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 일출여행

우리나라 최남단 섬에서 2014년 첫 일출 볼까?

글 : 고선영   / 사진 : 김형호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을 좀 더 의미 있게 시작하고 싶어 길을 나선다. 이 땅이 끝나는 그곳에 들어앉은 다정한 섬, 마라도로 간다. 손바닥만 한 이 섬이 전해주는 결코 작지 않은 울림을 마음으로 듣고 세상에서 가장 붉은 해와 마주한다. 제주의 섬에서 찾아낸 진짜 제주의 모습이 여기 있다.
광치기해변에서 바라본 일출.
한겨울임에도 말간 햇살 때문인지 따뜻한 기운이 가득한 모슬포 항구를 걷는다. 조금 뒤 마라도를 향하는 배에 오를 예정이다. 점심으로 한라산 소주 한잔을 곁들여 방어회를 한 접시 먹은 터였다. 마라도와 모슬포 사이 바다에서 난 한겨울의 대방어는 참치회에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참기름 밥을 곁들여 입안에서 살살 녹는 방어회 맛은 두고두고 생각날 듯하다.


오후 4시. 모슬포 선착장에서 출발 준비를 마친 배가 긴 뱃고동 소리를 내뱉는다. 마라도로 향하는 마지막 배에 올라탄 이는 몇 되지 않는다. 쪽빛의 너른 바다를 헤치고 20여 분 달린 배는 곧 마라도 자리덕 선착장에 닿는다. 섬으로 오르는 검은 돌길.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동카트로 뒤덮였던 이곳이 비로소 제 길을 내보인다. 언제부터인가 섬의 길 가장자리를 뒤덮은 손바닥선인장과 금빛 너른 초원, 여기에 파란 바다와 검은 현무암이 조화를 이루는데 마음이 편안하다. 북적였을 한낮의 섬에는 오직 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만이 남았다. 대개 마라도를 찾는 사람들은 한두 시간 섬을 산책하고 부랴부랴 자장면 한 그릇을 먹고는 다시 배에 올라 썰물처럼 이 섬을 빠져나간다. 조그만 섬에서 무에 볼 게 있느냐는 말과 함께. 하지만 마라도의 진짜 얼굴은 바로 그때부터 만날 수 있다.



섬에서 맞는 고요한 밤과 황홀한 일출


간간히 머무르는 낚시꾼을 위해 해녀 할망이 내주는 작은 방에 짐을 푼다. 단출한 세간이지만 두어 시간 전부터 군불을 때놓아 방이 뜨끈뜨끈하다. 마라분교를 지나 초콜릿박물관까지 이어지는 섬의 서쪽 해안 길을 따라 걸으며 저물녘의 고즈넉한 섬 정취를 만끽하고 민박집에 돌아와 미리 부탁해놓은 소박한 저녁상을 받았다. 특별할 것은 없으나 마음이 설레었다. 우연히 만난 제주에서 가장 젊은, 그러니까 ‘대한민국 최연소 해녀’인 김재연씨와 담소를 나누었고, 민박집 주인 할망에게 이즈음 마라도의 날씨에 대한 넋두리를 들었다. 무수히 많은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보았다. 한밤중에는 창문을 뒤흔드는 거센 바람 소리에 몇 번 깨기도 했다. 그리고 기다렸던 신새벽의 바다와 마주했다.


오전 7시가 조금 넘었고 해가 뜨려 한다. 마라도 등대 아래 오목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20여 분 지났을까, 수평선 언저리의 공기와 바다가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옅은 구름층이 있었으나 다행히 해는 구름을 뚫고 불쑥 솟아올랐다. 그러고는 삽시간이었다. 바람이 거칠어 숨 쉬기가 힘들었지만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떠오르는 해를 바라봤다. 1분 뒤 해는 다시 옅은 구름층 사이로 숨어버렸지만 푸르스름한 새벽 공기를 걷어내기엔 그 힘이 부족하지 않았다. 동시에 섬은 잠에서 깨어났다. 다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상쾌한 블루의 바다를 향해 굿모닝, 잔뜩 웅크렸던 몸을 일으켜 세운다.


다정한 섬 산책

장군바위.
섬 둘레길 4.2km의 평평한 땅. 마라도에는 변변한 나무 한 그루 없다. 1880년대 마라도에 정착한 화전민이 뱀을 보고는 불을 질러 숲을 모두 태워버렸단다. 숲이 얼마나 우거졌는지 불길이 석 달도 넘게 타올랐다고 한다. 섬 산책은 어려울 게 없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고구마 모양으로 평평하게 솟아오른 마라도는 쉬엄쉬엄 걸어도 한 시간 남짓이다. 1915년 불을 밝힌, 태평양을 향해 선 흰 등대 아래에는 세계 각국의 기념할 만한 멋진 등대들의 모형이 들어선 등대공원이 있다. 등대공원을 지나 언덕 아래로 내려가면 버섯 집처럼 생긴 마라도 성당이 나타난다. 40여 가구 마라도 주민 중 5명이 이곳 성당의 신자로 등록돼 있고, 누구나 들러볼 수 있도록 늘 개방돼 있다. 또 여행자들이 도장을 찍듯 기념촬영을 하는 최남단기념비가 있다. 낮에는 해녀 할망들이 이곳에 모여 간이음식점을 여는데, 방금 잡아 올린 문어며 전복・소라 등을 판다. 초콜릿박물관을 지나 마라분교까지 간다. 섬의 크기에 맞춰 교사(校舍)와 운동장 모두 아담하다. 한때 학생 수가 30명 가까이 됐을 정도로 북적였으나 지금은 전교생이 달랑 2명뿐인 초미니 학교다. 그나마 겨울방학 중이라 학교에는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마라분교 앞으로는 자장면집이 죽 늘어서 있다. 한두 집 있을 땐 괜찮았는데 지금은 너무 많아 보인다. ‘마라도 자장면’이 유명해지며 최근 우후죽순 늘어난 자장면집들은 여전히 성업 중이다. 물론 독특한 맛 때문에 마라도를 찾을 때마다 맛보곤 하지만 언젠가부터 ‘마라도=자장면’이라는 이상한 공식이 생겨난 터라 아쉬움도 많다.


다시 모슬포로 나가기 전 선착장 인근 애기업개당바위를 보러 간다. ‘처녀당’ ‘할망당’이라고도 불리는 이 바위에는 쓸쓸한 전설이 남아 있다. 옛날 모슬포에 살던 한 부부가 업둥이를 데려다 기르던 중 아이를 낳게 됐고 업둥이에게 아이를 돌보게 했다. 마라도에 해산물을 채취하러 온 가족은 심한 풍랑을 만나 한동안 섬에 갇혔는데, 그 업둥이 소녀를 재물로 바치고서야 모슬포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몇 년 뒤 다시 돌아와보니 소녀는 죽어 흰 뼈만 남았고 사람들은 이 뼈를 수습해 정성껏 제사를 지냈다. 이 풍습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마라도 사람들은 해마다 애기업개당에서 성대히 제사를 지내고 바다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한다.

애기업개당바위.



다시 제주로 돌아갈 참이다. 마라도로 쏟아져 들어오는 여행자들과 반대로 본섬으로 향하는 배에 오른다. 구성진 트로트 음악이 귓가에 우르르 몰려온다. 바다는 여전히 깊고 진한 푸른색이며 바람은 잔잔하다. 방어잡이 배들이 가득 메운 바닷길을 미끄러지듯 지난다.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섬에게 작별 인사를 건넨다.

여행 정보

가는 길_ 모슬포항에서 정기 여객선을 이용하거나 송악산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이용할 수 있다. 정기여객선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한 시간 간격으로 운항하며 섬을 오가는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마라도에서 나오는 마지막 배는 오후 4시 30분이다. 유람선은 바다에서 마라도를 한 바퀴 돌고난 후 섬에 승객을 내려주고 1시간 30분 정도 시간을 준다. 문의 064-794-5490(마라도 정기여객선), 064-794-6661(마라도 유람선)

먹을 곳_ 최남단기념비 앞에 해녀들이 운영하는 해산물 간이음식점이 있고 마라분교 뒤쪽으로 자장면집들이 모여 있다. 고향인 마라도에 돌아와 해녀가 된 김재연씨가 운영하는 ‘철가방을든해녀’(064-792-5262) ‘자장면시키신분’(064-792-1434) 등이 있다. 대부분 민박집에서 식당을 같이 운영하기 때문에 마라도에서 숙박할 때 함께 부탁하면 된다.

묵을 곳_ 펜션과 민박집 등이 있고 최근 ‘마라도게스트하우스’(064-792-7179)가 오픈했다. 숙박료 2만5000원(1인), 저녁식사 1만원 등이며, 미리 문의하면 숙박에 모든 식사가 포함된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낚시에 관한 도움을 받을 수 있어 강태공들에게 인기 있는 집. ‘별장민박’(064-792-3322)은 자장면집을 함께 운영하는 곳으로 이 집 주인장이 이름난 돌돔낚시꾼이라고 한다. 방값은 인원 수에 따라 3만~5만원 선.


제주의 또 다른 일출 포인트

사계해안도로_ 사계 앞바다는 지형의 특성상 일출과 일몰을 함께 볼 수 있는 곳이다. 계절에 따라 위치가 조금씩 달라지지만 위치를 잘 찾는다면 형제섬의 두 바위 사이로 떠오르는 그리고 내려앉는 해의 사진을 동시에 찍을 수 있다.

대평리_ 올레길 8코스 끝지점의 박수기정 위에서 바라보는 일출도 멋지고 인근 군산오름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마음을 일렁이게 한다. 군산오름은 중문의 특급 호텔들이 숙박객과 함께 새해 첫날 해맞이 행사를 갖는 곳이다.

구좌읍 오름_ 고 사진가 김영갑 선생은 동쪽의 오름을 배경으로 한 일출(엄밀히 말하면 해뜨기 직전 새벽) 사진을 많이 남겼다. 사진가들 사이에선 용눈이오름에서의 일출이 잘 알려져 있다.

성산일출봉_ 이 섬의 가장 동쪽에 있는 성산일출봉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오름 정상까지 가는 길이 가파르고 힘들긴 해도 제주의 첫 해는 분명 이곳에서 뜬다. 우리나라에서 첫 해가 뜨는 독도보다 10여 분 늦다. 시간을 조금 놓쳤다면 광치기해변으로 간다.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해가 떠오르는 장엄한 광경을 볼 수 있다. 사진으로 담기에는 이곳이 제일이지 싶다.
  • 2014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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