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세계 / 라디오구성작가

맛깔스러운 대본으로 청취자에게 위로와 웃음을 주다

글 : 박소영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라디오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우울한 날, 가만히 라디오를 켜고 흘러나오는 음성을 듣고 있으면 누군가 가까이에서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 같다. 라디오에는 웃음도 있다. 코믹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사연, 포복절도할 에피소드가 전파를 타고 흘러나온다. 사람들의 사연엔 저마다의 인생이 녹아 있고, 라디오는 그것들을 담아낸다. 라디오작가는 바로 그런 라디오 프로그램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끌어가는 사람이다.
라디오작가는 일반적으로 구성작가라고 불린다. 원고를 쓰는 것뿐 아니라 프로그램도 구성하기 때문이다. 한 프로그램은 보통 작가 서너 명이 함께 맡는데, 오프닝(opening), 코너(corner), 클로징(closing) 등으로 나누어 원고를 쓴다. 방송 중 DJ가 해야 할 애드리브까지 모두 작성하는 것을 ‘통원고를 쓴다’고 하는데 이런 경우는 많지 않다. 작가가 큰 틀을 잡아주면, 거기에 DJ가 애드리브로 자기의 색을 입힌다.

라디오작가가 되려면 무엇보다 글을 쓰는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 라디오 프로그램은 365일 쉬지 않고 방송되기 때문에 작가 역시 쉬지 않고 원고를 써야 한다. 라디오 원고는 말로 표현하기 위한 글이기 때문에 구어체로 짧게 쓴다. DJ의 말투에 맞게 작성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라디오작가들은 대부분 DJ를 ‘머릿속에 그리며’ 작업한다.

라디오작가는 프로그램에서의 역할에 따라 메인 작가와 서브 작가로 나뉜다. 서브 작가는 메인 작가를 도와 원고를 작성한다. 제작 인원이 많은 프로그램에서는 서브 작가를 세컨드 작가와 서드 작가로 나누기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서브 작가로 입문해 일정 기간 동안 일한 후 메인 작가가 된다. 서브 작가의 경우 원고 작성 이외에도 사연 정리, 홈페이지 게시판 관리, 선곡표 업데이트 등 다양한 일을 한다.

작가는 방송국 직원이 아닌 프리랜서다. 출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저녁 프로그램을 맡은 작가라면 오전 시간은 비교적 여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DJ나 게스트의 스케줄 문제로 생방송이 불가능할 때는 사전 녹음을 하기도 한다.

라디오작가는 대부분 방송사 아카데미나 작가협회 연수원을 통해 선발한다. 작가를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에서 아카데미에 의뢰해 추천을 받아 선발하는 것이다. 먼저 활동하고 있던 사람의 소개로 입문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라디오의 경우 TV에 비해 프로그램 수도 많지 않고, 프로그램이 한번 전파를 타면 비교적 오랜 기간 방송되기 때문에 인력 수요가 적은 편이다.

라디오작가 중에는 여자가 많다. 시사 프로그램, 콩트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남자 작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라디오라는 매체를 소비하는 사람이 대개 여자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어릴 적 라디오를 듣고 자란 사람들이 라디오작가를 꿈꾸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여성 특유의 섬세하고 감성적인 면이 라디오작가라는 직업에 적합하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모든 방송 프로그램이 그렇듯 라디오 역시 협업이 중요하다. 대개의 경우 원고는 작가의 몫, 선곡은 PD의 몫, 진행은 DJ의 몫이다. 그러나 때로는 작가가 선곡을 하기도 하고, DJ가 원고를 쓰기도 한다. 청취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라디오는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모여드는 장이다. 청취자가 양질의 사연을 보내면 방송의 질 역시 그만큼 높아진다. 다시 말해 원고, 음악, 청취자의 사연에 DJ의 매끄러운 진행 실력이 더해져야만 완성도 있는 방송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FM 음악도시 성시경입니다〉 구성작가 장문경


이번 달 〈topclass〉는 인기 프로그램 〈FM 음악도시 성시경입니다〉(이하 <음악도시>)의 장문경 작가를 만났다. 장 작가는 올해 서른네 살이지만 어느덧 15년차에 접어든 ‘중견 작가’다. 2000년 4월 일을 시작해 당시 ‘최연소 작가’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2011년 6월부터 <음악도시>를 맡고 있다.

라.디.오.
초등학교·중학교 시절 가장 친한 친구는 라디오였다. <여성시대> <싱글벙글쇼> <별밤> 등 모든 라디오 프로그램을 가리지 않고 들었다. 사연도 꽤 많이 보냈다. 라디오가 아니면 음악을 들을 기회가 없었기에 라디오에 더 빠졌던 것 같다. 당시 취미 중 하나는 라디오 DJ의 내레이션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었다.

음.악.
음악은 삶의 활력소이자 치료제다. 어릴 적부터 음악을 달고 살았고, 지금도 그렇다. 연주만 듣고도 기타리스트가 누구인지, 드러머는 누구인지를 알 정도였다. 취향은 비주류에 가까웠다. 또래가 좋아하는 음악보다는 언니들이 듣는 음악을 주로 들었다. 윤종신, 전람회, 화이트는 학창시절 가장 좋아했던 뮤지션이다. 이문세씨와 함께 일하면서 팝에도 눈을 떴다. 막내 작가 때 가장 행복했던 것 중 하나는 CD를 주는 뮤지션이 많아졌다는 사실이었다.

책.
고등학교 때 도서부에서 활동했다. 그때 책을 가장 많이 읽었다. 지금도 책을 안 읽으면 불안하다.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김연수 작가의 열혈 팬이다. 그의 모든 책을 다 읽었다. 지금도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을 가지고 다니면서 틈날 때마다 읽는다. 그에게는 문제를 비틀어 생각하는 힘이 있다. 후배들에게 김애란 작가의 《비행운》도 자주 추천한다.


메.모.
책을 읽다가 좋은 글귀를 발견하면 바로바로 필사해둔다. 그렇게 메모한 수첩이 벌써 여러 권이다. 수첩과 펜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책을 못 읽는다. 책을 그냥 읽다가 덮으면 그 좋은 글귀가 사라져버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메모한 글들은 처음엔 머릿속에 남고, 나중엔 마음에 남는다. 이것들이 언젠가는 또 다른 자산이 될 거라고 믿는다.

성.시.경.
시경이는 똑똑한 DJ다. 시경이의 가장 큰 장점은 화술이 뛰어나고, 목소리가 좋다는 것이다. 같은 원고를 읽어도 누가 읽느냐에 따라 원고의 질이 달라지는데, 시경이는 100점짜리 DJ다. 뮤지션이기 때문에 음악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다. 시경이는 앞과 뒤가 똑같은 사람이다. 주위 사람을 잘 챙기며 인간적인 매력도 넘친다.

슬.럼.프.
중간에 1년을 쉬며 기업에서 일했다. 당시에는 ‘라디오작가가 진짜 내 길인지’ 고민을 많이 했다. 지금도 그런 고민을 안 하는 건 아니다. 글이 안 써지는 날이면 내게 재능이 있는지 자연스레 반추해보곤 한다. 막내 작가였을 때 선배들을 보며 ‘저 정도 연차가 되면 원고도 금방 써지고 일도 편해질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선배들이 많이 힘들고 외로웠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선배들을 좋아하게 되는 것 같다.

직.업.병.
모든 프로그램을 분석하면서 보고 듣는다. 저 프로그램 작가들은 힘들겠다, 이건 편집 실수다, 팀워크가 좋은 것 같다 등등. 사람을 만나는 폭이 좁아진다는 단점도 있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과는 생활 패턴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새로 만나기가 힘들다.

글.
학창 시절 글쓰기 대회에 나가면 항상 상을 받았다. 돌이켜보면 그때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하다못해 메모를 끼적이는 것도 좋아한다. 평생 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 나 혼자를 위한 글이 아닌,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글이라면 좋겠다.
  • 2014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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