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특집 | 가족을 말하다] 대한민국 화해 프로젝트
<용서> 제작 총괄 최남숙 PD

피는 물보다 진하다? 가족이라서 화해할 수 있다

글 : 임현선 기자  / 사진 : 김선아 

사진제공 : EBS
올해 서른여섯 살 방진주씨.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2000년 한 개그 프로그램에 ‘갈매기자매’라는 이름으로 등장해 큰 웃음을 주었다. 개그우먼으로 이름을 쌓아가던 시절, 그는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귀국 후 다시 배우가 되려는 그에게 큰 고민거리는 아버지와의 관계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배우를 꿈꾸는 딸이 못마땅한 아버지는 딸에게 “인연을 끊자”며 “호적을 파가라”고 거친 말을 내뱉는다. 딸은 아버지를 “그 사람”이라 부르며 대화를 거부한다. “아버지는 예전부터 ‘발개그냐, 발연기냐, 하나도 안 웃기다. 너는 재능이 없다’며 타박하셨어요. 그 말에 상처를 많이 받았죠.” 방진주씨가 상기된 표정으로 카메라를 보며 말한다.

지난 7월 22일 방송된 EBS <용서>의 ‘단절된 36년 : 돌아온 마도로스와 그의 딸’ 편에 출연한 부녀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이날 방송은 오랫동안 갈등을 겪었던 아버지와 딸이 여행하면서 어떻게 화해하는지 보여주었다. ‘대한민국 화해 프로젝트’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있는 <용서>는 지난해 4월 첫 방송 이후 현재까지 64회 방영됐다. ‘보수와 진보’처럼 사상적 갈등을 지닌 두 사람(진중권과 이준석), 챔피언 자리를 놓고 마음의 응어리를 키웠던 두 사람(박종팔과 이효필) 등 극단적인 대척점에 놓인 이들의 갈등과 화해 과정이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가운데 절반은 가족간 갈등과 화해를 다룬 이야기들이다. ‘트랜스젠더 문채은과 그의 어머니’ ‘무당이 된 형사와 그의 아버지’ ‘아버지의 유산, 제2의 남진 정종기와 이복동생’ ‘배삼룡의 두 아들, 친아들과 양아들의 20년 싸움’ 등 사적인 이유가 가족 갈등의 원인인 경우도 있었지만 ‘북파 공작원 아버지와 그의 아들들’ ‘남영동 1981 사라진 아버지와 버려진 딸’ ‘탈북 어머니와 꽃제비 아들’ 등 복잡한 사회문제가 가족 갈등의 원인이 된 사례도 있었다.

<용서> 제작팀을 총괄하는 최남숙 PD를 만나 프로그램 주제 선정 과정, 방송 제작 과정 등 방송 뒷이야기와 출연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쩔 수 없는 굴레 ‘가족’, <용서> 주제의 절반 차지

‘단절된 36년, 돌아온 마도로스와 그의 딸’.
“<용서>는 화해를 위한 노력으로 인간 본성과 심리 메커니즘을 밝히고 진정한 용서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는 목적을 지닌 프로그램입니다. 일이든 사상이든 서로 화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극한 상황에 둬 보자.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극한 환경에 처하면 그들이 서로에 대한 경계를 풀면서 어디서부터 관계가 틀어졌는지 이야기하게 되고, 화해의 실마리가 마련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초반에는 가족 문제에 치중하지 않았는데 방송을 하다 보니 다루게 되더군요. 가족은 남남이 아니어서 도망갈 수 없고, 안 보고 살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는 굴레가 있어요. 얽혀 있다 보니 더 진솔한 이야기가 나와요.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은 이유죠.”

매주 화요일 오후 10시 45분 방영되는 <용서>는 45분짜리 다큐멘터리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제작진은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일반인들의 사연과 작가들이 기획한 아이디어를 검토해 프로그램의 주제를 정한다. 게시판에는 ‘아내와 화해 여행을 하고 싶다’ ‘친구와 화해 여행을 하고 싶다’는 내용의 사연이 종종 올라온다. 최PD는 여러 아이템 중에서 갈등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진 쟁점이 명확한가, 관계 회복의 의지가 있는가, 내용이 얼마나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느냐는 기준으로 방송 프로그램 주제를 선정한다고 했다.

‘남영동 1981 사라진 아버지와 버려진 딸’.
주제와 사람이 선정되면 그들의 갈등을 푸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장소를 섭외한다. 예를 들면 ‘무당 딸과 그의 어머니’ 편을 제작할 때는 해외 무속 세계에 있는 사람들을 접할 수 있는 여행지를 미리 선정해서 그들이 그곳을 지나가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했다. 여행하기 전 1주일 정도 사전 촬영하고 여행지에서 7~10일간 머물며 촬영한다. 돌아와서 편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제한된 시간 안에 갈등 유형을 정리해서 주요 대목을 보여줘야 하므로 편집에 공을 들인다.

“촬영하다 보면 핵심 갈등이 처음에 생각한 것과 다를 때가 있어요. 사람은 누구나 솔직한 마음이 나올 때까지 시간이 걸려요. 다녀와서 스토리를 재구성하는 경우도 있죠. 될 수 있으면 몸이 힘든 곳으로 여행지를 선정하려고 하는데, 출연자의 건강까지 고려해야 해서 계획대로 하지는 못해요. 일단 방송 프로그램 주제로 선정되면 여행 경비는 전액 제작진이 부담합니다.”


갈등의 출발점, 화해의 시작점

‘배삼룡의 두 아들 친아들과 양아들의 20년 싸움’.
최남숙 PD는 1995년 입사 후 가족 관련 프로그램을 주로 제작했다. <60분 부모> <달라졌어요>를 만들었고, 2014년부터 <용서>의 책임 PD로 일하고 있다. 가족 갈등과 해결 방법을 주제로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개인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가족 갈등의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어려운 문제예요. 갈등은 어느 한 순간 특정 지점에서 생긴다고 할 수 없어요. 외도, 폭행, 폭언 등 중요한 사건이 갈등의 시작점이 될 수는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되기까지 전초전이 없었을까요? 어느 순간부터 이미 차곡차곡 쌓여 있어요. 가장 가깝고 소중한 존재이지만 가족 앞에서 오히려 감정이 더 제어되지 않아요. 가족이란 이름으로 더 큰 상처를 주고받는 거죠.”

최PD는 가족간에도 불만과 나쁜 감정이 생길 수 있지만 “푸는 방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족 중 누군가와 격렬히 싸울 때는 싸우더라도 평상시에 어떻게 대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저는 그것을 ‘감정의 계좌’라고 이야기해요. 평상시에 긍정적으로 쌓아놓으면 격렬히 싸운다 해도 나중에 쉽게 화해할 수 있어요. 화해의 지점은 머리가 아닌 감정, 즉 마음에 있어요. 마음이 통할 때, 감정의 선이 이어질 때 화해가 되는 거예요. ‘나를 위하는 마음이 있구나’ ‘이 사람의 진심은 이렇구나’라고 마음으로 받아들이죠.”

‘진보논객 진중권과 젊은 보수 이준석’.
최남숙 PD는 그동안 방영된 <용서>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으로 ‘남영동 1981 사라진 아버지와 버려진 딸’을 꼽았다.

“아버지가 어느 날 고문을 받은 뒤 돌아왔는데, 후유증이 커서 가정생활에 적응하지 못했어요. 자꾸 밖으로 돌고 거리 생활을 많이 했어요. 집에 있으면 누가 잡아갈까봐 잠을 못 자요. 딸은 아버지가 돌아와서 보여준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어머니도 가정을 버리고 떠나서 미움이 더 커졌죠. 아버지가 딸에게 용서의 여행을 제안해서 성사된 프로그램인데, 처음에는 딸이 방송 출연을 거절해서 애먹었어요. 여행 가서도 딸의 마음이 열리지 않아 걱정스러웠고요.”

그러나 아버지와 딸은 여행의 끝 무렵 화해했다. 아버지는 여행 내내 조각한 물건을 딸에게 주었고, 선물을 받아 든 딸은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무심함에 마음을 닫았던 딸은 여행하면서 아버지 역시 폭력에 상처받은 뒤,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약한 인간이었음을 인정하고 용서했다.

“결론적으로 가족은 서로 화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요. 없으면 방송에 나오지도 않았겠죠.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도 있지만, 가족이니까 화해가 가능한 부분이 있어요. 가족은 한쪽이 화해하고자 하면 아무리 갈등이 커도 결국 화해해요.”

최PD는 가족간 갈등으로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손을 내밀어보자고 제안했다. 가족간 화해의 시작은 ‘문제를 풀려는 의지’에 있으며 이 의지가 가족 문제 해결의 열쇠라는 것이다. 일단 열쇠를 손에 쥐었다면 갈등 해결은 시간문제인 셈이다.
  • 2014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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