히 방송에 나가는지 안 나가는지, 인기가 있는지 없는지로 평가받고 소득을 올려요. 일종의 등급이 매겨진다고 할까요. 저는 아직 6등급 정도 되는 것 같아요. 데뷔한 직후에는 ‘직장인 습성’을 못 버려서 선배들을 쫓아다니며 애걸을 하기도 했어요. ‘코너에 저도 끼워달라’고요. 안 끼워주면 섭섭해하기도 했어요. 이제는 알아요. 이곳은 어디까지나 실력으로 평가받는 세계라는 걸요.”


그가 데뷔했던 MBC 〈코미디에 빠지다〉는 지난해 〈코미디의 길〉로 이름을 바꿨다가 현재는 폐지된 상태다. 시청률 저조가 그 이유였다. 이제 새싹을 피운 그에게 준비도 없이 추운 겨울이 온 건 아닐까, 그는 다른 대답을 했다.

“개그맨이 되고 어느 선배가 그런 말을 했어요. 개그맨은 ‘기다리는 걸 잘해야 한다’고요. 관객이 오늘 웃지 않아도 일희일비하지 말고 꾸준히 개그 아이템을 개발하고 연구해야 하고, 같은 무대에 서는 동료나 후배가 인기를 얻으면 축하해주며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요. 실제로 저한테도 그런 일이 있었어요. 후배인 맹승지가 〈무한도전〉에 나간 후 크게 인기를 얻었잖아요. 그때 ‘아 선배가 얘기한 게 이런 거구나’ 생각했어요. 지금은 MBC 코미디가 프로그램도 없어지고 침체 상태지만 앞으로 다시 코미디 명가로 떠오를 날이 분명히 올 거라 생각해요.”

그는 “그래도 이제 길을 가면 알아봐주는 분도 가끔 있고, 네이버 검색어 순위에도 높이 올라간 적이 있다”며 웃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방황 끝에 들어선 네 번째 직업을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까. 곧바로 “후회하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솔직히 그전에는 확신이 없었어요. 개그맨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어요. 이제 해보니 알겠어요. 저는 무대에 서야 하는 사람이라는 걸요. 전에는 모든 게 뿌옜어요. 역시 안정된 기업에 다녀야 하나, 생각해서 사무직으로 취직해 일해본 후 그곳이 나와 맞지 않는 세계라는 걸 알았어요. 활동적인 활동적인 직종이라는 얘기를 듣고 영업직으로 들어갔지만, 1년을 버틴 후 그 일 또한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죠. 기자라는 직업은 저와 맞는가보다 싶었지만 경험해보니 괴로운 부분도 있었어요. 무엇보다 최종 면접에서 떨어지기도 했고요.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면, ‘일단 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아주 늦어버린 때는 없는 것 같아요. 가보지도 않고, 그 길은 어땠을까 평생 후회하는 것보다 일단 가보고 결정하면 되잖아요.”

‘개그맨’과 ‘뒷모습’만큼 어울리지 않는 단어 조합도 있을까. 아무리 웃기는 개그맨이라도 뒷모습으로는 사람을 웃길 수 없다.

뒷모습은 꾸며낼 수 없다. 인터뷰를 마친 후 김용재와 헤어지며 문득 그의 뒷모습을 봤다. 쌀쌀해진 날씨 때문이었을까, 그의 뒷모습이 잔뜩 움츠러든 것처럼 보였다. 누가 알겠는가. 무명 개그맨 김용재의 어깨는 날개를 틔울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201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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