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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했던 것에서 낯선 감정을 느낄 때 공포가 찾아옵니다”

충무로에 나타난 무서운 신인, <숨바꼭질> 허정 감독

사회에 대한 막연한 불만, 공포와 불안 심리를 파고들며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급속하게 퍼져 나가는 괴담.
영화 <숨바꼭질>도 이런 도시 괴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허정(32) 감독은 한 방송에서 남의 집에 숨어 사는 사람들에 관한 괴담을 접하고 그것을 모티프로 시나리오를 썼다. 힌트는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의 초인종 옆에 누군가가 암호처럼 새겨둔 표식(□1○1△2)이었다. 그리고 이 괴담은 한국영화 관객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영화를 보고 후유증에 시달렸다는 후기가 연일 포털사이트를 장식했고, <숨바꼭질>은 스릴러 영화사상 최단 기간 관객 500만 돌파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렇게까지 잘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어요. 처음엔 손익분기점인 150만 명만 넘기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사랑을 많이 받아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숨바꼭질>은 고급 아파트에서 번듯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사업가 성수(손현주)와 그의 집에 대한 이야기다. 형의 실종 소식을 듣고 오랜만에 찾은 형의 아파트에서 성수는 집집마다 새겨진 이상한 표식을 발견한다. 성수는 곧 그것이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수와 성별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부분이 영화의 모티프가 된 거죠. 도둑이 빈집털이를 할 때 쓰는 암호라는 이야기도 있었고, 신문배달을 하는 분들이 업무상 편의를 위해 적어놓은 거라는 얘기도 있었죠. 밝혀진 건 아무 것도 없어요.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하는 요소가 과거엔 귀신이나 유령과 같은 초현실적 존재였다면, 최근엔 현실적인 존재로 바뀐 셈이에요. 집이라는 건 나만의 공간, 우리 가족의 공간인데, 이 공간에 누군가가 침입한다는 것 자체가 공포로 다가오죠. 이런 부분이 현대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허 감독의 말처럼 영화 <숨바꼭질>은 ‘생활 밀착형’ 공포로 엮여 있다. 범인은 검은 점퍼를 입고 헬멧을 쓴 채 등장해 주인공의 집을 노린다. 범인의 차림은 우리가 생활에서 쉽게 마주하는 택배 기사를 연상시키기에 더 큰 공포로 다가온다. 집이라는 배경도 마찬가지다. 집은 생활의 근거지이자 쉼터이면서,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공간이다. 이 친숙한 공간이 낯선 공간으로 변모할 때 인간은 두려움을 느낀다.

<숨바꼭질>은 허정 감독의 첫 상업영화다. 허 감독이 이전에 촬영한 영화는 단편영화 <저주의 기간> <주희> 두 편이 전부다. 첫 장편 도전에서 소위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그러나 두 단편 모두 <숨바꼭질>과 비슷한 장르였던 터라 그는 이전의 내공을 바탕으로 한층 더 탄탄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저주의 기간>은 되는 일이 없는 한 가족이 실의에 빠지고, 결국 광기에 사로잡히는 내용을 그렸어요. <주희>는 <숨바꼭질> 시나리오를 작업하고 나서 쓴 거예요. <숨바꼭질>이 성수 시선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보여줄 수 없었던 부분을 주희 입장에서 보여주는 영화죠.”


<저주의 기간>은 2010년 제9회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공포스릴러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따냈다. 신예 감독의 탄생이 이때 예고된 셈이다. 첫 상업영화부터 평단과 언론의 관심을 휩쓸고 있지만, 그에게도 힘든 시절이 있었다. 허 감독은 군 제대 후 본격적으로 영화에 관심을 가졌다. 영문학도였던 그는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영화를 공부하기 위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진학했다.

“그전엔 막연하게 영화를 하고 싶다고 생각 했었어요. 그러다 어느 문화센터에서 강의를 듣고 나서 본격적으로 영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졸업 후 그는 국비가 지원되는 아카데미에 다녔다. 서른이 다 된 나이에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는 없었다. 집에서도 나와 따로 생활했다.

“단기 알바를 해서 생활비를 충당했어요. 시나리오 공모전에도 많이 응모했고요. 물론 공들여 쓴 시나리오가 거절당하기도 하고, 쓴맛도 많이 봤죠(웃음).”


<숨바꼭질>은 허 감독의 이런 경험이 쌓여 탄생한 시나리오다. 허 감독은 <숨바꼭질> 시나리오를 2011년부터 1년간 다듬고 또 다듬었다. 그 노력을 알아본 것은 ‘연기의 신’ 손현주였다. 손현주가 선뜻 작품을 하겠다고 나섰을 때 허 감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연기 잘하기로 유명한 분이라 설레고 들떴어요. 오히려 제가 연출을 잘못해서 실례를 범하는 건 아닐까 생각할 정도였죠. 현장에서도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손현주씨뿐 아니라 문정희・전미선씨도 다들 베테랑이잖아요. 미진해 보이는 부분은 배우들이 나서서 이렇게 저렇게 해보자고 제안하는 등 의논을 많이 했어요.”

평소엔 침착하고 담담한 말투의 허 감독이지만 현장에서 그는 깐깐하고 엄격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손현주가 허 감독을 두고 “촬영할 때 한 신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모두가 촬영장에서 힘들었던 건 사실이다. 앞으로도 허정 감독은 <숨바꼭질>만큼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것이다. 지금도 이렇게 웃고 있지만 무서운 사람이다”라고 이야기했을 정도다. 허 감독의 차기작이 궁금했다.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불안과 공포에 천착할 생각일까. 잠시 망설이던 그가 의외의 답변을 내놨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많은 건 사실이에요. 지금까지 그런 작업을 주로 해왔고요. 하지만 앞으로는 다른 장르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어드벤처물도 만들고 싶고 로드무비도 하고 싶고, 판타지에도 관심이 많아요. 스릴러나 공포에만 관심이 있는 건 아니에요(웃음).”
  • 2013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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