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의
감독 김경묵 & 배우 김수현

편의점에서 만난 ‘진짜 청춘’의 민낯

김경묵 감독(왼쪽)과 배우 김수현
1년 365일 잠시도 문을 닫지 않는 편의점. 수많은 사람이 이곳을 드나든다. 전도하는 종교인, 냉장고 문을 열고 겨드랑이 땀을 식히는 여자, 담배 사러 왔다가 철학 이야기만 늘어놓고 가는 남자 등 유형도 다양하다. 동시에 많은 사람이 편의점을 일터 삼아 살아간다. 대학생, 취업준비생, 탈북자, 중년의 실직자가 그들이다. 독립영화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이하 이.우.끝.)>는 이처럼 온갖 인간 군상이 모여드는 편의점을 배경으로 한다. 편의점은 청년들의 꿈과 현실, 사랑과 이별, 노동과 피로 등을 한데 섞어 보여준다.


<이.우.끝.>은 이 시대 청춘들의 이야기를 실감나게 그려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지난 6월 27일, <이.우.끝.>의 김경묵 감독과 배우 김수현을 만났다. 촬영 종료 후 오랜 기간 만나지 못했다는 두 사람은 뜻밖의 해후를 즐거워했다. 배우 김수현에게 먼저 “영화 속 존재감이 빛났다”며 인사를 건넸다.

김수현_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해요. 이 작품을 시작할 때 많이 힘들었어요. 개인적인 일로 정신없기도 했고, 다른 공연도 겹쳤고요. 일을 더 해야 할지 쉬어야 할지 고민하다 김경묵 감독을 만났죠. 만나보니 시나리오만큼이나 감독도 재미있는 사람이더라고요. 출연을 결심하기까지 많은 대화는 필요치 않았어요.

김경묵_ 만나서 한 시간 동안은 마주 보고 담배만 피웠어요(웃음). 아시다시피 저희 영화는 주인공이 정해져 있지 않아요. 큰 배역을 드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죄송한 마음이 컸어요. 꼭 출연해달라고 조르질 못하겠더라고요. 그럼에도 흔쾌히 출연해주셔서 감사했죠.


<이.우.끝.>은 옴니버스 영화다. 영화에 나오는 아르바이트생 9명은 저마다 하나씩 사연을 가지고 있다. 영화는 편의점이라는 공간을 통해 이들을 하나로 묶는다. 김수현이 맡은 역할은 편의점 점주로, 아르바이트생들을 관리·감독하며 동시에 편의점 본사와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이다.

그는 영화 중간중간 등장해 아르바이트생들을 윽박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지며 ‘포악한 사장’의 면모를 보여준다. 공명·신재하·유영 등 <이.우.끝.>에 출연한 배우 대부분이 호연을 선보였지만, 김수현의 존재감은 남달랐다. 그가 스크린에 등장할 때마다 영화는 현실성을 부여받았다. 그는 삶의 무게에 찌든, 그러면서도 어딘가 연민을 자아내는 중년의 점주 그 자체였다.

김경묵_ 선배님과 같이 작업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건, 자기 스토리가 없는 데도 그 인물의 처지를 정확히 보여준다는 거예요. 관객 누구나 점주의 전사(前事)를 읽어낼 수 있도록. 자기 이야기만 하고 빠지는 배우들과 달리, 점주는 영화 전반에 걸쳐 드문드문 등장하잖아요. 연기 흐름이 끊기기 십상인데도 감정을 잘 이어가시더라고요. 클라이맥스에 점주가 편의점 바닥에 주저앉아 바코드를 찍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대본에는 ‘점주가 바코드를 찍고 있다’ 정도만 적혀 있는데, 그 장면에서 선배님 연기가 정말 좋았어요. (김수현에게) 근데 선배님은 완벽하게 계산된 연기를 하는 스타일인가요, 아니면 현장에서의 감을 믿는 스타일인가요?

김수현_ 언제부턴가 계산하는 연기가 오히려 힘들더라고요. 현장에서의 느낌이 그만큼 중요해진 거죠. 제가 걱정이 많은 타입이라, 예전엔 연기도 공부하듯이 완벽하다 싶을 때까지 준비했어요. 그런데 경험이 쌓이면서 연기 스타일도 바뀌더라고요. 어느 정도의 준비와 현장에서의 즉흥적인 감이 결합할 때 완전체가 되는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이.우.끝.>은 밝은 영화다. 독특한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황당한 상황이 시종 웃음을 준다. 그러나 ‘재미있기만 한’ 영화로 치부하면 곤란하다. 김경묵 감독의 문제의식은 작품 곳곳에서 발견된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어요. 태어나서 죄송해하지 마요.” “돈 없으면 꺼지세요. 그게 내가 여기서 배운 룰이니까” 같은 뼈 있는 대사는 물론, 법 위에 존재하는 대기업을 꼬집는 장면까지 무엇 하나 허투루 볼 수 없다.

김경묵_ 20대의 현실적인 문제를 코믹하게 그리면서도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편의점이라는 곳은 신자유주의의 단면을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청년들은 그 속에서 설 자리를 찾고, 고민하죠. 영화 속 대사처럼 ‘늘 미안해하는 세대’예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면서도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죠. 편의점 본사와 지점 사이의 관계도 시사하는 바가 있어요. 편의점 하나에 온갖 사회구조가 다 들어 있죠.

그러나 김경묵 감독의 전작을 본 적 있는 관객이라면 김 감독이 ‘약해졌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그의 전작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성 소수자의 파격적인 사랑을 다룬 데뷔작 <얼굴 없는 것들>은 물론,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돼 화제가 됐던 <줄탁동시>까지 거침없는 표현과 실험적인 연출력은 그만의 전매특허였다.

김경묵_ 전작들이 어둡다, 불친절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어느 순간 다른 걸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죠. 이전 작업이 제 이야기를 그대로 풀어놓는 ‘살풀이 같은’ 작업이었다면, 이제는 (영화와 저 사이에) 거리를 좀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살면서 제가 느끼는 것들을 풀어내는 게 영화잖아요. 하고 싶은 걸 할 거예요.

글 박소영 / 사진 김선아
  • 2014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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