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신〉 박찬경 감독

“만신 통해 한국 현대사와 치유 그렸다”

미디어아트 예술가 박찬경 감독이 영화 〈만신〉을 들고 관객을 찾았다. 이전에도 장편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 단편 〈파란만장〉 〈청출어람〉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 그이지만 극장개봉 영화는 처음이다. 영화 〈만신〉은 무당 김금화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드라마로, 김금화의 삶을 통해 한국 현대사와 치유의 이야기를 그렸다. 서로 다른 나이대의 김금화를 문소리, 류현경, 김새론 세 여배우가 나누어 연기한다. 3월 6일 영화 개봉을 앞두고 사당동의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만난 박찬경 감독은 여느 입봉감독처럼 긴장한 듯했다. 그의 얼굴에서 복합적인 감정이 읽혔다.

박찬경 감독은 김금화 만신(큰 무당이라는 뜻)의 자서전 〈비단꽃 넘세〉를 읽고 그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국학에서는 굿을 모든 예술의 원형으로 보고 보존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반면, 대중의 인식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대중 매체는 무속 신앙의 신비한 측면만을 다루기 일쑤였다.

김금화 만신의 일대기도 그 자체로 매력적이었다. 김금화 만신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6‧25 전쟁을 겪으며 한국 현대사의 소용돌이를 고스란히 지켜본 역사의 산증인이었다. 그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들면 그것이 곧 한국 현대사의 발자취를 담은 것과 다름없을 거란 판단이 섰다. 그 중에서도 박찬경 감독의 마음에 가장 깊이 남은 것은 천대받던 어린아이가 슬픔을 딛고 일어나 큰 무당으로 자리하기까지의 과정이었다. 그것은 잔혹사이면서, 동시에 승리사였다.

“김금화 선생님은 현대사를 온 몸으로 살아온 분이에요. 현대사의 핵심에서 사회와 대결하면서 시련을 헤쳐 나가셨죠. 무당은 가장 천시되는 존재였으니까요. 어린 아이가 걸립(내림굿을 받을 신애기가 마을을 돌며 쇠와 쌀을 모으는 것)을 하러 돌아다닐 때 구박하던 마을 사람들이, 아이가 쇠 있는 곳을 짚어내자 태도를 180도 바꾸며 ‘아이고, 오셨습니까’ 하거든요. 그때부턴 무당으로 인정을 하는 거죠. 그렇게 멸시받던 분이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씻어주고, 인간문화재까지 된다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무속의 기본적인 윤리는 용서예요. 그 양반 첫 번째 책 제목도《복은 나누고 한은 푸시게》고요. 단순한 얘기 같지만 사실 그게 어려운 거잖아요(웃음).”


박찬경 감독이 무속 신앙에 관심을 가진 것은 5~6년 전부터였다. 그때 그는 인생의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계획한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고, 건강도 나빠졌다.

“의지할 데를 찾다가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된 거죠. 그때 제게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그로부터 10년 전쯤 본 계룡산의 이미지였어요. 만사 제쳐두고 계룡산에 갔죠. 가자마자 ‘아, 내가 여기 오려고 그랬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저 나름대로는 영적인 체험이었어요. 그 일을 계기로 무속 신앙에 관한 자료도 찾아보고, 책도 읽어보고, 조사도 했어요. 그 안에 한국 현대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중요한 키워드들이 있더라고요.”

박찬경 감독은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신도안〉이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1960~1970년대 계룡산 신도안에서 명멸했던 토속 종교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무속에 대한 관심은 이후에도 〈파란만장〉 〈청출어람〉 등을 통해 이어졌다.


“사실 무속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게 더 이상해요. 문화콘텐츠, 문화콘텐츠 하면서 눈앞에 있는 풍부한 문화적 유산을 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지 답답하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보존하고, 기록하고, 그 상상력을 새로운 문화로 만들어내는 거거든요. 저는 앞으로도 무속 신앙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데 기여하고 싶어요. 미술 작품이나 사진 작업을 통해서도 할 수 있고, 기회가 된다면 다른 만신에 대해서도 기록해 보고 싶고요. 그나저나 사람들이 차에 왜 오방색을 안 쓰는지 모르겠어요. 오방색 차는 왜 없는 거지?(웃음)”

박찬경 감독은 김금화 만신의 열혈 팬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김금화 만신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선생님은 우리가 좋아하는 마돈나, 피나 바우쉬처럼 타고난 천재예요. 굿의 천재요. 남의 고통을 이해하고, 타인의 감정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전문가이자, 굿을 할 때는 엄청난 카리스마를 가진 신의 딸이죠. 대단한 미인이기도 하고요. 기억력도 좋으셔서 오래전 일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세요.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문서(무당이 머리와 몸으로 익혀 전승하는 지식과 기예)를 공개한 것도 선생님이에요. 공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무속 신앙을 연구조차 할 수 없었겠죠.”

지난 2월 18일 〈만신〉 기자간담회에서 박찬경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이 영화는 무속에게 바치는 헌사로도 볼 수 있다. 천경자 화가의 말에 따르면, 1930년대에 굿 보러 간다고 해서 따라갔더니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는 종합예술로서 굿의 가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만신 김금화

1931년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났다. 위안부 소집을 피해 14세에 시집을 갔지만 시댁의 구박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쳤다. 이후 신병에 시달리다가 17세에 내림굿을 받았다. 6·25 당시에는 첩보활동을 한다는 누명을 쓰며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고, 1970년대에는 새마을 운동의 일환인 ‘미신타파’로 갖은 핍박을 견뎌야 했다. 1982년 한·미 수교 100주년 기념 문화사절단으로 첫 해외 공연을 한 이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철물이굿, 만수대탁굿, 배연신굿, 진오귀굿 등 모든 굿에 뛰어난 재능을 보유한 종합예술가로,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 2014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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