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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석 달 전, 내가 하고 싶은 일들

[나의 버킷리스트 릴레이] 이영돈 PD

누구나 죽는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는 언젠가는 그 생명을 다하고 사라진다. 그것은 진리다. 일전에 죽음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든 적이 있다. 그 다큐는 이렇게 시작한다. 대학교 3학년 남녀 한 명씩을 관에 넣어서 장의차로 공동묘지까지 운반하고 땅에 묻고 봉분을 했다. 물론 가느다란 관을 통해 공기가 통하게 했는데, 이게 지상과의 유일한 통로였다. 5시간 이상 땅에 묻혔다가 깜깜해진 다음에야 꺼내놓았다. 형식적으로는 죽었다 살아난 것이다. 그들은 죽음(?)의 느낌을 이렇게 말했다. “햇볕을 보고 하늘을 보고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죽음을 얘기하라고 했는데 삶을 얘기한 것이다. 누구나 죽음을 싫어한다. 왜냐하면 사는 것이 본능이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3개월 후에 반드시 죽는다면 나는 무엇을 절실히 하고 싶을까.


1 반성 (첫 2주)

살면서 맘을 아프게 했던 사람 5명을 차례로 만나 내 맘을 모두 열고 잘못을 빌고 그들의 용서를 구하고 싶다. 죽음을 앞둔 내가 그들에게 못 할 말이 무엇이 있을까? 당시 하고 싶었어도 체면 때문에 혹은 나 자신에게 어떤 해가 될까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 이제는 맘 놓고 울면서 웃으면서 하고 싶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하지 못했던 이야기, 그래서 내 맘을 처절히 우울하게 했던 그 이야기를 쏟아놓고나면 큰 스트레스가 해소돼 3개월보다 더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2 혼자 해외 여행하기 (그다음 2주. 한 달이 흘렀다)

누구와도 동행하지 않고 철저히 혼자서 파리와 런던의 뒷골목을 거닐고 싶다. 아무 생각 없이, 아무런 논리적 흐름 없이, 배고프면 밥 먹고 목마르면 물 마시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그냥 1주일만 살고 싶다. 시간과 계획에 구애받지 않고 멍하니 살고 싶다. 머무는 동안 파리에서는 인터컨티넨탈 팰리스 르 그랜드 호텔(Intercontinental Palace Le Grand Hotel), 런던에서는 런던 리츠 호텔(London Litz Hotel)에서 이틀씩 묵고 싶다. 화려함의 극치 속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멍하니 쉬고 싶다.


3 아무 일 없는 듯 정상적으로 생활하기 (그다음 한 달. 두 달이 흘렀다)

아주 평범하게 아무 일 없는 듯이, 마치 앞으로 30년은 더 살 듯이, 그래서 죽음이 무엇인지 생각할 필요도 없이 가족과 친구와 일과 같이 지낸다. ‘죽음아, 무슨 일 있니?’ ‘삶아, 아무 일 없는 거지?’ 짜증도 내고 다시 열정적으로 살아간다. 아무도 나를 동정하지 마라. 난 아무 일도 없어. 그동안 살아온 것처럼 돈도 아끼고, 때로는 늦잠도 자고, 때로는 친구들과 폭음도 하고, 욕도 하면서 살 거다. 그렇게 살다가 평범한 날의 마지막 날 가족과 함께 평범하지 않은 식사를 하고 싶다.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재산을 정리하면서 유서를 공개할 것이다.


4 정말 하고 싶은 일만 한다 (마지막 한 달)

아무 근심 걱정 없는 여자와 사랑을 한다. 앞일 걱정없이 사랑만 생각하고 그녀의 눈만 바라보며 1주일을 지내고 싶다.

가장 싫어했던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욕을 해준다.

정말 하고 싶었던 말. 내 가슴을 멍들게 했던 그 사람에게 시원하게 욕을 해준다.

그러고난 다음 빨간색 람보르기니를 타고 바닷가 절벽을 전력 질주해 바다로 추락한다. 그 찰나 같은 순간에 난 미소를 지을 것이다. 태어난 것을 후회하지 않으며, 다시 무엇인가로 태어나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만났던 사람과 생명들에 감사하면서 그렇게 사라지고 싶다.


수많은 개체가 사는 지구는 한 개의 개체가 사라진다고 해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인간만이 죽음에 대한 의미를 만들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의미는 생명체의 존재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허공을 떠다니는 개별 죽음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런 아쉬움이 의미 없는 의미를 남길 뿐이다. 개체의 성공은 매일매일의 삶에 있다. 생존을 위한 삶. 죽지 않고 사는 개체의 삶. 거기에 열정을 얹으면 의미가 된다. 우리가 매일매일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생존해 있기 때문이다. 나의 버킷리스트는 그렇게 의미 없는 죽음에 대한 기록이자 열정적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다음 버킷리스트는 이기주 작가가 이어갑니다.
  • 2014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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