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영화 〈레디 액션! 폭력영화〉의 세 감독
정재웅·최원경·김도경

“우리는 왜 스크린 속 폭력에 관대할까?

글 : 박소영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레디 액션! 폭력영화〉는 미쟝센단편영화제 액션·스릴러 섹션인 ‘4만 번의 구타’에 선정된 작품을 모은 옴니버스 영화다. 배우 전원이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정재웅 감독의 〈민호가 착하니 천하무적〉, 심사위원 특별언급에 빛나는 최원경 감독의 〈메이킹 필름〉,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김도경 감독의 〈나의 싸움〉까지 세 편이다. 작품을 감싸고 있는 ‘폭력’이라는 소재는 신예 감독들의 재기발랄한 연출력과 버무려지며 관객을 사로잡는다.
술자리 같았다. 끝도 없이 웃음이 터졌고, 웃음이 그칠 때쯤 진중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지난 5월 29일, 영화 개봉을 1주일 앞두고 〈레디 액션! 폭력영화〉의 세 감독을 만났다. 정재웅 감독의 표현대로 “파괴적인(?) 취향”을 공유하는 이들답게 세 사람은 영화에 대해,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화끈하게 털어놓았다. 이들과의 수다를 여과 없이 싣는다.

왼쪽부터 정재웅, 김도경, 최원경 감독

서로의 영화를 소개해달라.

최원경_ 평소 공포 영화를 좋아해서 〈민호가 착하니 천하무적〉을 재미있게 봤다. ‘착한’ 주인공 민호가 외딴 시골에서 예기치 않은 폭력을 당한 후 반격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상당히 잔인하다. 하지만 굉장히 현실적인 잔인함이다. 뻔한 스릴러로 치부할 수 없는, 뭔가 다른 영화다. 〈나의 싸움〉은 내가 유일하게 재미있게 본 싸움 영화다. 보기와는 다르게 싸우는 영화를 안 좋아한다(웃음). UFC도 심장이 벌렁거려서 못 볼 정도다. 그런데 〈나의 싸움〉은 남성 본능을 제대로 자극한다. 고등학생들의 맞짱 대결을 유쾌하게 그렸다.
김도경_ 〈메이킹 필름〉은 굉장히 집요한 영화다. 스너프 필름을 소재로 현실적 폭력을 담았다. 영화에는 밧줄에 묶인 남자와 복면을 쓴 남자, 단 두 사람만 등장한다. 그런데도 팽팽한 긴장감이 유지된다. 집요함 속에 유머러스한 포인트도 있다.


어젯밤에 〈민호가 착하니 천하무적〉을 봤는데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 때리고, 맞고, 피도 나오고. 어디에서 착안한 건가.

정재웅_ 한겨울에 촬영 갔다 돌아오는 길에 스태프 중 한 사람이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해서 차에서 내렸다. 그사이 나머지 친구들이 꽁꽁 언 강에 내려가 스케이트도 타고, 달리기도 하더라. 나는 다리 위에서 그걸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돌을 던져서 맞히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일동 웃음). 이런 상황이 들어 있는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목이 함축하고 있는 메시지는 뭔가.

정재웅_ 말 그대로다. 주인공 민호가 강해서 이기는 게 아니고, 착해서 이기는 거다. 영화에선 대부분 주인공이 이기지 않나. 대신 주인공이 악당을 다 물리치려면 한 번에 여러 명과 싸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번에 한 명씩 이기는 걸로 설정했다.


착한 인물이 항상 이긴다는 걸 비판한 건가.

정재웅_ 비판은 아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는, 일종의 소망이다. 내가 진짜 착하거든. 항상 손해 보고 살았을 정도로.
최원경_ 진짜 착하다. (신고 있는 신발을 가리키며) 지금 이 신발도 재웅이 형이 생일선물로 사준 거다.
정재웅_ 그런데 사주면서 안 아까워야 하는데 아깝다. 그걸 보면 내가 엄청나게 착하진 않은 것 같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사실 민호도 그렇게 착하지는 않다. 통화하면서 할머니한테 짜증도 내고.



영화를 보면서 〈구타유발자들〉이 생각났다.

정재웅_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영화다. 안 따라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묻어나오나보다.


〈메이킹 필름〉 첫 화면이 정말 무섭더라. ‘노란 국물’이 유행할 때 피시방에 갔다가 우연히 스너프 필름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 기억이 떠올랐다.

최원경_ 어릴 적 그런 필름을 많이 접했고, 그 ‘날것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또 한 가지 생각은 ‘사람들은 왜 스크린 속 폭력에 관대한가’였다.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담아, 처음엔 가벼운 폭력을 보여주다가 나중에는 센, 현실적인 폭력을 보여주려고 했다.


원테이크로 찍은 건가.

최원경_ 맞다. 그러기 위해 무려 3개월 동안 리허설을 했다. 여름에 선풍기도 없이 촬영하느라 배우가 고생을 많이 했다.


스너프 필름을 소재로 했지만, 알고 보면 스너프 필름을 찍고 있는 감독과 배우 간의 이야기다.

최원경_ 최초 계획은 스너프 필름과 똑같이 만드는 거였다. 그런데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감독과 배우 이야기를 결합했다. 연출부 일을 하다 보면, 현장에서 배우와 감독 사이의 보이지 않는 알력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그 공기를 담고 싶었다.


감독이 직접 복면 쓴 남자로 출연했다. 감정이 중요한 작품인데, 감정 유지가 힘들지 않았나.

최원경_ 촬영 중 배우가 앉아 있던 의자가 부러져서 테이크 하나가 날아갔다. 편의점에서 빌려온 의자였는데 당혹스러웠다. 다른 의자를 구하러 돌아다니느라 고생도 했고. 신경이 곤두섰는데, 그래서 감정이 잘 유지됐던 것 같다. 영화에 실제 나의 짜증이 잘 담겨 있다(웃음).


〈나의 싸움〉은 남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학창시절 경험이 바탕이 된 건가.

김도경_ 사람이 풍요로울 때도 있고, 빈곤할 때도 있고, 행복할 때도 있고, 비참할 때도 있지 않나. 이 영화를 찍을 때 가장 빈곤하고 비참했다(웃음). 영화를 잘 찍고 싶은 욕심이 큰 만큼 두려움도 컸고. 술 없이는 보낼 수 없는 그런 시간을…(일동 웃음).
최원경_ 어? 나도 촬영할 때 이런 시기였다. 우리 셋 다 그랬다.
정재웅_ 난 아니다. 나는 ‘심심한데 그냥 한번 만들어봐?’ 뭐 이런 생각이었다(일동 웃음).
김도경_ 아무튼 그런 시간을 보내다가, 지금 이 상태를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영화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처럼 나 역시 고등학교 때 운동을 많이 했다, 태권도장도 다니고. 소위 ‘노는 아이들’의 행태에 불만이 많았지만, 쉽게 싸움을 걸진 못했다. 그런데 문득 지금의 내가 당시 무기력했던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을 일기처럼 풀기 시작했다. ‘그걸 토대로 지금의 나를 이야기해보자’는 거였다.


위에서부터 민호가 착하니 천하무적, 메이킹 필름, 나의 싸움
배우들 목소리를 후시 녹음한 것 같더라. 장르 영화의 느낌을 살리려고 그런 건가.

김도경_ 만화처럼 그리고 싶었다. 이미지는 만화 같은데 동시 사운드가 들어오면 균형이 맞지 않을 것 같았다.


영화에서 주인공에게 절권도를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출연했다. 액션 연습하느라 힘들었겠다.

김도경_ 고등학교 때 절권도를 배웠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사이비 절권도(?)였던 것 같다(일동 웃음). 당시 선생님이 절권도 고수인 척하셨는데, 많이 안 배운 분이었다. 영화를 위해 주인공 배우에게 절권도를 다시 배웠다.


예산이 적어 고생도 많이 했다고.

김도경_ 부모님께 금일봉을 받았는데 그걸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스태프들에게 돈을 빌렸다. 촬영 끝내고 일을 해서 모두 갚았다. 예산이 빠듯했지만 고생한 배우들에게 술을 살 때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웃음).


마지막으로 〈레디 액션! 폭력영화〉를 볼 관객들에게 한마디한다면. 감독으로서의 지향점도.

김도경_ 재미있게 보셨으면 좋겠고, 삶의 뜨거움을 마음으로 느껴주셨으면 좋겠다. 이번 영화가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면, 다음 영화는 외연을 확장한 세상과의 싸움이 될 것 같다. 뜨거운 싸움을 하겠다.
기자_ 멘트 준비했나.
김도경_ 사실 그렇다…(일동 웃음).
최원경_ 아, 나한테도 힌트 좀 주지(웃음). 괜찮은 옴니버스 영화를 보면 한 번에 많은 이야기를 보고 들은 느낌이라 뿌듯하더라. 우리 영화도 그랬으면 좋겠다. 똑같은 돈 내고 더 많이 본 느낌이랄까. 개인적으로는 앞으로도 장르영화에 대한 사랑을 이어나갈 생각이다. 공포ㆍ스릴러ㆍ코미디까지.
정재웅_셋이서 ‘파괴적인’ 장르영화를 자주 찾아본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런 영화가 잘 나오지 않더라. 우리와 같은 갈증을 느끼는 분들이 있으리라고 본다. 그분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우리 여기 살아 있다고, 같은 편이라고.’


〈용어 설명〉
스너프 필름 : 실제 살인 장면을 오락거리로 보여주는 영화.
원테이크 : 장면을 끊지 않고 한 번에 찍어 완성하는 것.
  • 2014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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