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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고 무른 두부에 관하여

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 이영광 〈두부〉

두부는 희고 무르고
모가 나 있다
두부가 되기 위해서도
칼날을 배로 가르고 나와야 한다

아무것도 깰 줄 모르는
두부로 살기 위해서도
열두 모서리,
여덟 뿔이 필요하다

이기기 위해,
깨지지 않기 위해 사납게 모 나는 두부도 있고
이기지 않으려고,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모질게
모 나는 두부도 있다

두부같이 무른 나도
두부처럼 날카롭게 각 잡고
턱밑까지 넥타이를 졸라매고
어제 그놈을 또 만나러 간다



두부를 아시는가? 찬바람 일고 서리 내리는 늦가을 팔팔 끓는 청국장 안에 든 허옇고 슴슴한 두부의 맛을 아시는가? 두부는 희고 무르다. 세계의 견고성에 견줘볼 때 그것은 아주 가느다란 분류(奔流)의 임시적 고형물에 지나지 않는다. 아울러 식물적인 것의 정수(精髓)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약한 것에 속한다. 도약과 생성을 그친 채 한낱 식물적인 것의 응결에 지나지 않는 두부가 각을 잡고 있다. 각은 위세의 표현이다. 그런데 아무 힘도 없는 두부가 각을 잡고 있으니, 그 허세가 웃음을 유발한다.

두부가 되기 위해서도
칼날을 배로 가르고 나와야 한다

서민들의 밥상에도 쉽게 올라오는 두부다. 하지만 질긴 가죽도 없고, 단단한 뼈도 없이 흐물흐물한 두부를 노래하는 시는 드물다. 두부를 노래하는 시가 드물기에 이 시는 이색적이다. 두부는 각을 잡고 모가 나 있지만, 속이 무르고 한없이 나약하다. 외부에서 오는 작은 충격에도 쉽게 각이 허물어지고, 여지없이 형체가 으스러진다. 두부는 드잡이의 세상에서 가장 나약하고, 아무 저항 없이 속수무책으로 포식자에게 먹히는 피식자이지만, 시인은 두부가 되려면 “칼날을 배로 가르고 나와야 한다”고 선언한다. 그 존재성이 아무리 미미한 것이라 할지라도 본래적인 자기가 되기 위한 엄숙한 의례가 있어야 함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것이다.

무언가로 태어나기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액체는 아니되 액체에 가까울 정도로 흐물흐물한 두부로 살려면 “열두 모서리,/여덟 뿔이 필요하다”. 으르렁거리며 싸우고 뺏고 빼앗기는 이 세계에서 이 한없이 나약한 것이 내세우는 열두 모서리와 여덟 뿔이란 게 다 무언가. 그것은 아마도 희고 무른 두부의 자아에게 씌인 관(冠)이요, 두부 됨의 영명함을 드높이는 깃대이겠지만, 조금이라도 분별이 있는 자의 눈에는 턱없는 오만이요, 허풍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깰 줄 모르는” 두부란 그만큼 나약하고 존재감이 없다는 뜻이다. 아무것도 아닌 두부조차 두부로 살려면 제가 가진 열두 모서리와 여덟 뿔을 내세워야 한다는 것은 이 사회가 그만큼 살아내기 힘든 무한경쟁 사회라는 암시를 담는다.

우리 모두는 이 각지고 모난 세계 속에서 깨지기 쉬운 두부라는 유령으로 살아온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을 먹어치우고, 소화하고, 배설하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먹히지 않으려고, 깨지지 않으려고 한사코 모난 두부였었나? 무수히 계속되는 패배와 굴종이 강제되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모질게 모난 두부였었나?

쉽게 깨지고 부서지는 두부가 모나 있는 것은 한편으로 우스꽝스럽고 한편으로 슬픈 일이다. 그것이 슬픈 것은 자기의 본질, 자기의 약함을 망각하고, 자기답지 않은 생을 추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장 아름다운 삶이란 자기다움에 머물며 자기다움을 탐색하는 삶이겠지만 약한 존재들에게 그것은 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무엇이든지 찢고 물어서 삼켜버리는 동물들의 야성적 충동으로 뒤덮인 세상은 희고 무른 두부에게조차 각을 잡고, 열두 모서리와 여덟 뿔을 내보이라고 다그친다.

삶이 고달프니까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삶이란 허무를 느끼고 미리 전의를 상실해버린 싸움이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염세주의에 물든 철학자의 생각은 우리 시골 오일장에 더도 말고 딱 하루만 가보면 무색해진다.

이영광은 〈오일장〉에서 뭘 팔고 사려고 모여든 난전에서는 “사는 게 대체 무언가/하는 물음 따윈 없다 살고 산다 여념이 없다”고 쓴다. 사람들은 모두가 살려고 하고, 그 의지는 장마당에 차고 넘친다. 허무 따위는 발을 붙일 수 없고, 전의를 상실해버린 싸움이란 있을 수 없다. 오죽하면 “땅거미에 젖어서도 좌판들은 전의를 불사른다”고 하겠는가. 장바닥의 풍경이란 “악다구니와 성난 전화 목소리 드높은 길바닥,/도라지 같은 인삼에 인삼 같은 도라지를 벌여놓고/쭈그려, 냄비째 한 끼를 후룩대는/벌건 입김들”로 이루어지는데, 여기에 차고 넘치는 전의란 곧 살려는 의지, 기어코 죽지 않고 살아남으려는 의지이자 충동이다. 그것은 끓는 집중이고, 타는 불꽃이다. 다들 살려는 의지가 넘치는 세상은 살짝 미친 것 같다.

턱밑까지 넥타이를 졸라매고
어제 그놈을 또 만나러 간다

이기지 못하면 지고, 남을 깨지 못하면 내가 깨진다. 그러니 이기기 위해서나 깨지지 않기 위해 무른 두부조차 날카롭게 각을 세우고 모 난 존재로 행세한다. 넥타이를 졸라매고 “어제 그놈”, 자본주의 세상을 또 만나러 가는 것은 누구인가? 두부같이 무른 존재이면서 두부같이 각을 잡고 세상에 맞서는 그에게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더 비약하자. 상상계의 차원에서, 두부는, 혹은 부서지기 쉬운 두부의 형태로 식물적 평화와 공존의 삶을 모색하는 사람들은 이탈리아 출신의 작가이자 연구자인 마테오 파스퀴넬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물신주의와 “디지털 소외 전반에서 자신의 본능적 힘들”, 즉 예측 불가능한 야성적 충동들이 뒤에서 조종하는 금융과 에너지 위기의 유령들이 활개를 치는 전 지구적 동물몸들의 시대에 먹히고 사라지는 모든 약한 존재를 표상한다.


이영광(1965~)은 경상북도 의성에서 태어나고 안동에서 자란 시인이다. 1998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가 당선하며 문단에 나왔다. 그는 감히 “나는 모든 자폭을 옹호한다/나는 재앙이 필요하다/나는 천재지변을 기다린다”(〈저녁은 모든 희망을〉)고 쓸 줄 아는 시인이다. 그의 시들은 현실을 향하여 직진한다. 모두가 이기려고만 들 때 먼저 져주고, 모두가 살려고 할 때 먼저 “자꾸 죽자 자꾸 죽자/죽기 전에”(〈오일장〉)라고 노래한다. 그는 삶이 품은 무력과 비애를 긍정하면서도 염세주의에 투항하기를 한사코 거부한다. 그는 “무섭고 외롭더라도/조금만 더 외로워보아/조금만 더 정신을 잃어보아”(〈깔깔대는 혼〉)라고 쓴다. 그는 져주지만 지지 않고, 죽지만 죽지 않는다. 그의 시에서 움직이는 것은 이 미친 세상을 내려다보고 “깔깔대는 혼”이다. 혼이 깔깔대는 것은 그것이 반역(叛逆)의 기운에 들려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나무는 붙박이 존재이지만, 나무는 간다. 나무의 본질에 반역(反逆)하는 것이다. 움직일 수 없는 것이 가려면, 미쳐야 한다. 그의 시구들에는 선배시인 김수영이나 조태일이 보여주었던 남성적 힘이 넘치는데, 그것은 그의 시적 사유와 상상력이 나무의 그것이되 식물적 한계에 속박되지 않고, 그 전선(戰線)을 “뒤틀리고 솟구치며”, “육박하고 뒤엉키고 침투하고 뒤섞이는”(〈나무는 간다〉) 동물들의 역동적 세계로까지 넓히고 활달하게 펼쳐내는 까닭이다.
  • 2013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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