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자들이 만든 최초의 협동조합 ‘인문학협동조합’

인문학을 통해 삶을 성찰해보세요

글 : 이경후 인턴기자(연세대 4)  / 사진 : 김도균 

인문학자들이 협동조합을 만드는 게 가능할까. 이 의문을 우리나라 최초로 실천에 옮긴 단체가 있다. ‘인문학 협동조합’. 이들은 지난해 8월 말 창립한 이후 ‘오덕인문학’ ‘연애in문학’ ‘열려라 대학’ 등 재미있는 강좌를 선보여 호평을 받았으며, 강좌·출판 등의 수익사업을 통해 새로운 방식의 인문학 생존법을 모색 중이다. 이 단체의 발기인 대표 임태훈 미디어기획위원장을 비롯해 오영진 교육복지위원장, 강부원 강좌개발위원장을 만났다.
왼쪽부터 오영진 교육복지위원장, 임태훈 미디어기획위원장, 강부원 강좌개발위원장.
“막상 만들려고 보니 인문학을 직접적으로 표방한 협동조합이 없었어요.”

임태훈 위원장의 말처럼 인문학협동조합은 조합의 핵심 비전이면서 지속가능한 사업 모델로 인문학을 전면에 내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협동조합이다. 그들의 활동에는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문점이 따라붙었다. 2012년 말 설립을 구상했고, 2013년 2월 준비위원회를 결성했다. 이후 약 6개월간 조합원을 모집하고 1500만원의 자본금을 출자해 2013년 8월 31일 창립총회를 열었다. 이들이 인문학협동조합을 만든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다양한 전공의 불안정 연구노동자들이 인문학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습니다. 앎과 삶의 일치, 연구노동의 가치를 인정받는 풍토를 만들자는 모토로 협동조합을 만든 것이지요. 인문학의 어려움을 새로운 방식으로 돌파해보고 싶었습니다. 소위 강사법으로 알려진 고등교육법 개정안과 대학 구조조정의 위기가 맞물리면서 연구노동자들의 일자리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거든요. 반면 강신주 열풍 등에서 보듯 인문학에 대한 대중과 사회의 요구는 많아지고 있고요.”

인문학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의 노동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이 이뤄질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조합원들이 서로 협동해서 여러 사업을 하고 있다. 수익구조는 인문학협동조합이 자체 개발한 강좌개설과 강의를 의뢰한 단체로의 조합원 파견을 통해 이뤄진다. 이와 더불어 미디어 콘텐츠를 통한 수익사업 등 다양한 방법으로 수익사업을 모색하고 있다. 최근 진행했던 ‘열려라 대학’ 강좌는 대학입학을 앞둔 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대학에 입학해 어떻게 적응하고 슬기롭게 헤쳐 나갈 것인가를 다뤘는데, 학생들의 호응이 좋아 매년 진행할 예정이다. ‘연애인(in)문학’은 정지민씨를 비롯한 전문가 5명이 연애와 고전을 엮어 강의해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외에도 ‘오덕인문학’, 한문 강좌, ‘시(詩), 인(人)’ 등의 강좌를 진행했다.

“‘오덕인문학’ 강좌는 강사와 수강생의 수준이 굉장히 높았어요. 흔히 오덕 하면 오타쿠라고 알려져 있는데 저희가 재밌게 인문학화한 강좌였죠. 마니아적인 관심들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어떤 가치를 불러일으키며 어떻게 인문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를 살펴봤어요. ‘연애in문학’은 문학 속 연애를 다룹니다. 연애는 인류 역사에서 오래된 관심 분야잖아요? 외부 강좌 요청도 많고요. 의외였던 것은 한문 강좌가 큰 인기를 끌었다는 거예요. 누구에게나 학문의 기초에 대한 욕구가 잠재되어 있다는 걸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인문학협동조합은 설립 초기인 데다 모든 과정이 선례가 없기 때문에 하나하나 직접 만들어내고 준비해야 한다. 때때로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고 뒷감당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단체를 설립할 땐 생각뿐만 아니라 실천력도 담보돼야 하고, 현장에서 운영하기 위해서는 돈도 필요해요. 두 가지가 가장 힘들었죠. 자금이 풍부하지 않아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이 한 구좌에 10만원씩 출자금을 모아 시작했거든요. 이념을 좇는 운동조직이 아니라 합리적인 수익구조를 마련해 연구노동자의 자활과 협업을 추구하고 있어요. 수익을 만들어내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일정한 자본과 시간・노동・노력이 필요한데, 힘을 모으고 실천하는 것은 언제나 힘든 일이죠.”

이들이 인문학협동조합을 결성하고 운영하면서 난관에 부딪친 사건이 있었다. 2013년 12월 예정됐던 ‘지식 팔레트 2013’이 무산된 일이었다.

“지식 팔레트라는 대형 프로그램을 진행하려고 했어요. 간단히 설명하면 인문학 강좌판 판타스틱 영화제 같은 것이었는데, 예산을 지원하기로 했던 쪽에 문제가 생겨 프로그램이 무산됐어요. 가장 큰 위기이자 속상한 일이었죠. 하지만 올해 다시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이들은 협동조합의 자생적 힘을 가지고 프로그램의 규모와 관계없이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저희가 외부 지원에 의지해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 길들면, 조력자 없이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는 걸 느꼈어요. 우리 안에서 할 수 있는 걸 해내는 게 중요해요.”

인문학협동조합에서 최근 주목하고 있는 것은 인력개발이다. 글도 잘 쓰고, 현장 강의까지 잘하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난 10여 년 동안 여러 인문학 프로그램에서 뻔한 인물을 돌려막기 식으로 진행하던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인력개발에 힘쓸 생각이다.

“인력개발 없이는 협동조합의 미래를 기대할 수 없어요. 올해는 그러한 연구역량, 문화 프로그램 기획역량, 강의역량을 기를 수 있는 활동들을 좀 더 많이 할 생각이에요.”

조합원들은 상부상조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지식순환 라이브러리’라는 제도로 조합원들이 서로 책을 나눠 보고 ‘앎웨이way’를 통해 중고품을 경제적 가치로만 환원시키는 게 아니라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나누거나 교환할 수 있는 장치도 만들어놓았다. TED 강의 형식의 30분 길이 동영상 강의도 고려 중이다. 팟캐스트 형식의 ‘앎스트롱strong’도 론칭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이들은 사업을 시행하면서 감사할 사람이 많다고 말한다. 현재 조합원 70여 명 중 후원자 조합원으로 보직교수들이 많이 가입했고, ‘끼니’란 음식비평 협동조합과 푸른역사아카데미 역시 준비단계와 강의 진행단계에서 큰 도움을 주었다. 이들의 목표는 설립 목적에 맞는 활동을 하는 것이다.

“‘대학 이후(포스트대학시대)’ 지식생태계에 대응할 수 있는 모델을 준비하는 게 목표예요. 예를 들어 오덕후는 자생적 독학자의 놀라운 모델이에요. 우리 조합은 앞으로도 지식의 그림자 생태계를 조명하고 의미를 찾아내는 프로그램들을 만들려고 합니다.” 저희가 많은 대안이 나올 수 있는 기폭제가 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세 위원장은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부탁했다.

“인문학은 우리의 생활을 전면적으로 다루는, 우리 삶과 관계가 깊은 학문입니다. 우리 삶을 성찰하게 하고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할 수 있게 해줍니다. 고상하기만 한 학문이 아니지요. 인문학에 대한 터무니없는 오해나 잘못된 생각을 바꿔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2014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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