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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초를 통해 우리 민족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본초비담》으로 대한민국 콘텐츠대상 수상한
웹툰작가 정철

네이버에서 웹툰을 연재 중인 그의 책상은 여느 웹툰작가들의 책상과 다르다. 한가운데에는 컴퓨터가 아닌 붓이 놓여 있고, 그 주위에 먹물과 물감, 팔레트, 하얀 종이가 있다. 그는 마우스가 아닌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린다. 책상 위에 널린 원화들은 디지털로는 구현할 수 없는 아우라를 내뿜는다. 그렇게 탄생한 《본초비담》은 특유의 질감과 색채로 많은 이들에게 찬사를 받았고, 작화에 뒤지지 않는 뛰어난 이야기 구성과 전개로 지난해 대한민국 콘텐츠대상 만화부문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고조선을 배경으로 약초에 얽힌 여러 설화를 풀어내는 《본초비담》은 참으로 “우연한 기회에” 시작되었다. 어느 날 다리를 다친 그는 어릴 때부터 친구처럼 지낸 동네누나를 만났다. 누나는 본초학(약초학)을 전공한 한의사가 되어 있었고, 서로 안부를 묻던 중 갑자기 노트 한 권이 언급됐다.

“누님이 대학에서 제자들을 가르칠 때 해주던, 약초에 관한 옛날이야기를 손수 적은 노트였어요. 그걸 제가 뺏어 왔죠. ‘이거다!’ 하면서(웃음). 노트를 읽어보니 만화적 소재로는 무척 훌륭하지만 제가 그릴 준비가 안 된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6개월 정도 본초학 공부를 했습니다. 시대를 고조선으로 맞추고나서는 고증에 대해 또 몇 달을 투자했고.”

고조선은 우리나라 역사의 시발점이다.

고조선이 등장한 최초의 문헌은 사마천의 《사기》로, 중국의 연나라가 고조선을 침략했다는 몇 줄이 전부다. “한번쯤 가장 오래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그는 이 역사적 사실에 약초 설화를 엮으며 만화적 상상력을 발휘했다. 사료가 부족한 탓에 고증이며 모든 면에서 쉽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으로 이전 개관할 때 고고관의 설명화 작업에 참여한 적이 있어 자신 있었다.

그렇게 탄생한 《본초비담》은 1부 ‘형제와 호랑이’, 2부 ‘패수에 흘린 눈물’을 거쳐 현재 3부 ‘약초에 숨은 전설’이 연재되고 있다. 1부에 등장한 백호는 신령한 산군으로서 인삼을 상징하는 매개체다. 특히 작품 중반에 백호가 피를 뒤집어쓰고 적호가 되고, 그 분노에 눈발이 휘날리는 한겨울에도 몸에서 하얀 연기가 나는 장면은 몸을 보호해주고 열을 내는 인삼을 이미지화한 결과물이다. 그는 각 설화를 유기적으로 엮고 만화라는 틀을 최대한 활용하여 그 이야기를 전달한다.


《본초비담》은 약초백과는 아니다. 오히려 삶과 죽음을 그리는 비극이다. 특히 2부는 고조선과 연나라의 전쟁을 배경으로 많은 이들을 위한 일종의 진혼곡이다. 작품을 처음 구상할 때부터 마음에 둔 <공무도하가>가 그 진혼곡의 마지막 멜로디가 된다. 이를 통해 가장 한국적이고 가장 인본주의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홍익인간’이에요. 홍익인간은 널리 다 같이 잘살자는 이야기잖아요. 주변인에 대한 사랑과 애정, 관심, 포용, 관용 등 서로를 위하고 보호해준다는 메시지. 하지만 현재 한국사회는 그렇지 않죠. 경쟁주의와 약육강식이라는 시스템 아래서 사람들은 서로 치열하게 부딪치고, 그러면서 그 삶에 매몰되어 수동적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여기서 만화가의 역할은 무엇일까 항상 고민하는데,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위로’ 같습니다. 우리는 ‘딴따라’이고, 예술가로서 삶에 지치고 힘든 사람들의 거대한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위로해줘야겠죠. 저는 개그나 위트로 독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할 수 있는 재능은 없어요. 그러니까 잠시 머물러 소외된 사람들을 돌아보고 서로 위해주는 모습들을 표현하는 비극 작가로서 그 역할을 하려고 해요. 비트 있는 래퍼도 있지만 아리랑을 부르는 소리꾼도 있잖아요. 조금 느리고 불편하더라도 가슴을 동하게 하는 만화를 그리려고 합니다. 그것이 제 생의 이유겠죠.”

그는 올해 두 차례 작가로서 새로운 모험을 했다. 지난 1월 《본초비담》 1부 단행본을 자비로 서점 유통 없이 발간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소장의 가치’ ‘웹툰으로는 만날 수 없는 해상도’ ‘작가의 선물’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위해서였다. 책값은 3만4000원으로 꽤 높았지만, 450페이지 풀 컬러 양장본에 고유번호와 작가의 낙관·친필 사인이 들어간, 말 그대로 ‘걸작’이었고, 예약판매를 시작한 지 1주일이 조금 넘은 시점에 예약판매 수량 1000권이 완판되었다. 보통 만화책이 권당 7000~8000원인 것을 감안하면 5000부가량 판매된 훌륭한 성과다.


또한 그는 지난 2월 13일 프랑스 몽마르트 언덕 아래 위치한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그래픽노블의 고장 프랑스에서 내 작품으로 소통하고 싶었다”며 원화 42점과 파일럿 애니메이션을 가지고 갔다. 특별히 그자리에서 직접 그림을 그리는 드로잉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한인 교포와 유학생은 물론, 순수 독자와 출판관계자까지 50여 명이 참석했다. 현재 《본초비담》의 프랑스어 번역을 준비 중인 그에게는 무척 뜻 깊은 경험이었다.

“웹툰이 전시가 필요하냐는 태제부터 고민해야겠지만, 저처럼 수작업을 베이스로 하는 경우에는 웹으로 그 원화를 구현할 수 없는 한계가 있어요. 저와 같이 궤가 조금 다른 작품을 하는 작가들끼리 모여 어떤 흐름을 만든다면 오프라인에서 원화를 전시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전시문화가 발달된 프랑스에서 한번 도전해봤죠. 가능하다면 올해 안에 국내에서도 시도해볼 계획입니다.”

《본초비담》은 그 기반이 웹이라는 것을 빼놓고 보면 그래픽노블에 가깝다. 액터 중심의 컷 변화로 대사와 행동을 보이는 한국·일본식 만화와 달리, 현장과 상황을 조망하는 큰 그림을 배치하고 디테일 없이 툭툭 던지는 이미지로 독자의 상상을 추동하는 방법론을 쓰고 있다. 웹툰의 주 독자층인 청소년들에게는 관심을 받지 못할지언정 성인들에게는 뛰어난 작품성으로 인정받았다.

“어떤 주제가 있으면 그걸 공부하는 것도 제겐 유희예요.” 전작인 《선산아라리》도 결혼 1주년 여행으로 들른 흑산도에서 우연히 사진작가 이영일씨를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이를 위해 《자산어보》를 보며 물고기를 탐구했고, 저자인 정약전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흑산도 지역에 대해서도 공부했다. 그에게 다음 주제를 물었더니 “SF가 될 것”이라고 귀띔한다.

“전혀 다른 작품이 될 거예요. 저는 언제나 분위기를 확 바꾸거든요. 그림풍도 바꾸고. 메시지도 확 바꿔서 굉장히 투쟁적인 만화가 될 거예요.”

글 류동연 / 사진 하지영
  • 2014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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