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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기획은 물론 서비스와 고객 관리까지 책임지는 게임계의 수퍼맨

직업의 세계 / 게임기획자

매일 눈이 벌게지도록 게임에 빠져 살지만, 정작 게임이라는 단어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사전의 도움을 빌렸다. 사전은 게임이라는 단어를 두고 “규칙을 정해놓고 승부를 겨루는 놀이”라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에 따르면 어릴 적 동네 아이들과 하던 얼음 땡 놀이도, 봄부터 늦가을까지 사람들의 가슴을 흔들어 놓는 프로야구도, 명절날 친척들끼리 모여 심심풀이로 즐기는 고스톱도 모두 게임의 범주에 포함된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규칙이 있고, 규칙에 따라 승패가 갈리며, 한바탕 재미나게 놀 수 있는 것을 통틀어 게임이라 부른다.

그러나 게임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떠오른 것은 컴퓨터나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캐릭터들이었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RPG 게임인 ‘리그 오브 레전드’(일명 ‘롤’)는 초등학생 조카와 직장인 삼촌을 팀이라는 끈끈한 이름으로 묶어놓았다. 출퇴근 시간대의 지하철은 ‘스마트폰 게임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고개를 숙인 채 게임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눈과 손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최고 기록이라도 달성했는지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스윽 올라가는 모습도 보인다.

팍팍한 일상에서 사람들을 웃음 짓게 하는 게임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게임의 역사는 자신만만한 표정의 게임기획자가 들고 있는 한 묶음의 종이뭉치에서 시작된다. 게임기획자는 게임의 특징과 진행 흐름 등을 담은 게임기획서를 작성해 개발회의 시간에 발표한다. 회의를 거쳐 신선하고 사업성 있는 아이디어라고 판단되면 본격적인 개발 작업에 들어간다.

개발 작업은 한 게임의 개발을 총괄하는 게임PD를 필두로 게임기획자, 프로그래머, 그래픽 디자이너가 함께 진행한다. 프로그래머는 게임기획자가 기획한 내용을 기계언어로 변환시켜 프로그램으로 구현하며, 그래픽 디자이너는 게임 캐릭터와 아이템 등을 디자인한다. 게임기획자는 대상 연령층과 게임 난이도, 캐릭터의 역할, 스토리 전개 등 기본적인 틀을 먼저 정한 후, 각 장면의 시나리오나 캐릭터의 대사 같은 세부적인 부분을 하나씩 다듬어나간다. ‘QA’라 불리는 품질보증 부서의 검증 절차, 홍보팀의 홍보전략 논의까지 거치고나면 비로소 게임은 세상 밖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와 사용자와 만나게 된다.

영미권에서는 게임기획자를 ‘게임 디자이너’라 부른다. 게임 디자이너가 계획을 세워 게임을 설계하는 직업을 의미한다면, 한국의 게임기획자가 하는 일은 그보다 훨씬 많다. 주 업무인 기획은 물론 게임이 제대로 실행되는지 확인하는 서비스 관리, 마케팅 전략 수립, 출시 후 이용자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고객 관리 업무에 이르기까지 게임기획자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게임기획자는 자신이 만드는 게임을 늘 예의주시하는 엄마이자, 게임에 문제가 생길 때면 언제든지 달려가는 수퍼맨 같은 존재다.

게임기획자는 기획뿐만 아니라 프로그래밍, 디자인, 마케팅 등 각 분야의 기본적인 사항을 모두 알고 있어야 한다. 현장에서 경험을 쌓은 프로그래머나 그래픽 디자이너가 게임기획자로 전향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게임 기획은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일이므로 논리력과 문장력도 중요하다. 사용자의 수, 게임 점유율 등의 수치를 많이 접하게 되므로 수리·통계적 지식을 갖추고 있으면 유리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이 좋다.

현직 게임기획자들은 다양한 경험 중에서도 게임을 직접 만들어보는 것이 가장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게임이 아니더라도 영화나 소설, 시나리오 등 창작의 전 과정을 미리 경험해보는 것이 좋다. 단순히 게임을 즐기는 데서 나아가, 게임이 재미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분석해보는 노력도 필요하다.

게임기획자들의 학문적 배경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게임콘텐츠학과나 게임공학과 같은 게임관련학과 출신부터 컴퓨터공학·시각디자인은 물론, 문예 창작학·영화학을 전공한 게임기획자도 있다. 중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게임업계에 진출하기도 한다.

2013년 11월, 한국은행이 발표한 조사 결과가 놀랍다. 우리나라 게임의 지적재산권 수입이 방송·영화·엔터테인먼트 등의 한류산업을 모두 합친 것보다 5배 이상 많다는 것이다. 세계 곳곳의 이용자들이 게임을 통해 한국을 만나고 있다.

이번 달 〈topclass〉는 두 명의 게임기획자를 찾았다. 스마트폰 게임 ‘돌아온 액션퍼즐패밀리’를 만든 이종기·정우민이다. 이 게임은 2013년 11월 출시되어 카카오톡 인기 순위 1위를 지키고 있다. 컴투스 회의실의 유리창 너머로 두 사람이 마주 보며 키득키득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출시 이후 야근이 생활화되었다며 충혈된 눈을 연신 비볐지만, 그들의 웃음에서는 피곤 대신 활기가 묻어났다.





게임기획자 이종기

중학교 2학년 수업시간, 내 눈은 교과서 아래에 감추어 둔 휴대전화를 향해 있었다. 게임을 한 번이라도 더하기 위해서였다. 휴대전화가 없어 친구의 휴대전화를 빌려 틈틈이 게임을 했다. 손바닥보다 작은 화면 안에는 무궁무진한 세계가 있었다. 1년이 지나 내 휴대전화를 갖게 되면서 게임 마니아가 되었다. 새로 출시된 게임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섭렵했다. 휴대전화 요금 38만원이 찍힌 고지서를 발견한 부모님께 잔뜩 혼쭐이 나고서도 ‘게임앓이’는 계속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 학교를 그만두고 인터넷 게임개발 커뮤니티를 통해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2007년 컴투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선배들을 졸졸 쫓아다니며 게임개발 기술을 익혔다. 품질보증을 담당하는 QA 부서를 거쳐 현재 ‘돌아온 액션퍼즐패밀리’의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습.관.
휴대전화를 손에 꼭 쥐고 다니는 습관이 있다. 틈틈이 스마트폰 게임을 하기 위해서다. 스마트폰 게임시장은 빠르게 변한다. 변화하는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매일 인기 게임을 살피고, 직접 해보아야 한다. 단순한 이유도 있다.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즐길 때면 한껏 신이 나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휴대전화는 메모할 때도 유용하다. 아이디어는 불현듯 나타났다 삽시간에 사라지고 만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 순간 재빨리 기록해야 하는 이유다. 게임개발팀의 회식자리에서는 의도치 않게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많이 나온다. 하루 중 대부분을 게임과 함께 보내는 사람들이기에 자연스레 화제는 게임이 되고, 평소 만들고 싶던 게임을 장난스럽게 이야기하게 된다.
게임회사에서 아이디어 제안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영역이지만, 놓치기 쉬운 아이디어를 기록해 기획으로 구체화하는 것은 기획자의 몫이다. 괜찮다 싶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냉큼 휴대전화 메모장에 받아 적고, 다음날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실행해본다. 프로그래밍한 게임을 아이디어를 낸 장본인에게 보여주면 ‘내가 이런 아이디어를 냈어?’ 하며 놀랄 때가 많다. 그럴 때면 피식,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비.밀.병.기.
내 컴퓨터에는 비밀병기가 숨어 있다. 재미가 덜하거나 사업성이 높지 않다는 이유로 개발이 중단된 게임들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스마트폰 게임이 출시되지만, 이용자를 만날 기회를 얻지 못한 게임의 수는 그보다 훨씬 더 많다. 게임개발이 시작되면 기획자와 프로그래머, 그래픽 디자이너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작업에 매달린다. 야심차게 개발한 게임이 빛을 보지 못하고 도중에 사라질 때는 팀원 모두가 쓰디쓴 좌절을 맛본다. 사랑하는 이에게 버림받은 듯 가슴이 아려오기도 한다.
이번에 기획을 맡은 ‘돌아온 액션퍼즐패밀리’는 10개의 미니게임으로 구성되어 있다. 출시 후 한 달에 한 개씩 새로운 게임을 추가할 계획이다. 미니게임 개발로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컴퓨터를 켜 비밀병기가 담긴 파일을 열어본다. 지금은 어설퍼 보이지만,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며 완성도를 더하다보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미니게임으로 재탄생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재.미.
게임기획자가 되었을 때 마냥 기뻤다. 원하는 게임을 마음껏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게임과 이용자들이 즐기는 게임 사이에는 거리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 거리를 점차 좁혀가는 것이 게임기획자의 과제다. 이용자들과 내가 재미로 통하는 순간을 기다리며 텅 빈 기획서의 한 줄을 채운다.


게임기획자 정우민

다섯살 때, 전자기기에 관심이 많으신 아버지가 컴퓨터를 사오셨다. 컴퓨터 앞에 앉아 마음대로 자판을 두드리자 귀엽게 생긴 캐릭터가 컴퓨터 화면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이것이 게임이라는 사실은 시간이 한참 지나고서야 알았다. 어렸을 때부터 게임은 나에게 최고의 놀이였고,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막연한 꿈을 품고 있었다.

대학교 때, 당시 피처폰에서 인기를 끌던 ‘붕어빵 타이쿤’이라는 게임을 접했다. 붕어빵을 타지 않게 구워 포장마차의 매상을 올리는 게임이었다. 간단하지만 굉장한 마력을 지닌 휴대전화 게임에 푹 빠져 대학시절 내내 휴대전화를 끼고 살았다. 2008년, 컴투스에 입사해 이종기 대리와 함께 QA 파트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돌아온 액션퍼즐패밀리’의 기획을 맡고 있다.


습.관.
쉴 새 없이 주위를 둘러보는 습관이 있다. 사람들이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다. 지하철을 타서도, 길을 걸으면서도 연신 두리번거린다. 수백 가지 스마트폰 게임 중 ‘돌아온 액션퍼즐패밀리’를 발견할 때면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고 싶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고, 이용하는 데 불편한 점은 없는지도 묻고 싶다.
길을 걷다가도 ‘돌아온 액션퍼즐패밀리’에 등장하는 효과음이 들리면 뒤를 돌아보고, 혹시 게임에 대한 말을 하지는 않는지 귀를 기울인다. 재미있다는 말이 들리면 괜스레 어깨가 들썩여지기도 한다.
일에 대한 반응을 일상에서 바로바로 찾을 수 있다는 것은 게임기획자라는 직업의 가장 큰 매력이다. 내가 만든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지난 몇 달간의 고생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 같다.

스.트.레.스.
게임기획자는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꼭 필요하다. 게임을 기획한다고 하면 이곳저곳에서 부러움의 눈길을 보낸다. 취미로 즐기는 게임을 일로 하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게임기획자는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이기에 예상치 못한 문제에 부딪칠 때가 종종 있고, 그럴 때마다 불안함과 답답함은 켜켜이 스트레스로 쌓인다.
게임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는데 도무지 해결방법이 생각나지 않을 때 가장 힘들다. 문제가 생긴 부분을 고치려고 하면 다른 부분에 문제가 생기는 식이다. 이럴 때는 그 자리에서 끙끙대기보다는 한 시간이라도 집으로 돌아가 머리를 식히는 편이 낫다.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거나 미루어두었던 청소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해결책이 떠오르곤 한다.
스마트폰 게임은 출시되었다고 해서 완성된 것이 아니다. 출시 후에는 지난한 수정과 지속적인 관리 및 업데이트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이용자가 폭주하다보면 시스템에 오류가 생길 수도 있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게임의 모든 단계를 마스터한 이용자들이 업데이트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이 기간에는 휴식과 취미생활을 모두 포기한 채 사무실에서 개발팀원들과 동고동락한다.


좋.은.게.임.
좋은 게임의 기준은 게임기획자마다 다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게임이란 게임 방법을 소상히 알려주지 않아도 쉽게 할 수 있는 게임이다.
나는 어린아이들도 무리 없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 ‘에듀테인먼트’라는 게임 분야가 있다. 교육적인 내용을 재미있게 전달하는 게임이다.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에듀테인먼트 게임을 만드는 것이 기획자로서의 꿈이다. 어릴 적 내가 그랬듯, 아이들에게 화면 속 또 다른 세계를 배우게 해주고 싶다.
  • 2014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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