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디자이너 이서윤

우리 옷으로 한국문화 알리는 ‘한복 외교관’

글 : 한정림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일본·브라질·호주·미국·바레인 등 세계를 무대로 활약 중인 한복 디자이너 이서윤(38). 그의 한복은 재일교포 사이에선 ‘꿈의 옷’으로 불린다. 호주의 한 저명인사는 외교부를 통해 ‘이서윤 한복’을 특별 주문하기도 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문을 닫았던 바레인 한국대사관이 다시 문을 열고 원활하게 돌아가는 데에 ‘이서윤 한복’이 기여했다는 후일담도 있다. 세계인의 눈을 사로잡은 이서윤 한복의 매력은 무엇일까?
이서윤씨는 치자와 쪽 등 천연재료를 이용해 염색한 원단을 사용한다. 구름·학·봉황 등 전통 문양을 수놓고 원단에 입히는 금박도 전통방식을 고수하는 장인의 손을 빌린다. 요즘 입는 한복은 대부분 개화기 이후 스타일인 데 반해 그는 깃이 밭고, 배래선이 얕으며 동정은 두꺼운 조선시대 스타일로 옷을 짓는다.

전통을 고수하는 그도 틀을 벗어난 도전을 할 때가 있다. 이탈리아 원단의 양장 실크에 직접 디자인 한 꽃문양을 넣은 항아리선 치마, 실크로 짠 갑사 원단에 큼직한 모란꽃을 수놓은 저고리, 고름을 떼고 브로치를 달기도 한다.

“패션쇼나 국가 행사로 외국에 나갈 때면 그 나라 원단 시장에 꼭 들러요. 그 나라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는지 보고 이해하는 것이 한복 세계화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한복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새틴이나 시폰 소재를 과감하게 쓸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런 경험이 토대가 됐다. 이렇듯 전통만 고집하지 않았기에 이서윤 한복은 국경을 넘어 세계를 향해 훨훨 날 수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주관 100주년 기념행사 한복 패션쇼> <문화재청 주관 코리아 헤리티지 패션쇼> <브라질 한인주관 이민 40주년 기념 패션쇼> <서울시 문화사절단 주관 호주시드니 이민 50주년 패션쇼> <북유럽 수교 50주년 한복패션쇼> 오사카 한국문화원 <이서윤의 한복전> 등 굵직굵직한 국가 행사에 초대 1순위 한복 디자이너가 된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외교부 전화 받는 한복 디자이너

이서윤씨는 해외 교포나 외국인을 위해서도 한복을 만든다. 그의 팬이 많은 일본에서는 패션쇼와 전시회가 수시로 열린다. 재일교포를 비롯한 일본인 사이에서 그는 ‘아티스트’ 대접을 받으며, 그가 만든 한복은 단순한 옷이 아닌 ‘아트워크’로 칭송받는다. 재일교포 중엔 그의 한복을 입어보는 게 ‘꿈’이라는 사람이 많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도쿄와 오사카 두 곳에 매장을 냈다.

“민족의식이 강한 재일교포 사회에서는 결혼식 같은 공식 행사 때 한복을 입는 게 당연시돼왔어요. 그런데 교포들이 많이 입는 기존의 한복은 북한 한복의 영향을 받아 원색 원단에 스팽글이나 금박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스타일이에요. 그런 스타일에 익숙한 분들이 제 옷을 보면 다들 수수하면서도 소박하고 ‘멋’이 있다고 좋아하시죠.”

<별에서 온 그대>에서 김수현(왼쪽)이 입은 한복도 이서윤씨가 만든 것이다(SBS 드라마 화면 캡처).
IMF 외환위기 여파로 1999년 문을 닫았던 바레인 한국대사관이 다시 문을 열었을 때 힘을 보탠 것도 그다.

“바레인에서 한복 패션쇼를 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그 후 우리나라 행사라면 바레인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준대요. 외교부 관계자로부터 감사 전화를 받기도 했고요.”

호주이민 50주년 기념 패션쇼 때는 그의 한복을 본 호주의 한 재계 인사가 1년간 계획된 공식 행사 때 입겠다며 외교부를 통해 한복 제작을 의뢰한 적도 있다. 얼마 전엔 오스트리아에도 다녀왔다. 현지에서 활동하는 한 패션디자이너의 결혼식을 위해서였다. 한복을 결혼예복으로 입겠다며 본식 예복과 파티드레스를 맞추었는데 그것을 들고 직접 오스트리아까지 간 것이다.

“재일교포나 외국인이 한복을 입겠다고 할 때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전체적인 스타일링을 해줘야 해요. 기본적으로 한복 다림질부터 세탁 방법까지 알려주죠. 그분들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옷이니까 오랫동안 제대로 입을 수 있게끔 도와줍니다.”


칭찬이 바꾼 운명, 무용수에서 한복 디자이너로


이서윤씨는 원래 촉망받는 무용수였다. 일곱 살 어린 나이에 무용을 시작해 동아콩쿠르에서 상도 받았고, 대학에도 갔다. 가야금 병창도 수준급이다.

어렸을 때부터 눈썰미 있고 손재주도 좋아 바느질, 뜨개질, 요리 등 못 하는 게 없었다. 대학 재학 중 공연복을 직접 만들어 입었는데 친구들이 솜씨가 좋다며 ‘특급 칭찬’하는 바람에 덜컥 작업실을 차린 것이 한복 디자이너로서의 시작이었다.

지금은 전통무용의 대가 임이조, 명창 안숙선, 박애리 등 공연예술계에서 그의 옷을 입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각 무대의 특성에 맞게 디자인을 달리하는 것이 그의 장기. 예를 들어 어깨부터 손끝의 동작이 돋보이는 가야금 연주자의 옷은 소매와 끝동에 화려한 문양을 넣거나 포인트를 주는 식이다.


그의 재능은 방송계에서 먼저 인정받았다. KBS 드라마 <황진이>에 장신구를 협찬한 것을 시작으로 SBS <일지매> <자명고> <옥탑방 왕세자>, KBS <성균관 스캔들>에 이어 최근엔 <별에서 온 그대>까지 무대와 브라운관을 전방위로 넘나들고 있다. 한류붐을 타고 드라마가 전 세계에 수출되면서 극중 의상인 한복으로 우리 문화를 알리는 한국문화전도사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유아인·박유천·김수현이 입은 한복 디자이너’로도 유명세를 탔다. 한복을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도 늘었다.

“한복은 단순히 옷만 만들 줄 알아서는 안 돼요. 우리 문화를 잘 알아야 합니다. 한복을 배우겠다는 사람에겐 전통다도부터 배우라고 조언하죠. 우리 문화의 멋을 알아야 한복의 멋도 살릴 수 있으니까요.”

서른여덟이라는 젊은 나이에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한복 디자이너 이서윤씨에게는 꿈이 있다. 한복에 대해 하나에서 열까지 가르치는 교육기관을 설립하는 일이다. 한복뿐 아니라 의식주에 관련된 전통문화를 가르치는 배움터를 만드는 것이다.

“한복은 혼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좋은 원단, 좋은 금박을 만들어줄 장인이 필요한데 요즘 이 업계에는 후계자가 없어요. 우리 문화의 진짜 멋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오세요. 한복에 관한 모든 것을 전수해드릴게요.”
  • 2014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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