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00대 기업 입사지원서 분석한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스펙조사팀 김경수·김미수·김향지·심요섭

기업이 변하면 불필요한 ‘스펙 경쟁’ 멈출 수 있다!

글 : 임현선 기자  / 사진 : 김선아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스펙조사팀 김미수·심요섭·김경수·김향지(왼쪽부터)는 ‘2030 정책참여단’에서 1년 임기로 활동하는 평범한 대학생들이다.
학벌・학점・토익・어학연수・자격증・공모전・인턴・사회봉사・성형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들 사이에 회자되는 대기업 입사를 위해 갖춰야 할 ‘9대 스펙’이다. 몇 년 전부터 일부 기업들은 사원을 채용할 때 스펙을 보지 않겠다고 의지를 밝히고 있지만, 대다수 기업의 스펙 요구 관행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위원장 남민우)는 4월 16일 국내 매출순위 100대 기업 가운데 다수가 입사지원서에 직무와 관련 없는 개인 정보를 요구하고 있다며 개선을 촉구했다. 많은 기업이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학력, 외국어, 자격증 외에도 신체 조건, 본적지뿐 아니라 부모의 학력, 직위, 소득수준에 대한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본 조사를 직접 수행하여 보고서를 작성하고 기자회견을 주도한 ‘대학생 스펙조사팀’ 김경수(인하대 3), 김미수(광운대 4), 심요섭(한양대 3), 김향지(숙명여대 2)를 만나 조사 진행과정과 뒷이야기를 들었다. 이들은 청년위원회가 지난해 10월 공개 모집한 제1기 ‘2030 정책참여단’에 지원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번 조사는 대학생들이 주도적으로 기업 입사 스펙 조사를 진행하고 스스로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사 결과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김미수_ 조사 결과 94%의 기업이 학력을, 81%의 기업이 학점을 요구했다. 28%가 편입 여부에 관해 물었으며, 출신 고등학교를 묻는 기업도 88%나 됐다. 학력을 묻지 않는 기업도 있었지만 6%에 불과했다. 기업들의 91%가 외국어 능력을 중시했으며 해외 경험을 묻는 기업도 40%에 달했다.

김향지_ 자격증, 공모전, 사회봉사 부분을 살펴보니, 조사 기업 중 92%가 입사지원서에 자격증 취득내용 기록을 의무화하고 있었다.

김경수_ 조사 기업의 75%가 지원자의 사진을 요구했다. 전신사진을 꼭 첨부해야 하는 기업도 있었고, 신장・체중・혈액형・시력을 묻는 기업도 적지 않았다. 외국은 이력서에 사진을 요구하지 않으며, 면접 전까지 외모에 대해 블라인드로 진행한다. 대다수 기업이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했다. 결혼 여부, 종교를 묻는 기업도 20% 가까이 됐다.

심요섭_ 조사 기업 가운데 18%가 지원자의 본적지를 기재하도록 했고, 39%가 가족관계, 27%가 동거 여부 기재를 요구했다. 21%가 가족 구성원의 최종 학력을 물었고, 32%가 가족 구성원의 직장명과 직위를 포함한 직업을 쓰라고 했다. 기업들이 아직도 혈연, 학연 등 ‘네트워크’를 지원자의 요건으로 고려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조사 과정은 어떻게 진행됐나?

김미수_ 우선 지난해 매출 순위 100대 기업을 알아보고, 서로 일을 분담했다. 3월 중순까지 입사지원서들을 수집하고 조사하면서, 평균적으로 무엇을 요구하는지 엑셀파일로 분류했다. 100대 기업 리스트를 놓고 일일이 점검했다. 각자 작업한 내용에 대해 다른 친구들이 나눠서 재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김경수_ 요즘 기업들이 상반기 공채를 진행하고 있다. 기업 홈페이지에 들어가 입사지원을 하는 것처럼 개인정보를 써넣으면서 문제점을 발견했다.

심요섭_ 지난 두 달 동안 주 1회 꾸준히 만나 의견을 나눴다. 오전 7시 30분 서울역 인근 카페에서 모이거나 토요일 오후에 모였다. 학업과 병행하느라 처음엔 힘들었지만 지금은 뿌듯하다.

스펙조사팀이 4월 16일 기자회견장에서 입사지원서에서 불필요한 스펙과 개인정보 삭제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사진제공 :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입사지원서를 직접 써본 느낌이 어땠나?

김향지·김미수·심요섭_ ‘이런 것까지 써야 하나’ 싶은 항목이 너무 많았다. 일할 곳을 찾고 있는데, 왜 부모님의 직위, 직장, 심지어 연봉까지 써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본적지를 묻는 기업도 상당수 있었다.

김경수_ 기재해야 하는 칸이 세분되어 있었는데, 굳이 이런 것까지 답해야 할까 의문이 들었다. 관습처럼 칸을 만들어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개인적으로 스펙에 관심을 둔 계기가 있었나?

김향지_ 재수했기 때문에 입학할 때부터 마음이 급했다. 스펙이 될 만한 활동을 찾았고, 쫓기듯이 스펙을 쌓으려고 노력했다. 남들이 다 하니까 무작정 따라 하려고 하는 게 아닌지 회의가 들 때도 있었다.

심요섭_ 나도 재수했다. 1학년 때부터 스펙에 도움이 될 만한 일들을 찾아다녔다. 연합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했고, 친구·선배를 따라 별 관심도 없으면서 공모전에 참여한 적도 있다.

김미수_ 4학년이지만 지금까지 스펙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해외연수도 가지 않았다. 집 근처 병원에서 4년간 봉사활동을 한 게 전부다.

김경수_ 운동을 좋아해서 군 입대 전까지 축구만 했다.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군대에서 밖에 있는 친구들을 보면서 제대하면 나도 빨리 따라가야겠다는 조급한 마음이 생겼다.


스펙조사 결과가 언론에 많이 보도됐는데, 주변 반응은 어땠나?

심요섭_ 취업한 선배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김향지_ 주변 반응이 재미있었다. “너 그러다가 취업 못한다”는 반응도 있었고, “입사지원서 조사했으면 나 좀 보여주라”고 이야기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대기업 채용 관행 변화 조짐 입사지원서 간소화·면접 강화 추세


신입사원 최종 면접에 반드시 참여하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4월 연세대 강연에서 “기업은 스펙보다 ‘소신 있는’ 인재를 원한다”고 강조했다(사진제공 : 신세계그룹).
대기업 상반기 공채는 대부분 3월에 시작해 5월에 마무리된다. 대기업들은 불필요한 스펙 요구로 정작 기업이 필요한 인재를 채용 과정에서 놓치고 있으며,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분위기다.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사진)은 지난 4월 8일 연세대 강연에서 “(취업 스펙 경쟁으로) 너무 피곤하고 지쳐 있는 청춘이 안쓰럽고 사회의 리더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신세계는 지금 채용 방식을 많이 바꾸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문학 청년인재 양성’에 초점을 두고 있는 신세계그룹은 현재 채용 TF를 구성해 다양한 인재 영입 방식을 검토 중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인턴제도와 상시채용 규모를 확대하고 면접을 강화할 방침이다. LG는 올해부터 입사지원서에 사진, 가족관계 기재란을 없애고, 전공 지식 등을 중심으로 선발한다. SK그룹은 자기소개 발표를 통해 인턴을 선발하는 ‘바이킹 챌린지’를 상반기에 실시하고, 하반기 공채 시 역량 발표 우수자에게 서류전형을 면제할 예정이다. 포스코그룹은 인턴을 선발할 때 학력, 학점, 어학, 사진을 제출하지 않고, 에세이와 자기 PR, 인성면접으로 선발하는 스펙초월 전형을 운영할 계획이다. 한진그룹은 입사지원서 기재 항목 가운데 병역사항, 해외연수 등 직종별 직무수행 능력과 관련성이 적은 항목을 검토해 삭제 또는 간소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자격증 분야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금융위원회(위원장 신제윤)는 4월 24일 “취업준비생들이 금융자격증을 딸 필요가 없도록 내년부터 펀드투자상담사, 증권투자상담사, 파생상품투자상담사 등 각종 금융자격증 제도를 없앤다”고 밝혔다. 이 제도는 금융회사 직원들만 응시 자격을 얻는 인증 시험제도로 바뀐다.

친구들은 취업 준비를 어떻게 하고 있나?

심요섭_ 여학생은 휴학하는 경우가 많다. 휴학 중 어학 자격증 취득은 필수이고, 성형하는 친구들도 있다.

김경수_ 나는 3학년이지만 여자 동기들은 4학년이다. 취업 스트레스가 심하다. 학생들은 휴학보다 졸업유예를 선택한다. 학생 신분으로 구직해야 유리하다는 생각이 강해서다. 대학 졸업과 첫 직장 취업 연령이 높아지는 이유다.


활동하면서 느낀 점은?

김경수_ 조사하면서 모순된 감정을 느꼈다. 우선 불필요한 스펙 요구는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남들 다 준비하는데 나도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불안감이 공존했다.

김미수_ 스펙 때문에 고민하는 친구들의 말을 실감했다.

김향지_ 기업이 변해야 불필요한 스펙쌓기 경쟁이 사라질 것이다.


요즘 일부 기업들이 ‘스펙’ 경쟁을 우려하며 인문학적 감수성을 지닌 인재를 뽑겠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의견은?

심요섭_ 구직자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짐처럼 느껴진다. 인문학적 스펙이 더 부담스럽다.

김미수_ 우리의 주장은 직무와 관련 없는 과도한 스펙 요구를 없애달라는 것이다. 능력은 있는데 불필요한 스펙을 요구해 서류심사에서 탈락하는 사람이 많다. 보다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역량을 평가받을 기회가 주어지길 희망한다.


기성세대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심요섭_ 청년들을 학벌이나 스펙만 보고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학교에 다니냐?”고 묻지 말고 “어떤 일을 하고 싶니?”라고 물었으면 좋겠다.

김향지_ 청년들을 너그럽게 포용해주면 좋겠다. 우리를 편견 없이 봐주기 바란다.

스펙조사팀이 제안하는 ‘과도한 스펙 경쟁’ 개선 방안


  • 2014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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