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주메뉴

  • cover styory
  • focus
  • lifestyle
  • culture
  • human
  • community
    • 손글씨
    • 1등기업인물
    • 나도한마디
    • 기사제보
  • subscription

가난하다고 뜨거운 가슴이 없겠는가

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 신경림 <가난한 사랑 노래>

사진제공 : 조선DB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신경림 시집 《가난한 사랑 노래》, 실천문학사, 1988



탈무드에 따르면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어머니에게 붉은 것(피, 내장, 심장)을, 아버지에게 흰 것(골수, 신경, 뇌)을, 신에게 숨결을 받는다. 그리고 자기가 태어난 사회에게서 계급이라는 것을 받는다. 가난은 천부적인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직업과 소득에 따라 결정된 사회적 계급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가난은 인간 내면의 형질과 무관하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이미 자본과 이익을 독점한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불공정과 불평등, 그리고 분배의 정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까닭에 생겨나는 폐단일 따름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은 살아 있는 주체다. 자본은 증식하면서 또 다른 자본을 낳는다. 일찍이 칼 마르크스는 자본이 자신의 “가치를 이용해서 스스로 가치를 증식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갖고, “이제 새끼를 낳거나 적어도 황금알을 낳아서 자기를 재생산할 수 있는 생명을 획득한다”고 썼다.

아울러 국가가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을 개별자의 능력에 맡긴다면 무능하거나 그것의 해결에 아무 관심도 없는 부패한 권력에 지배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가난한 사랑 노래>는 신경림의 절창 중 하나다. 가난은 애틋하고 아련한 것들을 낳은 바탕이고 곡절이다. 한 번이라도 가난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고, 두려움에 떨어본 사람이라면 이 시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번이라도 가난 때문에 사랑을 잃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 시를 읽고 눈물 한 점 떨구지 않을 수 없다. 가난에 대한 사실적 관찰은 오랫동안 신경림의 시적 관심의 표적이었다. 시골에서 내몰리고 서울에서도 저 변두리로 떠밀린 그의 이웃들이 궁핍 속에서 짓눌려 신음하며 살아가고, 그 자신이 오랫동안 힘없고 가난한 사람이었던 까닭이다. 그는 산업화의 그늘 속에서 가난의 덤터기를 쓴 채 멸실되어가는 1960년대 한국 농촌을 뒤덮은 극빈 체험을 거쳐 1970년대 서울의 달동네마다 널려 있던 도시빈민 체험을 고스란히 자기 것으로 체화했다. 그는 가난한 이웃들과 가난이 만든 귀양살이를 함께 오롯하게 견디며 끈끈한 연대감을 찾아낸다. 그가 《농무》의 시 한 편을 통해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이고, “우리의 괴로움을 아는 것도 우리뿐”(<겨울밤>)이라고 노래할 때 그 말에 담긴 뜻의 간곡함과 정직성을 의심할 수 없었다. 그보다 가난의 생활 실감에 대해, 가난 속에서 억울함과 원통함을 곱씹으며 살아가는 이들의 곡절을 잘 노래할 수 있는 시인은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랑 노래>에서 노래하는 가난은 오늘의 가난이 아니다.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 따위가 나오는 걸 보면 자정 통행금지가 시행되던 전 시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시인은 가난한 이들의 가슴에 뜨겁게 살아 있는 외로움을, 두려움을, 그리움을, 사랑을 증언한다. 하지만 가난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다 버려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지금 여기의 현실 속에서 가난은 다 사라졌을까? 아니다. 가난은 여전히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지만 많은 사람이 가난에 지지 않고 끝끝내 그것을 견뎌내며 제 삶을 일군다. 사람들은 가난 속에서도 아이들을 낳고 기르며 사랑을 하고, 제 꿈을 키우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의 정직한 생활과 소박한 꿈은 부박한 소비사회의 탐욕과 이기주의를, 그리고 널리 퍼진 낭비적 행태를 추문으로 만든다.

신경림은 가난의 경험을 풍부하게 갖고 있는 시인이다. 그 흔적과 증거들은 그가 가장 최근에 낸 시집 《사진관집 이층》(창비, 2014)에서도 숨길 수 없이 드러난다. 이를테면 “떠나온 지 마흔 해가 넘었어도/나는 지금도 산비알 무허가촌에 산다/수돗물을 받으러 새벽 비탈길을 종종걸음 치는/가난한 아내와 함께 부엌이 따로 없는 사글셋방에 산다”(<가난한 아내와 아내보다 더 가난한 나는>)는 구절을 보라.

그가 서슴없이 가난한 사람의 편에 서는 것은 누구보다 가난의 생태와 내력을 잘 아는 탓이다. 《사진관집 이층》에 실린 시 <쓰러진 것들을 위하여>에서도 대뜸 “아무래도 나는 늘 음지에 서 있었던 것 같다”고 고백한다. 아마도 가난은 양지보다 음지에 더 가까울 것이다. 음지는 패배자의 자리다. 시인은 체질적으로 양지보다는 음지에 더 이끌린다. 모든 것을 다 가져가는 승자보다는 아무것도 갖지 못하는 패자에 더 연민을 느낀다. “개선하는 씨름꾼을 따라가며 환호하는 대신/패배한 장사 편에 서서 주먹을 부르쥐었고/몇십만이 모이는 유세장을 마다하고/코흘리개만 모아놓은 초라한 후보 앞에서 갈채”(<쓰러진 것들을 위하여>)하는 것도 시인이란 본질에서 약자의 편이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패자와 자기를 동일시하는 이런 태도는 사회적으로 비협동적 자아가 보여주는 움츠러듦의 한 행태다. 사회에서 후퇴하여 움츠러드는 것을 사회심리학의 측면에서 리처드 세넷은 “자신과는 다른 사람들을 피해 동면”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가난은 그 자체로 선도 악도 아니지만 가난을 구조적으로 낳는 사회는 악이 선을 압도하는 타락한 사회다. 가난에 처한 사람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는 사실은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다는 점이다. 돈의 속성에는 애초에 행복을 만들어낼 요소가 없다. 그렇다고 가난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자칫하면 가난은 굶주림과 사회적 기회의 상실을 낳고, 불만족과 고통을 만들며, 우리 내면에 탐욕의 씨앗을 심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난이 우리를 고통과 불행으로 몰아넣는 것만은 아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시인은 노래한다, 가난한 사람끼리 서로 더운 체온을 보태며 가난을 넘어설 때 가난은 사회적 시련을 극복하는 동력이 될 수 있음을, 이타적 사랑과 배려를 낳는 아름다운 신화가 될 수도 있음을.


신경림(1935~)은 충주에서 태어났다. 1956년 <문학예술>에 <갈대> 등이 추천되어 등단했다. 등단한 뒤 문학활동에 뛰어드는 대신 정규직 직장을 갖지 못한 채 남들이 마다하는 갖가지 궂은일을 하며 광산 따위를 떠돌아다녔다. 그는 고백한다. “가까운 댐 공사장으로 건달 친구를 따라가 보름씩 신세를 지기도 하고, 광산에서 일하는 선배를 찾아가 한 달씩 공밥을 얻어먹기도 했으며, 행상을 하는 친구를 좇아 여러 날 장을 떠돌기도 했다.”(시집 《낙타》에 붙인 산문) 1970년대 중반 그 체험을 바탕으로 쓴 시들을 모은 시집 《농무》를 통해 시인의 입지를 단단하게 다졌다. 《농무》(1973년 초간)는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 걸친 소외된 농촌에서 뼛속까지 가난을 겪는 사람들의 원통함과 억울함을 사실적 언어로 전달한 시집이다.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뒤안길에서 멸실하는 농업 현장을 인류학적 관찰과 사실적 언어로 고스란히 되살려낸 이 시집 한 권으로 무명에 가까웠던 신경림은, 소외된 채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애환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마음씨 좋은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팔순의 시인은 여전히 가난과 약자의 편에 서서 시를 쓰고 있다.
  • 2014년 07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하단메뉴

상호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