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정민의 ‘언희(言喜)’

대종상

11월 1일 제50회 대종상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본의 아니게 <전설의 주먹>으로 신인남우상 후보에 올라 참석하게 됐습니다. 같은 작품에 출연한 박두식 친구와 함께 “우리 김수현님이 받으면 박수를 능숙하게 쳐주자”며 삼일 밤낮 박수치는 연습을 했고, 당일 우리는 아니나 다를까 지난 인생에서 쳤던 그 어떤 박수보다 능숙하고 현란한 박수를 칠 수 있었습니다. 황정민 형님과 함께 들어간 레드카펫에서는 각기만 추면 가장 완벽한 로봇 춤을 완성시킬 수 있을 만큼 얼어 있었고, 대기실에서는 두식이와 복화술로 대화했습니다. 마치 지하철 와이파이 같달까요.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지 내 앞에는 경이로운 선배님들이 드글드글했습니다. 야탑동 17년산 양아치들의 문자가 폭주합니다.

“너 배우 맞냐?” “배우냐? 로보튼 줄.ㅋ” “황정민한테 배 한 대 세게 맞았냐?”
“아이유 나올 때 왜 안 일어나? 죽고 싶냐?”
“안 닥치면 죽일 거다. 닥쳐도 죽일 거야.”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 약간의 공황상태에서 두 시간이 흐르고 식장을 나오자마자 보타이와 수트 단추를 풉니다. 그리고 어떤 느낌이 훅 밀려듭니다. 피가 끓는다고 할까요. 연기가 엄청 하고 싶었습니다. 엄청 열심히, 그리고 잘하고 싶었습니다. 확그냥 막그냥 여기저기 막그냥 막그냥 연기하고 싶었습니다. 십 몇 년이 흐른 후 내 동료들과 장난스럽게 악수를 나누며 서로에게 박수쳐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도 생각했습니다.
(또 박수쳐. 박수 머신.)


대종상 이후 박정민은 조금 더 멋진 박정민이 될 것 같습니다. 중요한 건 상이 아니고 상을 받아도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는 겁니다. 1만원 남짓한, 그 피땀 흘려 번 돈을 내고 영화관에 들어오시는 여러분께 거짓말하지 않는 배우가 되는 겁니다. 진실된 눈으로 연기하는 배우가 되는 겁니다. 마치 양조위처럼. 그래서 내가 지금 어디냐면.

홍콩에 왔습니다. 부랴부랴 짐을 싸서 홍콩에 왔습니다.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건물들이 참 중경삼림스럽고 길거리가 첨밀밀스럽습니다. 설렙니다. 처음 와본 나라고, 이제훈이 굉장히 좋아하는 나라고, 이제훈은 군대에 있으니까 홍콩의 한류스타는 나라고. 그래서 설렙니다. 홍콩사람, 유럽사람, 관광객이 섞여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지만서도 그게 바로 홍콩의 정체성이라는 사실에 또 한 번 설렙니다. 문제는 계획이 전무한 무차별 여행입니다. 홍콩은 양조위. 끝. 아, 왕가위도. 이 정도가 전부지만 1주일 후 저는 홍콩과 꽤 좋은 친구가 되어 있을 겁니다. 이제훈이 왜 그렇게 홍콩에 환장하는지 제가 한번 먹어보겠습니다.

멘탈이 엉망입니다, 사실. 뭔가 복잡하고 어지럽고 두려울 땐 떠나버립니다. 버리고 버리고 버리고 버리고 버려도 버려지지 않을 지경에 이를 때쯤 돌아가서 다시 제자리에서 생활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느 순간 말이죠. 여권에 도장 모으기. 열 번 모으면 한 번 공짜 이런 거 있었으면 좋겠다. 여하튼 벌써 올해만 해도 세 번째 여행입니다. 이번엔 홍콩의 밤거리에 찌꺼기들을 버리고 돌아가야겠습니다. 10개월 동안 먹먹했던 감정의 편린들과는 이제 좀 헤어지고 싶거든요. 비우고 비우고 비우고 또 비우고 비워서 다시 또 다른 인생을 만나서 사람들에게 보여줘야겠죠. 그 인생으로 숨쉬기 위해서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돌아가겠습니다.

벌써 2013년의 11월. 이 가을, 남성호르몬이 분비되어 탈모 증세가 오는 이 가을, 올해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하셨는지요. 지난 10개월 저는 제게, 그리고 친구들에게 팬들에게 이야기했던 나의 2013 목표를 거의 못 지킨 것 같습니다. 다행입니다. 아직 2개월이 남았으니. 그 2개월 동안 만회해보려고 합니다. 두 달이나 남았습니다. 우선 탈색과 염색에 지쳐 빠지기 시작한 머리카락을 한방샴푸와 트리트먼트로 찰랑거리게 만들고요. 운동도 열심히 하고요. 올해가 가기 전에 또 한 번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도 꼭 두 달을 잘 이용하시기 바랄게요. 2014년에는 새로운 계획 같은 거 짜지 마시고 지금 하는 거 쭉 해나가시길 바랍니다. 한 살 더 먹으면 살찌지만 느낌 아니까, 우리 같이 하나 되어 이깁시다.
박정민은 영화 <전설의 주먹>으로 이름을 알린 신인 배우. 2011년 <파수꾼>으로 데뷔했다.
‘언희(言喜)’는 말로 기쁘게 한다는 뜻의 필명으로, 앞으로 영화 현장, 배우, 그리고 연기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낼 작정이다.
  • 201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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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조현아   ( 2017-03-22 ) 찬성 : 8 반대 : 7
2013년 11월즈음에 저는 주변 애들 다 공부할 때 미용학원 끊어서 화장 배웠었어요. 처음으로 혼자 노래방도 가보고 그때 아저씨가 혼자 노래부르는 제가 안타까웠는지 서비스 되게 많이 주셨던 기억이 나요 '아저씨 저 친구 있어여 학원친구 두명이나 있는데.'
     ( 2016-02-20 ) 찬성 : 14 반대 : 11
훗날 영화제 남우주연상 받는날을 기다릴게요!
  화이팅   ( 2016-02-04 ) 찬성 : 29 반대 : 16
뒤늦게 이제서야 알게돼서 글을 하나하나 차근차근 읽어보고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알게돼서 다행이고 좋다는 마음으로요.ㅎㅎ 연기하는 박정민과 글 쓰는 박정민. 둘 다 진심으로 좋네요ㅎㅎ 화이팅입니다!!
20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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