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정여울 작가

여행, 또 다른 내가 되어 다른 삶을 꿈꾸는 시간

글 : 시정민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문학 평론뿐 아니라 감성적이고 따뜻한 에세이로 주목받는 정여울 작가가 실제 여행했던 유럽 여행지를 소개한 책이 인기다. 유럽의 테마별 베스트 여행지를 특유의 감성과 문체로 풀어낸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은 지난 1월 출간 이후 베스트셀러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 산책 코스부터 누군가의 눈물겨운 러브스토리가 깃든 스페인의 성당, 인생의 끝자락에 꼭 한 달쯤 머물고 싶은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지상 최고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동유럽의 음식 투어에 이르기까지, 독자들에게 매 순간 유럽에 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여행 책이 출간 80일 만에 판매 15만 부를 넘어 종합순위 1위에 오른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기존 여행 책과의 차이는 감성과 문학을 중심으로 서술한 것을 꼽을 수 있는데, 정여울 작가도 “뜻밖”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정보 중심, 감상 중심이던 기존의 여행 책과는 달리 여행 속에 인문학적인 감성을 담고 싶었어요. 여행지와 그 감성에 어울리는 문학작품이나 인용문을 많이 넣으려 노력했죠. 독자들이 과연 좋아할까 걱정했는데 평소 문학책을 안 읽는 분들도 인용문에 나온 책을 찾아봤다고 해서 뿌듯했어요. 제 할 일이 그런 것이라 생각해요. 사람들이 평소 관심 없던 주제에 관심 갖게 하고, 그걸 통해 삶에 아이디어를 얻고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메신저가 되는 것. 여행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떤 삶을 꿈꿀지 등의 내용이 독자로 하여금 새롭게, 색다르게 느끼게 한 것 같아요. 저 또한 제 목소리를 더 많이 낼 수 있어 좋았습니다.”

한 달쯤 살고 싶은 유럽 1위, 이탈리아 친퀘테레.
정여울 작가는 지난 10여 년 동안 매년 한 번씩 훌쩍 여행을 떠나 조금씩 다른 테마로 유럽 구석구석을 여행했다. 그는 여행을 통해 “행복하게 길을 잃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일터가 정해지면 무조건 ‘집-일터, 일터-집’의 동선을 벗어나지 못하는 답답한 삶의 패턴에 지친 머리를 쓰다듬어준 게 여행이었어요. 그렇게 한자리에 처박혀서 일 중독에 빠져 살지 말고,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듣고 보고 배우라고, 여행이 가르쳐준 것 같아요. 국내여행도 좋았지만, 국내에선 전화 받고 이메일을 확인하면서 계속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여행하는 시간만이라도 조금 다른 세상에서 살아보자는 그런 느낌을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처음에는 막연한 호기심이었고, 점점 여행에 중독되면서 조금 다른 스타일의 글을 쓸 수 있게 됐고, 영감을 얻을 수 있었어요. 여행을 하면 일상에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죠. 나란 존재에 푹 빠져 있을 때는 일하거나 괴로운 감정에 빠져 나란 사람이 잘 안 보이죠. 그런데 여행을 하면 유체이탈하는 것처럼 거리를 두고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어 내면이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달리고 싶은 유럽 3위, 아드리아해 요트 항해.
그는 여행을 통해 성격도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입시지옥에서 박사과정까지 좋아서 공부했지만 여행을 하다 보니 그동안 자신이 모범생 코스프레를 했던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데다 겁도 많지 않았다.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는데 여행을 해보지 않았다면 못 느꼈을 것들이다.

“저만의 테마를 잡아 여행하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지난 여름에는 베를린에서 유학생의 방을 빌려 한 달 정도 머물면서 빈・프라하・칼프 등지에서 헤르만 헤세의 흔적을 찾는 여행을 하고 왔어요. 오래된 목조 건물에 관심이 많아 작은 마을의 평범한 사람살이의 모습도 궁금했어요. 유명한 곳보다 평소 관심 있고 앞으로 계속 공부하고 싶은 것들에 관련된 여행을 하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소심했던 성격도 혼자 뭐랄까 낯선 곳에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푸근한 정이 느껴지는 뮌헨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어디냐고 묻자 그는 “뮌헨”이라고 했다. 친절이나 배려라는 익숙한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뮌헨 사람들의 푸근한 미소가 제2의 고향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뮌헨은 10년 전에 처음 가봤는데 부산이나 광주만큼 친밀감이 느껴졌어요. 그 신비로운 기시감의 뿌리는 알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뮌헨은 제가 살고 싶은 도시의 모습과 가장 많이 닮은 것 같아요. 분명히 현대적인 대도시지만 마천루로 뒤덮이지 않고 적당한 높이의 건물들과 옛 모습을 간직한 건물들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이 정겨웠어요. 또 사람과 공간이 어우러지는 소소한 풍경이 감동적이고, 좋았어요.”

사랑을 부르는 유럽 3위, 베네치아 리알토 다리.
밤에 길을 잃었을 땐 누군가 뒤에서 부르는 것 같아 무서움에 떨며 한달음에 달린 적도 있었다. 소매치기에게 지갑을 빼앗겼는데 몸싸움해서 다시 찾은 경험도 있다. 그러나 역시 가장 힘든 건 체력이 고갈될 때였다고 한다.

“육체적 체력만이 아니라 마음의 체력이기도 해요.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보겠다는 욕심도 일종의 소유욕이거든요. 더 많이 보고 싶고, 더 다양한 곳에 가고 싶은 욕심을 애써 억누르는 것이 힘들었던 거지요. 그런데 한곳에 오래 머물면서 천천히 체력을 가늠해가며 있어보니 그런 욕심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알겠더라고요. 작년 베를린 체류가 참 좋았습니다. 한 달 남짓 머물면서 그 도시의 구석구석을 천천히 돌아보고도 ‘아, 나는 베를린을 여전히 모르는구나! 모르지만 그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여울 작가에게 여행이란 어떤 의미일까.

“지금까지와 전혀 다르게 살아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하는 시간이에요. 아주 익숙한 곳을 떠나서 조금은 위험한 곳으로 나를 던져봐도 괜찮은, 견딜 수 있음을 배우는 시간인 듯합니다. 여행은 직접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공간과 그 문화를 경험하며 배우는 것 같아요.”


《잘 있지 말아요》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등 따뜻한 감성을 담은 에세이와 《시네필 다이어리》 《마음의 서재》 《정여울의 문학 멘토링》 등의 인문서를 출간하며 베스트셀러 자리를 놓치지 않는 그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을까.

“문학평론가가 돼야겠다거나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 아니라, ‘글을 쓰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어린 시절부터 했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보니 ‘글만 쓰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겠더군요(웃음). 어쩌면 고등학교 시절부터 거의 20년간 끝없이 고민해온 것은 ‘글을 쓰면서도 버틸 수 있는 삶’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글만 쓰며 살아가기는 힘드니 글을 쓸 수 있게 해주는 다른 일들, 강의나 번역 같은 것을 계속해온 거지요. 그러다 아주 천천히, 제가 쓰고 싶은 글을 어떤 외부 상황과 관련 없이도 쓸 수 있는 길을 열심히 찾았지요. 아직도 찾는 중이에요. 《마음의 서재》와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이 제 글쓰기 인생에서 터닝포인트가 되어주었어요. 평론의 형식이 아니라 완전히 제 마음을 툭 터놓고 ‘나’를 주어로 쓰는 에세이 형식의 글이 저에게 잘 맞는 글쓰기라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는 평소 글을 쓰면서도 틈틈이 메모한다. 여행지에서 걸어 다니면서도 메모를 해서 ‘병’이라는 얘기도 들었지만, 그는 고치기 싫은 병이라고 했다.

“같이 가는 사람들이 짜증 낼 때도 있어요(웃음). 왜 만날 뭘 쓰냐고. 그런데 전 그게 놀이예요.”

헤르만 헤세의 고향 ‘칼프’.
정 작가는 낯선 타인과 ‘글이라는 소통의 끈’을 통해 만날 때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일차적으로는 마감이 끝났을 때 30분 정도가 정말 좋아요. 밤새 머리를 싸매고 졸음과 자기혐오와 싸우며 글을 쓰다가 동이 틀 무렵에야 끝났을 때, ‘아, 이제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아무런 꾸밈없이 ‘이제야 살 것 같다’는. 더 깊은 희열은 독자들로부터 찾아오지요. 독자가 편지를 보내온다든지, 강연에서 뜻밖의 질문을 받을 때 당황스러우면서도 기쁩니다. 글이 아니라면 결코 만날 일이 없었을 생면부지의 타인을 제가 쓴 글을 통해 만난다는 것이 참 눈부신 기적이지요.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한 시선이야말로 제가 글을 쓰는 보람의 뿌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많은 사람의 아픔을 보듬는 글, 슬픔에 빠진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을 주는 글을 쓰고 싶다는 그는 요즘 그런 마음이 더욱 절실하다고 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더 밝게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그분들의 삶의 과정이 오롯이 드러날 수 있는, 아주 서정적인 다큐멘터리 같은 글을. 카를 구스타프 융 심리학과 문학을 연관시키는 책도 쓰고 싶습니다. 신화와 심리학, 문학과 철학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그런 인문서요. 현대인의 고통의 뿌리를 파헤치면서 아픔의 근원을 직시하고 치유하는 길을 모색하는 글도, 본격적인 기행문도 쓰고 싶고요. 인문학적 성찰을 담은 세계 작가 기행이라든지, 새로운 삶의 형태를 제시하는 생태기행이나 공동체 탐방 같은 글도 꿈꿉니다.”
  • 2014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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