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수상한 미술작가 정은영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이 저를 작가로 만들었죠

글 : 이선주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1950~6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던 여성국극 배우들의 삶을 조명해온 정은영 작가가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올해 수상자로 최종 선발됐다. 에르메스재단 미술상은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과 함께 후보 작가들의 경쟁전시를 통해 최종 수상자를 뽑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미술상이다. 서울 신사동 ‘아뜰리에 에르메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그러나 인터뷰 도중 “작업을 이제 그만둬야 하나 고민한 적이 많았다”고 했다. “내 작업이 삶의 기반을 만들어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이젠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여성국극의 노배우들이 아티스트로서 그의 정체성에 불을 붙였다.
“그분들의 삶 앞에서 제 어려움은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1960년대 여성국극이 급속하게 쇠락한 후 생활고를 겪으신 분도 많은데,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은 결코 잃지 않으셨습니다. 요즘도 하루 24시간 무대 생각만 하시는 분들이죠. 아침·점심·저녁 어느 때 뵈러 가든 무대의상을 만지고 계시고, 무대에 필요한 물건들을 집안 여기저기에 진열해놓고 계세요. 돈을 앞세워 뭘 하겠다고 생각하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저 광대들’이라고 말하는 사람의 멱살을 잡고 경찰서로 갈 정도로, 여성국극이 천하게 취급당하는 것에 대해 극히 경계했던 분들이니까요.”

그가 이들을 처음 만난 것은 2008년 말이었다. 1950년대 문화를 연구하면서 여성국극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대학 선배가 “이건 학술적으로만 남겨선 안 될 것 같다. 너도 같이 가보자”고 권했다.

“처음에는 ‘노인들의 사교모임이니 지루하겠지’라고 생각하며 수동적인 자세로 따라갔는데, 너무 매력 있는 거예요. 70~80대이신 분들이 앞으로 어떤 무대를 만들고 싶다고 지금도 계획과 비전을 이야기하십니다. 저보고도 ‘열심히 살면 된다’고 힘을 주시고요. 그분들이 한 분씩 병환으로 몸져누우시고 돌아가시는 것을 보면서 ‘사라지는 역사성’에 대한 시급함을 느꼈죠.”


페미니즘 미술을 하던 그가 여성국극에서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여성이 어떤 과정을 거쳐 무대 위의 ‘완벽한 남성’으로 변신하는가?’였다.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에 문제를 제기한 페미니즘 이론가 주디스 버틀러처럼 ‘여성에게서 남성성이 어떻게 수행되고 구성되는가’를 보고자 했다.

“여성국극 인기의 정점에는 남장 배우가 있었습니다. 판소리에서는 나이 지긋한 명창이 이몽룡을 연기하는데, 여성국극에서는 20대 여성이 미소년처럼 남복을 하고 나와 17세 이몽룡을 연기하니, 여성 관객들이 넋이 나가는 거죠. 이들은 여성도 남성도 아닌 이상한 성별로, 누구는 너무 낭만적이고, 누구는 정말 용맹하고, 누구는 멋진 악당으로 현실에는 없는 ‘만들어진 남성상’을 연기합니다. 몸이 작은 여자가 무대에서 크고 멋진 남자로 보이기 위해 과장되면서도 우아한 제스처와 표정, 말투 등 나름의 노하우가 있었는데, 그게 여성관객들의 판타지를 자극한 거지요.”

그들에게는 극렬한 여성 팬들이 따라다녔다. 여자들만 공연하는 거라고 남편이나 아버지, 오빠가 공연 보러 가는 것을 허락해줬고, 문화적으로 소외되어 있던 여성들은 그 기회를 마음껏 향유했다.

“가정주부와 10대 소녀, 그리고 양공주와 트랜스젠더같이 우리 사회에서 성적으로 소외되었던 사람들 세 집단이 가장 열렬한 팬이었다고 해요. 여학생들이 찾아오면 ‘집에 돌아가 공부하라’고 훈계했는데,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에 진학한 팬도 있었다 합니다. 양공주나 트랜스젠더들은 성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배우들을 보면서 해방감을 느낀 것 같은데, 그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못 했다 해요. ‘갖은 고생을 다할 텐데 우리가 뭘 안다고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었겠는가’라고 하셔요. 주부들이 가장 편한 팬들이었는데, 이제 70~80대가 된 팬들이 지금도 찾아오세요. 가끔 공연이 열리면 잔치음식을 장만해 분장실로 찾아와 배우들에게 떠먹여줄 정도입니다. 서로 배우 옆에 앉겠다고 경쟁을 하고요.”

<정동의 막>
정은영 작가는 2008년부터 5년 동안 배우로서, 또 격동기를 산 인간으로서 그분들의 삶 그리고 일상을 밀착 촬영해 작품으로 발표해왔다. 이번에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선보인 작품의 제목은 <정동(情動)의 막(幕)>이다.

“평소에는 꼬부랑 할머니로 보이는 분들이 무대에만 서면 허리가 꼿꼿하게 펴지면서 키 큰 남자로 변신합니다. 아무리 젊은 배우도 무대에서는 그분들처럼 힘이 넘치고, 잘생겨 보이지 않을 정도예요. ‘그렇게 변신하게 하는 힘이 무엇일까’가 내내 궁금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여쭤봐도 ‘모르겠다’고만 말씀하세요. 여성국극에 매료돼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10년 동안 배우 훈련을 받은 38세 젊은 배우가 있는데, 여러 달 동안 ‘당신에게 남성을 연기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당신에게 남성성은 무엇인가?’를 물어도 설명을 못해요. 노배우들과는 달리 관객의 환호나 인기를 누린 적도 없고, 스펙터클한 무대를 본 적도 없는데, 어떤 힘이 그의 삶의 방향을 바꾼 것인지 알 수 없었죠. 그 알 수 없는 힘, 배우들의 공간을 가득 메우는 에너지에 저는 ‘정동(情動)’이라는 용어를 가져왔습니다. 인문학 분야에서 자주 사용하는 용어로 사람의 감정, 사랑과 관계되는 단어인데, 외부로부터 와서 개인의 어떤 의지와 만났을 때 폭발하듯이 생겨나는 힘이지요.”

<정동의 막>에서 젊은 배우 남은진은 분장을 통해 남성으로 변신, 무대에 오르기까지 과정을 영상으로 보여주고, 개막 퍼포먼스에서 자신이 여성국극 배우가 된 과정을 관객들에게 들려주었다. 아뜰리에 에르메스 전시에서는 또 유명한 악역배우였던 이소자 선생의 너무 여성적인 일상 공간, 남성적이고 호방한 소리로 제자를 가르치는 이등우 선생, 조영숙 선생이 여성국극의 창시자인 임춘앵 선생의 묘소에 찾아간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조영숙 선생님은 원산사범학교를 다니던 인텔리 여성이었는데, 월남 후 우연히 여성국극을 보고 무작정 ‘배우 하게 해달라’고 찾아갔어요. 임춘앵 선생과는 모녀처럼 가까웠죠. 올봄 그분이 자신의 삶 그리고 여성국극에 대해 이야기하는 공연을 올렸습니다. 여성국극이 가장 화려하게 꽃핀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6·25가 끝난 직후였어요. 피난을 다니면서도 공연을 계속했던 여성국극은 전쟁 후 말도 안 되게 화려한 무대를 선보였습니다. 디자이너 노라노 선생이 ‘다른 공연의 무대의상을 만들 때는 천이 부족해 어머니 한복 천까지 빼돌렸는데, 여성국극단의 창고를 여니 비단이 쌓여 있었다. 덕분에 마음껏 디자인 실험을 하고 보수도 많이 받았다’고 증언하실 정도예요. 외국에서 오페라, 무대미술을 공부하고 온 사람들이 대거 참여해 온갖 실험을 하면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스펙터클한 무대가 만들어졌다 합니다. 선생님들이 ‘그 뒤로는 어떤 무대를 봐도 심드렁하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랬던 분들이 여성국극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절을 어떻게 받아들이셨을지 마음이 짠하죠.”

여성국극의 창시자 임춘앵 선생의 묘소에 찾아간 여성국극 배우 조영숙.
정은영 작가는 이화여대 미대와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후 영국 리즈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밖에 몰랐는데, 막상 미대에 진학하고보니 무엇을 그려야 할지, 그림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제가 대학에 입학한 1993년, 대학가에서 가장 위세를 떨치던 운동이 페미니즘이었습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개안(開眼)한 느낌이었죠. 그때는 ‘여자가 똑똑해져야겠다’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던 것 같아요. 공부를 더하려고 대학원에 진학하고, 개념적이고 철학적인 작업을 많이 했지요.”

2002년 쌈지스페이스에서 작가로서 첫 전시를 하면서 그는 치매를 앓다 돌아가신 할머니 이야기를 했다.

“치매에 걸리신 후에도 부산에서 올라온 먼 친척까지 다 알아보셨는데, 할아버지만 못 알아보시는 거예요.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갖은 고생을 시키셨는데, 할머니가 여든이 되도록 살면서 지우고 싶었던 부분이 겨우 남편이었던 거죠.”

그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품에서 나온 지도를 가지고 떠나는 이야기’로 실제에 기반을 둔 소설을 쓰고, 설치작업을 했다.

그 후, 그 역시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마음으로 꽉 차 있던 터라 무작정 영국으로 떠났다.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고, 그림도 그만두려 했습니다. 어학코스에 등록해 영국에서 생활했는데, 막상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다보니 제 존재가 없어지는 것 같았어요. 역시 작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고 진학할 학교를 찾는데, 리즈대 대학원에 유명한 미술사가 그리젤다 폴록이 지도하는 ‘시각예술에서 페미니스트 이론과 실제(Feminist Theory and Practice in the Visual Art)’ 과정이 있는 거예요. 대학시절 그분 글을 인상 깊게 읽었던 터라 꼭 들어가고 싶었죠. 입학 후에는 수업을 따라가는 게 벅찰 것 같아 ‘작업은 안 하고 수업만 듣겠다’고 했더니 ‘넌 실천 없는 페미니즘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막 화를 내시는 거예요. 대단한 게 아니라도 작업을 계속하라고 하셨죠. 공부에 필요하다고 하면 비서를 시켜 뉴욕에서까지 자료를 얻어다 주실 정도로 열성적인, 한국 엄마 같은 분이셨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페미니즘 관련 작업을 계속하던 그는 ‘여성국극 프로젝트’ 직전에 ‘동두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뉴욕 뉴뮤지엄(New Museum)의 커미션을 받아 5개 도시가 각각 처한 첨예한 문제를 다루는 프로젝트였는데, 저는 그중 동두천의 여성문제를 맡았습니다. 그전까지는 저의 내밀한 이야기를 혼자 작업실에서 만들어내는 방식이었는데, 커뮤니티로 들어가 직접 부딪쳐야 했죠. 동두천의 클럽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이제 동남아 여성들로 거의 바뀌었는데, 인터뷰를 시도하다 벽에 부닥치면서 ‘내가 그들에 대해 무엇을 안다고 함부로 발언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가 들었습니다.”

〈narrow sorrow〉
그는 기지촌 여성들이 생활하던 공간을 촬영하고, 낮의 소리와 밤의 소리를 믹싱해서 작품을 만들었다. 클럽과 클럽 사이 좁은 공간에 다닥다닥 들어선 쪽방은 〈narrow sorrow〉란 작품이 되었고, 반짝반짝 빛나는 기지촌 불빛에 홀려 그곳으로 간 농촌여성의 역사는 〈twinkle twinkle〉이란 작품이 되었다. 그는 미디어 작업을 주로 한다는 이유로 ‘미디어 아티스트’로 불리기도 하는데, 그에게 중요한 것은 메시지이지 매체가 아니다.

“비용이 많이 드는 대형 캔버스 작업이나 설치작업을 했다면 지금까지 버텨오기도 힘들었을 거예요. 제 작업은 돌아다니면서 동영상 촬영을 하고, 집에서 편집만 하면 되기 때문에 비용도 공간도 많이 들지 않거든요. 돈이 떨어져 ‘도저히 계속하기 힘들겠다’고 할 때마다 기금을 받거나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선발돼 작업을 이어올 수 있었죠.”

힘들게 작업하면서도 문제의식을 놓친 적이 없는 작가는 큰 상을 받고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앞으로 우리 사회에 또 어떤 문제의식을 던질까?
정은영

1997년 이화여대 서양화과 졸업, 2000년 이화여대 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2004년 영국 리즈대 대학원 졸업, 2006년 ‘유랑하는 병들’, 2007년 ‘탑승객 여행자의 책’, 2010년 ‘시연’ 2010년 시선의 반격(서울 두산갤러리, 모로코 라빠르망22), 2012년 플레이타임(문화역 서울) 등 개인전과 2007~8년 뉴욕의 ‘New Museum of Contemporary Art’, 2012년 캘리포니아 어바인대 미술관, 2013년 페스티벌 봄 등 국내외 그룹전 참여.
  • 2013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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