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에 작은도서관 만든 김병록・백창화 부부

책의 향기에 흠뻑 빠져드는 책마을 만들고 싶어요

글 : 이선주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충북 괴산군 칠성면 미루마을. 전원생활을 꿈꾸며 귀촌한 5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이 마을에서 유달리 눈에 띄는 집이 있다. 정원에 들어서면 빨간 지붕을 단 창틀에 피노키오 얼굴을 붙여놓은 문이 시선을 끄는 작은 오두막과 평상 양쪽에 책꽂이를 세운 후 지붕을 덮은 파고라가 놓여 있다. 오두막 문을 열고 들어서니 사방 벽에 설치한 책장 가득 책 혹은 인형이나 가방, 옷 등 책 내용과 관련된 소품이 전시되어 있다. 현관 옆 신발장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트럼프 병정 모양이고, 프랑스 그림책 《푸른 개》에 나오는 푸른 개를 본떠 만든 의자도 있다. 가지・오이・ 고추・브로콜리 등 채소를 심어놓은 텃밭이 이리저리 꽃들이 피어 꽃밭 같고, 밤에 캠프파이어를 할 수 있도록 불 피우는 장치도 되어 있다. 햇볕은 따갑지만 주변 산에서 때때로 선들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힌다. 파고라에 해먹을 걸어놓고 누워서 뒹굴뒹굴 책을 읽거나 깜빡 낮잠을 자는 맛이 그만이라고 한다.


집 안으로 들어서도 사방이 책들이다. 거실 벽면도, 다락으로 올라가는 계단 한쪽에도 책이 쌓여 있고, 다락방은 아예 세계 각국에서 구입한 팝업북과 그림책 등 귀하게 얻은 책들과 책 관련 소품들의 전시장이다. 작은 도서관 같은 집을 만든 사람들은 김병록・백창화 부부다.

이들은 유럽의 책 마을과 서점, 도서관을 순회하고 단행본 《유럽의 아날로그 책공간》을 함께 펴낸 공동 저자이기도 하다. 이들이 괴산에 터를 내린 것은 2011년 여름. 서울에 살던 이들이 이곳으로 내려온 것은 책을 통해 농촌마을의 미래를 열어보겠다는 꿈 때문이었다. 부부는 모두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 남편인 김병록씨가 ‘언젠가는 서울을 탈출해 전원생활을 하고 싶다’는 꿈을 오래 간직했다면, 아내인 백창화씨는 오랫동안 작은도서관을 운영해온 자칭 북 러버(book lover)였다.


“일산에 살 때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어요. 2001년 일산에는 공공도서관이 딱 한 군데밖에 없었는데, 찾아가보니 서가에 꽂힌 책이 대부분 제가 어린 시절 본 것과 별로 다르지 않더군요. 신간서적은 모두 대출해 갔다는 거예요. 당시 일산에는 아이들이 제대로 책을 빌려볼 수 없는 환경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사재를 털어 책을 함께 읽는 공간을 만드는 분들이 있었어요. 저도 그들과 같은 꿈을 꾸면서 제 집으로 아이들을 불러 모아 책을 읽어주고 책 이야기를 하고, 글 쓰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아이들도 편안한 공간에서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요. 2002년에는 아는 이가 낸 사무실 한켠에 책 읽는 공간을 만들어 집에서 들고 나온 책꽂이와 책들로 채우고 ‘숲속작은도서관’이라는 간판까지 달았죠. 사람들이 ‘빌딩 숲 속에 있어서 숲 속 도서관이냐’고 놀렸는데, 훗날 진짜 숲 속으로 오려고 지은 이름인가 봐요.”


2007년, 정부가 전국에 작은도서관을 조성하기 시작하던 때에 마포로 도서관을 옮긴 부부는 마을의 작은도서관이 어떻게 공간을 구성하고, 어떤 책을 소장하고, 아이들이나 지역주민들과 어떤 활동을 해나가는지 모범사례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러나 2010년 장기임대를 거부한 건물주에게 등 떠밀려 쫓겨난 후 도서관을 휴관하고, 모든 짐을 컨테이너에 보관하게 됐다.

“도서관 문을 닫고 보니 시간도 돈도 남아돌더군요. 그동안 도서관 운영비에 들어갔던 남편 월급이 차곡차곡 쌓였으니까요.”


정부가 공공도서관 확대에 적극 나서자 이들은 도서관 건립과 운영은 국가에 맡겨두겠다는 심정으로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책마을이었다. 점점 설자리를 잃고 있는 책방, 출판사와 사람들이 없어서 공동화되는 농촌을 함께 살리기 위해 유럽의 시골마을들에 책마을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였다. 마을 입구에는 커다란 책 모양 조형물이 사람들을 반기고, 골목마다 책방과 출판사, 예술가의 공방이 들어차 책과 예술의 향기에 흠뻑 취할 수 있는 마을. 부부는 이런 마을을 꿈꾸기 시작했다. 백창화씨가 책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을 좋아한다면 남편인 김병록씨는 자연 속에 파묻히는 게 행복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언젠가는 전원생활을 하리라’는 꿈을 안고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찾아다녔다. 강원도 산골에 마음이 이끌려 그곳에 정착할 줄 알았는데, 새로 조성되는 전원마을인 미루마을이 마을회관에 도서관을 만들면서 교육문화마을로 만들겠다는 이야기에 솔깃했고, 부부는 그동안 모은 책들을 들고 이곳으로 오게 됐다. 서울생활을 청산하기 전 부부는 자신들이 꿈꾸는 책마을의 롤 모델을 찾기 위해 유럽 여행을 준비했다. 2010년 볼로냐 아동도서전이 열리는 시기에 맞춰 3월 말부터 35일 동안 4개국을 돌았다.

“2010년 새해 첫날부터 석 달 동안 밤마다 인터넷에 매달려 살았어요. 온라인 여행 커뮤니티를 모조리 돌아다니고, 구글에서 영어는 물론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로까지 검색했지요. 결국 이탈리아・스위스・프랑스와 영국 4개국을 찾기로 최종 결정했지요.”


가장 유명한 책마을은 영국 헤이온와이.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리처드 부스가 법률가가 되기를 바랐던 부모님의 뜻을 거역하고 고향마을에 만든 헌책마을이다. 커다란 창고를 확보한 그는 영국 전역에서 책을 사들였고, 오래된 고성을 사들여 책마을의 상징으로 삼았다. 지금은 주민이 1000명도 안 되는 작은 산골마을에 연간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고 100만 권의 책이 팔린다. 이곳은 고개를 돌리는 데마다 책방이었는데, 정원 가꾸기와 명상서적, 사진과 예술서적, 어린이책 등 분야별 전문서점이 많았고, 고성의 성벽을 둘러싸고 늘어서 있는 야외 책꽂이가 인상적이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몬테레지오 책마을은 16세기부터 마을 사람들이 바구니에 책을 짊어지고 전국을 돌며 팔러 다닌 역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마을이다. 매년 8월 마지막 주말에 작가・화가・편집자 등 출판관계자들이 책축제를 연다. 프랑스 최남단 몽톨리외 책마을은 2006년 만들어진 신생 책마을로, 인근 도시에서 제본소를 운영했던 미셸 브레방이 고향마을에 책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직접 보고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장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조성했다. 책방을 열겠다는 사람이나 예술가들에게 빈집을 헐값에 임대하자 책방과 예술가 공방이 속속 들어섰다. 여기에 수시로 공연과 축제를 열면서 도시사람들이 몰려왔고, 마을은 살아났다.



모든 공간에 책을 놓아 도서관이 된 집과 ‘배고픈 애벌레 책상’이 놓인 ‘숲속 작은도서관’(맨아래).
책마을 여행을 다녀온 부부는 책을 펴내고, 괴산의 집을 유럽의 책마을처럼 꾸미기 시작했다. 취미로 목공을 배웠던 김병록씨는 집 구석구석에 책장을 짜 넣고, 동화책 주인공들을 가지고 가구를 만드는 ‘예술목수’가 되었다. 피노키오 오두막과 트럼프병정 신발장, ‘배고픈 애벌레 책상’ 등이 이렇게 만들어졌다. 책을 빽빽하게 꽂는 게 아니라 표지가 보이게끔 여유 있게 꽂으면서 인형이나 장난감 등 관련 소품도 같이 놓아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도 유럽의 서점이나 도서관 같은 책공간에서 배웠다. 이들은 아이들에게 무조건 책을 읽으라 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노는 공간에 책을 두어 놀다가 책을 빼어들며 즐거운 경험을 하게 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텃밭과 책 읽는 오두막, 파고라가 있는 정원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자연 속에서 쉬다 즐기다 놀다 책을 읽는 공간으로.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처럼 가난한 문필가들에게 공간을 내주겠다는 꿈도 생겼다. 마을회관에 들어설 도서관은 아직 준비 중. 책은 모두 배열해놓았지만, 준공허가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우선 자신의 집에서 민박을 시작, 책과 가까이 지내고 싶은 사람들을 맞고 있다.

김병록・백창화 부부가 찾은 유럽의 책공간


파리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
파리와 문학을 사랑했던 미국여성 실비아 비치가 연 서점. 그녀의 서점에 회원으로 가입하면 2주 동안 한두 권의 책을 빌려갈 수 있었는데, 앙드레 지드가 이 서점의 회원이었고, 에즈라 하운드, 스콧 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도 이곳을 사랑했다. 제임스 조이스가 《율리시스》를 출간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을 때는 이 서점이 직접 출간하기도 했다. 1941년 나치가 파리를 점령했을 때 서점은 문을 닫고 실비아는 수용소에 끌려가 6개월간 갇혀 있었다. 이후 실비아는 미국인 조지 휘트먼이 센 강 근처에 연 영어책 전문서점을 종종 찾았는데, 실비아가 사망하자 휘트먼은 그녀의 모든 장서를 인수, 서점 이름도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로 바꾸어 명맥을 이었다. 이 서점은 영화 〈비포 선셋〉에서 남녀 주인공이 재회하는 장소로 등장하면서 더욱더 유명해졌다. 김병록씨는 “수많은 책들이 모여 향기를 뿜어내는 공간, 결코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는 시간이 주는 안정감에 반해버렸다”고 한다

피노키오 국립공원
이탈리아의 작은 시골마을인 콜로디에 있다. 피노키오의 주요 장면들이 모자이크로 조각돼 있고, 피노키오의 기다란 코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다시 한 번 조각가들의 작품으로 등장인물들과 만난다. 책 한 권을 실감나게 읽는 듯한 숨가쁨과 충족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은 아이들은 인형극을 보고, 피노키오 얼굴 가면도 만들어볼 수 있다. 기념관에는 전 세계에서 발간한 피노키오 동화책, 동화 포스터, 피노키오를 소재로 한 목각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장크트갈렌 수도원도서관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이자 중세시대 사본제작의 대표적 거점이었던 곳. 17~18세기 증개축을 통해 화려한 건축물로 재탄생한 이 도서관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1층 전시관에는 9세기 때 수도사들이 저술한 책들이 펼쳐져 있어 1000년 전 영혼과 만날 수 있다.

피터래빗 뮤지엄
영국 중북부 윈더미어 호숫가에 있는데, 《피터 래빗》 그림책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세밀하게 재현되어 있는 동화나라. 동화 속 주인공을 따라 전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나면 너나 할 것 없이 이 작은 동물들의 세계에 흠뻑 빠질 수밖에 없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대부분 할머니 할아버지로, 어렸을 때 읽었던 《피터 래빗》을 추억하는 장소다.

로알드 달 박물관과 이야기센터
〈찰리와 초콜릿 공장〉 등을 쓴 작가 로알드 달을 기념하는 박물관과 이야기센터는 파트너였던 삽화가가 그린 그림들로 가득하다. 철저히 어린이 눈높이로 만들어져서 작가의 어린 시절과 작품 세계, 동화를 배경으로 한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거리로 채워져 있다. 어린 시절 그가 얼마나 개구쟁이였는지를 알 수 있는 에피소드가 벽화로 재현되어 있고, 사립학교 기숙사 시절 엄마에게 보낸 맞춤법이 엉망인 편지들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아이들은 작가가 입었을 법한 교복을 입어보고 그가 앉았던 의자에 앉아 글도 써본다. 작가의 흔적이 숨은 곳을 걷는 ‘로알드 달 트레일’도 있다.
  • 2013년 09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