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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웃어줘 라오스, 동남아 소수민족 치위생 교육

치카치카 프로젝트 활동가 오동준

부처와 같은 온화한 사람들의 미소, 세속적인 것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혼의 가치, 느긋하고 여백이 많은 삶, 바보 같은 친절함, 수줍게 웃는 아이들, 내 친구 아룬 형, 탈탈거리는 오토바이 소리, 소란함을 뒤덮는 고요한 풍경. - 《하얗게 웃어줘 라오스》 중에서

사진제공 : 오동준
그를 만난 것은 그가 라오스 루앙남타로 떠나기 하루 전날이었다. 이번 여정은 ‘치카치카 프로젝트’의 네 번째 이야기. 준비는 다 끝났느냐고 묻자 칫솔·치약과 교육용 인형은 현지로 이미 보냈고, 짐 싸는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밤을 새야 할 것 같다며 짐짓 피곤한 표정을 지었지만 귀찮아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오랜만에 ‘고향’에 가는 거라 무척 설레는 듯 보였다.


그가 라오스와 연을 맺은 것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은 폐지된, 군복무 대체 코이카 국제협력요원으로 라오스를 처음 방문했다. 라오어로 ‘별’이란 뜻을 지닌 ‘다오’라는 이름을 가지고 그가 파견된 곳은 수도 비엔티안에서 150km가량 떨어진 방비엥. 유명 관광지라지만 5km만 나가면 비포장도로에 먼지가 풀풀 날리고 야생동물을 쉽게 볼 수 있는, 영락없는 시골이었다. 전기며 물이며 무엇 하나 풍족하지 않지만 그는 그곳을 “고향”이라 부른다.

“방비엥 사람들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좋아요. 서울에서 나고 자라 도시와 문명에 길들어 있기 때문에 자연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거겠죠. 실제로 방비엥에 가면 제가 ‘어머니’ ‘아버지’라 부르는 분들도 있고, 둘도 없는 친구도 있어요. 방비엥은 제 고향이에요.”


그가 지난해 발간한 《하얗게 웃어줘 라오스》에는 777일간 그가 라오스에서 보고 만나고 느꼈던 모든 것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상과 여행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고, 모두 아름다운 인연이 되어 시간을 함께했다. 특히 아이들과의 추억은 각별하다. 그는 방비엥중학교 역사상 최초의 체육 선생님이었다. 그는 본업인 특수체육교사의 이점을 살려, 체육 수업은 난생처음 받아본다는 아이들을 데리고 땡볕과 흙먼지 속에서 함께 뛰어놀았다. 직접 사진을 찍고 출석부를 만들어 아이들의 이름을 외웠고, 작은 체육 실습장을 만들기 위해 아이들과 돌을 날랐다. 불법 복사가 판치길 기원하며 부족한 라오어 실력으로 50쪽짜리 체육교재도 만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는데, 책에서는 편집하면서 빠졌어요. 소수민족인 몽족 소녀 쭈아는 라오어가 모국어가 아닌데도 반에서 꾸준히 5등 안에 드는 똑똑하고 예의 바른 학생이었어요. 시내에서 떨어진 몽족 마을에 살았는데 그쪽 마을로 갈 때마다 안내도 해주고 몽족어와 문화도 알려주었어요. 그런 아이가 여자라는 이유로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집에서 반대했어요. 원하는 학교는 들어갔는지, 들어갔으면 졸업할 때가 되었는데, 한번 보고 싶네요.”


라오스와의 인연은 그걸로 끝일 수 있었다. 하지만 우연히 한국인 의사에게서 들은 라오스 아이들의 치­위생 실태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자연에서 나는 음식을 먹던 아이들이 중국에서 값싸게 넘어온 불량식품과 콜라에 길들면서 치아와 잇몸이 상하고 있었다. 6~7세 아이들은 가벼운 칫솔질에도 잇몸에서 피가 났다. 전통적인 방식의 구강 관리법은 아이들의 치아를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했다.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은 그나마 도시에서 태어나 괜찮은 가정에서 자라 나은 편이었지만, 문제는 산속 깊은 곳에 사는 소수민족 아이들이었다. 그는 아이들의 하얀 미소를 지켜주고 싶었다.

코이카 활동은 2010년 끝났지만 그는 귀국행 비행기에 탑승하지 않고 라오스에 남았다. 그리고 사비를 들여 칫솔 800개와 치약 200개를 마련해 떠났다. 치카치카 프로젝트 첫 번째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는 라오스 카시 및 푸쿤 지역의 7개 산간 소수민족 마을을 돌며 칫솔과 치약, 의약품을 건네주고 양치질을 설명해주었다. 처음에는 낯선 이방인을 경계하던 마을사람들도 점점 그를 반겼다. 이후 치카치카 프로젝트는 2012년 라오스 루앙남타, 2013년 파키스타 펀잡을 거쳐, 올해 다시 라오스 루앙남타에서 진행되었다. 지난 4년간 총 8500여 개의 칫솔과 3700여 개의 치약이 아이들 손에 쥐어졌다.


“산간마을에 들어가면 거의 무너져가는 초등학교가 하나씩 있어요. 공터는 산만하니까 그나마 아이들을 집중시킬 수 있는 공간이죠. 아이들을 스무 명 정도 모아놓고 칫솔을 한 자루씩 쥐여준 후 자진해서 앞으로 나온 아이에게 양치질 방법을 일러주고 선물을 줘요. 퀴즈도 내고.

어머니를 교육하는 것도 중요해요. 어머니만 치아관리법을 잘 알아도 한 가정에 있는 4~5명의 아이들이 양치질을 배우니까요. 보통 여성은 마을 밖으로 나갈 일이 없어서(남자가 필요한 것을 사오기 때문에) 외지인에 관심이 많아요. 그 관심을 잘 이용해야 해요(웃음).”

파키스탄 펀잡 카람사 스쿨.
그는 라오스 현지전문가를 꿈꾼다. 효율적인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현지전문가는 필수적이다. 객관적인 판단으로 가장 도움이 필요한 곳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현지전문가의 수가 많지 않고, 그러다보니 대다수 봉사활동이 원래 하던 곳에서 계속 진행되거나 선교사가 가는 지역에 한정되는 경우가 많다. 더 가난하고 어려운 마을에 대한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가 이번에 루앙남타를 다시 찾은 까닭 역시 그가 가장 잘 아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전에 1주일간 사전답사를 하며 그 지역에서도 어떤 마을에서 교육을 하는 것이 좋은지 살펴보지만, 제가 현지전문가라면 도움이 더 필요한 곳에서 효율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코이카나 다른 국제협력단체들의 활동도 도와줄 수 있고.”


그는 조금 더 의미 있는 삶, 깨어 있는 삶, 창조적인 삶을 꿈꾼다. 그 삶의 구체적인 표상은 무엇일까? 라오스 현지전문가일 수도,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일 수도 있다. 치카치카 프로젝트가 더욱 커져 국제구호활동가가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지금처럼 특수체육교사를 계속할 수도 있다. 정해진 것은 없다. 꿈을 찾는 그의 여정은 현재진행형이다.

“어른들은 열이면 열 왜 임용시험 안 보느냐고 물어보세요. 학교와 사회가 안정을 요구하잖아요. 그래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공무원 시험에 목매고 있고. 교직이란 신성한 것인데 목적과 수단이 전위되어 단지 안정을 위한 돈벌이 수단으로 보려고 하는 실태가 너무 안타까워요. 잠시 교직을 떠날 생각도 하고 있어요. 모두 불확실한 미래라며 안정을 외치지만, 미래는 미래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목적이 명확하다면 꿈이 교사든 다른 무엇이든 살아 숨 쉬고 있는 바로 지금이 가장 뜨거운 날들이니, 용기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라오스 루앙남타 쑤완야 마을(몽족).
그는 이미 꿈을 이루었는지 모른다. 매년 치카치카 프로젝트를 통해 그는 자신을 발견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것을 보고 들으며 배운다. 배움을 통해 그의 삶은 더욱 확장된다.

지난 2월 초 라오스에서 2주간의 활동을 끝마치고 돌아온 그와 연락했다. 이번 네 번째 프로젝트는 잘 마무리되지 못했다. 루앙남타 전 주지사와 교육청장 등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지만, 공안의 반대로 기증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소식을 전했다. 칫솔과 치약은 보건청에 보관하고, 검사가 끝나면 이번에 선정된 마을의 이장들이 와서 직접 가져가기로 했다. 그는 “코이카 요원이었을 때는 몰랐는데 이번에 라오스가 일당독재국가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며 착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만큼 치카치카 프로젝트를 향한 욕구는 더욱 절실해졌다. 라오스와 햇수로 7년, 치카치카와 5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에 다시 만난 그의 책 표지모델 분텅은 그새 훌쩍 자랐고, 그도 나이가 서른이 넘었다. 변하지 않은 것은 그들의 환한 미소.

그 미소를 지켜주기 위해 치키치카 프로젝트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를 응원한다.
  • 2014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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