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SF&판타지도서관 운영하는 전홍식 관장

당신의 상상력이 자라는 공간

바야흐로 SF(Science Fiction)의 시대다. 지난해 영화 <설국열차>가 10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히트 친 데 이어, 올해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아시아 전역을 휩쓸었다. 생소한 장르로 치부되던 SF가 급기야 안방까지 찾아온 것이다. 이는 SF 소재가 더 이상 외화나 미드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 같은 SF물의 보편화 뒤에는 꾸준히 SF 시장을 지켜온 마니아들이 있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SF&판타지도서관을 운영하는 전홍식 관장도 그중 한 사람이다.

전 관장이 SF·판타지 서적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1997년이다. 무협지와 SF소설이 10~20대 남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던 때였다. 한 권 두 권 모으던 책이 2009년이 되자 1만여 권에 달했다. 전 관장은 이 책들을 집에서 썩힐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국내 최초 SF&판타지도서관의 시작이다. 당시 전 관장이 한 언론에 기고한 글을 보면 SF&판타지도서관을 통해 그가 이루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다.

“스티븐 호킹은 일찍부터 <스타 트렉>의 팬이었고, 파킨슨병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카메오로 출연했다. 비단 그만이 아니라 영미권 학자나 기술자 중에는 <스타 트렉>을 좋아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꿈과 환상에만 빠져 현실을 도외시하는 것 같은 SF 팬이 과학이나 기술 분야에서 활약하는 것은 어째서일까. SF를 좋아하는 이들의 상상력은 언젠가 우리의 미래를 즐거운 세상으로 이끌 것이다.”


전 관장이 꿈꾸던 세상은 최근 몇 년 사이 현실로 다가온 듯하다. SF는 더 이상 생소한 장르가 아니며, 이를 소재로 한 영화와 드라마도 전에 없이 히트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잘라 말한다. “할리우드에서는 블록버스터의 절반이 SF입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상당수도 SF죠. 일본 만화 역사는 SF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톰, 철인 18호, 마징가Z 등 우리에게 친숙한 캐릭터는 모두 SF 애니메이션에 등장한 것들입니다. 한마디로 미국・일본의 대중문화는 SF와 함께 해왔다고 말할 수 있죠. 반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나온 SF 영화는 <설국열차>를 포함해 다섯 편이 채 되지 않습니다.”

전 관장은 우리나라에서 SF 장르가 대중화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편견’을 꼽았다. “SF, 판타지 소설을 보는 것 자체를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장르소설 읽는 걸 천박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 분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워요.”

전 관장은 SF 문화의 발전 정도가 그 나라의 과학 수준과 연관돼 있다고 믿는 사람 중 하나다. SF 장르가 발달한 나라치고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나라가 없다는 것이다. SF는 실현 불가능한 것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리게 하기 때문에 상상력을 키우는 데도 효과적이다. SF물을 보고 자란 사람들이 세계적인 명사가 되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미국 과학자들은 대부분 <스타 트렉>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미국인에게 영화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의 신화라고 할 수 있죠. 오바마 대통령은 <스타 트렉>의 열성팬이어서 휴가 때도 볼 정도라고 해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첫 번째 박사 논문 주제는 ‘스타 트렉에 나오는 초광속 항법이 실현됐을 때의 경제 체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일본 로봇 개발자들도 아톰을 보면서 꿈을 키웠어요. 지금도 일본 고베시에 가면 철인 18호 동상이 세워져 있죠.”

SF 장르에 대한 믿음은 전 관장이 사비를 털어서까지 도서관을 운영하게 한 원동력이 됐다. 그는 대학에서 게임시나리오에 관해 강의하며 벌어들이는 돈의 일부를 도서관에 투자하고 있다. 전 관장은 “내가 운영비를 대지 않으면 도서관 문을 닫아야 한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다행히 지금은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운영비 일부를 지원해주고 있어요. 우리 도서관 설립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이겠죠?”


SF&판타지도서관은 단순히 책만 빌려주지 않는다. SF와 관련한 다양한 문화행사도 열고, <미래경>이라는 이름의 문예지도 발간한다. “작가와의 대화를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지난 2월에는 ‘비블리오 배틀’이란 행사도 열었고요. 내가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고 다른 사람에게 권하는 행사인데, 소개된 것 중 최고의 작품을 뽑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SF&판타지도서관을 방문한 사람은 5000명 정도다. 개관 5년을 넘긴 여타의 도서관에 비하면 적은 숫자이지만, 전 관장은 알음알음으로 찾아오는 ‘새로운 얼굴들’에서 힘을 얻는다고 한다.

“사람들이 SF와 판타지를 아무 생각 없이, 마음 편히 즐길 수 있으면 좋겠어요. 궁극적으로는 SF&판타지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지는 도서관이 없어졌으면 합니다(웃음). 그러려면 사람들이 책도 많이 읽어야 하고, 공공도서관과 전문도서관도 많이 생겨야겠죠. 조금만 접해보시면 알 거예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같은 세계적인 작가의 아이디어가 사실은 SF와 판타지 같은 장르소설에서 나왔다는 걸.”

SF&판타지도서관

165㎡(50평) 공간에 SF·판타지·무협 등 장르소설과 만화책 1만5000여 권을 갖추고 있다. 열람실 입장료는 없으며, 5000원 안팎의 비용을 내면 회의실과 작은 상영관도 이용할 수 있다. 청소년 이상이면 누구나 입장 가능하다.

이용시간 : 수-금 오후 3~8시/토·일 오후 1~9시/월·화 휴관
주소 : 서울시 서대문구 증가로 29 중앙빌딩 3층
문의 : 070-8102-5010
  • 2014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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