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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은 금물, 자기만의 색깔과 방식으로 풀어내야 신선한 기획 나와”

멘티(김성묵(덕클라우드 창업, 한국기술교육대 4)),
멘토(류재현(상상공장 대표, 월드디제잉페스티벌 총감독))를 만나다

정리 : 최선희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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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묵_ 감독님, 안녕하세요. 이건 롤러스케이트인데요. 제가 요즘 천안역 지하상가 상권 활성화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거든요. 그곳을 복고풍 디스코 음악과 함께 ‘추억의 롤러장’ 콘셉트로 꾸민 축제를 열려고 해요. 그런데 롤러스케이트가 단종된 지 오래돼 구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전국을 수소문한 끝에 많지는 않지만 어느 창고에서 잠자고 있는 걸 발견했어요. 요즘은 보기 힘든 물건이니 기념으로 하나 가지고 계시면 좋을 것 같아서 준비했습니다.

류재현_ 감사합니다. 디스코에 롤러스케이트라… 재미있겠는데요.

김성묵_ 결과가 어떨지는 잘 모르겠어요. 서울은 ‘노는 문화’가 발달해 있는 반면, 지방은 그런 기회가 별로 없어요. 충청권에 대학생들이 많지만 주말이면 싹 빠져나갑니다. 그래서 지역 대학생들이 함께 모여 노는 ‘캠퍼스 개더링’이라는 축제를 열었어요. 그게 반응이 좋아서 점점 판이 커졌고, 문화기획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노는 것만이 아니라 지역 상권과 상생하는 문화기획을 하고 싶어요. 창업을 하고 본격적으로 이 일에 뛰어들었는데 생각보다 어렵더군요. 감독님은 어떤 계기로 문화기획을 하게 되셨나요? 서울대 출신이라는 이력도 특이해 보였습니다.

류재현_ 무려 4수 끝에 서울대 공업디자인과에 들어갔어요. 군대 갔다 오고, 휴학도 한 번 했더니 졸업할 때 제 나이가 서른이었어요. 그 무렵 뒤늦게 홍대 클럽에 미쳤었어요. 한번 춤추면 서너 시간씩 추기도 했지요. 그동안 몰랐던 내 안의 끼를 발견하면서 이걸 억누르며 살지는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그게 인생을 바꾼 거죠.

김성묵_ 대학 졸업 후 곧바로 문화기획에 뛰어드신 건가요?

류재현_ 원래는 광고대행사에서 PD로 일했어요. IMF 외환위기 때 구조조정이 있었죠. 그런데 회사를 가지 못하게 된 상황이 전혀 우울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더 이상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속으로 만세를 불렀죠. 그리고는 신나게 놀았어요. 거창하게 문화기획이라고 할 만한 건 아니었고, 사람들을 모아 함께 노는 일종의 사교파티를 많이 기획했어요. 나중에는 파티의 백미인 댄스타임을 따로 떼어 독립적인 형태로 만들었어요. ‘실내에서만 노는 게 답답하니 야외로 나가볼까’라는 생각에 2000년에는 여의도에서 댄스파티를 열었고요. 그게 아마 우리나라 최초의 야외 레이브(rave, 테크노·트랜스 음악을 틀어놓고 밤새도록 즐기는 파티)일 겁니다. 그 해 가을에는 종로4가에서 광화문까지 테크노차량 퍼레이드를 했어요. 이것도 최초였고요. 기록을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해보고 싶은 일을 벌였을 뿐인데 아무도 시도한 적이 없어 최초가 됐어요.


김성묵_ 하이서울페스티벌 등 공공기관과도 작업을 많이 하셨던데요.

류재현_ 2000년에 ‘2002 한일월드컵’을 위한 지원연구단이 꾸려졌는데, 거기 들어가면서 공공기관의 문화기획에 참여하기 시작했어요. 그 인연으로 2003년 하이서울페스티벌 기획단에서도 일하게 되었고요. 공무원 일색인 조직에서 저는 좀 튀는 존재였죠. 미대 출신이라는 이력도 그렇지만 이른바 ‘놀아본 적’이 없는 분들이라 어떻게 축제를 만들어야 할지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비보이 배틀이나 인디밴드 공연, 디제잉 같은,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 위주로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공공기관에서 비주류 문화인을 위주로 축제를 기획한 것도 그렇지만 그들 역시 공공기관에서 주관하는 무대에 서본 적이 없으니 양쪽 모두에게 파격적인 행사였어요. 그게 의외로 소위 대박이 났어요. 비보이 배틀에 무려 3만 명이나 왔으니까요. 인디밴드 리허설 때는 총감독이 “나는 인디밴드를 모르니 당신이 감독을 맡아달라”고 해서 얼떨결에 감독을 하게 됐어요. 당시 방송이나 공연 관계자들이 내 이름을 이 바닥에서 전혀 들은 적이 없어 ‘저 사람이 대체 누구냐’고 수군거렸다고 해요. 좀 어이없게 감독으로 입문했지만 그때 거절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살다보면 여러 번 기회를 만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너무 자기를 돌아봐요. ‘전공자도 아니고 스펙도 부족한데 괜찮을까’라고. 하지만 기회라고 생각될 때는 무조건 잡아야 합니다. 혼자 모든 능력을 다 갖출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어요. 능력 있는 스태프들과 함께하면 되니까요.

김성묵_ 감독님 덕분에 인디 문화가 많이 알려진 것 같아요. 저는 ‘댄스타임 in 명동’ 페스티벌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류재현_ 2003년에 하이서울페스티벌을 하면서 밤새 춤추고 놀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도심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는 곳이 어딜까 찾아보니 명동이더라고요. 서울시의 허락을 얻어 다음 해부터 독립된 축제로 만들어 3년간 진행했지요. 2007년에 하이서울 페스티벌 기획단을 그만둘 때까지 많은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그중에서도 인디 문화를 널리 알렸다는 점이 저도 뿌듯합니다.

김성묵_ 제가 만든 ‘캠퍼스 개더링’ 축제의 경우 EDM(Electronic, Dance, Music)이 주를 이루었는데요. 요즘 전 세계적으로 EDM이 각광받고 있는데 문화산업으로서의 전망이 궁금합니다.

류재현_ 얼마 전 네덜란드와 덴마크를 돌아보고 왔어요. 주한덴마크대사관에서 한국-덴마크 수교 55주년 기념으로 음악 교류를 하고 싶다고, 국내 EDM 쪽에서는 월드디제잉페스티벌이 제일 유명하다고 저를 초청해 두 나라를 돌아보는 기회를 주었지요. 가보니 축제 규모가 어마어마하더라고요. EDM은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나이트클럽 문화가 아니에요. 문화 예술이 함께 어우러진 장르이기 때문에 산업으로서의 발전 가능성은 더욱 큽니다. CJ 같은 대기업이 이 분야에 뛰어든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김성묵_ 월드디제잉페스티벌은 지금 세계적인 축제가 되었는데요. 해외에 수출할 계획은 없으신가요?

류재현_ 해외 진출은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돈을 받고 파는 형태가 아니라 아시아 국가들과 함께 어울려 놀고 싶어요. 그런 교류들을 통한 아시아 문화 네트워크를 만들어보려고 해요.

김성묵_ 문화기획자로서 성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요소는 무엇일까요?

류재현_ 기획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남의 것을 따라 하는 거예요. 자신의 능력과 감각을 믿고, 자기만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세요. 그래야 신선한 기획이 나옵니다. 그리고 한번 맡은 일은 손해를 안더라도 끝까지 책임감 있게 마무리해야 합니다. 자칫 사기꾼이 될 수도 있어요(웃음). 문화기획자와 사기꾼은 종이 한 장 차이라, 공연을 얼마나 책임감 있게 끌고 가느냐에 따라 유능한 기획자가 되기도 하고, 거짓말쟁이가 되기도 합니다. 그게 이 바닥의 생리예요.

김성묵_ 저도 그런 부분이 제일 힘들더라고요. 이미 적자를 끌어안고 있고요(웃음). 문화기획을 위해 SNS 마케팅 대행 같은 별도의 사업을 진행하면서 비용을 충당하고 있습니다. 충청권에서 IT와 문화기획을 결합한 혁신형 사업 모델을 개발하려고 합니다. 저도 언젠가 월드디제잉페스티벌처럼 국내 라이선스를 가진 세계적인 축제를 만들고 싶어요.

류재현_ 성묵씨의 행보를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에요. 예술가와 기획자의 차이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돈이 안 벌리고, 남이 원하는 걸 하면 돈이 된다는 데 있어요. 하지만 그걸 이분법적으로 나누기보다는 그 영역을 넘나들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많이 저질러야 해요. 문화기획 아이디어는 거창한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게 일을 부탁한 사람과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것, 시대적 상황을 두루 고려하면 답이 나와요. 성묵씨는 그런 면에서 충분히 자질이 있어요.

김성묵_ 감독님의 칭찬을 들으니 더 힘이 납니다. 열정과 용기를 불어넣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류재현
‘상상공장’ 대표인 그는 지난 10년간 하이서울페스티벌, 댄스매니아 in 서울, 월드디제잉페스티벌, 사일런트 디스코 등 참신한 축제들을 선보이며 우리 문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1999년에는 국내 최초로 테크노 커뮤니티 사이트를 만들어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고, 티켓 한 장으로 홍대 앞의 클럽들을 자유롭게 오가는 ‘클럽데이’도 만들었다. 그가 운영하는 상상공장은 일반 기업과 시민단체의 중간 성격을 가진 대안 기업으로 다양한 문화 활동을 통해 ‘행복하고 즐거운 사회’를 꿈꾼다. 재미있게 꾸며진 사무실 겸 집에서 ‘눈뜨면 출근하고, 눈을 감으면 퇴근하는’ 삶을 살고 있다.

김성묵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기술경영학과 4학년. 문화기획에 관심이 많은 청년 창업가로 충청지역 대학생 축제 ‘캠퍼스 개더링’을 비롯해 EDM 공연 콘텐츠를 중심으로 록·힙합·토크콘서트·축구대회·자전거캠페인 등 다양한 행사를 기획했다. 자신이 기획한 공연과 행사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보람을 느낀다는 그는 요즘 자신의 고향인 충청지역 상권 활성화를 위한 문화기획에 관심이 많다. 지역 특유의 색깔을 가진 축제를 개발해 세계적인 콘텐츠로 확장시키고 수익금을 국제개발사업에 투자하는 게 꿈이다.
  • 2013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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