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에서 요리사로 삶을 전환한 이상민씨

요리는 즐겁게 만들어야 맛있어요

글 : 시정민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때로는 텔레비전에서 본 한 장면이 한 사람의 삶을 바꿔놓기도 한다. 의대에 들어갔지만, 의사로서의 미래에 확신이 없어 방황하던 이상민씨.
그는 우연히 케이블TV 요리채널에서 영국의 유명한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가 요리하는 모습을 보고 강렬하게 끌렸다. 그 모습이 멋져 보였고, 자신도 요리사가 되고 싶었다.
이제 이름난 셰프가 된 그의 이야기는 중학교 가정 교과서에 실렸고, 여러 학교들로부터 진로 관련 강의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장소제공 : 홍대 띵크테이블 blog.naver.com/thinktable
2002년 4월, 의대 3학년이었던 그는 갑자기 일어나 가방을 싸서 뚜벅뚜벅 강의실을 걸어 나왔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의대에 진학했지만 의사라는 직업에 확신이 없던 차였다. “야, 너 수업 중에 어디 가?” “오빠들, 나 학교 안 다녀.” 그게 의대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의대생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높게 보는 것도 싫었고, 의사가 되고 싶지도 않았어요. ‘의사가 되겠다는 확신도 없는데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고민에서 놓여날 수가 없었습니다. 뒤늦게 사춘기를 맞았던 것 같아요.”

의대를 그만두겠다는 그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모님과의 갈등으로 결국 집에서도 짐을 싸서 나왔다. 무작정 가출을 감행한 그는 전단지와 인터넷을 뒤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을 해결했다. 고깃집에서 서빙을 하고, 가판대에서 액세서리를 팔다 아예 조그만 점포를 얻어 매장을 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TV에서 제이미 올리버의 요리 쇼를 보았다.

“조리복 대신 청바지에 티셔츠를 걸친 채 요리하는 그의 모습은 마치 록 콘서트를 보는 것 같았어요. 카메라를 향해 거침없는 멘트를 던지고, 다양한 허브를 양도 재지 않고 툭툭 던져 넣는 모습을 보며 온몸에 전율이 일었습니다. ‘진짜 멋있다’ ‘이거다’ 싶었죠.”


제이미 올리버의 레시피대로 요리를 해보고 책도 사서 탐독했지만 ‘이거 갖곤 안 되겠다’ 싶어 한국관광대 호텔조리학과에 다시 입학해 칼질부터 익혀나갔다.

“첫 수업에서 양배추를 썰라는데, 제가 언제 썰어봤어야죠. 조리고를 졸업한 어린 친구들은 정말 잘하더라고요. 오기가 생겼죠. 양배추, 무 등 떨이로 파는 채소들을 사와 써는 연습을 계속했습니다. 의대에 다닐 때 배웠던 영양학이 도움이 되기도 했고, 일단 무조건 다 외우며 공부했어요.”

요리 실습뿐 아니라 요리이론에 영어・불어까지 공부하면서 그는 경쟁력을 쌓아나갔다. 2006년에는 교수님의 추천으로 〈내일은 요리왕〉이란 TV 프로그램에 나갔다.

요리 서바이벌 형식인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거침없는 입담과 빼어난 실력을 보여 1500명 중에서 1등을 차지했다. 그해 겨울 그는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청년유학프로그램에 뽑혀 아랍으로 요리유학을 갔다. 한 달에 30만원밖에 못 받았지만 아부다비의 7성급 호텔 에미리트팰리스의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일했다. 그는 그 순간들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석 달간이었지만 이때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본 최고급 식자재들을 잊을 수가 없어요. 언제 다시 만져볼 수 있을까 싶네요. 이 요리, 저 요리 원 없이 요리해봤어요. 돈을 생각했다면 아마 못 갔을 거예요.”


이듬해에는 스위스로 건너가 호텔·관광 경영대학교인 IMI에서 조리경영학사를 취득하고, 현지 호텔에서 근무했다. 쉼 없이 달려가던 그는 잠깐 쉬자는 생각에 귀국했다. 그런데 귀국 후 러브콜이 이어졌다. 아부다비에서 인연을 맺었던 옛 스승이 노보텔앰배서더 강남에서 일하고 있었고, 그는 러브콜에 응해 입사 1년 만에 초고속 승진을 했다. 보통 2~3년 걸리는 쿡 서드(3rd) 생활을 1년 만에 끝내고 쿡 세컨드(2nd)가 됐다. 조리 분야에서 여성 셰프는 극소수다. 무거운 식자재를 들고, 위험한 칼로 커다란 고기와 씨름하며, 뜨겁고 센 불에 언제나 노출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팔과 손에는 흉터가 여럿이다.

“팔뚝은 프라이팬에, 손등은 오븐에 덴 거예요.”

칼에 베어 꿰맨 자국도 있다. 열심히 갈아놓은 칼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이 나가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이 앞서 손으로 턱 잡은 결과다.

그는 요리사가 되겠다는 자신의 꿈을 이해해준 부모님께 언제나 감사하다고 말한다.

“의대생 시절 해부학을 하려면 몸이 굳었는데, 요리 재료를 만질 때는 가슴이 충만해집니다.”


그는 4년 동안 그야말로 쉴 새 없이 일했다. 고속 승진하면서 할 일은 계속 불어났다. 그가 일하는 호텔에서 가족 모임이 있어도 얼굴만 잠깐 비출 수 있을 정도로 바빴다.

“쉴 새 없이 일하다보니 여유가 없었어요. 음식을 만들기만 했지, 정작 어디 가서 좋은 음식을 먹은 적이 없고요. 카페에 앉아 책을 보며 차를 마신 적도 없었죠. 어느 순간 ‘내가 요리를 하는 게 즐거운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힘들어도 즐겁고 재미있던 요리가 힘들게만 느껴지면 큰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올해 7월 처음으로 일을 그만두고 쉬어봤어요.”

한 달을 푹 쉬고나니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러브콜이 이어졌다. 그는 고정된 메뉴와 정형화된 음식을 요구하는 곳은 정중히 거절했다. 그러다 한 지인으로부터 받은 제안을 흔쾌히 승낙했다. 똑같은 재료로도 다양한 요리법을 시도하는 다이닝 카페의 셰프로 와달라는 제안이었는데, 그가 원하던 것이었다. 손님들의 취향에 맞춰 즉석에서 자유롭게 음식을 만들어낸다는 콘셉트다. 다이닝 카페는 10월 중순 오픈을 앞두고 있다. 그는 동료들과 척척 호흡을 맞춰가며 요리할 때 가장 짜릿하다고 한다.

“음식은 즐겁게 만드는게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만든 음식은 꼭 표시가 나요. 간이 맞지 않거나 면이 덜 삶아지거나.”

그는 현재 경기대학교 식공간연출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요리사들은 대부분 요리만 할 줄 알지, 공간 연출에 대한 개념이 없어요. 이 음식이 과연 어떤 실내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지에 대한 개념이 없죠. 음식은 맛도 맛이지만 공간을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따라 더 맛있게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요리와 공간 연출을 접목해보고 싶어요.”


그는 앞으로도 공부를 계속해 요리를 학문적으로 체계화하고 그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교수가 되고 싶다고 한다. 지금도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교과서적으로 가르치는 것을 지양해 학생들에게 달걀 한 판을 주고 “만들고 싶은 음식을 만들어보라”고 주문하는 식이다.

“처음엔 학생들이 ‘선생님이 맞느냐’고 하더군요. 학생들이 직접 창의적인 레시피를 생각해내 설명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아이디어와 창의력을 개발하는 게 학생들의 발전에 도움이 되니까요.”

그의 요리관은 그의 인생을 닮아 있었다.

“언젠가는 인도의 허름한 마을에서 카레를 만드는 등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요리하고 싶어요. 언제나 새로움에 목말라 있습니다.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도 많고요(웃음).”
  • 2013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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