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브랜드 ‘인시즌’ 이소영・김현정 대표

부모님이 재배한 농산물로 젊은 도시인 입맛을 사로잡다

글 : 이선주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고등학교 진학과 함께 도시생활을 시작했지만 아버지의 꿈은 줄곧 농부였다. ‘은퇴하면 시골에 내려가 살겠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자식들을 대학에 보낸 후 아버지는 그 꿈을 실현했다. 강가에 자리 잡은 괴산의 한 농원을 찾았다 한눈에 반해 서울생활을 바로 정리하셨다. 전 주인이 물려준 500여 그루의 배나무와 200여 개의 항아리, 그리고 흰 진돗개가 시골생활의 밑천이 되었다. 농부가 된 부모님은 도시 생활하는 자식 걱정에 직접 거둔 건강한 먹거리를 바리바리 싸들려 보냈다. 그러나 바쁜 생활에 허덕이는 딸들은 그걸 제때 먹어치우기가 어려웠다.
왼쪽부터 김현정·이소영 대표.
1인 가구가 늘면서 하루에 한 끼도 집에서 먹지 않는 사람이 많은 요즘, 건강하게 먹고 싶어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소영・김현정 두 여성이 만든 식품브랜드 ‘인시즌(In Season)’은 ‘농원에서 당신의 식탁까지(farm table in the city)’를 표방한다. 농사짓는 부모님이 도시 생활하는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을 믿을 수 있고 건강한 먹거리로 전달하겠다는 의미다. 연남동에 있는 쇼룸 겸 사무실에 들어서자 두 사람이 따뜻한 음료를 건넨다. 우유에 생강시럽을 넣어 데운 음료인데, 부드러우면서도 톡톡 튀는 맛과 향이 매력적이다. 생강시럽을 만들 때 월계수잎, 시나몬스틱, 후추 등 향료를 함께 넣었다고 설명한다. 탁자 위에 놓인 사과 칩을 씹으니 새콤달콤하면서 졸깃하다. 사과 칩, 배 칩 모두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고 그저 과일을 썰어 그대로 말릴 뿐이라고 한다. 과일 한쪽 깎아먹기 귀찮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안성맞춤이겠다. 말린 과일은 그냥 집어먹어도 맛있지만, 부스러뜨려 요거트나 시리얼에 넣어 먹어도 좋고, 뜨거운 물을 부어 차처럼 우려 마실 수도 있고, 빵을 구울 때 넣는 등 활용도가 높다. 배는 이소영씨 부모님의 괴산 농원에서, 사과는 김현정씨 가족이 하는 충주 농원에서 공급받는다고 한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홍익대 국제디자인대학원에서였다. 대학원 입학 전 이소영씨는 법학 전공 후 중국과 아일랜드 등지에서 마케팅과 브랜드 관련 일을 했고, 김현정씨는 건축 전공 후 부동산 관련 일을 하면서 일본에 머무르기도 했다. 이소영씨가 부모님의 귀농으로 갑자기 ‘과수원집 딸’이 되었다면, 충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김현정씨는 도시생활을 하면서도 시골의 푸근한 공기가 그리웠고, 농촌을 되살리는 일을 하고 싶던 차였다.


“삼촌이 충주에서도 차로 20~30분 산속 깊이 들어가는 요각골에서 사과를 재배하세요. 저희 가족의 집성촌이죠. 깎아지른 비탈에 사과나무들이 서 있어 햇살을 잘 받는데다 낮밤 기온차가 커서 사과가 정말 달고 맛있습니다.”

괴산농원의 배도 산야초 효소의 찌꺼기를 퇴비로 써서인지 달다고 자랑한다. 대학원에 입학하자마자 서로를 알아본 이들은 대학원 재학시절부터 함께 농촌 관련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010년 충북의 ‘아이디어 챌린지’에서 떨어진 과일을 활용한 신산업을 제안해 상을 받았습니다. 괴산과 충주 모두 충북이니까요. 그 상금 덕에 일본으로 건너가 사례조사를 할 수 있었고요. 일본은 이미 대부분의 농원들이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어서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었습니다. 전통식품이나 특산품을 소비자 수요에 맞춰 어떻게 현대화했는지도 눈여겨볼 수 있었지요.”


우리나라에도 그런 수요가 생기고 있다는 것을 느끼던 터였다. 당시 이소영씨 어머니는 된장・간장・고추장 등 전통 장을 만들고, 80여 가지 산야초를 6년 이상 발효시켜 효소를 만들고 있었지만 알음알음으로 판매하는 정도였다. 두 사람은 전통 장을 현대적인 소스로 활용하는 방안으로 2011년 예비기술창업자 공모에서 당선, 창업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었다.

“요리전문가와 협업해서 전통 장을 활용한 소스, 산야초 효소로 만든 드레싱을 개발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제품으로 만들려고 하니 법적 규제나 제조시설 규모 등 장벽이 높더라고요. 방향성은 맞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제품을 다시 개발하자고 했지요.”


부모님은 건강한 농산물을 생산, 딸들은 소비자 입맛에 맞게 가공・판매


두 사람은 ‘좋은 것을 좋다고 느낄 수 있게 상품화하자’며 머리를 맞댔다. 아무리 좋은 재료라도 바쁜 현대인이 쉽고 편하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주식보다 음료나 디저트에서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욕구를 읽었던 이들은 쉽게 먹을 수 있는 잼이나 시럽을 새로 개발해 내놓기 시작했다. ‘믿을 수 있는 농원에서 난 최상의 재료로 건강한 식품을 만든다’는 게 이들의 원칙. 대신 외국생활 경험이 있는 자신들처럼 세계화된 입맛에 맞추기로 했다. 오미자시럽, 모과시럽, 진저시럽, 애플시나몬시럽, 배잼, 밤잼, 생강잼, 오디잼, 자두잼, 배식초, 배칩, 사과칩, 생강칩 등 이들이 판매하는 식품들은 이전에 나온 제품들과는 맛도, 만드는 방법도 다르다.

“지난주에는 괴산에 내려가 오미자 200kg을 절이고 왔어요. 동네 어르신들 모시고 일했죠. 생 오미자를 구할 수 있는 때는 1년 중 1~2주밖에 안 돼 보통 건 오미자를 쓰지만, 저희는 생 오미자만 고집합니다. 말린 오미자는 아무래도 텁텁한 맛이 있어서요. 오미자시럽을 만들 때 저희는 배를 많이 넣는데, 그 덕에 떫은맛을 잡으면서 새콤달콤한 맛을 냅니다. 빛깔도 훨씬 맑고요.”


오미자청이라 하지 않고 오미자시럽이라 이름 붙인 데도 고도의 전략이 깔려 있다.

“청이란 말이 붙으면 젊은 사람들은 ‘어르신들이나 먹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럽’이라고 이름 붙였죠. 이름을 바꾼 만큼 맛도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미자와 모과 시럽 모두 배를 넣어 맛이 훨씬 부드럽고 가벼워졌습니다. 그러면서도 특징은 살아 있고요. 오미자나 모과의 맛이 너무 강해 꺼리던 사람들도 좋아하지요. 부모님이 배를 재배하기에 배를 활용하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뜻밖의 효과를 냈습니다. 모과시럽은 탄산수에 타 마시면 좋고, 오미자시럽을 샴페인에 타 마시는 것도 봤어요. 순식간에 핑크빛이 감돌아 예쁘고 맛있다며 좋아하시더라고요. 진저시럽은 외국에서 진저에일을 즐겨 드시던 분들이 탄산수에 타 마시면서 좋아하세요. 샐러드 만들 때 발사믹 식초 대신 배 식초를 넣으면 시원하고 향긋한 맛을 냅니다.”


잼 만드는 법도 독특하다. 배잼에는 설탕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거의 배만 가지고 만들면서 소량의 꿀만 첨가한다. 밤잼은 밤 껍질을 까는 것에서 시작한다. 보통은 통조림 밤으로 잼을 만든다는 사실을 뒤에 알았다고 한다. 생강잼도 다른 곳에서는 찾기 어렵다. 자두, 살구, 오디잼은 그 과일을 수확하는 제철에만 살 수 있다. 설탕을 적게 넣어 달지 않고 과일의 상큼한 맛이 살아 있다. 이들은 주기적으로 농원에 내려가 마을 할머니들과 함께 모과를 썰고, 생강이나 밤 껍질을 까면서 제품을 만든다. 농원의 봄・여름・가을・겨울 모습, 자연의 산물을 수확하고 식품으로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고스란히 홈페이지에 올려 소비자들에게 전달한다. 맛깔스러운 글 솜씨로 표현된 농원의 풍경에서 그곳의 바람소리, 향기까지 느껴지는 것 같다. 각각의 제품을 식탁에서 어떻게 활용해 먹을지 세세한 팁도 제공한다. 시골 부모님이 아무리 좋은 농산물을 올려 보내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해 썩혀버리던 도시의 아들딸들. ‘인시즌’은 도시의 자식들이 즐겨 먹는 방식으로 농산물을 가공해서 전달하는 것이다.

이들은 농원의 수확물들로 풍성한 식탁을 꾸며 소비자들을 초청하는 ‘Farm Table’이란 행사도 연다. 디자인가구회사의 탁자, 플라워 디자이너의 꽃, 그리고 전시나 공연이 곁들여지면서 식탁은 문화의 장이 된다. 우리 땅에서 수확한 우리 농산물이 얼마나 값진지 새로운 방식으로 느끼는 자리다. ‘인시즌’은 11월 15일 연희동에 인시즌의 제품들을 맛볼 수 있는 카페도 함께 열었다. 수입개방으로 위협받고 있는 우리 농산물이 어떻게 진화해야 할지 딸들이 그 길을 개척하고 있다.
  • 201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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