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세계 / 비주얼이펙트 수퍼바이저

영화의 시각 효과를 총괄하는 사람

사진제공 : (주)포스
<페이스메이커>의 런던올림픽 마라톤 장면은 대부분 CG다.
경남 양산시에 약 240m 길이의 그린 매트를 설치한 후, 여기에 런던 현지에서 찍어온 백그라운드 소스를 합성했다.
지난해 개봉해 호평을 받았던 영화 <신세계>에서 명장면을 하나 꼽으라면 아마도 엘리베이터신일 것이다. 비좁은 공간에서 정청(황정민 분)이 보여준 화려한 액션은 보는 사람의 입이 떡 벌어질 만큼 압도적이었다. 그런데 이 장면의 8할이 CG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청이 휘두르는 칼, 그리고 그의 몸에 묻은 시뻘건 피는 모두 비주얼이펙트(VFX) 수퍼바이저의 손을 거쳐 완성된 것이다.

VFX 수퍼바이저는 영화의 시각 효과(visual effects·VFX)를 총괄하는 사람이다. 말하자면 영화의 전체 비주얼을 책임지는 사람인데, 이 VFX 수퍼바이저 아래에는 수십 명의 VFX 아티스트가 있다. 자연 현상과 폭파 장면은 물론, 생활 속 소품을 그려 넣는 것까지 시각 효과의 영역은 실로 방대하다. 전문가들은 “‘촬영 불가능한’ 모든 것을 시각 효과로 구현한다”고 이야기한다. <신세계> 속 황정민은 혹시 모를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반쪽짜리 칼을 사용해 액션신을 촬영했다. 반토막 난 칼을 차갑게 번뜩이는 흉기로 바꾼 것은 VFX 아티스트였다.

VFX 수퍼바이저는 프리 프로덕션(pre-production) 단계부터 감독과 함께한다. 시나리오를 받아 분석하는 것이 그 첫 번째 단계. 시나리오 분석이 끝나면 콘셉트를 잡는다. ‘비주얼 전문가’인 이들은 이 과정에서 감독에게 역으로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한다. 이후 사전 시각화 작업을 통해 협의를 마치면 본 프로덕션에 들어간다.

현장에서 VFX 수퍼바이저와 가장 많이 소통하는 사람은 촬영감독이다. 촬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나머지 부분을 시각 효과를 통해 구현해야 하기 때문. 카메라의 움직임에 따라 VFX 수퍼바이저의 작업 방식도 달라진다. 조명감독, 미술감독 등 주요 스태프들과 끊임없이 교류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한정된 포스트 프로덕션(post-production) 기간 동안 작업 능률을 최대로 올리려면 수퍼바이저가 주요 스태프들과의 협의를 통해 역할 분담을 확실히 해야 한다.

본격 포스트 프로덕션이 시작되면 VFX 수퍼바이저는 더 바빠진다. 2D팀과 3D팀을 오가며 작업의 진척 상황을 수시로 체크하고, 전체적인 완성도까지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2D팀에는 영화에 타이틀이나 자막을 넣는 ‘모션 그래픽’ 팀, 밑그림을 그려 전체 콘셉트를 잡는 ‘아트’ 팀, 백그라운드 합성을 맡는 ‘콤포지팅’ 팀 등이 있다. 3D팀의 경우는 좀 더 복잡하다. 물체의 모양을 본뜨는 ‘모델링’ 팀, 뼈대를 만드는 ‘리깅’ 팀, 연기나 불의 시뮬레이션을 담당하는 ‘FX’ 팀 등 총 7개의 팀이 있다. VFX 수퍼바이저는 각 팀의 업무와 작업 영역을 모두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30명 안팎의 VFX 수퍼바이저가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대학에서 영화학을 공부했거나 산업디자인 혹은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이들이다. VFX 수퍼바이저 혹은 아티스트를 꿈꾸는 사람들은 대개 사설학원을 통해 시각 효과 구현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익히는데, 대부분 이때 첫 포트폴리오를 만든다. 이 포트폴리오는 VFX 기업에서 아티스트를 선발할 때 주요한 평가 기준이 된다.

이번 달 topclass는 <우는 남자> <신세계> <숨바꼭질> 등의 작품에서 VFX 수퍼바이저로 활약한 '포스'의 백경수 팀장을 만났다. 백 팀장은 20대 초반 현장에 뛰어들어 29세에 슈퍼바이저가 된 영화계 젊은 피다.



비주얼이펙트(VFX) 수퍼바이저 백경수


꿈.
어릴 적부터 영화 보는 것을 좋아했다. 자연히 CG에 대한 관심도 남달랐던 것 같다. 대학 입시를 위해 포토샵과 일러스트, 3D를 배웠는데, 결과적으로 VFX 아티스트가 되는 데 도움이 됐다. 영화 일을 하기 전, 게임회사와 CF회사에 다녔다. 두 번째 직장이었던 CF회사에서는 영화 일도 배울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럴 기회가 없었다. 운 좋게도 한국 VFX 아티스트 1세대라고 불리는, 스승과 같은 형들을 만나 영화계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그들에게 감사한다.

<신세계>
자동차 크로마키(화면 합성 기술)를 사용한 신.
협소한 공간에서 카메라 제약을 최소화하고, 감독이 원하는 배경을 심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밤.샘.
밤샘은 VFX 아티스트의 숙명이다. 할리우드에 비해 제작 규모가 작고, 포스트 프로덕션 기간이 짧은 우리나라 영화계의 특성상 야근과 밤샘은 피할 수 없다. 보통 포스트 프로덕션은 3개월가량 진행되는데, 특히 개별 작업에 매달리는 아티스트들이 고생을 많이 한다. 잠을 못 자는 건 물론, 씻지 못할 때도 있다. <트랜스포머> <캐리비안의 해적> 같은 할리우드 대작의 경우 CG에 투입되는 인력만 무려 1500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CG 인력은 그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후배들이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신세계>
엘리베이터라는 좁은 공간에서는 소품 칼도 흉기가 될 수 있다.
칼의 움직임에 맞춰 피를 뿌리는 것 역시 불가능했다.
후반 작업에서 CG로 칼과 피를 그려 넣어 장면을 완성했다.
제.너.럴.리.스.트.
VFX 아티스트는 대부분 스페셜리스트다. 리깅은 리깅, 라이팅은 라이팅 식으로 전문 분야가 나뉘어 있다. 그러나 내가 일을 시작하던 10년 전만 해도 사정은 달랐다. 당시에는 인력 풀이 더 작았기 때문에 아티스트 한 사람이 2D와 3D를 도맡아야 했다. 작업 자체는 녹록지 않았지만, 그때의 경험이 VFX 수퍼바이저가 되는 데 도움이 된 것은 확실하다.

<페이스메이커>
부천종합운동장에, 호주 멜버른 크리켓경기장의 관중을 합성해 완성한 장면이다.
작.품.
<사생결단>은 내가 VFX 아티스트로서 처음 작업한 영화다. 공들여 작업한 결과물이 스크린을 통해 나왔을 때를 잊을 수 없다. 마치 모든 관객의 시선이 내게 쏠린 듯 심장이 뛰고 얼굴이 벌게졌던 기억이 난다. 서극 감독의 <용문비갑>을 작업할 때는 3개월 내내 사막에 갇혀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용문비갑>은 350억 제작비 중 특수 효과에만 무려 90억이 투입된 대작이다. 사막의 모래폭풍을 견디기란 쉽지 않았지만, 중국시장 진출의 발판을 닦았다는 점에서 보람 있는 작업이었다.

<페이스메이커>
항공 촬영을 한 뒤 여기에 CG로 군중을 그려넣었다.
철.학.
사람들이 종종 묻는다. “영화를 볼 때 시각 효과에 유의해서 보느냐”고. 나는 영화 자체를 볼 뿐, 시각 효과에 집중하지 않는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다. CG가 튀어서도, 도드라져서도 안 된다. 작품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CG를 만드는 것이 최대의 목표다.

<우는 남자>
카메라가 주인공의 가슴께에서 움직이기 시작해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와 건물 바깥을 비추는 장면이다. 세트 촬영을 한 후 CG를 입혔으며, 사전 시각화 작업을 통해 카메라 앵글과 속도 등을 다각적으로 체크했다. 배우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풀 3D로 제작할 만큼 난도가 높았던 장면이다.
사.람.
현장은 배움의 장이다. 조명·촬영·연출 등 공부해야 할 것이 많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과의 관계를 배우는 일이다. 영화는 누구 한 사람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오늘도 수많은 사람이 발로 뛴다. 이 과정에서 누구도 상처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영화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주)포스(fourth)

2009년 9월에 설립된 영화전문 VFX Post-Production. CJ시스템즈가 위탁 운영하던 AZ Works를 최근 인수했으며, 아시아 최대 멀티종합영상센터를 목표로 하고 있다. <설국열차> <스토커> <박쥐> <전우치> <괴물> <올드보이> 등 유수의 영화 작업에 참여한 일류 VFX 수퍼바이저가 다수 소속돼 있고, 현재 <군도:민란의 시대> <타짜-신의 손> <베테랑> 등을 작업 중이다. (주)포스의 이전형 대표는 1995년 EON을 창립한 이래 한국영화 VFX 수퍼바이저 1세대로 활약해왔다.
  • 2014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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