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장흥에서 개관한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나는 심플하다”고 말한 화가를 꼭 닮은 미술관

글 : 이선주 자유기고가  / 사진 : 김선아 

우리나라 현대건축,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거장을 기리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연이어 문을 열었다. 지난 3월 말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에서 개관한 김중업박물관과 4월 말 양주시 장흥면에서 문을 연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이다. 두 곳을 찾아 거장의 발자취를 좇았다.

사진제공 :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쪼그리고 앉아 자그마한 화폭에 그림을 그려대는 것밖에는 몰랐던 화가. 거추장스러운 물건도, 말도 꺼리면서 자신의 삶, 그림에 대해 ‘나는 심플하다’는 한마디로 요약했던 화가를 지금 만날 수 있다. 장흥조각공원 맞은편, 두 개의 개울이 만나는 남향받이 산자락에 자리 잡은 장욱진미술관을 본 순간 “아, 장욱진이다”라는 탄성이 나왔다. 네모난 건물에 삼각 지붕, 커다란 유리창이 한눈에도 장욱진 그림에 나오는 단순한 형태의 집을 떠올리게 했다. 외관이나 내부 벽, 창틀, 계단 손잡이까지 모두 새하얀 미술관은 순진무구했던 그와 그의 작품세계를 상징하는 듯했다. 현상설계를 통해 미술관 디자인을 맡은 부부건축가 최성희, 로랑 페레이라는 장욱진 그림 중 호랑이와 까치가 등장하는 호작도(虎鵲圖)를 떠올리며 디자인했다고 한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계명산이 뒤에서 감싸 안고 앞에는 개울이 흐르는 미술관의 외양이 냇가의 호랑이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장욱진 그림 속의 자그마한 집에는 엄마, 아빠, 아이 등 사람들로 꽉 차 있다. 아빠의 머리 일부가 지붕에 가릴 정도로 작고 밀도 있는 집이다. 집은 언제나 자연 속에 놓여 있고, 세상으로 연결되는 길이 나 있기도 하다. ‘참 포근하고 따뜻하겠다’ ‘저 집의 창을 통해 자연의 풍경이 그대로 들어오겠다’는 생각이 드는 집이다. 그런데 장욱진미술관에 들어섰을 때 그의 그림 속 집으로 들어온 느낌이었다. 미술관의 전체 규모가 작은 것은 아닌데, 모양과 크기가 다른 방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어 각각의 공간이 새로우면서도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2층에는 다락방 느낌의 공간도 있는데, 영상작품을 상영할 수 있는 곳이다. 커다란 창을 통해 주변의 산과 나무, 개울, 하늘 혹은 중정의 풍경이 들어와 전시공간과 풍경이 하나가 되는 것도 독특했고, 장욱진다웠다. 장욱진은 자신의 그림과 닮은 집을 직접 지을 정도로 집에 애착을 보였고, 자연 속 오두막에 숨어살던 옛 선비의 삶을 동경했다.

아늑한 느낌을 주는 미술관 내부. 온통 하얀색으로 통일되어 있다.
이중섭・박수근・김환기 등과 함께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인 장욱진의 그림을 보고 “아이가 그린 그림 같다”는 사람이 많다. 원근법을 무시한 평면적인 공간에 나무・집・산・새・아이・개 등 대상을 자유롭게 배치해놓았는데, 단순화한 형태에 비례가 극도로 왜곡되어 있다. 그런데 제멋대로 그린 것 같은 그림이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끌고 안정감을 주며, 편안하게 한다. 사실은 제멋대로 그린 게 아니라, 고도의 압축과 생략을 통해 탄탄한 균형감, 밀도를 갖춘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대개 가로 세로가 20, 30cm를 넘지 않는데, “크게 그리면 밀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다. 노자가 말한 ‘대교약졸(大巧若拙)’, 즉 기교가 너무 훌륭하면 오히려 서툴러 보이는 경지인 것이다. 그의 그림은 아이든 어른이든 인간의 본질인 순진무구의 상태로 회귀하게 만든다.


1917년 충남 연기군에서 태어나 일제시대와 해방 후 격동기, 6・25를 모두 겪은 그의 그림에는 시대상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자화상〉은 1951년, 고향으로 피난 가 있는 동안 그린 것인데, 전쟁의 소용돌이를 느낄 수 없다. 작가는 연미복을 입고 양손에 우산과 모자를 든 채 황금 들판 사이로 난 길을 걷고 있다. 오랜만에 농촌의 자연환경을 접하고 안정감을 얻은 화가가 석유에 갠 말라빠진 물감으로 갱지에 미친 듯이 그리던 시기였다. 그의 작품은 하늘에 달과 해가 함께 떠 있어 시간을 짐작할 수 없게 하고, 거대한 나무에 새와 사람 혹은 집이 깃들어 있기도 하다. 현실세계가 아닌 그가 꿈꾸는 평화로운 세계, 이상향을 그리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1960년 서울대교수를 사임하고 전업 작가의 길에 들어선 장욱진은 도시의 번잡함이 버거워지면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숨어들곤 했다. 덕소(1963~75)와 수안보(1980~85)의 궁벽한 곳을 찾아들어가 작업을 하다 그곳이 개발붐에 휩쓸리면 미련 없이 떠났다. 1986년 경기도 용인시 구성면 마북리의 100년 넘은 고택을 수리해서 입주한 그는 1990년 사망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경기도 양주군 미금면 삼패리의 덕소 화실을 그는 특히 좋아했다. 새벽 4시면 일어나 주변을 산책한 후 작업에 몰두했는데, 1970년대 초 이곳에 전기가 들어오자 “등잔불 밑에서 사색하던 나의 시간을 뺏고, 교교하기만 한 달빛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불평했다 한다.

〈가족〉, 캔버스에 유채, 13.5×20cm, 1973.
정초에 서울 명륜동 집에 갔다 아내가 불경 읽는 모습을 보고 그림으로 옮기고 싶은 열정이 폭발, 덕소에 되돌아가 1주일간 식음을 전폐하고 아내의 초상 〈진진묘〉(眞眞妙・아내의 법명)를 완성하기도 했다. 덕소시절, 한 월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장욱진은 “나는 내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죽는 날까지 그림을 위해 다 써버려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는 자신의 삶을 ‘그림을 위해 소모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의 아내는 “그림에 대한 내부갈등이 심해지면 열흘이고 스무날이고 술만 마시는데, 숫돌에 몸을 가는 것 같은 소모가 곁에서 보기에도 가슴이 미어졌다”고 한다.

〈밤과 노인〉, 캔버스에 유채, 41×32cm, 1990.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건립이 추진된 것은 장욱진의 덕소 화실이 당시 양주군에 있었기 때문이다. 양주시와 장욱진미술문화재단은 2010년 협약을 맺고 미술관 개관을 준비해왔다. 4월 29일부터 8월 31일까지 열리는 개관전시에서는 장욱진의 대표 유화작품 60점과 덕소화실에 있던 벽화 2점, 기증 소장품 유화 19점, 유품, 미술관 건축자료 등이 선보인다. 대표작인 〈자화상〉도 만날 수 있다.

〈자화상〉, 종이에 유채, 14.8×10.8cm, 1951.
창 너머로 나무가 보이고, 양쪽으로 이삭이 늘어선 길을 따라가니 벽에 작품이 걸려 있다. 멀리서는 보이지도 않는 크기인 10.8×14.8cm의 작은 작품이다. 이삭들 사잇길을 따라간 끝에 만나는 그림. 작품 속 배경을 간접경험하게 하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다. 명작 60선은 나무, 집, 사람, 하늘 4개의 카테고리로 나눠 전시 중인데, 집이라는 카테고리는 문을 열고 들어가듯 칸막이를 해놓았다. ‘하늘’ 카테고리에 전시된 〈밤과 노인〉은 1990년, 장욱진이 사망하던 해에 그린 작품. 자신의 죽음을 암시라도 하듯 하늘 위에 둥둥 떠다니는 도인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1960년대 덕소 화실의 벽에 그려 넣었던 그림 두 점도 장욱진미술관에 영구 소장돼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식탁〉은 밥 지어 먹기 귀찮아진 화가가 밥 대신 벽에 물고기와 과일, 물잔 등을 그려 넣은 작품. 소와 돼지・닭이 새끼들과 함께 등장하는 〈동물가족〉은 홀로 화폭과 씨름하면서 가족을 그리워하던 그의 심경을 대변하는 것 같다. 붓과 물감, 먹과 벼루 등 사망하기 직전까지 사용했던 작가의 미술도구들을 가지런히 진열해놓은 유품 전시는 동서양의 재료를 함께 사용한 그의 작품세계를 엿보게 한다.

tip

장욱진미술관만 둘러보고 오기 아쉽다면, 주변에 가볼 만한 곳이 많다. 드라마 <엔젤 아이즈>에서 남녀 주인공의 사랑이 맺어지는 장소로 등장하는 천문대가 미술관 바로 뒷산에 있는 송암스페이스센터다. 송암스페이스센터는 레스토랑과 숙박시설, 교육시설을 갖춘 천문 테마파크로,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고도 450m 계명산 정상에 있는 천문대에 올라 천체망원경으로 하늘을 관측할 수 있다. 미술관 바로 앞에 장흥조각공원이 있고, 가나아트센터에서 작가들의 창작공간이자 전시공간으로 운영하는 장흥아트파크도 가까이 있다. 장흥아트파크에는 앤디 워홀, 리히텐슈타인, 백남준 등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미술관, 피카소어린이미술관,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아틀리에, 조각공원, 야외공연장 등이 들어서 있다.
  • 2014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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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고세호   ( 2014-07-27 ) 찬성 : 86 반대 : 51
여러 미술인들의 손길로 벽화가 그려진 덕소 화실이 도로 공사라는 미명하에 철거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너무도 각박한 조치가 아닌지... 생존작가의 영구 설치 작품도 세월이 지나면 문화재적 가치를 지닙니다. 너무도 어이가 없더군요. 적지 않는 비용을 돈이 아닌 그림으로 지불하고 지켜내었다는 벽화 두점이 미술관에 있습니다. 그 두점 벽화만으로도 충분히 하루 여행의 가치를 지닌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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